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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이미 대중적인 음료입니다. 누구나 점심 식사 후에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을 들고 오거나 직장의 자리 곁에 커피 한 잔 정도를 두는 것은 특별한 풍경이 아닌, 일상적이기까지 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차는 어떨까요? 아직은 조금 멀고 낯선 느낌이 드는 분들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차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지만 다양한 종류의 차 문화 중 일부가 유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향신료를 넣은 차이티라떼나 그린티라떼, 과일이 들어간 차 베이스 음료 등은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도 한 자리를 꾸준하게 차지하는 음료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화려한 애프터눈티 세트나 스콘에 과일잼, 클로티드 크림을 홍차와 함께 즐기는 크림티 역시 꽤 유명해졌습니다. 한국의 전통적인 다식과 이를 곁들인 차들 역시 젊은 층에서의 한복 유행과 어우러져 좀 더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 세종 홍차마루 +

전형적인 영국식의 애프터눈티. 3단 트레이는 샌드위치 등의 간단한 요깃거리가 포함된 아래쪽부터 먹는 것이 정석으로 애프터눈티는 보통 위 접시로 갈수록 달콤한 디저트 순서로 서빙됩니다.

+ 오설록1979 티하우스 +

한국식으로 변주한 애프터눈티 세트. 한국의 디저트나 녹차, 한국의 소재 등을 활용해서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애프터눈티는 좀 더 새로운 디저트나 눈길을 끄는 모양 등을 내는 것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편입니다.

+ 대만 타이베이 팔십팔차린반쇼 +

대만의 한 찻집. 여행 중에 차는 휴식과 함께 여행을 돌아보고 여유를 즐기는 시간이 되어 줍니다.

차가 점점 우리에게 다가가오는 만큼, 차로 만든 음료들을 접했던 분 중에 순수한 의미의 차를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처음 발을 들이시는 분들이 물어보는 답하기 가장 어려운 질문은 역시 어떤 차가 가장 좋은 차인지, 혹은 처음 마시는 차로 괜찮은 차인지 같은 것들이겠죠. 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차가 너무 다양하고 또 많기 때문이죠.

차의 향과 맛, 특성은 모두 다릅니다. 어떤 것은 은은한 단맛이 있기도 하고 어떤 것은 굉장히 강렬한 맛이나 쓰고 떫은 맛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꽃이나 과일의 맛과 향을 입힌 차나 혹은 쿠키나 빵 종류의 향기, 새콤함이 도드라지는 차에서 때론 초콜릿맛, 민트향의 차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차들이 시중에 나와 있습니다. 차의 종류 자체부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게다가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를 많이 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보통 무난한 차를 추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무난한 차들은 말 그대로 무난하기 마련이라 특별한 이끌림을 느낄 정도로 매력적이진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차는 결국 기호식품입니다. 그러니까 마셔 보고 내가 좋다고 느껴야 좋은 겁니다.

차를 처음 드실 땐 무난한 종류보다 티룸이나 찻집에서 다양한 종류의 차를 마셔 보거나 여러 종류의 시음용 차가 든 샘플러를 마셔 보는 것을 권합니다. ‘이 중에 네 취향이 하나쯤은 있겠지.’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차를 맛보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이 생기고 또 여러 차 중에 어떤 차가 좋았다는 기억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 기억을 바탕으로 자신의 취향을 점점 확인해 보고 또 즐기게 되는 것이 기호식품을 접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무난한 맛의 저렴한 가격대의 차보다는 차를 잘 아시는 분과 마시는 시간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티 클래스나 차회의 형태로 티룸이나 찻집에서 차에 대한 간단한 교육과 함께 여러 종류의 차를 같이 마시는 형태의 서비스도 제공하는 곳이 늘고 있습니다. 차에 대한 지식과 경험치를 늘려 볼 수 있는 효율적인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차차 차차함 +

특정 종류의 차나 테마에 어울리는 세 종류의 차를 함께 담아서 파는 방식의 티 샘플러. 잎차로 구성되어 있고 시즌별로 녹차, 홍차, 우롱차, 보이차 등 종류가 달라지고 스토리가 곁들여집니다. 맛의 특성을 그래프로 표시해주는 것 역시 흥미로운 부분이죠.

+ 루피시아의 북 오브 티 세트 +

개별포장된 티백들로 모두 다른 맛의 차들이 들어 있는 루피시아의 북 오브 티 세트. 30개, 50개, 100개 등의 구성으로 특정 시즌에만 한정 수량으로 판매하고 매번 테마나 구성이 달라지는 편. 혼자서 한 번 마실 분량으로 되어 있어서 이 브랜드에서 어떤 차를 파는지를 느껴볼 수 있고, 특히 자신의 취향이 뭔지 모를 때 이것저것 맛보기용으로 좋습니다.

