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암센터 환자들을 마주하는 한의사부터 작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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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경희대한방병원 한방암센터에서 근무 중이신 김은혜 교수님을 인터뷰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최근 2022년 6월 저서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를 출간하셨습니다. 억울하고 외로운 싸움을 해나가는 암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과 함께 교수님에 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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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간단한 소개 말씀 부탁드립니다.


경희대학교를 졸업 후 강동경희대한방병원 한방암센터에서 인턴, 레지던트를 마치고 전임의 (펠로우) 과정을 거쳐 현재는 연구 펠로우 겸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김은혜입니다. 임상에 있는 동안 대부분 암 환자분들을 위주로 진료해왔고, 그중 마지막 연차에는 거의 말기 암 환자분들을 많이 뵈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는 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한의 암 치료의 유효성과 안정성에 대한 연구를 총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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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학창 시절 어떤 학생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대학 시절 때 소위 말해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이었습니다. 조기 졸업을 한데다가 빠른 연생이어서 동기들뿐만 아니라 후배들보다도 나이가 적은 경우가 많아 당시에 유독 낯을 많이 가렸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내외 동아리 활동도 거의 안 하고 친한 사람들끼리만 삼삼오오 모여 다니면서 학교 공부만 하던 학생이었습니다. 그 덕에 성적은 만족할 만한 학점으로 받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좀 더 다양한 활동을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조금 있긴 합니다.


Q3. 교수님의 하루/일주일 일정을 알려주세요.


현재 한의사로서 의료기관에 근무 중인 대다수의 분들이 그렇겠지만 적어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맡은 업무를 처리하는 것에 집중을 쏟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작년까지는 암 환자 진료를, 올해는 관련 분야의 임상연구 업무를 보고 있고 해당 내용은 후반부에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일주일 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심적, 육체적 체력을 키우기 위한 생활들입니다. 대표적으로는 운동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암 환자분들을 계속 뵙다 보면 심신이 지치는 순간이 간헐적으로 도래할 때도 있고, 무엇보다도 그분들에게 의료진으로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드리려면 먼저 제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조금씩 누적되어 가는 심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긍정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은 운동이 가장 가성비가 좋다고 생각하여 최근에는 운동량을 늘리고 습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외로는 제 개인적인 성격 탓도 있겠지만 사람에게서 받는 감정적 자극에 예민한 편이라 혼자서 생각 정리나 하루를 되돌아보려는 시간도 의도적으로 가지려고 합니다. 명상할 때도 있고, 일기를 쓸 때도 있고, 그냥 낙서할 때도 있고... 취미를 쉽게 질려하는 성격이라 다양한 방법을 항상 찾고 있습니다. 이때 적어나갔던 글들이 좋은 기회를 통해 잘 엮여 이번에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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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김은혜 교수님께서 계신 강동경희대한방병원 한방내과는 지금 총 몇 명으로 구성되어 있나요?


한방내과는 윤성우 교수님, 저 (구 전임의, 현 연구 펠로우), 레지던트 2명 (2년 차, 3년 차), 인턴 1명, 그리고 연구를 도와주시는 연구간호사 선생님 2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과의 규모가 아주 큰 편은 아니고 교수님이 한 분이시다 보니 윤성우 교수님께서는 암 환자분들의 진료를 전적으로 담당하시면서 그 외 연구 업무 총괄, 배분, 교수님들 간의 컨택 등의 역할을 담당하고 계십니다.


전임의의 역할은 교수님과 함께 암 진료를 보면서 연구 실무와 세부 내용들을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며, 연구 펠로우의 경우 임상연구를 위한 실무적 진행을 위해 임상연구 설계, 연구계획서 등 관련 서류 작성, 회계 업무 등을 담당하게 됩니다.


