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한의
Home > 지식솔루션센터 > 생활 속 한의햇살 가득 기분 좋은 5월의 홍차, 얼그레이 |
5월은 아마도 아름답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달일 겁니다. 풀이 푸릇푸릇하게 돋아나 풍경 자체가 달라지는 달이기도 합니다. 연둣빛과 초록빛이 가득한, 싱그러우면서도 따뜻한 봄 날씨의 전형이랄까요. 하지만 또 피곤해지기 쉬운 계절이기도 합니다. 환절기를 지나며 지친 몸이 따뜻한 오후의 기분 좋은 햇살 가득한 날씨에 저도 모르게 깜빡 잠들 정도로 나른해지기 마련입니다. 몸은 추우면 긴장하고 따뜻하면 느슨해집니다. 특히 점점 빨라지는 일출 시간으로 일찍 몸이 깬 상태에서 약간 더운 느낌까지 있는 오후가 되면 졸음이 찾아올 수밖에 없죠. 나른해진 오후, 따뜻한 홍차 한 잔을 내립니다. 졸음을 몰아내는데 카페인만 한 것도 없습니다. 커피도 좋은 친구지만 커피의 쨍한 느낌과 다르게 홍차는 부드럽게 깨워주는 느낌입니다. 조금은 더 나른해도 괜찮을 것 같은 각성 효과죠. 차는 그 자체로도 좋지만 색다른 맛이나 향을 더해 마시기도 합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다른 재료와 같이 두어 차에 향이 배게 하거나, 따로 향만 추출해서 차와 섞거나, 아예 다른 재료를 차와 함께 넣어 우려내기도 합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홍차는 단연 얼그레이입니다. 얼그레이는 대략 1850년대부터 만들어진 가향차의 원조 격에 해당하는 홍차로, 홍차에 베르가모트 (bergamot) 오일을 첨가한 것을 말합니다. 그레이 백작 (Earl Grey)이란 이름 때문에 중화권의 카페에서는 백작홍차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홍차의 이름은 영국의 찰스 그레이 2세 백작에서 왔다고 하며, 차를 비롯한 동인도회사의 독점 무역권을 철폐했던 인물입니다. 그레이 가문에서는 그레이 가문의 본거지인 노섬벌랜드 (Northumberland)의 호윅 홀 (Howick Hall)에서 마실 홍차를 중국인이 바친 것이라고 합니다. 호윅 홀 주변의 석회 성분이 많은 물 때문에 홍차에 베르가모트 오일이 들어갔다고 하는데요. 한국은 수질이 깨끗하고 경도가 낮아서 보기 힘든 현상이긴 하지만 센물에 홍차를 우려내면 아주 탁한 색의 홍차가 나옵니다. 여기에 레몬같이 산성이 있는 재료를 넣으면 홍차가 맑은 색으로 변하고, 재료의 상큼한 맛도 더해집니다. 베르가모트는 오렌지 종류 중 하나로 신맛이 강하지만 향기가 아주 좋아서 옛날부터 껍질에서 에센셜 오일을 추출해 향수나 향료로 활용했고, 현재도 향수의 소재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워낙 유명한 홍차다 보니 수많은 브랜드에서도 기본적인 홍차 중 하나로 판매하고 있는, 접하기 쉬운 홍차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찻잎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인상이 꽤 많이 달라집니다. 브랜드에서 추구하는 맛에 따라 중국의 기문홍차나 운남홍차를 사용하기도 하고 인도산, 스리랑카산 외에도 인도네시아산이나 케냐산 찻잎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가장 흔한 조합은 여러 가지 산지의 찻잎을 혼합해서 사용하는 쪽인 것 같습니다. 보통 향이 강한 것에 맞춰서 홍차 역시 진하게 맞춰줄 필요가 있기 때문에 대개 카페인양도 많은 편입니다. 여기에 베르가모트의 쨍한 상쾌함을 가진 향기가 만나면 오후의 나른함을 깨우는데 아주 좋은 홍차가 됩니다. + 다가온의 얼그레이 + 묵직한 상큼함, 씁쓸하고 살짝 자극적인 느낌의 정통적인 얼그레이에 충실한 맛. 