그런데 가끔 기호식품이라는 본질을 떠나 과하게 건강을 위해 차를 약 먹듯이 드시려고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물론 차에는 카페인과 테아닌, 그리고 비타민, 아미노산, 폴리페놀 등 다양한 생리적 활성을 가진 물질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항산화 물질인 EGCG는 찻잎에 가장 많이 존재하고 가공 과정에서 산화되어 테아플라빈이나 테아루비긴 같은 성분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최대한 산화를 시키지 않고 만드는 녹차의 EGCG 함량이 다른 차보다 더 높게 됩니다. 한국 식약처의 건강기능식품 기준에 따르면 녹차 추출물의 EGCG 함량은 1일 300mg 이하로 되어 있습니다. EGCG는 항산화 외에도 다양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1일 800mg 이상 섭취하면 간 손상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만 말하면 차를 어느 정도 마셔도 되는지 가늠하기 힘듭니다. 다행히 여기에 대해 참고할만한 기준으로 김미선 등(2019)의 연구가 있는데요. 한국의 시판 티백을 일상적으로 마시는 방법에 따라 우려낸 뒤 우러나온 성분함량을 분석했습니다. EGCG 함량을 따로 구하지 않은 총 카테킨양에 대한 분석 결과 만 실려 있지만, 녹차의 총 카테킨 중 EGCG의 비율이 약 40%란 걸 고려하면 EGCG 300mg은 녹차 티백으로 7~8개에 해당합니다. 티백의 찻잎 분량이 적은 편인 걸 고려하면 찻잎으로 마셔도 하루에 서너 번은 녹차를 우려내서 마셔야 채울 수 있는 양입니다. EGCG 함량이 녹차보다 낮은 홍차라면 훨씬 더 많이 마셔야 하겠죠.

건강에 좋다는 말 때문에 차를 마신다면 생각보다 꽤 많이 자주 마셔야 효과를 보는 게 그나마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차에는 카페인도 있는 만큼 너무 많은 차를 마시는 것도 좋을 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항산화 효과가 있으니 마시는 것만으로도 이익은 있겠지만 거기에 큰 기대를 하거나 너무 큰 의미부여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차가 몸에 좋냐는 질문은 꽤 난감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차는 좋습니다. 마음에 맞는다면 그것이 녹차든, 홍차든 혹은 보이차든 뭐가 중요할까요. 차가 좋아서가 아니라 차가 몸에 좋다고 해서라는 이유라면 차를 마시는 것보단 녹차 추출물로 만든 식품이나 혹은 항산화 물질이 풍부한 채소나 과일 같은 식재료로 충당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 강진의 설록다원 +

월출산을 배경으로 넓게 펼쳐진 차밭은 녹색으로 가득합니다. 찻잎에는 비타민과 항산화 물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고 잘 파괴되지 않고 유지되는 특성이 있어서 시간이 지나 물로 우려 마셔도 흡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차를 마신다는 건 그런 걸 떠나 누리는 안정과 행복, 혹은 즐거움의 시간이 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차를 마시는 시간, 그 자체가 여유가 되고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 되면 그로 인한 정신적인 스트레스 해소와 마음의 치유가 갖는 효과는 아마도 그런 것보다 더 큰 건강을 가져다줄 거로 생각합니다.

차는 내려놓는 시간을 가지기에 너무나도 훌륭한 기호입니다. 찻잎을 골라 꺼내고 물을 끓이며 준비하고 차에 집중하는 그 시간이 곧 마음의 평화에 이르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습니다. 조용히 내려놓고 물을 천천히 부어가고 기다리고. 또 천천히 공기를, 물을, 향기를, 맛을 느낍니다.

어떤 차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차를 마시는 환경이기도 합니다. 나에게 가장 충실해지는 시간이 곧 차를 마시는 시간이기도 하죠. 혼자서 마시는 차도 좋지만, 마음이 맞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차를 마시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기도 합니다. 좋은 차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야 더 좋습니다.

어떤 차가 좋은지는 개인의 취향도 있지만, 그 순간의 기분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어느 날은 녹차를, 또 어느 날엔 꽤 독특한 맛의 가향홍차를, 또 어느 날은 굉장히 섬세한 우롱차를 꺼내기도 합니다. 혼자 즐기는 차의 취향조차도 돌고 돕니다. 그래서 특별히 안 좋은 차가 아니라면 굳이 너무 가릴 필요는 없습니다. 마시다 보면 아 이 차는 조금 별로구나 혹은 이 차는 좋은 걸 하고 이름을 기억해두면 됩니다. 개인의 취향조차 매일 달라지는데 어떻게 제일 좋은 차라는 질문에 정답이 있을까요. 그저 손이 가는 대로 즐겨 보고 오롯이 느끼다 보면 차를 좋아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게 되실 거로 생각합니다.

+ 월광백이라는 백차에 유자 껍질이 들어간 묘차의 유자월광백 +

가향하지 않은 우롱차나 홍차를 주로 즐기지만, 때로는 녹차, 홍차와는 또 전혀 다른 새로운 차를 꺼내기도 합니다. 갑자기 생각나서 혹은 평소와는 다른 것을 즐기고 싶은 건 일상에서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차도 그렇습니다. 항상 같은 차만 마시는 것보다 가끔 다른 차를 마시는 것이 차에 관한 생각을 좀 더 풍부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 잇포도의 기타노노무카시 +

정말 가끔 기분이 내킬 때 마시는 말차. 차를 체에 치고 물을 붓고 거품을 내는 과정은 다도를 따르진 않지만 그럼에도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 말차의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끔 일탈처럼 평소와는 다른 차를 마시는 것도 좋습니다.

어떤 차든 그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걸 감싸는 분위기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지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명상과도 같습니다. 차의 종류나 어떤 맛이냐로 말할 수 없는, 차가 만들어내는 그 순간이 그저 차가 좋은 이유입니다. 그 순간을 함께할 수 있다면 어떤 차든, 그건 그다음의 문제일 겁니다.

차와 함께하는 편안한 시간을 자주 만끽해 보면서, 내적 평화를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 제준태 원장의 열두 달의 수다(秀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