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의학의 프로듀서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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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대학교 한의과대학을 2006년에 졸업하고 일선에서 환자들을 돌보다가, 2016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2020년 1월 의사 국시를 치르고 2월에 복수면허자가 된 임재은 선생님을 인터뷰했습니다. 현재는 미국에 진출하기 위해서 USMLE (미국의사자격시험) 공부를 하면서 전공의 지원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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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선생님의 한의대 재학 시절이 궁금합니다.


저는 모범생이었습니다. 항상 맨 앞줄에서 수업을 열심히 들었던 학생이에요. 한의대 교육의 문제에 대해서 비판하는 목소리가 학생들 사이에서 만연한 시절이었는데, 한의대 교육을 비판하려면 그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딴짓 안 하고 열심히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의대의 한의학 교육에 대해 관심이 생겨서 본1 때 한방생리학 자유 주제 과제로 <한의학 교육의 문제점과 발전 방향>이라는 보고서를 써서 제출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한의과대학의 교육 내용’이 곧 ‘한의학’이라고 생각을 해서, 한의대 교육의 문제를 한의학의 문제로 오인했던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 학문을 계속 공부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었죠. 예과 시절에는 한의대를 그만둘까 고민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교수님을 찾아뵈었다가 교수님의 권유로 대학원 수업에 참관할 기회도 있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의학 교육에 대하여 여전히 불만족스러웠어요.


그랬던 제게 전환점이 생기게 된 계기가 임상 현장에서 경험한 한의학이었습니다. 본1 올라가던 겨울 방학에 태국 봉사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때 한의 진료 현장을 경험하면서 한의학적 치료가 의료 현장에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한의학에 애정을 가지고 공부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던 두 학번 위 선배와 예과 2학년 말부터 본과 2학년 여름 때까지 의학사, 의철학, 의료 관리학 등을 공부하면서 의료계 전반에 대해 탐색을 했어요. 의료계의 현황을 알아보고, 앞으로 어떤 걸 공부해야 할지 찾고자 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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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공부하면서 가지게 된 생각이 크게 2가지였어요. 첫째, “관점의 차이가 행동의 차이를 가져온다.”와 둘째로 “한의학계는 황무지와 같다. 내가 뭘 하든 개척자가 될 수 있다. 힘들고 수고스럽겠지만, 개척자의 길을 가는 것도 가치 있는 삶이다!”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당시부터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해보고자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융합 의료가 있었죠. 저는 동서 의학이 융합된 의료가 환자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융합 의료로 가기 위한 선결 조건 중 하나인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 의대생, 간호대생을 대상으로 한의학을 소개하는 행사를 기획했었어요.


C.M.F. (한국누가회)를 통해서 광고를 했고, 연세대 의과대학 강의실을 빌려서 진행했는데, 당시에 160명의 의료 계열 학생들이 참여했습니다. 당시 행사를 같이 준비했던 두 분의 한의사 선생님 (당시에는 모두 학생)들이 더 계시는데, 두 분 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가고 계십니다. 한 분은 의사학 박사를 수료하고, 현재 옥스퍼드대에서 의료인류학 박사과정을 밟고 계시고, 한 분은 복수면허자가 되어 현재 서울아산병원 재활의학과 전공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셋이서 큰 행사를 기획해서 진행했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공동 연구를 하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Q2. 선생님은 한의대 시절에 대해 만족하시나요?


한의대에 재학하면서 가장 만족스러운 강의는 어떤 강의였나요? 그리고 가장 가슴을 뛰게 했던 강의는요? 저는 학생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강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TED 강연 중에 사이먼 사이넥 (Simon Sinek)의 “리더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방법 – 골든 서클”이란 강의가 있어요. 어떤 일을 할 때는 Why (왜), How (어떻게), What (무엇을), 이 세 가지 질문을 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What에 집중합니다. 하는 일, 대상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거죠. How는 일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집니다. 하지만 사람을 바꾸고, 조직을 변화시키며, 세상에 혁신과 진보를 가져오는 것은 Why입니다. 즉 자신이 하는 일의 이유, 목적이 중요한 것이죠.


