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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니다 보면 ‘의외’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여행지를 만나게 된다. 경상북도에 그런 곳이 꽤 많은데, 안동 역시 그런 지역 중 하나다.

낙동강을 건너야만 들어갈 수 있는 땅

여행을 다닐 만큼 다녀봤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된다. 사실 모든 지역이 다 그렇겠지만, 유독 뇌리에 깊이 각인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건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안동은 그 앞에 붙는 수식어가 편견을 만드는 땅이다. ‘선비’라는 단어가 안동을 더 넓고 깊게 헤엄치며 찾아볼 여력을 막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 여러 세도가가 번성했던 땅이기도 하고 하회마을이라는 세계적인 여행지가 있어서 좀처럼 그 이미지를 씻어버리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대체로 그 이미지만 머릿속에 넣고 여행을 가니 다른 것은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각도를 조금만 틀어서 접근하면 뇌리에 느낌표가 ‘딱!’ 박히는데, 이곳을 안동이라고 소개하면 믿을까 싶을 만큼 충격적이고 아름다운 곳이 있었다.

이미 아는 사람도 꽤 많다. 소목화당(小木花堂). 작은 나무와 꽃이 있는 집. 재미있는 게 이곳을 가 본 사람은 대체로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한쪽은 낙동강이 굽이치는 안쪽의 예쁜 펜션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전통주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땅이라고 기억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이곳은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숙박지이기도 하면서, 주인 부부가 공들여 술을 담는 곳이기도 하다. ‘진맥소주’라는 이름의 전통주가 이곳에서 나온다.

들어가는 길은 아주 험하다. 도로를 따라 태백 방면으로 들어가다 보면 점점 길이 좁아진다. 그 길의 끝에는 농암종택이 있다. 거기까지 가고 나면 어디로 가야 하나 싶을 텐데, 농암종택을 앞에 두고 왼편을 보면 강변으로 길이 나 있다. 이 길이 소목화당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강변으로 난 길로 150미터 정도 가면 주차장이 하나 있고 그다음부터는 길이 없다. 여기서부터는 강을 건너야 한다. 꽤 폭이 있는 낙동강이 두 개의 산 사이로 U자를 그리며 굽이쳐 흐르는데, 그 강을 건너야 한다. 말 그대로 도강이 필요하다. 일반 승용차로는 절대 도전 불가다. 무조건 사륜구동 차량이 필요하고, 그나마도 태백 쪽에 비가 왔거나 해서 물이 불어나면 건널 수 없다.

일전에 이런 오지의 길을 달리는 데 최고의 성능을 보여준다는 차량의 차주가 호기롭게 도강을 하다 결국 폐차를 했던 사례가 있다. 방법은 하나다. 차는 무조건 주차장에 세워두고 소목화당의 주인에게 전화를 걸 것. 그러면 소목화당에서 차고를 올려 튜닝한 SUV를 끌고 나오거나 트랙터에 손님을 실어 나른다. 그마저도 안 되면 배로 강을 건너게 해 준다. 다시 한번 반복하지만, 절대로 본인 차량을 끌고 들어가지 말자. 이는 소목화당의 주인도 원하는 바가 아니다.

시선을 사로잡는 1킬로미터의 밀밭

이번에는 영상 촬영을 위해 방문한 것이어서 SUV 차량이 들어가는 장면이 필요했다. 미리 소목화당 측과 충분히 상의했고. 당일 기상 상황에 수심까지 체크해서 차를 몰고 강을 건넜다. 다행히 비가 왔음에도 수심이 얕아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이긴 했지만, 차가 옆으로 1미터씩 밀려갈 때면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강의 안쪽, 그러니까 산이 강 쪽으로 툭 밀려 나온 그 안쪽은 견고한 성과도 같다. 자연이 만든 해자를 두른 성. 이곳이 도산면 가송리의 맹개마을이다. 퇴계 이황이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고 했던 자리가 바로 이곳이다. 그 마을의 중심이 소목화당. 그곳에 박성호 씨 (밀과노닐다 대표)가 살고 있다. 불편한 것도 많지만, 그래서 욕심을 버리고 해야 할 것에 집중하며 15년 이상을 이 자리에서 살고 있다는 사람이다. 그는 이 안쪽에 몇 채의 집을 지었고, 1킬로미터에 걸친 너른 땅에 밀과 메밀을 키운다. 아직은 밀이 익지 않아 푸릇한 빛을 띄고 있었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밀밭은 그 풍경 하나만으로도 찾아오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박 씨는 우연히 여행 중에 이 땅을 발견했는데, 무작정 하던 사업을 접고 이곳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전기도 없고 기반시설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는 오지 속에서 그는 하나씩 필요한 것을 만들고 손수 지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의 손길과 정성이 맞닿은 곳마다 생명이 깃들었다. 예쁘지 않은 것이 없고 황홀하지 않은 장면이 없다.

