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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는 코로나 치료제

걷기가 치료제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는 시기를 살고 있다. 코로나19의 상황에서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외출을 하지 못하고, 설령 밖으로 나가도 마스크를 쓴 채 실내에서 만큼의 답답함을 가지고 살면서 답답함이 병을 만들어 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답답함은 화병에서도 그러하지만, 가슴의 답답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장의 두근거림과 소화불량, 수면 장애, 무기력 그리고 억울함과 분함으로까지 이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 해결 방법으로 일단 밖으로 나가, 마스크를 벗고 실컷 걸어보는 것을 본능적으로 찾게 된다. 그래서 답답함과 열감과는 정반대인 탁 트이고 시원한 바다나 강으로 향하게 된다. 병을 고치기 위해 본능에 충실한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나라가 삼면이 바다이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강과 호수가 있어 답답함을 해소할 곳이 가까이에 있다. 뭉친 기운은 열을 만들어 내니, 해결하기 위해 기운을 풀어 헤치고 시원하게 씻어낼 방법은 물을 만나는 것이고, 오랜 시간 물과 함께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카페에서 바다와 강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도 방법의 하나겠지만, 그래도 적극적인 움직임을 통해 뭉친 기운을 풀어주고 시원함을 함께하는 ‘걷기’만 한 것이 없다.

당일치기로 새벽 5시 목포행 기차에 올랐다. 여행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당일치기 여행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있다. 목적을 명확하게 하고 하루를 온전하게 여행에만 집중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에너지 충전과 힐링이라는 뜻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기에 그러하다. 2시간 반이면 도착할 수 있는 남도이지만, 마스크를 끼고 달리는 기차 안은 여전히 답답하다. “그래도 참아야지.”, “잠시 후 바다에 가면 마스크 벗고 실컷 걸어야지.”라고 대뇌이며 애써 시선을 창밖으로 향한다.

섬티아고 순례길

답답할 때 찾는 바다는 늘 해답을 준다. 아무것도 걸릴 것 없이 탁 트인 풍경, 그리고 단순한 파란 하늘색과 바다색이 투톤으로 서로 마주하며 한없이 트여있는 풍경을 만드는 것을 보고 있으면, 복잡하고 답답한 고뇌가 몸 밖으로 툭 튀어나와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블랙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찾은 곳은 신안, 1,004개의 섬이 흩어져 있다고 하여 작명한 천사의 섬들. 그리고 그중에서 실컷 걸으면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순례의 길, 산티아고 순례길의 한국 버전이라고 하여 이름 붙여진 ‘섬티아고’다.

섬티아고 순례길은 십이사도의 이름을 따라,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남도의 몇 개의 섬을 이어서 걷게 되는 순례의 길이다. 무작정 걷는 것이 걷기 여행의 맛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걷다 보면 한 번씩 튀어나오는 경탄이 있다면 재미있는 걷기가 될 수 있다. 마치 도장 찍기 게임을 하듯 한 성당 한 성당을 지나면서 과업을 달성해 보는 것이다. 성당 안 기도대에서 잠시 쉬면서 한 호흡을 묵상의 의미로 추가한다면 걷기에 순례라는 요소가 함께할 수도 있다. 작은 성당이기에 안으로 들어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면 나 혼자 성당을 오롯이 소유하고 있는 듯 커다란 성당 이상의 감흥을 받을 수 있다.

1번 성당은 대기점도라는 섬의 선착장에서 바로 만날 수 있다. 산토리니의 바다보다 더 파란 둥근 지붕을 가지고 있는 베드로의 성당으로 그 옆의 조그만 종을 치면서 순례의 시작을 알린다. 베드로로 시작하여 가롯 유다까지 십이사도의 성당이 순례길을 따라 이어진다.

각각의 성당은 십이사도의 이름과 함께 의미가 붙여져 있다. 그래서 순례객들은 각 성당에 잠시 머물며 그 의미를 찾아보기도 한다. 1번 베드로의 건강의 집에서 시작하여 12번 가롯 유다 지혜의 집까지 각각 다른 모습, 다른 의미, 다른 풍경과 만나게 된다. 12개의 성당을 지나면서 각각의 의미를 찾으면서 마음에 드는, 자신과 맞는, 생각할 거리가 있는 주제를 풀어내기도 한다.