사실 병원 내에서 암 환자분들을 제일 가까운 곳에서 가장 자주 마주하는 존재는 레지던트와 인턴입니다. 저희 과는 현재 2년 차와 3년 차가 있어서 2년 차가 입원 환자를, 3년 차가 외래 환자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과 내에서는 입원 환자를 담당하는 연차를 제일 힘든 시기라고 말하곤 합니다. 주치의로서 응급 상황을 해결하고, 의대 교수님들의 오더 (order)를 받고 수행하며, 담당 암 환자의 주소증, 증상, 혈액 검사, 영상 검사 등 모든 검사 결과와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연차입니다. 동료들이 당직을 번갈아서 서주긴 하나 사실상 24시간 대기조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외래를 담당하는 연차도 역할은 유사하나 외래를 담당하고 있기에 교수님께서 진료를 보고 계시는 동안의 주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레지던트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24시간이라는 시간 내에 환자의 모든 변화를 파악하기는 힘들고 또한 유사시 수행되는 액팅 (acting)들을 모두 직접 수행하기는 불가능하기에, 이를 도와주는 역할을 인턴이 하게 됩니다. 인턴은 환자의 당일 변화를 묻는 라운딩, 침 뜸 등의 한의 치료를 수행, 유사시 혈액 검사 채혈, 암 환자 카테터 관리 등을 담당하게 됩니다. 레지던트의 손발이 되어서 보조해 주는 제일 고맙고 고생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Q2. 인턴을 포함하여 2017년부터 총 6년째 한방내과에서 근무 중이신데 의국 분위기는 어떠셨나요?


저희 의국이 타 의국과 다른 점은 레지던트가 3년에 2명씩 배정되는 소규모 의국이라는 점, 담당 교수님이 한 분이라는 점, 90% 이상이 암 환자라는 점이 특징적일 것 같습니다. 특히나 한방병원에 내원하시는 암 환자분들은 항암 치료 등의 표준 암 치료의 부작용이 심각하신 상황이거나, 더 이상 할 수 있는 치료가 없거나, 말기 암 선고를 받고 온 등의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환자군의 특성상 레지던트, 특히 주치의 역할을 맡은 사람의 노고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가장 특이한 점입니다.


이런 현장에서 또 소규모 의국이라는 점은 아래 연차가 유사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위 연차 1명뿐이라는 점, 반대로는 위 연차가 주치의 업무를 온전히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아래 연차 1명뿐이라는 점에서 서로 간에 애증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해주는 것 같습니다. (종일 붙어있다 보니 모든 순간에 사이가 좋을 수는 없어서 부득이하게 극단적으로 애증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보았습니다. ^^)


교수님 또한 이런 상황들을 잘 이해해 주시는 분이라 병원에서 발생하는 각종 일들을 융통성 있게 넘어가 주시는 편입니다. 이런 점이 저희 과에 소속되어 있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감사하게 생각되곤 합니다.


Q3. 인턴과 레지던트 전임의에 이르시기까지 가장 힘든 해가 있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보통 저희 과 사람들은 레지던트 1년 차가 가장 힘들다고 말합니다. 난생처음으로 한의사로서 암 환자의 주치의를 담당하는 것이, 하루하루 겪는 모든 일들이 태어나서 처음 겪어 보는 일들이지만, 결국은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잔인한 현실 그리고 방법을 바로 생각해 내지 못하는 본인의 무지함이 끊임없이 싸워대는 나날의 연속이기에 굉장히 심적으로 힘든 시기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긴 하나, 그럼에도 저는 인턴 때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인턴 당시에만 해도 당장 내년에 어떤 환자를 담당할지, 어떤 업무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매달 바뀌는 환자군과 적응해야만 하는 각 과 분위기로 인해 받았던 스트레스가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번외로 질문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기간이지만 저는 인턴 때보다 학창 시절을 더 힘들게 보냈습니다. 학문의 특성상 배울 때는 보통 무작정 달달 외우고 시험지에 쏟아낸 후 까먹는 생활이 반복됩니다. 안 그래도 학문 자체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들이 많은 의학인데 임상에 적용해 볼 수 있는 기회까지 적으니 당시 제가 하는 행위에 대한 의구심이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때 한 교수님께서 “일단 외우고 기억해놨다가 나중에 적용해라”라고 얘기하셔서 그 말씀 하나 믿고 지금까지 왔더니 이제야 맞는 말씀이긴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학생들은 이론을 배우는 동안 임상 현장의 이야기들을 접할 기회가 좀 더 많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Q4. 암 분야를 전공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책을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암을 전공으로 정하는 데에는 부친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부친이 암 전공을 하시던 의사라서 라기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당신의 의료 현장을 따라다니면서 보니 암 환자분들이 표준 암 치료뿐만 아니라 그것을 보조 또는 대체할 수 있는 의학 치료를 많이 찾는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느끼게 되면서 생각해왔던 것 같습니다.


