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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를 선도하는 국립중앙의료원!
국립중앙의료원 한방신경정신과에서 정책 연구와 진료를 병행하고 계신 서주희 교수님을 만나 국립중앙의료원 이야기와 한의학과 공공의료, 한의학 심리 치료 기법 M&L (Mindfulness and Loving presence)의 기원이 되는 Hakomi Therapy (하코미 테라피) 등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Q1. 국립중앙의료원에서의 교수님의 하루 일정을 알려주세요!
주로 진료, 연구, 교육같이 일반적인 대학병원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어요. 다만 차이점은 여기에다 행정 업무가 더해지죠. 가끔 병원 차원에서 의료봉사를 하기도 하고 공공의료와 관련된 컨퍼런스도 자주 참석합니다.
Q2. 로컬 한의원과 대학병원에서도 근무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학병원에서는 무엇을 하셨나요?
대학병원에서는 진료는 하지 않고 연구만 도와드렸어요. 수련의 과정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거치고 로컬 한의원에서 일하게 됐죠.
Q3. 로컬 한의원에서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오신 계기가 있나요?
로컬 한의원 생활은 만족스러웠어요.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이 설립될 때 한방신경정신과 교수 자리에 지원해보라는 권유를 받았어요. 하지만 당시에 결혼 초기였고 서울에서도 멀어서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습니다. 고민 끝에 로컬에 남기로 했는데 때마침 국립중앙의료원에 자리가 났다는 소식을 접해서 지원했습니다.
Q4.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어떤 연구를 하시나요?
한/양방 협진과 관련된 정책 연구를 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정책 연구는 국립중앙의료원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연구는 협진군과 비협진군을 나누어서 치료의 효과를 비교하고 사망률, 환자가 중증으로 빠질 확률, 장/단기적 의료비 지출, 협진 활성화를 위한 적정한 수가는 어느 정도인지 등을 조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요. 또 다른 연구로는 협진/비협진군에 따른 경도인지 장애 및 치매 환자들의 인지 기능과 삶의 질의 변화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Q5. 협진을 받는 환자들은 보험 적용을 받나요?
예전에는 동일 상병으로 한의 치료와 양방 치료를 같은 날 각각 받으면 나중에 치료받은 곳에서는 보험 적용을 받을 수가 없었어요. 예를 들어, 요통으로 정형외과를 방문한 뒤 같은 날 한의원을 가면 한의원에서는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본인 부담금을 전부 내야 했어요. 그래서 작년에 후행 진료과에서도 보험 적용을 해주는 연구를 했어요. 그리고 올해는 실질적 협진 수가를 책정하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상적인 의료 행태지만 현실적 어려움이 많이 있어요.
Q1. 정신과에서도 협진이 많이 이루어지나요?
협진이라기보다는 한/양방 병행 치료를 선호하는 환자분들이 많아요. 정신과 양약의 부작용 완화, 혹은 장기 복용에 대한 두려움 해소를 위해서 많이 찾아오세요.
Q2. 주로 어떤 환자분들이 많이 오나요?
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새터민들이 많이 오세요. 병원 특성상 새터민들에게 보조 혜택이 있기도 하고 양약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분들은 한의 치료만 고집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 외에도 일반 화병, 공황 장애, 불면증, 불안 장애, 그리고 심인성 두통 환자분들이 오시죠.
Q3. 교수님께서 한방신경정신과를 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원래는 소아과에 관심이 있었지만 전국 병원에서 5명 정도밖에 모집하지 않아 갈 수가 없었어요. 수련이 가능한 병원을 찾다가 국립중앙의료원을 알게 되어 인턴으로 왔고 한방내과, 침구과, 한방신경정신과 중 가장 성향이 맞는 한방신경정신과를 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R3 선생님이 예뻐해 주시고 과장님이 편하게 해주셔서 ‘사람을 편하게 하는 데는 뭔가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전공을 선택한 것 같아요. 학부 때 수업이 재미있기도 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학부 생활 때 불면증과 우울증을 앓았는데 적극적으로 치료하려 하지 않고 ‘그런가 보다’ 하며 견디고 지나왔던 것 같아요.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저를 한방신경정신과로 이끌었다고 생각해요.