한의대에 필요한 강의는 Why입니다. 한의학을 공부하는 이유, 목적을 찾을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강의가 한의대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교육을 받고 성장해서 의료 현장에서 제 역할을 하려면 스스로 역할 모델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Why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돕는 강의인 거죠. 이런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저는 한의대에서 이런 교육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한의대 시절에 즐겁고 재미있던 부분도 많았지만, 아쉬운 부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교육과 학습에 관해서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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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든 서클 (Golden Circle)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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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한의대 졸업 후 한의사로서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공보의 6개월 차쯤에 하루 환자가 50명을 넘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아는 게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과거에 해왔던 한의학 공부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실용적인 지식을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제 머릿속엔 죽어 있는 지식이 많았어요. 그래서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교육학책부터 다시 봤습니다. 공부법에 관한 책들, 사법고시, 행정고시 합격 수기도 많이 봤어요. 공부를 공부한 거죠. 그러면서 한의학 교육의 방향 설정과 사람을 키우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같이했어요. ‘어떻게 하면 나 같은 실패자가 나오지 않게 할까?’라는 고민을 했죠.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스스로가 한의과대학 교육의 실패자라고 생각합니다. 졸업 1년 차부터 지금까지 학습과 교육 그 자체에 대해서 계속 공부를 해오고 있습니다.


졸업 이후에 임상적인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요? 저는 본초, 방제 공부에 집중했어요. 구체적으론 <상한론>과 <금궤요략>에 수록된 처방을 공부하면서 가감, 합방 없이 처방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제 임상에서 활용했습니다. 이 처방들이 가장 우수해서가 아니라, 고방이 처방의 시작점이라면 그것부터 공부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만약 지침이 각 질환, 처방, 본초 별로 자세하게 그리고 활용하기 쉽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면 그런 생각을 안 했을 것입니다. 고방 처방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했고, 지금도 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질환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내과와 정신건강의학 관련 질환들을 주로 공부했습니다. 공황 장애, 불안 장애, 비만, 알레르기 비염, 기능성 소화 불량, 염증성 장 질환 등의 환자들을 진료했었죠.


동시에 대한상한금궤의학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학회 내에서 한의사/학생 교육 시스템을 개혁해 볼 기회가 주어져 한의학 교육에 대하여 생각해왔던 방안들을 접목해 볼 수 있었어요. 핵심은 발표와 글쓰기 위주의 교육이었는데, 예를 들어 학생 5명을 대상으로 수업을 한다면 각자 자신을 환자라고 생각하고 스스로에 대해서 진료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그 진료 과정을 PPT 등을 이용해서 발표하게 합니다. 그다음 수업에 참여하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논의하고, 최종 진단명과 처방을 정합니다. 발표 학생은 추후에 정해진 처방을 복용해보고, 이후에 어떤 반응들이 있었는지 다시 발표합니다. 그리고 발표와 피드백 이후에 자기 자신을 탐구하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글로 쓰게 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가족, 친구들에 대한 발표를 똑같이 했습니다. 글도 쓰게 하고요. 이렇게 임상진료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했더니,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변하더군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제가 미국 의과대학 내에 한의학 교과 과정을 개설하고 체계를 세운다고 했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실제 교육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어서 굉장히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Q2. 한의사로 활동하며 느낀 보람과 난관들이 궁금합니다.


보람을 느낀 점은 학회에서 교육을 담당하면서 제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성장했다는 점이에요. 발표 수업을 하고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성찰하게 하는 교육을 하다 보니 학생들이 좋은 성과들을 냈습니다. 굉장히 흥분되는 일이었죠.


