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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섬이 늘어선 신안을 향해 달린다. 섬은 다리를 놓아 육지와 이어졌고 하얀 소금을 품은 가을의 풍경을 펼쳐 보였다.

한국전쟁과 피난민, 그리고 염전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버스 하나를 빌려 요리사들과 함께 떠난 여행길이다. 요리사 커뮤니티 ‘븟’에서 주도하는 LISS 여행이라는 행사인데, 제철 식재료 여행이다. LISS는 Local (지역의 농수산물), Ingredients (재료의 다양성), Seasonal (계절성), Simple (단순함)을 의미한다.

요리사에게 이 여행은 의미가 깊다. 일반 대중은 잘 모르지만, 그들은 하루 14시간 이상 주방에 틀어박혀 식재료를 손질하고 뜨거운 불 앞에 온몸을 내던진다. 하루가 끝나면 온몸이 녹아드는 피로에 시달린다. 일상에서 여행이란 언감생심 꿈도 꾸기 어려운 단어다. 그럼에도 일주일 중 유일하게 자유가 허락되는 하루를 내어 여행길에 오른 건 이 여행이 식재료에 대한 공부를 현장에서 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어렵게 시간을 낸 13명의 요리사가 모여 전남 신안군으로 출발했다. 창밖이 무척 화창했던 가을의 복판이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던 중에 목포와 신안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목포와 신안은 모두 무안이라는 뿌리에서 뻗어 나온 갈래다. 천 개에 이르는 섬을 거느렸던 무안은 개항으로 목포를 잃었고, 1962년 섬 위주의 지역을 따로 나누어 신안이라는 지역이 탄생하면서 섬이 없는 땅이 되어 버렸다. 무안의 입장에선 무척 서운한 일이다. 비옥한 땅을 가졌지만, 어깨 쭉 펴고 관광객을 현혹할 자산을 잃어버렸으니 상실감이 무척 컸으리라.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중에 버스가 다리를 넘는다. 지도를 거쳐 증도로 들어가는 길이다. 신안을 대표하는 섬, 증도가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염전은 증도 전체에서도 1/3을 차지할 만큼 광활하게 펼쳐진다. 흘러간 몇십 년의 시간 동안 이 섬의 갯벌과 햇살이 만든 소금은 주요한 먹거리가 됐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염전은 ‘태평염전’이란 이름으로 운영한다. 서해안의 많은 갯벌 중에서도 이 염전의 안팎은 특히 가치가 높다. 습지가 온전히 남아 있고, 그곳을 터전 삼아 온갖 해양 동식물이 번성을 이뤘다. 육지 사람의 왕래가 쉽지 않았던 환경 덕에 그 생태환경은 보존상태가 매우 좋다. 람사르습지,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 국가습지보호지역, 갯벌도립공원 등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4관왕의 타이틀을 보유하게 된 건 그런 연유에서였다.

예부터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이들은 염전을 일궈 삶을 지탱했지만, 염전 산업이 더 크게 부흥하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전쟁 때문이었다. 전쟁이 터지자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에 살던 이들이 배를 타고 피난을 떠났다. 조류에 실려 도착한 곳이 신안의 증도였다고 한다. 끊임없이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사람들은 살기 위해 염전을 일구고 소금을 만들어 팔았다. 한창때 증도의 인구는 2만4천 명에 달했다고 한다. 수십 배로 인구가 늘어났음에도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했던 건 다행히 염전 일을 할 수 있었던 덕이다.

게랑드 소금과 천일염

오로지 짠 내 가득했을 섬은 연륙교가 놓이면서 일대 전환의 시기를 맞이한다. 육지에서 사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고된 노동의 현장이라는 이미지로 얼룩진 염전을 고스란히 보여주기만 할 게 아니다. 증도에서 만드는 자연의 선물 소금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가 중요해졌다. 태평염전은 섬을 찾아온 이가 염전에서 머무를 수 있도록 여행 인프라를 구축했다. 소금을 깊이 이해하도록 박물관을 짓고 말끔한 식당과 카페를 만들어 여행자가 머무르며 염전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끔 했다. 기반 시설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곳곳에 지어놓은 대형 소금창고를 이용하면 충분했다. 허름한 창고는 훌륭한 관광 자원이 됐고, 결과적으로 사람이 모여들었다. 염전 바로 곁에는 십수 대의 카라반까지 갖췄다. 친구끼리, 연인끼리, 가족이 하룻밤을 의탁하기에도 충분하다. 증도는 훌륭한 여행지로 재탄생한 셈이다.

염전은 누구든 언제 찾아가도 될 만큼 위생적인 환경을 유지하고 있었다. 먹거리의 가장 기본인 소금의 생산시설 관리를 얼마나 철저하게 하는지 엿보이는 지점이다. 이곳에서 태평염전을 찾아온 이는 햇살이 바닷물에서 끄집어내 골라둔 하얀 결정체를 한데 모으는 염전 체험을 할 수 있다. 이런 현장 체험에 요리사는 늘 목말라 있다. 하얀 소금만큼이나 하얀 이를 드러내며 깔깔깔 소금밭을 뛰어다닌다. 바닷물을 길어 올리는 수차를 돌릴 때는 자연의 자원을 이용하는 선인의 지혜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태평염전의 박종화 본부장은 프랑스의 게랑드 소금과 천일염의 관계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세계 최고의 소금이라고 손꼽히는 게랑드 소금은 염전의 바닷물이 졸아들 때 수면 위로 떠오르는 얇은 소금 결정체를 모아서 만들어요. 가장 순정한 상태의 결정체인 거죠. 그걸 모아서 만드니 비쌀 수밖에 없는 겁니다. 천일염 방식으로 소금을 만드는 우리 염전에서도 충분히 생산은 가능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 지나치게 비싸지기 때문에 수익이 맞지 않아요. 그렇지만 우리가 신안의 자연에서 만든 소금도 충분히 질 좋은 소금이니까 믿고 드셔도 돼요.”

