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승남
[뉴욕에서 바라본 한의학]

美 뉴욕 코넬의과대학 세포발생생물학과에서 Postdoc으로 있습니다.
한의사로써 현재의 최신 생명과학 연구방법들과 일선의 연구들을 알아가는 데에 있어 배우고 느끼는 점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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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미인은 날 때부터 정해져 있을까

 

우리의 얼굴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요?


인터넷 등에서 사람들이 장난 삼아 김태희나 원빈이 우리와 '다른 유전자'라는 표현을 흔히 쓰곤 하는데, 과학적 용어인 만큼 사실일까요? 관상영화에 대한 지난번 후생유전학적 관점을 다룬 글에 이어 이번엔 유전학과 관련된 얘기를 다뤄볼까 합니다. SCIENCE라는 과학저널에 최근 '얼굴'의 형성에 대한 발생학적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그 전에 잠깐 다들 알고 있겠지만 유전자 발현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유전자(GENE)란, 생명의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다들 알다시피 유전자는 DNA에 의해 기록되어 생명체가 유지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후손세대에게 유전되는 주체가 됩니다. 그렇다면, 유전자는 한 번 기록되면 조건 없이 계속 발현현하게 될까요? 그렇게 된다면 생명체는 생존에 있어 매우 불리한 상황이 됩니다. 왜냐하면, 유전자가 발현되면 생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생명은 그 유전자를 버려야만 하고, 버렸던 유전자가 스스로 다시 생기지 않기 때문에, 만약 다시 그 유전자가 생명에 꼭 필요한 상황이 되었을 때 생명체는 그 유전자를 갖기 위해 또 수많은 시대를 흘려 보내야 하기 때문이죠. 뭐,.. 현대 같은 좋은 조건이 생명체에게 있다면 USB에 백업해 놓았다가 필요할 때만 불러들이면 편할 텐데요(농담).


따라서 유전자는 수많은 상황들에 대비한 어떤 ‘장치’를 역시 유전자 내에 발현하도록에 해 놓았습니다. 이른바 ‘조절인자’들이죠. 생명체는 각 유전자마다 조절인자들이 무수히 결합한 상태가 되어야만 유전자 발현의 “스위치”가 켜지고 유전자가 발현되게 됩니다. 일정 조건이 맞지 않는다면 그 유전자는 그저 수많은 DNA 서열들의 하나일 뿐, 단백질로 발현되어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지요.


이제 다시 연구결과로 돌아와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생명체는 성체가 되기 전인 ‘배아’시기에 두개골 및 얼굴이 형성되는 ‘발달’과정을 갖게 됩니다. 이 때, 우리의 몸에서는 활발한 유전자 발현이 일어납니다. 뭐, 쉽게 얘기하자면, 눈동자를 만들어라, 눈 꼬리는 이쯤 하면 됐으니 찢는걸 멈춰라, 코는 조금 더 옆에서 융기시켜라 등등. 이러한 발달유전자들은, 아까 다뤘던 ‘조절인자’ 들에 의해 조절이 일어나겠지요. 그 때, 얼굴이나 두개골의 형성에 관여할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조절자, 이른바 '인헨서(ENHANCER)'가 작동한다는 것이죠. 인헨서는 종류가 얼마나 되는지, 어디에서 기원하는지, 역할을 하긴 하는지 연구하기 어려우며, 특정 유전자마다 유전체학(GENOMICS) 연구를 통해 그 역할과 종류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4000개가 넘는 인헨서들을 대상으로 두고 관찰하는 추적을 통해, 200개 가량이 두개골과 얼굴의 형성에 관여하는 인헨서로 발견됐습니다. 또한 이 인헨서들을 변형시킨 동물을 만들어 그 유전자들이 각각 발달과정에 관여하는 정도나 시기, 유전조절 거리 등을 밝혔지요.


발생학 연구는 우리가 궁금해 하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주기도 하지만, 사실 ‘발생과정의 장애’를 갖고 있는 환자를 위해 연구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사실 이 연구도, 얼굴의 형성에 관여하는 요소들에 대한 궁금함을 해결하기 위한다기 보단, 유전문제로 두개얼굴형성 장애를 앓고 있는 태아환자들을 위한 연구이지요. 이 연구가 발달장애 환자들의 유전조절치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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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시 그걸 떠나서도, 생리학적인 측면에서 매우 재미있는 연구결과입니다. 이렇게 유전학 연구와 후생유전학 연구는 생명의 기원과 활동 등 생리학적 현상들을 서로 굉장히 다른 측면으로 밝혀주는 훌륭한 연구분야들 입니다. 섣불리 요약을 하면 안 되지만, 저번 글과 이번 글을 연관시켜 생각해 보면,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은 후생적으로 관상이 변한 것도 영향을 주고(후생유전학), 그 이전에 그렇게 생기게 되는 유전자를 타고났다고 볼 수 있겠지요.


힘들지만 결론으로 가 볼 까요. 원빈씨나 김태희씨.

중요한 건, 그들이 갖고 있는 유전자는 ‘잘 생기고 예뻐 보이게 하는’ 유전자가 아니라 ‘그 위치에 얼굴의 요소들이 위치하게 하는’ 유전자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걸 잘 생기고 예쁘게 보는 건 결국 사회적인 합의니까요. 이젠 ‘우월한 유전자’와 같은 표현은 쓰지 맙시다! 굳이 얼굴이 부러워서 쓰고 싶다면, 그들은 ‘그걸 그 위치에 있게 만드는 유전자와 인헨서들’을 타고 난 것으로 할까요.




Reference

Attanasio C, Nord AS, Zhu Y, Blow MJ, Li Z, Liberton DK, Morrison H, Plajzer-Frick I, Holt A, Hosseini R, Phouanenavong S, Akiyama JA, Shoukry M, Afzal V, Rubin EM, FitzPatrick DR, Ren B, Hallgrímsson B, Pennacchio LA, Visel A. Fine tuning of craniofacial morphology by distant-acting enhancers. Science. 2013 Oct 25;342(6157):1241006.



© 한의사 김승남의 뉴욕에서 바라본 한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