난관은 이러한 교육 방식에 대해서 많은 분이 낯설어했다는 점이에요. 특히 학생보다는 한의사 선생님들이 많이 어려워하셨죠. 특히 자기 몸이나 정신 문제에 대해서 발표하는 것을 엄청 어렵게 받아들이셨죠. 아무래도 의료인이다 보니 자신을 환자라고 생각하고 발표하기에는 부담이 컸던 것 같습니다. 이 과정을 자연스럽게 하기까지 대략 2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그래도 굉장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3. 난관에도 불구하고 그런 교육 방식을 어떤 점 때문에 계속 추진하신 거죠?


개인적인 문제를 남에게 공개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알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발표를 하는 분들이 자기 틀을 깨고 발전하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이 방식이 중요한 이유는 서로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면서 세상 사람들이 겪는 건강 문제가 얼마나 비슷하고 또 얼마나 다른지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환자에 대한 깊은 이해와 더 나은 진료를 제공해 주는 역량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죠. 더 나아가 진료 능력 자체뿐 만 아니라, 공감 능력, 상담 능력 등도 함께 기를 수 있어요.


이렇게 훈련하다 보면 환자들이 하지 못하는 말들도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환자를 진심으로 위로해 줄 수도 있지요. ‘내가 만약 환자라면 어떤 점에서 감동을 받을 것인가?’, ‘질병과 관련된 은밀하고 중요한 삶의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낼까?’와 같은 고민으로 이어지면서 환자 본연의 모습을 좀 더 알려고 노력하게 되죠.


의료의 범위는 의료인의 신념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한의학은 인간 중심의 학문이니 다뤄야 하는 범위가 더 넓죠. 환자에게 질병과 관련된 삶의 문제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해 줘야 해요. 환자의 사회적 문제까지 고려해 줘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양방이 놓치는 부분이기도 하고, 인공 지능 시대에 인간 의사가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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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althy-Mind Map


앞으로 정량적인 수치들은 인공 지능 (AI)이 관리 조정해 주는 시대가 올 겁니다. 그러나 환자의 삶의 문제를 공감하고 지지해 주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그것들을 패턴화해서 빅 데이터를 만들 수 있다면 차원이 다른 인간 중심의 의료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 시작점을 저는 한의사들과 학생들의 데이터라고 생각했어요. 의료인이면서 인간이며, 환자이기도 한 한의사 선생님들과 한의대 학생들이 종단 연구 (Longitudinal study)를 통해서 가치 있는 데이터를 쌓고 이것을 공유할 수 있다면 환자 치료에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Q4. 제가 듣기에도 낯선 방식인데요. 선생님께서는 진료할 때도 이것을 반영하시나요?