Q4. 한의대 생활은 특히 불면증과 우울증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한의대 생활이 엄청난 압력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모두가 같은 상황에 놓여있으니까 스스로 고통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Q1. 공직 한의사는 공무원인가요?
국립중앙의료원이 지금은 법인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저는 공무원은 아니에요. 인천의료원이나 경기도의료원과 같은 지방 공공의료기관이나 보건소에 채용되어 근무하시는 분들을 공무원으로 칭할 수 있죠.
Q2. 공직 한의사와 일반의 생활을 돌아보셨을 때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공직 한의사는 월급쟁이예요. (웃음) 일반의는 매출 관리가 중요하지만 공직 한의사는 돈을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에요. 공직 한의사의 업무는 진료보다는 공공의료사업입니다. 한의의료 서비스의 기초적인 씨를 뿌리는 역할이라고 보시면 돼요. 한의학이라는 매개체로 국민건강증진에 기여하는 공공의료 보건사업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프로그램들이 잘 뿌리내리고 효과를 보이면 한의학의 중요성이 국민들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인식이 되는 거죠.
한의학은 의학에서 메꾸지 못하는 틈과 약점들을 채워주는 소중한 학문이라는 것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진료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공공 보건의료 활동을 통해 ‘한의학이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국민과 정책 관계자들에게 심어 주어야 해요. 보건소에 계신 분들도 옛날과는 달리 진료만 해서는 안 되고 다양한 한의학사업과 프로그램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 결과를 지역 신문에 활발히 홍보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이러한 방식으로 한의학의 위상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Q3. 한의학이 공공의료에서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역할은?
대표적으로 임산부사업 프로그램이 있어요. 한의학 이론을 중심으로 산전, 산후, 육아 기간으로 나누어 한국형 임산부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우리나라는 육아서에 따라 육아법이 달라 산모들이 많이 불안해하고 인터넷에서 근거 없는 정보를 얻기도 해요.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가 산전, 산후, 육아 기간에 따라 근거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거죠. 산모들끼리 단체 카톡방을 운영해서 산후 우울감을 낮추고 산후풍 관리와 예방에 한의학을 도입한 사례가 있어요.
공공의료사업의 특징은 세금이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시적인 지표를 보여주는 결과가 도출되어야 해요. 치과는 충치의 개수, 대사증후군 관리는 혈압이나 중성지방의 비율 등의 지표가 있지만 한의학은 특성상 명확한 지표를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에 지표 선정에 늘 큰 노력을 쏟고 있어요.
Q1. 교수님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또 힘들었던 순간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저는 20대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무감각하고 무미건조하게 시간을 보냈어요. 특히 수련의 과정에서 좀 힘들었어요. 6년 동안 긴 우울의 늪을 끝내고 세상으로 나왔는데 세상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낀 거죠.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Hakomi Therapy (하코미 테라피)라는 것을 하게 됐어요. 이것이 제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이자 좋았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Q2. 하코미 테라피가 뭔가요?
심리 치료 기법 중 한의사들 위주로 사용하는 M&L (Mindfulness and Loving presence)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의 기원이 하코미 테라피입니다. 70년대 미국의 Ron Kurtz (론 컷츠)라는 사람이 만든 건데 3세대 심리 치료라고 해서 Mindfulness (마음챙김)를 치료에 결합합니다. 1세대를 행동 치료, 2세대를 인지 치료, 3세대를 명상에 기반한 심리 치료라고 해요. 명상에 기반한 심리 치료는 환자에게 Mindfulness를 시켜서 자신을 바라보고 관찰하게 하는 것인데 여러 분야에서 연구가 많이 되어 있어요.
