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방성혜의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

두 아들을 둔 엄마 한의사 방성혜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무척 귀한 일이지만 또한 매우 힘든 일이기도 하지요. <동의보감> 속에는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을 위한 양육의 지혜가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이 칼럼을 통해서 그 양육의 지혜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학력]
-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및 동 대학원 석사, 박사학위 취득 (의사학)

[경력]
- 현 인사랑한의원 원장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원 의사학교실 겸임교수
- MBC 창사특별기획드라마 <마의> 한의학 자문

[저서]
- 2017 『조선왕조 건강실록』
- 2016 『아토피, 반드시 나을 수 있다』
- 2015 『용포 속의 비밀, 미치도록 가렵도다』
- 2014 『동의보감 디톡스』
- 2013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
- 2012 『마흔에 읽는 동의보감』
- 2012 『조선, 종기와 사투를 벌이다』
- 2012 『조선 최고의 외과의사 백광현뎐 1, 2』

방성혜
방성혜

두 아들을 둔 엄마 한의사 방성혜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무척 귀한 일이지만 또한 매우 힘든 일이기도 하지요. <동의보감> 속에는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을 위한 양육의 지혜가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이 칼럼을 통해서 그 양육의 지혜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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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많은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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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느끼는 겁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다 보면 발목을 삐끗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 혹은 맛난 음식을 막 먹다가 체할 때도 있다. 이럴 때 엄마 손에 이끌려 한의원에 내원하게 된다. 유치원생이 혹은 초등학생이 엄마와 함께 내원해서 침을 맞게 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너무나 씩씩하게 침을 잘 맞는 아이들도 있다. 혹은 침을 몇 군데 맞느냐, 많이 아프진 않느냐며 살짝 겁먹은 얼굴로 질문을 던지는 아이들도 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반이다. 가운을 입고 있는 사람을 감지한 순간 집에 가겠다고 울고불고 난리 치는 아이들도 부지기수다. 그럼 엄마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아픈 건 치료받아야지!” 하며 야단을 친다. 한의원이 우는 아이에, 야단치는 엄마에 한바탕 야단법석이 난다.


그래도 침을 무서워하는 것이라면 그건 당연한 것이다. 전혀 무서운 것이 아닌데도 무서움을 느끼는 아이들도 있다. TV의 어느 방송을 보니 만화영화가 무섭다며 울면서 방으로 도망쳐 숨어버리는 아이도 있었다. 심지어는 동화책이 무섭다면서 책만 펼치면 엉엉 우는 아이도 있었다. 이런 경우는 엄마가 무척이나 난감할 것 같았다. 무서워할 만한 것을 무서워하면 이해가 되는데, 전혀 무서운 것이 아닌데 그러면, 이걸 어떻게 극복을 시켜줘야 할지 무척이나 난감해 보였다.


따뜻하고 신중한 사람


겁이 많은 아이들은 아무래도 순해서 까다롭거나 화를 잘 내는 아이들에 비하면 그래도 키우기 수월한 편이다. 하지만 때로는 엄마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기도 한다. 밤에 절대로 불을 끄지 못하게 한다든지, 절대 혼자서 잠들지 못한다든지, 조금이라도 낯선 사람을 보면 겁에 질린다든지 등 이럴 때는 또 다른 형태의 고충이 된다.


하지만 겁이 많은 아이에게도 장점이 있다. 우선 겁이 많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행동을 하거나 결정을 내릴 때 신중함을 지닌 것이라 할 수 있다. 근거 없는 기대감에 도취해 무모한 도박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조심성을 지니고 있다. 타고난 신중함이 있다는 것은 인생을 살아갈 때 하나의 장점이 될 수 있다.


또한 겁이 많기에 남을 해치지 않는 착한 심성을 지녔다. 그래서 반사회적인 사람으로 자랄 가능성은 비교적 적다. 각박해지고 험해지고 있는 이 세상에서 따뜻한 인정을 베풀 수 있는, 한겨울의 따뜻한 풀빵 같은 그런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무서움을 많이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아이의 감성이 풍부한 것이라도 볼 수 있다. 보통의 아이들이 느끼는 것보다 더 많은 무서움을 느낀다는 것이므로 그만큼 감성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겁이 많다는 것을 꼭 탓할 필요는 없다.