저는 초진을 1시간 봅니다. 공보의 때 많은 사람을 진료하다 보니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진료하는 것에 대해 후회가 많았거든요. 평생 그런 식으로 진료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의료의 본질이 무엇일까 고민을 했습니다. 좀 더 환자 입장에서 무엇이 문제일까를 고민했어요. 예를 들면 환자가 오면 대개는 수면 시간, 수면의 질을 물어보고 끝나잖아요? 하지만 만약 고등학생 환자가 오면 공부 스트레스, 부모의 큰 기대, 또래 집단 내의 갈등 등이 수면 문제의 원인일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요소들에 대해서 광범위하게 묻고, 대답을 듣고자 노력했습니다. 필요할 경우에는 좀 더 은밀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들도 듣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가령 성인 남녀 환자들을 진료할 때에는 필요할 경우, 부부 관계를 비롯한 성 문제에 대해서도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환자분들의 삶에 그러한 것들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런 측면까지 파악하고 상담한 환자의 치료 성적도 더 좋았고, 환자 의료인 관계를 깊게 쌓을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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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의대에 지원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한의대 재학 때부터 통합의학에 관심이 있었어요. 원래는 공보의를 마치고 의대에 진학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공보의 시절에 한의학 공부를 다시 하게 되었고, 임상진료의 즐거움을 새롭게 알게 되었죠. 그래서 개원의 생활을 한동안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개원을 하고 보니, 임상진료만으로는 만족이 안 되더라고요. 제가 하는 임상진료를 1차 의료기관뿐 만 아니라, 3차 의료기관에서도 하고 싶었고, 한국뿐 만 아니라 세계를 대상으로 하면 더욱더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더 나아가 임상연구도 하고 싶었고, 한의학 교육학이라는 분야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3차 의료기관에서의 한의학 진료나 연구, 한의학 교육학 세우기는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즉 국내 대형 병원에서 한의학 진료를 하면 흥미진진하면서도 가치 있는 임상과 연구를 할 수 있을 텐데, 그러기에는 현실적인 벽이 너무 높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가능할 것 같았어요. 공보의를 같이한 의사 친구가 국내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수련을 받고, 현재는 미국 유명 병원 소화기내과에서 조교수로 근무 중이거든요. 미국이 열려있는 나라라는 걸 이 친구를 통해 알았죠. 그리고 임상연구 책임자는 MD가 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MD가 돼서 미국에 건너가 임상연구를 주관하는 책임자가 되어서 임상도 하고, 연구도 하고, 교육도 하자고 생각했지요.


이와 더불어 저는 북한,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 의료에 관심이 많았어요. 매년 동남아 의료봉사를 2주씩 가다 보니 ‘이렇게 해서는 이 지역사회를 바꿀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러 차례 봉사 활동에 참여하다 보니 장기적으로 해당 지역의 의료인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의학교육학을 공부해서 이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고 해당 지역을 돕는 일들을 하고 싶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두 가지를 다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생각을 많이 했지요. 결국 내린 결론이 ‘미국에서 전공의, 전임의 과정을 밟고, 미국 대학병원에 자리를 잡으면 두 가지 일들을 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Q2. 임상의뿐만 아니라 임상연구 책임자가 되기 위한 선택이었군요! 계획을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전공의, 전임의 과정을 밟고 나면 미국에서 활동하는 양방 의사 중에서는 한의학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일 거예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저만의 강력한 Selling point (특장점)가 되겠죠?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미국에서 내과 전공의 수련을 받고, 세부 분과에서는 소화기내과 그리고 세부 전공으로는 염증성 장 질환 (IBD)을 할 계획입니다. 미국에서 유병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질환이고, 우리나라에서도 환자 수가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치료 약의 부작용이 적지 않고, 재발도 잘 되는 난치성 질환이라 양방에서도 핫한 분야 중 하나이기도 해요. 저는 한의학이 염증성 장 질환 (IBD) 치료에 이바지하는 바가 상당하리라 생각해요.


만약에 염증성 장 질환 (IBD)의 한의학적 치료에 대해서 좋은 성과를 낸다면, 이후에는 임상연구 분야를 확대하여 실력 있는 한국의 한의사 선생님들과 함께 임상연구를 할 계획입니다. 즉 임상 아이디어를 내고 실제 진료를 구현하는 것은 그 분야의 전문인 한의사 선생님이 담당하고, 저는 대학병원 안에서 해당 질환 군 환자들을 모으고, 진단 치료 과정을 설계하고, 예후 평가 방법을 기획하고, 해당 성과를 논문으로 작성함과 동시에 해당 분야 전문가인 양방 의사들과의 연계 협력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비유하자면 다른 한의사 선생님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배우들이고, 저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제작하는 감독 내지는 제작진이 되는 겁니다. 현재 한의학계에는 내로라하는 같은 배우들이 많습니다. 다만 자신의 진가를 드러낼 수 있는 무대가 없어서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영화는 배우를 통해 알려지게 되고 보통 배우들이 주목을 받습니다만, 최근에 여러 감독이 세계무대에서 이름을 알리는 것처럼 감독이 되는 것도 값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의료인이 배우가 되고 싶어 하지만, 저는 감독 내지는 제작진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아무리 기라성 같은 배우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 배우들이 연기할 수 있는 무대, 각본, 감독, 환경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영화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죠. 저는 염증성 장 질환 (IBD) 그리고 소화기내과 분야에서는 배우도 하고 감독도 하겠지만, 결핵, 난임, 화상, 천식, 비염 등 다른 분야에서는 감독 내지는 제작진을 해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미국 대학병원에서 한의학에 대한 연구성과가 나오게 된다면 우리나라 의료계에서도 전향적인 태도로 한의학을 바라볼 것이라고 봐요. 전체의 시각을 바꾸는 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요.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자 노력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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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의대 입학 준비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이 있었나요?