그에게 물었다. 지난해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가 촉발한 천일염 논쟁의 핵심 내용이다. 염전에 장판을 깔아서 만드는 천일염은 정말 믿어도 되는 것인가. 그의 대답은 이렇다.

“염전에 깔린 장판은 우리가 집 바닥에 까는 장판과 달라요. 그렇게 쉽게 상하거나 부서지지 않습니다. 물론 토판염이 장판염보다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관리 유지를 비롯해서 여러모로 불편하고 비용이 많이 듭니다. 우리도 토판염 생산을 해 봤지만, 가격이 비싸기도 하고 소비자가 잘 찾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은 토판염 생산에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마트에서 우리가 보는 소금의 종류는 브랜드마다 각기 다르지만, 대부분 이곳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기업에서 원하는 조건에 맞춰 생산해 납품할 뿐이다. 그 까다로운 기업의 요구 조건을 통과할 만큼 위생적으로 문제는 없어 보였다. 천일염은 나쁘다는 전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다각도로 고민해야 할 필요한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금으로 빚어낸 만찬

LISS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지역에서 생산한 식재료를 이용한 요리 시간이다. 이번에는 신안군에서 생산한 소금이 주제다. 원하는 이에게는 증도에서 키우는 흰다리새우도 주어진다. 여기에 더해 인근의 지도시장에서 각자 1만 원 이내로 구매한 수산물과 채소를 이용한다.

조리 시간은 1시간 반. 2인 1조로 팀을 꾸리고 각자의 전공을 살려서 창의적으로 요리를 한다.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할 기회가 생기면 사람은 진면모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조리복을 갖춰 입고 주방에 들어가 칼을 드는 순간 모두의 눈빛이 돌변했다. 식재료 손질부터 본인이 구상한 레시피에 맞춰 조리를 하는 동안 널찍한 주방 안이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딱딱딱딱, 착착착착 주방에서 들을 수 있는 온갖 소리가 화성을 이루며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들렸다.

이번에 참가한 요리사는 최소 5년에서 20년에 달하는 경력을 자랑한다. 스패니시, 이탤리언, 일식, 한식 등 저마다 전공도 가지가지다. 제한된 여건에서도 수년간 몸에 익힌 동작은 물 흐르듯 이어졌다. 그 치열한 과정에서도 웃음소리가 들렸다. 곁에서 움직이는 다른 요리사의 동작을 읽고 동선을 내어주면서 자기 요리를 완성해 간다.

마침내 각자 완성한 요리를 테이블에 내놓았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부터 태평염전 관계자와 지역의 식재료 생산자까지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각자가 만든 음식의 특징과 조리 과정, 소금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풀어냈는지를 설명하는 동안 기대감은 한껏 올라간다. 새우 완자를 올린 반건조 민어탕과 민어찜, 시오라멘, 함초를 더한 화전, 새우소금구이, 무화과로 만든 푸왈레, 가스파초, 지중해식 소금 생선구이, 레몬필소금구이와 사워매쉬 포테이토 등 이런 환경에서 가능할까 싶은 요리가 한가득이다.

소금은 음식의 맛을 결정짓는 열쇠다. 짠맛 하나로 음식을 완성한다. 언제 어떻게 얼마나 넣을지에 따라 확연히 다른 결과를 낳는 식재료다. 그 열쇠를 들고 요리사들은 각자 자신만의 비법을 풀어냈다. 대표적인 음식이 시오라멘이었다. 닭과 소금을 주축으로 삼아 한 시간 반 만에 내놓았음에도 완성도가 무척 높았다. 닭 껍질을 태우듯이 구워서 맛을 올리고 소금으로 전체 음식의 밸런스를 잡아냈다. 여기에 더해 그 짧은 시간에 차슈까지 만들어 가니쉬로 올렸다. 떡을 전공한 요리사가 직접 빚어 구운 함초 화전도 놀라웠다. 구워진 화전 위에 소금 몇 톨을 뿌렸는데, 이 결정이 아작아작 씹히는 식감이나 이내 입안을 메운 소금기에 화전의 쌀 반죽이 더하는 단맛이 어우러지며 탄성을 자아낸다. 함께 자리한 지역 관계자뿐 아니라 서로의 요리를 맛보는 요리사들의 표정도 하나같이 놀라움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른 아침에 출발한 여행은 소금으로 빚어낸 만찬을 맛보며 절정에 올랐다. 그 사이 서해 바다 너머로 해가 저물고 바닥을 드러냈던 갯골 위로 바닷물이 가득 들어왔다. 총총하게 뜬 별 사이로 보름달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 짓는다. 그렇게 신안의 밤은 깊어갔다. 사르륵사르륵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 소리가 정겹다. 늦도록 그 소리와 몸짓에 취하는 밤이다.

소금은 물이 체내에 잘 흡수될 수 있도록 하는 식품으로 생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인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성분이며 부족하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적정량의 소금을 섭취해야 한다. 살균 효과도 뛰어나 예부터 음식을 오랜 기간 보관할 때 상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과하게 축적된 칼륨을 배출하고 근육의 수축 작용과 영양소의 이동에 관여한다. 소염 작용도 있으므로 축농증이나 관절염, 신경통 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