1. 건강의 집 (베드로) by 김윤환 작가

파란 성당의 지붕은 이제 이곳이 여정을 시작하는 이국(異國)임을 알린다. 여정의 시작을 알릴 수 있는 종이 있다. 성당 부속 건물에 화장실이 있으므로 비우고 출발하면 된다.

2. 생각하는 집 (안드레아) by 이원석 작가

고양이 조각이 반겨주고 있는 성당으로 병풍도 노두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노두길에서 물 때를 만나기 위해 성당 밖 정자에서 기다려 볼 필요가 있다. 노두길은 물 때에 따라 너무나도 다른 풍경을 준다. 성당 근처에 1004 카페가 있다.

3. 그리움의 집 (야고보) by 김강 작가

큰길에서 빠져나와 먼발치에서 만날 수 있는 성당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에밀레종의 문양으로 승천하는 예수가 그려져 있어 종교적 통합을 느낄 수 있다. 성당 안에서 만나는 종교의 통합은 평화로움을 만들어 준다.

4. 생명 평화의 집 (요한) by 박영균 작가

성당 앞에 있는 염소 조각이 방문객을 환영한다. 가우디 풍의 계단을 올라 안으로 들어가면 벽에는 꽃 그림이 그려져 있고, 창을 통해 성당 밖 농가의 전경을 받아들일 수 있다.

5. 행복의 집 (필립) by 장 미셀 후비오, 부루노, 파코 작가

노두길 언덕 위에 우뚝 솟아있는 성당으로 노두길과 한눈에 넣어 보아야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조그만 성당을 꽉 채운 십자가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6. 감사의 집 (바르톨로메오) by 장 미셀, 알룩 작가

호수에 떠 있는 성당으로, 통유리의 반짝거림이 수면의 반짝임과 어우러지면서 호수를 한 바퀴 돌면서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 인상적이다. 호숫가에는 성당 쪽으로 향해 있는 낡은 보트 하나가 떠 있어 가고자 하는 충동을 부추긴다.

7. 인연의 집 (토마스) by 김강 작가

언덕 위에 있는 하얀색의 성당으로 파란 대문이 인상적이다. 봄이면 성당 주변으로 노란 유채꽃밭이 펼쳐져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 성당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8. 기쁨의 집 (마태오) by 김윤환 작가

갯벌 한복판에 우뚝 솟아있는 성당으로 바닷물이 차면 먼발치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온통 황금색 러시아 정교회 모양을 가져 강렬한 이국적 모양이다. 성당으로 다가가는 황금색 계단조차 화려하다.

9. 소원의 집 (작은 야고보) by 장 미셀, 파코 작가

소박한 성당으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물고기 모양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답다. 밖으로 나와 보니 밖에도 물고기 모양의 창이 있다.

10. 칭찬의 집 (유다 타대오) by 손민아 작가

작지만 삼거리에 당당하게 자리를 잡은 성당으로 뾰족한 지붕과 푸른 창, 그리고 거친 나무 톤의 문이 인상적이다.

11. 사랑의 집 (시몬) by 강영민 작가

작은 길에 접어들어 먼발치에 보이는 성당으로 집이라기보다는 대문 같은 형태이다. 문밖에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고, 이 문을 지나면 천국을 만나게 된다.

12. 지혜의 집 (가롯 유다) by 손민아 작가

딴섬에 있어서 인연이 없으면 갈 수 없는 곳으로 먼발치에서 봐야 하는 작은 섬 속의 작은 성당이다. 푸른 나무숲 속에 쌓여 있는 붉은 벽돌로 선명하게 드러나 보이는 성당이다.

성당과 성당을 잇는 순례길이 이어진다. 대략 12km 정도의 길이기에 걷는 시간이 3시간은 족히 걸린다. 쉬지 않고 반나절 만에 종주할 수도 있고, 순례의 마음으로 찬찬히 걸으면서 현지에서 점심을 함께하면서 한나절을 순례로 보낼 수 있다. 아예 작정하고 하루를 묵는다면 더욱 고요한 남도의 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순례길은 다양하면서도 단순한 길을 걷게 된다. 간혹 산길에 접어들기도 하지만, 여전히 눈앞에는 바다를 담고 있다. 방향과 시간에 따라 시시때때로 바뀌는 바다를 보게 된다. 뻘을 만나기도 하지만 곧 탁 트인 바다를 보게 되고, 하늘과 바다의 파란색으로 담아내는 풍경에 빨간 지붕의 엑센트가 눈을 재미있게 해 준다. 굽은 길을 넘을 때마다 툭 튀어나오는 조그마한 성당들은 어떤 모습일까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걷기에 에너지를 부어 준다. 성당에 들어가 잠시나마 신과 만나는 접신(接神)을 시도하다 보면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과 신이 주는 평화로움을 함께 가슴에 담아낼 수도 있다.