37살에 편입 공부를 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웃음) 나이 들어서 입시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죠. 여러 가지 측면에서요.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Q2.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을 선택하시게 된 점도 궁금합니다.


입시에서 나이도 중요한 합격·불합격 요소인데, 한양대는 나이가 감점 요소가 되지 않는 일부 학교 중 하나였습니다. 게다가 블라인드 면접을 하는 곳이어서, 한의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감점이 되지도 않았지요. 개인적으로 한양대 의대 편입학 입시에 관여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Q3. 의대 교육과정에 대해 받은 전체적인 인상이 궁금합니다.


전체적으로 한의대보다는 환경이 낫긴 해요. 특히 의학 지식이 실습 현장에서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점이 한의대 교육보다 나은 점이죠. 국시 필기시험, 실기시험 준비가 실제 임상에 적용되기 때문에 환자를 보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공부에 대한 동기 부여가 잘 됩니다.


하지만 역할 모델을 제시해 주고 자기 주도 학습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의대도 한의대와 마찬가지입니다. 학습량이 많다는 점과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는 내신과 유급 제도가 학생들의 자기 주도 학습을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4. 의과대학 재학 시절 한의사라는 직업과 관련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작년에 대전대에 가서 의과대학과 한의과대학의 교육을 비교하면서 한의대 교육 개혁 방안을 발표했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의대에서 수업 중에 한 교수님이 70~80년대의 한의학계 상황을 말하면서 한의학을 조롱하듯 저한테 질문하셨어요. 제가 조목조목 반박을 해서 ‘갑분싸’가 되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래서 이후에는 한의학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는 이야기에 일절 대응을 하지 않았어요. (웃음)


2016년에 어머님께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하다.’고 하셔서 진료하고 계지거작약탕을 처방해서 좋아지셨어요. 그런데 어머님이 얼마 안 가서 쓰러지셨죠. 뇌경색이 왔는데, 대학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잘해서 지금은 괜찮으세요. 어머니가 65세에 기저 질환으로 고혈압과 고지혈증이 있었거든요. 내과학에서는 65세 이상 노인에서 심방세동 발생률이 점차 늘어난다고 나와 있어요. 심방세동은 혈전이 잘 생겨 인체 어디든 막는 문제를 유발 할 수 있어요. 특히 뇌경색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죠. 한약으로 심방세동으로 인한 증상은 막았지만, 그 자체를 고칠 수는 없었어요. 물론 제 실력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지만, 어머님은 중증 심방세동이어서 항부정맥약도 안 들어 결국 전극도자절제술을 받으시고 주기적으로 경과 추적 중입니다.


