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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경주는 제주도 못지않은 관광지가 됐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에서도 경주 대릉원 일대에는 가을을 배웅하는 인파로 북적거렸다.

옛 왕조의 거대한 흔적, 대릉원

경주에서 1년을 지냈던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경주는 수학여행의 추억이 깃든 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주말에도 경주를 찾는 여행자는 드물었고, 거대한 고분은 동네 사람들의 휴식처 같았다. 경주의 매력을 재발견한 것은 2~3년 전쯤부터다. 대릉원이 있는 황남동 일대에 힙한 카페와 상점이 자리를 잡았다. 더불어 대릉원 일대에서 감성 넘치게 찍은 사진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일대는 20년여 만에 다시 북적이기 시작했다. 경주라는 곳이 가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수학여행’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좀처럼 그 매력이나 중요성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야 경주는 그 도시가 가진 매력을 보여주기 시작한 셈이다.

경주 시내에는 23기의 고분이 곳곳에 솟아있다. 대릉원은 그 고분군의 중심이다. 시내 한복판에 불룩불룩 고분이 솟아 있다는 게 다른 도시에서 온 이에게는 자못 독특해 보이기 마련이다. 각각의 거리가 인접해 있기는 하지만, 워낙 그 부지가 넓다. 대릉원으로 사람이 모이는 건 그래서다. 23기의 고분을 다 돌아볼 필요가 없다면, 황남대총, 천마총, 미추왕릉 위주로 돌아보는 게 방법이기 때문이다. 황남대총은 신라 고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무덤의 주인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지만, 왕족의 무덤인 것으로 추정한다. 남북으로 2개의 봉분이 표주박처럼 붙어 있는 게 특징이다. 이 근처가 20~30대에게 유명한 ‘대릉원 포토존’이다. 이곳에서 인생 사진을 남기려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줄을 길게 서야만 겨우 사진을 한 장 건질 수 있다.

발굴 당시 만 점이 넘는 유물이 쏟아져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천마총은 유일하게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고분이다. 하늘로 비상하는 천마를 그린 장니 (말 옆구리에 늘어뜨리는 장신구)가 출토돼 천마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추왕릉은 신라 제13대 왕인 미추왕의 능이다. 그는 신라 최초의 김 씨 왕이다. 김 씨의 시조 김알지의 7대손으로 알려져 있는데, <삼국사기>에는 미추왕을 대릉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대릉원’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따왔다.

대릉원에서 빼놓지 말고 꼭 봐야 할 게 몇 가지 더 있다. 그중 첨성대는 경주 여행에서 빠뜨리면 안 될 유적이다. 첨성대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관측대다. 선덕여왕 (재위 632~647년) 때 건립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고 있다. 술병처럼 유려한 선을 가진 9미터의 몸체에는 창문이 하나 있다. 이 창은 사람이 드나들던 출입구다. 사다리를 타고 안으로 들어가서 하늘을 관찰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첨성대와 월성 사이에 있는 계림은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깃든 숲이다. 원래 ‘시림(始林)’이라 불렀으나 김알지가 태어난 이후부터 ‘계림(鷄林)’이라고 불렀다. ‘숲에서 닭이 울었다’는 뜻이다.

  

대릉원만 해도 볼 게 너무나 많다. 동궁과 월지도 대릉원에 인접해 있어 꼭 들러볼 곳이다. 동궁은 신라의 태자가 머물던 곳인데, 임해전은 군신들이 연회나 회의를 열었고 때때로 귀빈을 접대하던 자리이기도 하다. 원래 ‘안압지’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던 곳인데, 동궁와 임해전 등의 중요성이 주목받으면서 이제는 동궁과 월지라고 부른다.

대릉원의 뒤를 든든하게 방비하던 월성도 서서히 그 흔적이 옛 모습을 찾아가는 중이다. 지금은 월성과 그 주변의 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성을 방비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던 해자가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이는데, 그 규모가 상당할 것으로 추정한다.

천년고도의 화려한 부활, 월정교

현재 경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라면 단연 월정교를 첫손에 꼽을 만하다. 월정교는 월성의 바깥쪽 천변에 복원한 다리다. 서쪽 산 너머로 노을이 짙게 깔리고 어스름이 질 무렵이면 이 목재 건축물에 조명이 들어온다. 나무와 빛이 만들어내는 야경은 보는 사람의 입에서 감탄을 자아낸다. 월정교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 통일신라 경덕왕 19년(760년) 부분에 남아 있다. “궁궐 남쪽 문천 위에 월정교와 춘양교 두 다리를 놓았다.”고 적어 놓았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 자리에는 배처럼 생긴 교각만 남아 이 자리에 월정교가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원래의 월정교는 그 길이가 60.75미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각 사이에서는 불에 탄 목재와 기와가 출토돼 교각의 위가 누각과 지붕으로 연결된 누교였을 것으로 추정케 했다. 이 다리는 고려 제25대 충렬왕 6년(1280년)에 경주부 유수 노경론이 중수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어 여몽전쟁 이후까지 전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어느 시기엔가 불에 타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최기영 대목장의 지휘 아래 신라의 대표 건축 중 하나였던 이 다리는 복원의 과정을 거쳤다. 2013년 1차 복원이 완료됐고, 2017년에 문루를 비롯한 주변 정리까지 모두 끝났다.