남도의 바다와는 궁합이 맞아야 한다. 바닷물이 꽉 차는 ‘만조’와 먼발치에 머무르는 ‘조금’이라는 ‘물때’에 따라 여행 계획 자체가 바뀔 수도 있고, 이렇게 섬과 섬을 이어 가는 걷기에서는 때로 섬에 갇혀 버리는 일도 있다. 물론 의도적으로 갇힐 수도 있지만... 물때에 따라서는 아예 접근 불가의 성당도 있다. 딴섬이라는 섬에 있는 마지막 12번째 성당이 그러한데, 그저 안타까운 마음에 먼발치에서 보고 서둘러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

만조 때에는 ‘노두길’이라는 멋진 이름의 길을 만난다. 만조가 되어 물이 차면 건널 수 없고, 3~4시간 후 물이 빠져야 다시 건널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 물이 빠지는 조금의 시기에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지만, 물이 차는 만조의 시기라면 시간을 맞춰서 여정을 짜야 한다.

정작 노두길의 제맛을 보려면 만조에 가야 한다. 불과 한두 시간 전, 뻘의 숨구멍으로 바삐 움직이고 있던 게와 짱뚱어는 물이 들어오는 시간에는 완전히 바다에 잠겨 버린다. 바닷물이 차오르면서 노두길만 남아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이마저도 완전하게 닫히게 된다. 바닷물에 닫혀버리는 길이 아쉬워 물이 들어오는 시간까지 길 중간에 머물러 있다가 불안이 먼저 확 밀려오고 스멀스멀 점령하는 물을 피해 길 끝에서 물을 맞이하게 한다. 지구와 달의 밀당이 만들어 가는 자연의 힘을 밀려오는 바닷물로 인해 짜릿하게 느껴볼 수 있다. 마치 물이 나보다 더 높은 곳에서 나에게로 밀려오는 듯한 느낌으로 자연의 기운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조금 기다리다가 어느새 불안도 함께 밀려오게 된다. 자연의 기운이 인간의 정서와 바로 연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의 기운을 제대로 느껴보기 위해서는 만조에서 물이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면서 끝까지 있어 보는 것이다. 갯벌에 물이 꽉 차는데 걸리는 한 시간 남짓 동안 오로지 물을 관찰하고 나와 물을 엮어 보는 작업이다. 공포감이 밀려오기도 하고, 서늘함이 밀려오기도 하고, 때로는 도리어 안정감을 느낄 수도 있다. 바닷물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자신의 감정을 쫓아 보는 것이다. 물이 다가올 때의 불안감은 갯벌이 바다로 온전히 덮이면서 안정감으로 바뀌고 심지어 포근함마저 마음을 점령하고 있다. 자연의 현상을 몸으로 온전히 느끼는 작업을 통해 자연이 주는 에너지를 나의 에너지로 바꾸는 작업을 해 보는 것이다.

섬에서 걷는다는 것은 물의 기운을 제대로 느껴보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답답함과 열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흩트림과 시원함을 함께 하는 것이다. 바닷물이 밀려와 자신을 감싸는 기운을 받아들여 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시원함이 있다가 불안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물로 덥힌 이후에 평화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기운을 제대로 느끼는 작업은 자연의 힘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보다 더 시원하고, 상쾌하고, 또 포근한 기분을 어디서 이렇게 느낄 수 있을까?

온종일 걷는다는 것

어느새 3만 보라는 숫자가 찍히면, 피곤함과 함께 만족감, 그리고 건강해졌다는 행복감이 함께 밀려온다. 당일치기 여정에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의 짧은 숙면은 하루의 피로를 풀고 다시 충전하도록 도와준다. 예전 같으면 맥주라도 한잔하면서 다녀온 이야기를 풀어내었겠지만, 요즘은 그저 커피 한 모금 살짝 마스크를 내리고 급히 넘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니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내게 주어진 당일치기 걷기 여행은 답답함을 풀어주고 다시금 일상에서 살아가는 힘을 주는 여행이 되었다.

© 김종우 교수의 명상. 걷기.. 여행... 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