일반적인 한의사가 이런 상황을 맞게 되었을 때 증상이 좋아진다고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한의학으로 질병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면 좋겠지만, 그게 어느 수준까지 가능할지 우리가 알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의료의 본질은 불확실이고, 한의학이 못 보는 영역을 의학이 볼 수도 있어서 이런 부분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한의사도 양방 의학을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양방 지식으로 한의학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상태를 잘 알기 위해서 양방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점을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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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선생님께서는 어떤 미래를 계획하고 계시나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미국에서 소화기내과 교수가 되어 염증성 장 질환 (IBD)을 비롯한 소화기 질환에 대한 한의학 임상연구를 통해 상위 저널에 논문을 발표하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거창하게 말씀드리자면, 한약 치료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임상연구 논문을 세계 최초로 NEJM에 발표하는 것이죠. 이러한 성과들이 나오면 연구비 펀딩도 더 많이 받을 수 있겠죠? 그렇게 된다면 유명 의료기관의 의대 교수님들과 국내의 훌륭한 한의사 선생님들과 협업을 하고 싶어요. 감독 및 제작자로서 국내 한의사와 미국 의료계의 링크 역할을 하는 것이죠. 관심 있는 질환으로는 당뇨, 신부전, 다제 내성 결핵, 난임, 수술 환자 관리 등 다양합니다. 이렇게 하나씩 연구를 해서 3차 의료기관 모든 곳에 한의학을 뿌리내리게 하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다할 수는 없겠지만, 살아 있는 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고 싶습니다.


이러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제가 책임질 수 있는 연구팀을 만들어야겠죠? 대학에서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생사를 함께하는 팀워크를 구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연구팀의 성과가 잘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미국 의과대학 내에 한의학과를 개설해 보고 싶습니다. 이를 계기로 국내 한의계의 우수한 인력들을 미국에 심는 역할도 하고 싶어요. 이것이 성공하면 아프리카나 동남아까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봐요.


Q2. 한의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느 곳일까요?


한의학이 어떤 감동을 줄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시작은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분석과 인정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현재 한의학계는 자본과 인프라가 부족하고,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우수한 인력뿐입니다. 문제는 그 인재들이 모두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데,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무대는 줄어들고 있지요. 이렇게 가게 되면 대다수가 작은 극단의 배우밖에 될 수 없을 겁니다. 아무리 꿈이 있어도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부족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현실을 인정한다면 무대를 키우고, 만들어갈 수 있는 인력들이 필요해요. 예로 들자면 정치가, 스타트업 기업가, 행정 전문가, 보건관리학 전문가, 의료인류학 전문가, 기초 의과학 전문가들이 필요한 것이죠.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학생이 무대를 키우기보다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임상의로서의 역할 모델만 바라보고 있어요. 저는 한의학 교육이 다양한 역할 모델을 보여주고, 많은 학생이 도전하는 개척가 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독려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한의학 교육이 학생들에게 What이 아닌 Why를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고 봐요. 그렇게 되면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의 역할 모델을 고민하게 될 것이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리라 생각해요.


한의과대학은 단순히 한의학적 지식과 기술만을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시대의 흐름을 고민하고 학생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시작점이 되어야 해요. 저는 사라져버린 꿈과 열정을 되찾는 것이 한의대 교육의 기본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3. 한의대 후배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소명 의식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의학 이외의 다른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저 같은 경우 학생 시절에 만나서 같이 놀던 선배, 친구, 후배 중에는 국제 보건을 비롯한 의료 관리학, 의료인류학, 예방 의학 등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전공해서 해당 길의 개척자로 살아가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제 주변에 있었기에 저 또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진로가 많이 달라집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간접 경험을 해볼 기회를 가져 보세요.


그러다가 가슴 뛰는 일이 생긴다면 도전해 보세요. 다른 것들을 내려놓더라도 이것만은 꼭 하고 싶다는 것을 찾는다면 힘들고 어렵겠지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4.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한의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거라고 보시나요?


