한의사 이승민
[워킹맘 한의사 앤 더 시티]

안녕하세요? 저는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침구과 전문의로서 활동하면서 침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2019년 미국 뉴욕으로 왔습니다. 이 글을 통해 한의사로서, 강사 및 연구자로서, 또 두 아이의 엄마로서 해외에서 살아가는 일상과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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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치료가 아파요! 컴플레인 대처법

 

서툰 목수가 연장을 탓한다고 하는데… 가끔은 문제의 원인이 정말 연장 때문인 경우도 있습니다. 쇠망치를 가지고 두드려야 하는데 시끄럽지 않게 두드려 달라고 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원래 물건을 망치로 때릴 때는 소리가 날 수밖에 없으니 참으세요!”라고도 할 수 있지만, 소리가 덜 나는 고무 못이나 고무망치로 바꾼다거나, 못 위에 천을 덮는 등의 대처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침구과 전문의가 되고자 침구과에 지원했을 때, 침을 제일 잘 놓는 사람이 될 수는 없어도 최소한 침을 제일 안 아프게 놓는 사람은 되어보자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원 시절에는 이를 더 자세히 탐구하기 위해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의 신경생리학 교수님께 연락을 드려 수업도 듣고, 침 자입 시의 통증은 줄이면서 침과 관련된 유의한 치료 효과는 감소하지 않게 하는 요인 분석도 시도해 봤습니다. 계속 신경을 쓰며 침을 놓다 보니 나름 노하우가 많이 생겼고, 부원장으로 일할 때 환자분들 중에서는 침이 안 아프면서 시원하다고 칭찬해 주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침 치료는 자극, 그리고 유의한 자극량 (treatment dosage)이 어느 정도 필요하기 때문에 아예 통증이 없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떨 때는 오히려 득기감을 강하게 유발하여 더 빠른 치료 효과를 유도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침 치료가 처음이신 분들, 몸이 많이 피곤하신 분들, 신경이 예민하신 분 중에는 통증을 더 많이 느끼시는 분들이 분명히 계시고, 침 치료가 너무 아프면 재방문을 안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치료할 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일일이 신경을 못 써 드렸지만, 미국에 와보니 환자분 중에서는 침 치료가 태어나서 처음이신 분들도 많아서 어떻게라도 대책을 마련해 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침 치료의 두려움을 완화할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으로는 치료 과정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시켜 드리고 안심시켜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상투적으로 해왔던 말로는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바늘로 피부를 뚫을 거라 조금 아플 수 있어요. 20분 정도 유침한 다음에 뺄 건데, 움직이면 더 아프니까 가만히 편안하게 누워 계세요.”

이렇게 설명하는 것은 설명을 안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반 침 바늘은 일반 주사기 바늘구멍에 10개 이상 들어갈 정도로 얇아요. 보세요, 머리카락처럼 얇죠? 이 침으로 이 부위를 찌를 건데, 개미가 아주 살짝 무는 것처럼 매우 따끔한 정도로 0.1초 아프고 그다음에는 괜찮을 거예요. 아주 간~혹 우리우리, 욱신거리고 묵직한 느낌도 있을 수 있는데 다 정상이니까 걱정하지는 마시고, 지금 시작할게요. 자, 숨 크게 들이마시고~ 흡~! 숨 참으시면 제가 자입할게요. (자입 시 혈자리 주변부를 왼쪽 손으로는 살짝 두드려 주며 자입하고) 네 다 했습니다. 안 아팠죠?”


이 정도로 자세히 설명해야 환자분들께서도 조금 감탄을 해 주시더군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참았을 때 침을 놓고, 왼쪽 손으로 진동각을 유발하는 것은 신경생리학 시간에 추가로 배운 노하우였는데요, 숨을 참으면 체내 압력이 높아지면서 신경이 둔해지고 주변의 진동감각신경까지 자극하면 상대적으로 자통을 덜 느낀다고 합니다. 침 치료의 호흡 보사법에는 어긋날 수 있지만, 첫 치료 시에는 호흡 보사법은 희생시키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해도 긴장하시는 분들께는 두 번째 단계로 스트레스 공 하나를 준비해서 드렸습니다. 스펀지 공으로 침 맞는 반대편 손에 쥐여 드리고 침 자입 시 꽉 잡아서 침 맞는 부위의 긴장을 오히려 낮추는 방법입니다.


보통은 첫 번째와 두 번째 방법으로 많이 해결되지만 사암침을 놓는 경우, 혹은 유독 통증을 심하게 느끼시는 분들에게는 그래도 부족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환자분들이 침 치료가 오직 아프다는 이유로 다시 안 오실 때는 너무 속상해서 조금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도구가 있지 않을까 탐색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것이 세 번째 단계에 쓰는 ‘샷블로커 (ShotBlocker)’라는 도구와 ‘버지 (Buzzy)’라고 하는 도구였습니다.


둘 다 제가 왼손으로 진동 감각을 유발하는 일을 대신해주는 도구입니다. 즉 새로운 통증이나 진동으로 실제 통증을 돌려막는 기술인데요. 샷블로커라는 노란색 기구는 실제 병원의 소아과 병동에서 바늘을 무서워하는 아이들의 주사 치료 시 많이 이용하며, 저는 원위부 혈자리 자입 시에 이를 이용해서 혈자리 주변부를 감싸면서 자입하는 형식으로 응용하였습니다. 버지는 조금 더 넓은 체간에 위치한 혈자리 자입 시에 이용했습니다. 버지에는 얼음주머니로 주변부 신경을 조금 마비시키는 부분도 있는데 얼음으로 전처리하는 것은 침 치료 효과 자체를 떨어뜨릴 수 있어서 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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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외국인 분 중에 피부가 특히 창백한 분들은 자침 후 자연스레 생길 수 있는 작은 피멍들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환자분께 치료 시 피가 안 나도록 신경을 써 드렸지만 작은 혈관까지도 다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에 마지막으로 준비한 비장의 무기가 ‘투시 안경’이었습니다. 이 안경은 조금 비싼 편이라 투자하기 전에 많은 고민과 조사를 하였습니다. 특히나 안면부에 침을 많이 놓아야 하는 안면미용침을 할 경우에 확실히 이 안경을 쓰고 시술하니 조금 더 편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안경은 병원에서 정맥주사를 놔야 하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많이 쓰는 안경이라고 하니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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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도구들 덕분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아프지 않게 시술하려고 땀 흘리며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치료를 하다 보니 침 치료가 처음이라는 분들의 컴플레인이 많이 없어졌고 저도 훨씬 마음이 편했습니다. 서툰 목수가 연장을 탓한다는 말처럼 오히려 침 실력을 갈고닦아야 할 시간에 연장이나 탓하며 치료 보조 도구만 더 늘린 것 같아 반성도 되지만, 그래도 이런 보조 도구들 덕분에 첫 침 치료에 대해 나름 긍정적인 첫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침 치료는 원래 아프니까 참으세요!”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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