수술,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 등 표준 암 치료의 기술이 괄목할 만하게 발전되고 있지만 조금만 눈을 넓혀 보면 분명 그 치료들이 미처 관리해 주지 못하는 증상이 있거나 그 치료 기술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암 환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막연했던 꿈을 가지고 한의대에 진학하고 인턴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고, 레지던트와 전임의를 거친 지금에서도 그 수요에 대해서는 같은 생각입니다.


Q5. 임상 연구자로서 현재 진행 중이신 연구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현재 진행 중인 연구는 총 3가지입니다. 1) 유방암 환자의 방사선 치료로 유발된 피부염에서 자운고와 비스테로이드성 보습제의 예방적 효과 비교 무작위 대조군 연구, 2) 3-4기 췌장암 환자에서 건칠 위주의 한의 치료와 FOLFIIRINOX (폴피리녹스) 또는 Gemcitabine (젬시타빈) 기반의 1차 항암 치료의 병행에 대한 안전성 및 유효성 관찰 연구, 3) 폐암, 유방암, 위암, 대장암 환자 대상 한의 의료기관에 내원한 암 환자의 특성 및 한의 암 치료의 안전성 및 유효성 관찰 연구 (한의암등록시스템 DB 구축 연구)


연구 기간은 2026년까지이며 연구비는 보건산업진흥원으로부터 매년 5억씩 지원받고 있습니다. 윤성우 교수님께서 한의 암 치료 분야에서 워낙 저명하신 분이라 이런 대규모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것이지만, 각 연구의 특성에서 유방암 방사선 피부염과 3-4기 췌장암은 현재 표준 치료가 없거나 여전히 난치성 질환이기 때문에 한의 암 치료의 역할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이 본 연구의 핵심입니다. 또한 현대의학의 경우 국가에서 주도하는 암 자료 데이터베이스가 잘 정리되어 있어 건강보험 자료나 범국가적 데이터를 활용하여 진행하는 연구가 용이지만, 한의 암 치료에 대한 DB는 아직 없다는 점이 3번째 연구의 핵심 의의입니다.


Q6. 임상연구를 진행하시면서 어떤 부분이 보람 있으신가요? 또한 어려운 점이 있으시다면?


임상연구는 진행하는 중에도 한의 암 치료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해나간다는 사명으로 보람 있게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연구 결과를 분석하면서 유의미한 긍정적 통계 결과가 나오기까지 할 때는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논문을 작성하곤 합니다.


다만, 현 의료 상황이 어쩔 수 없이 현대의학의 시각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고려하였을 때 보통 현대의학은 실험연구, 동물연구, 소규모 사람 연구, 대규모 사람 연구 등의 순서를 거쳐서 약으로 시판되는 반면, 한의학은 이미 현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한의 치료를 일부 반대되는 과정으로 유효성과 안전성을 증명해 내 가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여러 기관의 승인과 심사 통과를 받는 것이 어려운 현실입니다.


Q7. 앞으로 관심 있는 연구 주제가 있으시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현재 크게 2가지의 주제에 관심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빅데이터 연구로 다른 학문에서도 이미 활발히 사용하고 있는 연구 방법입니다. 현재 한의 암 치료는 선행 자료의 부족으로 빅데이터 연구를 할 수 있는 기반조차 세워져 있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 토대를 현재 진행 중인 연구들로 쌓아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에 추후 저희 연구뿐만 아니라 다기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들이 보고된 후에는 한의 암 치료의 안전성, 유효성 그리고 표준 암 치료와의 시너지 효과, 상호작용 등에 대한 빅데이터 연구를 수행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로는 한의 암 치료의 홍보에 대한 연구입니다. 현재 한의 치료는 현실적으로 각 기관의 수요와 기량에 맞게 개별적으로 홍보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의학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을 살펴보면 국민에게 더욱 쉽게 다가가는 방법, 범국민적 홍보 루트 등을 아주 체계적으로 설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 주제로 연구를 지원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에 저는 한의 암 치료의 홍보를 위한 체계적인 방안과 기대 효과 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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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전임의로 바쁘신 와중에 신간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를 내셨습니다. 저도 책을 읽으면서 눈이 퉁퉁 부어가며 빠져들어 읽었는데요. 많이 바쁘실 텐데 어떻게 시간을 내셔서 책을 쓰셨나요?