지속 가능한 발전의 시작점은 환자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다양한 환자들을 얼마나 많이 볼 수 있느냐가 발전과 진보를 이루어내는 기초가 되죠. 예를 들어 현재 류머티즘 관련 환자들은 한양대학교병원에, 폐암 환자들은 삼성서울병원에 몰립니다. 마찬가지로 각 병원별로 주력 분야를 두어 병원의 간판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고, 해당 분야에서 새로운 연구성과와 인재들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가령 제가 졸업한 한양대학교병원에는 배상철 석학 교수님이 계시는데, 이분께서 90년대 중반에 하버드에 유학을 가셔서 임상 중개 연구를 배워 오셨습니다. 그래서 2000년대 초에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들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코호트 연구를 하셨죠. 이외에도 SLE, Systemic sclerosis 등 류머티즘 내과 분야의 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한양대 병원에 몰려드는 바람에 수많은 데이터가 쌓였고, 이 데이터들이 네이처, 사이언스 등 상위 저널에 논문을 발표하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임상도 잘하고, 네이처, 사이언스 등에 논문을 내는 제자 교수님들도 많이 나오게 되었죠.


마찬가지로 서울아산병원에는 박승정 석좌 교수님이 계십니다. 이분이 관상동맥 중재 시술의 개척자이자 세계적인 석학이신데, NEJM에만 6편의 논문을 발표하셨습니다. 관상동맥 중재 시술이 필요한 환자가 많았고, 전국에서 몰려오는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새로운 의료 지식과 기술들을 개발하신 거죠. 그분 밑에서 배운 많은 젊은 교수님들이 박승정 교수님처럼 임상도 잘하고, 연구도 잘하는 교수님들이 되어서 현재의 서울아산병원의 심장내과를 맡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현재 한의과대학 부속 한방병원은 과거의 영광은 사라지고, 경영난에 시달리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죠.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만, 원인 분석은 둘째 치고 이 상황을 타개하고 재도약을 할 만한 원동력이 마땅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와 더불어서 한의계가 로컬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고, 각자도생의 현실 속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선택은 두 가지뿐이라고 봐요. 로컬에서 자신의 최대 능력치를 이끌어 내던지, 성공하던 실패하던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서 대체 불가능한 전문가가 되던지 말입니다. 다만 저는 첫 번째 모델은 가능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가 첫째, 환자층의 세대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더는 어릴 때부터 한의학 진료를 경험해본 세대가 주류가 아니에요. 둘째, 기성 한의사들은 한의사 숫자가 적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단골 환자 확보가 쉬웠습니다. 지금은 한의사 숫자가 대폭 늘어서 개원가가 포화 상태이고 경쟁이 치열하죠. 더불어서 급변하는 시대 환경이 내 노력과 상관없이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했을 때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경험에서 나오는 성찰이라고 생각해요. 그 성찰 가운데서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면 그 분야의 대체 불가능한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봐요.


결국, 한의학의 미래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한의사 선생님들과 한의대생들이 현재, 그리고 미래에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전체적인 흐름이 한의학계에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한의학의 가치를 자리매김하고 가꾸어 가려면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요. 저도 그런 측면에서 제 진로와 앞날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한의학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잘 모르겠다.’가 제 솔직한 생각입니다만, 지금보다 나은 한의학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과 주어진 시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한의학의 미래 주역인 학생들의 꿈과 역량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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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대를 다니다 보면 한 번쯤은 한, 양방 복수면허에 대해 생각해보는 학생이 많을 겁니다. 그 이유는 한의학에 대한 의문, 제도적 한계에 의한 갈증 등 제각기 다를 것입니다. 저 또한 3차 의료기관에서 난치병 환자에 대한 한의학적 치료를 연구해보고자 한의대에 입학했기에 한의계의 현실에 약간의 답답함을 느껴왔습니다. 자연히 복수면허자들에 대한 궁금증도 가지고 있었지요. 그래서 임재은 선생님께 인터뷰 요청을 드렸습니다.


단순한 복수면허자가 아니라, 미국에 건너가 임상연구 책임자, 프로듀서가 되어 다시 한의학의 발전을 가져오겠다는 임재은 선생님의 계획을 들으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저 또한 점차 잊어가던 한의전 입학 당시의 포부들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귀한 시간을 내어주신 임재은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앞으로의 길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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