아이의 기억력이 좋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처음 보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미 한 번 경험했던 대상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라면 이는 아이의 기억력이 좋다는 뜻이 된다. 첫인상이 무서웠던 어떤 대상을 너무나 잘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뜻을 다해 멀리 볼 수 있다


이렇게 겁이 많은 아이를 보면 연상되는 약재가 있다. 바로 원지(遠志)라는 약재인데, 원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의 뿌리이다. 그런데 이 한자가 재미있다. 멀 원(遠) 자와 뜻 지(志) 자를 써서 원지라고 하는데, 한자의 의미처럼 멀리 있는 곳까지 뜻을 다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약재이다. 효능 역시 “지혜를 더해주고 귀와 눈을 밝게 하며 잊어버리지 않게 하고 뜻을 강하게 해준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그치게 하며 건망증을 낫게 하고 정신을 안정시켜서 사람이 미혹되지 않게끔 한다.”는 것이다.


원지가 사람을 미혹되지 않게끔 해주는 것이 마치 신중한 사람이 곁에 있으면 성급하고 무모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막아주는 것과도 유사하다. 게다가 이 원지는 여러 총명탕에 주재료로 쓰이는 약재이기도 하다. 겁이 많기에 신중하고 조심성이 있으며 먼일까지 내다보면서 혹시나 일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걱정하기에, 미혹되지 않게 해주고 지혜를 더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원지의 효능이 꼭 겁이 많은 성품과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이 원지에도 부작용이 있다. 다듬지 않고 먹으면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런 부작용을 제거하려면 법제를 해줘야 한다. 감초 달인 물에 원지를 넣고서 끓여준 후에 가운데의 심을 빼내야 한다. 심을 빼버린 후에는 생강즙을 뿌려주면서 살짝 볶아준다. 이런 법제의 과정을 거친 후에 원지를 사용하게 되면 복용 후에 가슴이 답답해지는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다. 마치 겁이 많은 성정이 극에 달하여 별것 아닌 일에도 지나치게 움츠러들면 주위 사람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과도 아주 유사하다. 효능도 유사하고 부작용도 유사하다. 겁이 많은 성품을 법제해주지 않으면 겁먹고 움츠러든 마음을 속에 품고 있을 것이다. 법제를 해주면 세상을 살아가는 신중함과 지혜로움을 잘 갖추게 될 것이다. 심을 제거한 원지가 사람을 총명하고 지혜롭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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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으로 법제하라


겁이 많아 별것 아닌 일에도 쉽게 두려움을 느낀다면 동의보감에서는 이를 ‘사색’으로 극복하라고 말한다. 생각하는 힘으로 겁을 극복하라는 말이다. 생각하는 것, 사유하는 것, 사색하는 것은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소가 먹이를 반추하듯이 어떤 일을 머릿속에 담아두고서 자꾸 떠올리기를 반복하는 것이 바로 생각(思)이다.


겁이 많은 아이들은 감성이 풍부하고 기억력이 좋다. 겁을 먹을 일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부모가 아무리 옆에서 얘기해도 소용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같은 상황을 반복해서 접하는 것을 통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낯선 사물이나 상황에 자꾸 노출시키기보다는 같은 사물이나 상황을 반복하게 해주어 아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마치 한 가지 일을 계속 머릿속에 담고 반복해서 떠올리며 생각하듯이 말이다.


친구나 이웃을 만날 때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하기보다는 같은 사람을 반복해서 만나게 해주는 것이다. 만화영화가 무섭다고 한다면 똑같은 만화영화를 소리를 낮춰서 계속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여러 명을 동시에 만나게 하기보다는 한 사람을 만나게 하는 것이 더 좋다. 왜냐하면 생각하는 것은 한 번에 한 가지만 할 수 있지 여러 개를 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의보감에서는 “사색은 두려움을 이긴다.”고 하였다. 반복해서 만나고, 반복해서 생각하고, 반복해서 떠올리게 되면 처음 느꼈던 두려움은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사색으로 두려움을 이기라고 한 것이다.


이때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반드시 엄마가 옆에 있어 줘야 한다. 뒤돌아보면 항상 엄마가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항상 아이 옆을 지켜주어야 한다.


또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첫 만남이 절대로 무서운 기억으로 남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이가 처음 맞았던 침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면 침 공포증은 아이에게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일부러 극기 훈련을 시켜준다면서 처음부터 무서운 만화영화를 틀어주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


마지막으로 절대 아이를 야단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인 엄마라면 겁이 많은 아이를 지켜보고 있자니 답답해 속이 터질 지경이 된다. 엄마가 언성을 높여서는 안 된다. 겁이 많은 아이에게 최고의 극약은 바로 자신이 가장 기대는 엄마의 성난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 한의사 방성혜의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