동일 브랜드의 프렌치 그레이가 약간 달콤한 느낌과 부드러운 느낌인 것과 대조되는 강렬한 인상을 갖고 있다. + 타바론의 얼그레이 리저브 + 약간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홍차에 스파이시한 베르가모트가 포인트가 된 조금 부드러운 느낌의 얼그레이 얼그레이가 아주 좋은 조합의 홍차로 오랜 기간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의외로 안 맞는 사람에겐 정말 맞지 않는 홍차일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가향차들이 그렇듯, 향기가 좋은 재료는 차뿐만 아니라 향수, 화장품, 비누, 세제 등 일상생활의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베르가모트 역시 향수의 소재로 익숙하기 때문에 차보다 향수나 화장품 등 먹으면 안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에서 경험을 더 많이 한 사람에겐 마시는 순간 마시면 안 된다는 강렬한 심리적 반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얼그레이 자체가 대개 진하고 쨍한 느낌을 주는 강렬한 향기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처음 마시는 사람이 진하게 우려낸 얼그레이를 마셔 보면 굉장히 힘들게 느낄 수 있습니다. 경험적으로 찻잎이 자잘할수록 맛이나 향이 더 강렬한 경향이 있습니다. 얼그레이를 너무 진하거나 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변형들도 존재합니다. 애초에 얼그레이는 영국의 센물에 맞춘 블렌딩이라서 한국에서 영국식으로 우려내면 너무 진하게 우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물의 경도가 낮은 지역에선 찻잎 자체를 좀 더 부드러운 맛의 다즐링 찻잎을 사용한다거나 다른 산지의 찻잎들이라도 좀 더 연한 맛을 내는 찻잎을 사용해서 얼그레이를 만들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찻잎의 양을 적게 사용하거나 우려내는 물의 양을 늘린다거나 우려내는 시간을 좀 더 짧게 하는 방법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 트와이닝스의 런던 스트랜드 얼그레이 + 티백 태그의 그림은 런던 스트랜드가 216번지에서 개업한 지 300년이 된 트와이닝스의 본점 입구. 기존 얼그레이에 레몬 껍질을 더해서 얼그레이를 좀 더 산뜻한 방향으로 만들었다. 얼그레이가 노섬벌랜드의 호윅 홀을 넘어 영국에서도 아주 많은 인기를 끌게 된 배경에는 그레이 백작 부인의 공이 컸습니다. 그레이 백작 부인은 가문의 홍차인 얼그레이를 런던의 여러 정치적 모임이나 사교 파티에서 선보였고, 그레이 백작가의 홍차는 다른 사람에게도 꽤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유명한 홍차는 당시 상인들에 의해 상품화되어 더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트와이닝스에서는 묵직하고 진한 강렬한 풍미의 얼그레이를 오렌지나 레몬, 수레국화 꽃잎 등을 더 추가해 가볍고 상큼한 느낌을 주는 형태로 만들고 레이디 그레이 (Lady Grey)라는 이름으로 출시했습니다. 그 이후 얼그레이는 정말 다양한 변형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녹차를 베이스로 한 ‘얼 그린’도 변형의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여전히 많은 다양한 얼그레이 가족들이 오후의 나른함을 날리는 데 일조하게 되었습니다. + 마리아주 프레르의 얼그레이 프렌치 블루 + 얼그레이에 짙푸른 색의 수레국화, 마리골드 등의 꽃잎을 더한 화사하고 예쁜 찻잎 + 마리아주 프레르의 얼그레이 프렌치 블루 + 기존 얼그레이보다 순하면서 베르가모트 향과 꽃향기가 어우러진 부드럽고 향긋한 홍차가 된다. + 루피시아의 얼그레이 그랜드 클래식 + 얼그레이에 용안을 더한 블렌딩. 베르가모트의 화한 느낌 사이로 용안의 달콤한 향기로 깊이 있는 단맛을 가진 얼그레이를 탄생시켰다. 오후의 나른함을 날려 보낼 진하고 강렬한 정통적인 얼그레이. 좀 더 가볍고 산뜻한 오후를 맞이할 가볍고 상큼한 레이디 그레이. 그리고 또 다른 여러 가향 홍차 중 취향에 맞는 홍차와 함께한다면, 나른한 봄날의 오후 3시가 좀 더 활력 넘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 제준태 원장의 열두 달의 수다(秀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