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전설 근거중심 탐구

진월인, 순우의, 편작의 형은 환자의 안색을 보고 병을 알았다고 한다. 아차산의 전설에서 맹인 점쟁이 홍계관은 상자 속에 임신한 쥐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맞혔다고 한다. 알에서 태어난 영웅이나 공주, 왕자의 이야기는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물론 허구다. 하지만 과장이나 와전은 있더라도 완전한 날조는 아니라면? 그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과학과 상상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 진짜 이야기를 재구성해 본다.
[학력]
서울대학교 학사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학사/석사

[경력]
강동경희대학교한방병원 인턴/레지던트 (한방내과 전문의)
국제인증수유상담가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교육이사
베이비뉴스 칼럼니스트
오마이뉴스 칼럼니스트

김나희
김나희

신화와 전설이 허공에서 창조되었을 수도 있지만, 어떤 실존했던 상황에 상상력으로 살을 붙여나갔을 수도 있다는 가정 아래, 그 사실이 무엇이었을지 탐색해 봅니다. "소설 쓰고 앉아 있네!"라고 해주시면 더없는 칭찬이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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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여름에는 한약 먹으면 땀으로 빠져나간다는 도시 전설은 어디서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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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맥산(生脈散), 청기산(淸氣散), 삼유음(參薷飮), 황기탕(黃芪湯), 황기인삼탕(黃芪人蔘湯), 청서익기탕(淸暑益氣湯), 십미향유음(十味香薷飮)...


한의사들에게 익숙한 이 처방들은 더위 먹었을 때 복용하거나, 더위 먹기 전에 예방하기 위해 복용하는 ‘여름 한약’이다. 여름 맞춤 한약이 있으니, 당연히 여름에도 한약을 복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여름에 한약을 먹으면 땀으로 빠져나간다는 도시 전설이 광범위하게 퍼졌을까?


이 괴담이 생겨난 계제에 대해 몇 가지 가능성을 제시해 본다.


⦁ 약 달이는 사람이 더위에 약 달이기 싫어서 고의로 퍼뜨렸다.


⦁ 냉장 시설이 없던 시대에는 여름에 탕약이 금방 쉬어버리기 때문에 여름 한약이 효과 없다는 말이 생겨났다.


⦁ 농경사회라 봄, 여름에는 살림에 여유가 없고 농번기라 시간도 없다. 그래서 음식도 풍성해지고 임금도 받는 추수철까지 기다렸다가 한약을 복용했고, 여름에는 한약을 복용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미루던 경향 (신 포도~)이 있었다.


⦁ 일사병, 열사병, 그렇다고 더워서 물속에 오래 있으면 저체온증... 이렇게 여름에 탈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약을 복용해도 소용없는 것 아니냐는 불신이 생겼다.


물론 이 ‘여름에 한약을 복용하면 효과가 없다’는 괴담은 사실이 아니다. 여름에도 한약을 복용할 수 있고, 특히나 여름에는 일사병, 열사병, 여름 감기, 저체온증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한약이 더욱 필요할 수 있다. 또한 여름에도 평소 복용하던 혈압약, 당뇨약 등을 끊는 사람은 없다. 약효가 땀으로 다 빠져나간다면 양약도 효과가 없을 텐데, 그런 현상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 괴담의 근원을 한참 찾아보았으나 아직 완벽한 설명을 찾아내지 못했다. (아시는 분은 제보 바람: redist96@naver.com) 가장 근접한 원인으로 ‘기생충 약’ 가설을 제안해 본다.



KNH 0008-title-01.jpg 1959년 텔미드라는 구충제가 출시된다. 그 광고 문구는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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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이 많은 사람은 보약을 아무리 써도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인체 내에 2종 이상 5~6종의 기생충을 대부분이 보유하고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시인하는 사실이다.

어느 것이 주요합니까?

저울 왼쪽: 텔미드

저울 오른쪽: 비타민제, 영양제, 보약 - 사람의 피와 영양분을 먹고사는 기생충들

간디스토마, 촌충, 분선충, 동양모양선충, 편충, 요충, 회충, 십이지장충

이상 모든 체내 기생충을 일시에 구충하는!

사상 초유의 광범위 구충제 텔미드정


KNH 0008-title-01.jpg 1965년 민테졸이라는 구충제가 출시된다. 민테졸의 광고 문구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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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밥을 먹는가?

한국인은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인분을 사용한 야채를 먹기 때문에 기생충 감염률이 높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통계에 의하면 전 국민의 95%가 기생충 환자이며 대부분 2종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복합성입니다.

따라서 구충제도 광범위하여야 한다는 것이 의가의 중론입니다.

한두 가지 충에만 효력이 한정되어 있던가, 충을 마비시키기만 하던 종래 구충제의 단점에서 탈피한 것이 민테졸

민테졸은 미국 멜크 회사의 연구진이 장구한 시일을 두고 연구하여 발명한 유일한 광범위 구충제입니다.



이 두 개의 광고에서 보듯이 밥을 먹어봤자 기생충이 먹으니, 구충제를 먹어서 몸속 기생충을 박멸해야 영양분을 빼앗기지 않고 흡수할 수 있다는 논리가 널리 퍼졌을 것 같다. 가을에 구충제를 먹어서 기생충을 싹 제거하고 깨끗한 소화기로 한약을 온전히 흡수하자는 논리로 시작되었다가 여름에는 한약이 효과가 없다는 말로 와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 한의사 김나희의 신화와 전설 근거중심 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