앞서 말씀드린 듯이 시작은 저의 감정적 해소를 위한 글들이었습니다. 암 환자를 보는 한의사로서 그 가치와 사회에서의 필요성을 스스로 잊지 않고자 하는 명상이기도 했고, 그런 저 자신의 의의를 간접적으로 알려주셨던 환자들과의 대화를 적은 짧은 일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그렇게 위로를 건네주셨던 환자분들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음을 깨닫고는 마음을 다잡고 써 내려갔던 글이 좋은 기회를 통해 책으로 출간되게 되었습니다.


출간 전에는 여러 방면에서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좋은 출판사와 인연들을 만나 글의 가치를 알아봐 주시고 홍보해 주셔서 감사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추후 인세의 일부는 암 관련 기관 또는 단체에 기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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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환자분이 치료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포기해달라고 하셨을 때 처음 마주했을 교수님의 마음과 현재 그런 환자분들에게 어떤 생각과 태도로 임하시는지, 환자분들에게는 어떤 말로 치료를 이끌어 가시는지 궁금합니다.


“차라리 포기해달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당연히 심장이 철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정말로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이런 부탁을 직접 듣는 경험이 몇 번이나 될까요. 드문 상황의 첫 경험에 받는 충격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이후로 문장은 다르지만 다가오는 충격은 비슷한, 예를 들면 “어차피 한 달 뒤에 죽을 몸인데 지금 보내주면 안 되냐?” 등의 말들을 계속 들으면서 의료진인 제가 감정에 휩쓸려서 환자에게 큰 실수할 뻔한 일들이 몇 번 생겼습니다. 그 후로부터는 감정적으로 전이되기보다 환자분들이 저런 극단적인 표현을 함으로써 저에게 간절히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현재 신체적 증상 중 어떤 것이 저런 말까지 내뱉게 만들고 있는 건지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Q3. 환자분이 어떨 때 가장 보람 있으신지 또 언제 제일 힘드신지 궁금합니다.


사실 힘든 거로 치면 암 환자분들을 뵐 때마다 힘이 듭니다. 한의 의료기관에 오시는 암 환자분들이 대부분은 기대 여명에 대한 소견을 듣고 오신 분들이기 때문에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주고받다 보면, 혹은 환자는 모르게 놔두고 싶다며 보호자들과만 조용히 마지막을 준비하다 보면 매번 힘이 듭니다. 그럼에도 환자나 보호자들께서 막막한 중에 좋은 길잡이를 해줘서 고맙다고 표현해 주실 때가 가장 보람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어떤 특정 상황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기보다는 암 환자와 그 보호자들이 제 존재의 필요성을 인정해 주실 때 다시 일할 힘을 얻곤 합니다.


Q4. 지금까지 환자분들을 치료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가 궁금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책 속에도 서술한, 병원에서 막내 따님 생일파티를 보내고 돌아가신 직장암 환자분입니다. 나이도 젊고, 자제분들도 어리고, 성격은 매우 부드러우시고, 그분이 걸으실 때부터 누워만 계실 때까지 제가 계속 모시던 분이기도 하여 다양한 면에서 제 가슴을 울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암 환자에게 ‘치료’라는 개념이 암세포가 모두 사라진 완전 관해 또는 완치적 개념만 적용되면 참 감사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보통의 논문들만 봐도 기존 10개월의 기대여명을 12개월로 유의미하게 증가시키면 그 논문은 엄청난 환영을 받습니다. 하지만 환자 혹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치료를 시작하고 앞으로 1년을 살 수 있다는 점이 그렇게 ‘환영’을 받을 만한 연구 결과인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실에 암 환자에게 ‘치료’란 그 평가 기준이 생존 기간이 될 수도 있으며, 여생의 삶의 질이 될 수도 있으며, 존엄한 죽음 또는 고통 없는 죽음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소 감정적으로 혹은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실제 해당 질환의 학문 자체가 그러한 관점으로 치료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 환자는 비록 생존 기간에 대한 면은 누군가가 봤을 때 안타까운 사례일 수 있지만 그 가족들은 잘 정돈된 분위기에서 안정된 임종을 맞이하신 분들이라 유독 더 기억에 남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분 외에도 기적적으로 6개월 만에 전신의 암이 다 사라지신 분, 시골에서 요양하시다가 몇 년 만에 완치 소견서를 들고 찾아오셨던 분들도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물론 모든 환자분을 저에게 좋은 가르침을 주신 감사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Q5. 암 환자 치료 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한의사로서 가장 중요하게 해야 할 부분은 ‘환자의 현재 상황에 대한 예후를 미리 설명, 또는 의료진으로서 미리 정확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암이라는 질환의 치료 주도권은 현대의학이 가지고 있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궁극적으로 단독 한의 암 치료가, 표준 암 치료보다 생존 기간에 있어 더 유의한 결과를 나타낸다는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는 환자를 위해서라도 존중해야 하는 사실입니다.