하코미 테라피도 Mindfulness를 기반으로 하는 심리 치료인데 이론을 구성하는 기반은 한의학의 몸-마음 이론입니다. 마음의 불편함이 신체적으로 저장된다고 보고 신체적으로 접근해서 Somatic psychotherapy (신체적 정신요법)라고도 합니다. 예전에는 “어디가 아프세요”와 같이 내러티브로 했다면 하코미는 Mindfulness를 하게 하고 몸의 특정 부분을 지금 느껴보라고 한 후 그 부분부터 접근해 들어가요. 과거의 아픈 부분을 끄집어내지 않아도 신체적인 접근 방법으로 들어가면서 해결된다는 장점이 있죠.
하코미 테라피의 근본은 M&L (Mindfulness and Loving presence)입니다. Loving presence는 인본주의로 Carl Rogers (칼 로저스)가 얘기하는 환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과 사랑을 기본으로 합니다. 환자가 객관적으로 너무 힘든 상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가 가진 빛을 보려고 노력하고 그것을 파악해 내는 것이 Loving presence입니다. 그러면서 내담자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죠. 무언가를 ‘하지 말아라’고 하는 게 아니라 저항을 지지해주는 거예요. ‘해님과 바람’ 이야기에서 해님이 나그네 스스로 외투를 벗게 해주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1. 한의대생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방신경정신과 환자들한테도 항상 얘기하는 건데 세상에 끝없이 추락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항상 끝은 있고 바닥을 치는 건 다시 올라오기 마련입니다. 바닥을 친 만큼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학부생들은 알을 깨고 나오려는 병아리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힘든 상황에 있더라도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서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야 날 수 있죠. 지금이 어느 때쯤인지 몰라도 언젠가는 조금이라도 깨져서 빛이 들어올 것이고 그럼 이제 서서히 나갈 때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요.
학생들이 한의대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전문직이면서 졸업하면 중간 이상으로 편하게 살 거라는 사회적 기대인 것 같아요. 근데 이 전문직이라는 게 오히려 사람의 발목을 잡을 수 있어요. 저는 '한의대를 나오면 꼭 한의사만 해야 하나?'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전문직이니까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자유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더 잘할 수 있는 다른 분야를 찾지 못하고 발목 잡혀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어요. 한의학에만 갇혀있지 말고 무한대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살면 좋겠어요. 본인이 새롭게 창출해낸 분야를 한의학과 결합하면 더 크고 새로운 창조적인 분야로 나가 프런티어가 될 수 있어요. 스스로 한계를 만들지 말고 모든 것에 가능성을 열어두세요.
한의사들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많아요. 학부 때는 공부에 치중해야겠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며 우리가 같이 할 수 있는 부분을 찾고 발을 내밀어야 해요. 먼저 권유하는 곳은 아무 데도 없고 우리가 먼저 들이밀어야 해요. 이런 행동이 반복되면서 파이가 커지고 이런 한의사도 있구나 하는 생각들이 확산하는 것이죠. 요즘은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신 한의사분들이 많더라고요. 자기가 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얼마든지 한의학과 병행하면서도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Q1. 교수님이 하시는 일이 세상을 바꾼다면?
한 개인이 의료진과 만남으로 인해 한순간 삶이 바뀌게 되면 그 주변 가족의 삶이 바뀌고 그게 또 파장돼요.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한테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결국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 이 순간에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한테 가장 귀한 손님이자 존재입니다. 지금 앞에 있는 여러분들도 열정, 밝음, 에너지 등이 느껴지며 절로 Loving이 되어요. 이런 것이 Loving presence이고 이를 계속 트레이닝하는 게 진료 현장과 인간관계 모든 부분에서 필요한 일입니다. M&L이 한의사뿐 아니라 일반인 대상으로도 모든 부분에 퍼져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M&L을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하나의 목표입니다.
Q2. 앞으로 하실 새로운 계획이 있나요?
올해 계획은 저의 진료 부분의 세부 전공을 조금 더 개발해내는 것입니다. 트라우마 환자들에게 많이 사용되고 있는 M&L 기법도 조금 더 적합하게 개발하고 익혀서 그쪽으로 특화해보고 싶어요.
이름만 들어도 멋진 국립중앙의료원!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자세하게 알지 못했는데 교수님 덕분에 많은 걸 배워가는 인터뷰였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서주희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