와인 소믈리에이기도 한 그는 우리 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직접 주조까지 하게 된다. 안동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소주다. 더 맛있는 소주를 연구하던 중에 그는 고조리서 <수운잡방 需雲雜方>에서 오래전 소주는 쌀이 아닌 밀로 담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밀의 한자 표기는 ‘진맥(眞麥)’. 진짜 보리라 쓰는 그 곡물로 소주를 담가 먹었다는 문구가 그 책에 적혀 있었다. 이 섬과도 같은 땅에 너른 밀밭을 일군 건 그래서다. 처음에는 베이킹을 해 먹기도 했지만, 지금은 온전히 술을 담는 데 써도 모자란다.

그가 빚은 술은 향기가 대단하다. 40도와 53도가 그중에서도 군계일학이다. 53도짜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세계 증류주 대회에서 더블골드를 획득했다. 주류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는 불과 10년여의 역사를 가진 전통주가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낸 것이라고. 술맛은 과연 최상의 맛과 향을 지녔다. 1년에 수확하는 양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자주 접할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맹개마을 소목화당에 왔다면 마을 뒤편으로 난 작은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 보길 권한다. 그 길의 중간 즈음에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굽이치는 강이 한눈에 들어오고, 강 건너 농암종택이 더해진다. 그 장면을 마주하고 나면 비로소 안동의 품격이 이곳에 살아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안동에만 있는 ‘골부리’

그곳에서 맛있는 술과 문어, 배추전 같은 안동의 토속 음식을 곁들여 짧은 밤을 보냈다. 나오는 길에는 다시 낙동강을 가로질러야 했다. 다행히 나올 때는 들어갈 때만큼의 긴장감은 없었다. 역시 한 번이라도 경험하면 익숙해지는 게 사람인 모양이다.

안동에 왔으니 안동의 음식을 먹어봐야 하는 게 순리. 소목화당의 안주인에게 추천을 받았는데, 그중 ‘골부리국’이라는 이름이 들어 있었다. 이게 대체 무언가 싶었다.

“골부리가 뭐예요? 처음 듣는 이름인데?”

“이게 다슬기예요. 다슬기를 안동에서 골부리라고 불러요.”

아하, 지역에서 부르는 이름이구나. 다른 지역에서 먹는 다슬기국과 큰 차이가 있을까 싶었다. 어차피 음식이라는 게 평준화되어서 대부분은 엇비슷한 경우가 많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한 번 드셔 보세요.”

그래서 믿고 찾아간 집. 첫 번째 집에서는 퇴짜를 맞았다. 일행이 5명이 넘는다는 이유다. 영상 촬영팀이 같이 있는 터라 방법이 없었다. 두 번째로 찾은 골부리국 전문점. 여기는 승낙을 해 줬다. 대신 상을 두 군데로 나눠서 앉으라는 조건이었다.

안동 시내에서 제법 떨어진 길안면까지 찾아간 그 식당의 이름은 ‘장터분식’이다. 길안면 일대는 눈 돌리는 곳마다 골부리국을 취급한다. 길안면 일대의 골부리국은 다른 지역과 약간 차이가 있는데, 장터분식은 그 안에서도 유독 독자적인 조리법을 선보인다. 대부분 다슬기국의 경우 맑게 끓이거나 토장을 넣어서 은근한 구수함을 살리는데, 이 가게는 육개장에 가까운 맛과 외양을 가졌다. 토란대가 들어가고, 대파의 양이 꽤 많다. 전형적인 경상북도식 육개장 스타일이다. 그럼에도 맵지 않다 싶었는데, 숟가락으로 국을 한 번 휘젓는 순간 숨어 있는 고추 양념이 풀려 나왔다. 그제야 슬쩍 매콤한 맛이 올라온다.

주인인 이영란 씨에게 물어봐도 별다른 비법 같은 건 없단다. 국간장과 다슬기 껍데기로 육수를 내는 게 전부라고. 국을 먹다 보니 처음에는 다슬기의 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싶었는데, 점점 향이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신기할 정도로 오묘한 맛이다. 마치 다슬기의 향이 국물 저 아래에 숨어 있다가 슬쩍 튀어나오는 듯, 입안에 다슬기의 맛이 조금씩 쌓여 있다가 마침내 그 진가를 발휘하는 듯. 먹으면 먹을수록 “햐!”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영란 씨는 인심도 좋아서 일행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더니, 찬장에서 이것저것 꺼내어 가져다준다. 나중에는 직접 담근 인삼주와 방풍주까지. 극구 손사래를 쳐도 술을 세 병이나 안겨서 내쫓듯이 몰아낸다. 심심할 때 담가 두었다가 이렇게 좋은 손님이 오면 선물로 주는 게 당신의 낙이라면서. 물론 굳이 저 집을 찾아가서 술까지 내놓으라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그 따뜻한 마음에 몸이 사르르 녹는 듯했다. 안동의 숨은 토속음식에 선물까지 받은 날. 무엇으로 그 마음에 보답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나중에 안동을 찾는다면 부러 다시 찾아 인사드리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다슬기는 5월과 6월이 제철이다. 아미노산이 풍부하고 간 기능을 회복하는 데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에는 ‘반위와 위 냉증 및 위통과 소화불량을 치료한다’라고 나오는데, 반위(反胃)는 음식이 내려간 지 한참 후에 다시 속에서 올라와 구토하는 병증이다. 그만큼 위장 치료에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식품이자 약재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