이에 암 환자 또한 치료의 주된 주치의를 양방이라고 인식하는 상황에서 한의사가 결코 잃어서는 안 될 점은 신뢰성입니다. 이는 ‘라포 (rapport)’라고도 불리는 환자와의 유대 관계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무엇보다도 그 질환에 대해 이 한의사가 잘 알고 있고, 본인의 건강 상황이 어떤 단계에 와 있는지 잘 알고 있고, 당신과 나는 같은 맥락 속에서 한의 암 치료의 기대 효과와 치료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는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점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예후’에 대한 내용이며 특히 모든 암 환자분들이 기본적으로 한 번쯤은 본인 생의 끝을 떠올리고 온 분들이라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의학적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에 저는 진료할 때 현재 상황에 대한 예후, 증상에 대한 예후, 질병에 대한 예후 등을 최대한 설명하거나 충분히 인지하고 진료를 시작하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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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교수님의 꿈 또는 목표가 궁금합니다.


저 또한 아직 한의사로서 정확한 미래가 결정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꼭 한 가지 제가 목표로 둔 것은 한의사라는 면허를 이용해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분야와 학문을 막론하고 최대한 경험해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를 설정한 것 또한 지난 경험을 통해 느낀 바를 종합하여 도출한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국민들에게 한의 치료를, 다시 과거에서처럼, 쉽고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의학적 치료라는 인식을 드리고 싶은 마음을 기반으로 세운 목표입니다.


Q2. KMCRIC를 통해 이 글을 접하게 될 한의사와 예비 한의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힘든 상황에 각자의 자리에서 힘써주고 계시는 모든 한의사분께 응원의 말을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상호 간의 혐오를 익명성 뒤에 숨어서 숨김없이 표현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누구에게서든 한 번은 좌절의 말을 들은 경험이 있으실 거로 생각합니다. 다만 시야를 돌려보면 알 수 있듯이 이해관계로 인한 헐뜯음은 유구한 역사 중 모든 분야에서 팽배해오던 것이니 타인의 언행으로 인해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거나 신념이 흔들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예비 한의사분들 또한, 제가 그랬듯, 일부 선배의 언행으로 인해 실망감을 느낀 분들이 많으셨을 거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너머에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마음가짐으로 근거, 안전성, 표준화 등 현대사회와 세상이 한의학에 요구하고 있는 체계를 열심히 구축하고 있는 분들 또한 많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이제 막 발걸음을 떼고 있는 한의학이기에 새로운 인재들의 수요가 많다는 희망도 있습니다. 최소 6년, 길게는 10년 이상을 한의학에 투자하고 있는 학생들이 저와 같은 젊은 한의사들과 협력하여 다시 한의학의 부흥을 꿈꾸는 세계관을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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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경희대한방병원 한방내과 의국, 오른쪽에서 두 번째 김은혜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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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사연을 지닌 환자분들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환자분들의 암 투병 생활과 그들의 마음이 너무 잘 느껴져서 제 마음마저 절절해졌습니다. 암 센터에 계시면서 생생하게 현장을 느끼고 계실 작가님이자 교수님께 인터뷰 요청을 드리게 되었으며 흔쾌히 수락해 주셨습니다.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의학의 암 치료 연구 부분에 대해 알 수 있었으며 막중한 의료진분들의 업무를 소화하려면 많은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의사로서 지치지 않고 환자분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드릴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시는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바쁘신 중에 인터뷰에 응해주신 김은혜 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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