이 다리의 부활은 경주의 부활로 이어졌다. 과거 수학여행의 도시였던 천년고도는 차츰 여행객의 시선에서 멀어졌지만, 월정교가 복원된 이후 멋들어진 야경을 찾아온 여행자에게 큰 주목을 받았다. 경주가 가진 문화유산이 다시 관심을 끌면서 이제는 가장 핫한 여행지로 자리 잡았다. 현재 복원이 진행 중인 반달 모양의 월성과 그 아래의 해자까지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면, 경주는 또 한 번 문화유산 여행의 진가를 선보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짬뽕스럽지 않은 경주의 짬뽕

1박 2일간 급박하게 의뢰를 받고 경주를 취재하면서 예전에는 몰랐던 경주의 식당을 제법 찾아냈다. 젊은 세대가 인스타그램으로 공유하고 소개하는 트렌디한 카페나 레스토랑이 아닌, 오래전부터 경주에서 명맥을 이어오는 터줏대감들이다. 추리고 추려서 세 곳을 다녀왔는데, 하나같이 매력 넘친다. 예전에는 팔우정 근처 해장국 거리에서 먹을 수 있는 묵 해장국이 경주만의 음식이 아닐까 했는데, 이제는 예전 같지 않아 찾는 사람이 드물다. 대신 곳곳에 숨겨진 세 곳의 식당이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그중 한 곳이 경주시 외곽에 있는 ‘남정부일기사식당’이다. 이곳의 주력 메뉴는 짬뽕이다. 기사식당인데 짬뽕을 판다기에 참 특이하다 싶었는데, 소개해 준 경주 토박이는 “상상하는 그런 짬뽕이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가게에 들어가 주문을 넣고 보니 그 말이 비로소 이해가 갔다. 전혀 짬뽕을 닮지 않았다. 그런데 짬뽕이라고 부른다.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이 요리는 탄생 비화가 있는 음식이었다. 1998년경 문을 연 이 기사식당은 경주의 택시기사들에게 꽤 인기가 많았다. 특히 돼지고기볶음과 낙지볶음이 히트상품이어서 매일 찾아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의 입맛이란 간사하다. 같은 요리를 반복해서 먹는 게 물리니까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사람도 나왔는데, 기왕이면 돼지고기와 낙지를 한데 넣고 볶아달라는 별도의 주문을 하기도 했던 것. 그렇게 탄생한 이 음식을 두고 손님들이 “두 가지 메뉴를 짬뽕해서 만들었다”라며 “짬뽕”이라고 부르던 게 지금까지 이어진다.

이곳의 짬뽕은 조리법이 단출하다. 냄비에 음식을 담아 내주고 손님이 직접 익혀 먹게 한다. 처음에는 허옇게 재료만 가득한데, 센 불에 바글바글 끓이면 채소에서 자작하게 즙이 나온다. 그 즙이 양념과 범벅이 되어 졸아들고, 전체적인 맛이 완성되는 요리다.

얼핏 봤을 때는 꽤 맵겠다 싶었다. 그런데 첫입 먹고 보니 의외로 순한 맛에 깜짝 놀랐다. ‘아이들이 먹어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쯤, 슬금슬금 매운 기운이 입안에 퍼지기 시작한다. 우습게 봤다가는 제법 매콤한 맛에 땀 줄줄 흘리게 되는 요리다. 음식 자체는 매우 만족스럽다. 주인공인 돼지고기와 낙지가 실하게 들었고 조연인 채소도 양이 적당하다. 밑반찬도 8가지가 딸려 나온다. 기사식당인 만큼 1인분도 내 준다. 혼자 출장 다니는 사람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먹는 방법은 따로 없다. 짬뽕의 온전한 맛을 즐기며 밥 따로 짬뽕 따로 먹어도 좋고 미리 내어주는 양푼에 밥과 짬뽕을 다 넣고 섞어 비벼 먹어도 좋다. 먹다 보면 어딜 가나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두루치기 아닌가 싶은데, 다 먹고 나면 느낀다. 이 맛은 이 가게에 와야만 먹을 수 있는 맛이다.

낙지는 ‘갯벌의 산삼’이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스태미나 식품이다. 필수 아미노산의 함량도 높고 칼슘, 철분도 많다. 낙지 100그램에는 약 400~700밀리그램의 아르기닌 (arginine)이 들어 있다. 이는 정력 강화에 도움이 되고 성장호르몬을 활성화하는 데에도 좋다. 피로물질이 쌓이는 것을 방지하고 원기를 회복시키기도 한다. 낙지 특유의 맛은 베타인 (betaine)에서 기인한다. 이는 간세포의 재생을 촉진하고 세포막의 기능을 안정시킨다. 낙지의 타우린은 두뇌 활동을 활발하게 만들어주고 치매 예방의 효과도 기대할 만하다. DHA가 많아서 아이들에게도 좋은 식품이다. 이 밖에도 새살이 돋아나게 해서 화농성 종양이나 종기의 궤양을 치료하는 데에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