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승남
[뉴욕에서 바라본 한의학]

美 뉴욕 코넬의과대학 세포발생생물학과에서 Postdoc으로 있습니다.
한의사로써 현재의 최신 생명과학 연구방법들과 일선의 연구들을 알아가는 데에 있어 배우고 느끼는 점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한의사 김승남 프로필

#7. 멘델의 추상화 속 한의학 방법론

 

“한의학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후략)”
“한의학적 개념은 동아시아의 어마어마한 치료 케이스를 갖고 계승/발전한……(후략)”


한의학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의학이 갖고 있는 위대함 중에 제일은 오랜 시간 치료를 거듭해오며 통계적으로 입증된 치료학문이라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기, 혈, 경락, 경혈, 기미, 변증 같은 것들이 단순히 누군가의 머리에서 튀어나왔다기보다는, 수 천 년의 시간 동안 사람을 치료하고 자연현상을 “관찰”하며 통계적으로 누적된 인류의 산물이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저는 이런 한의학적 개념들이 오롯이 동양철학에 비추어 만들어진 “허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의학에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오늘은 생명과학 분야의 “추상적 증명”에 관한 재미있는 생각을 써보려 합니다.


제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는, 생명현상에 관련된 유전자와 그 역할을 찾는 것입니다. 유전에 있어서 먼 아버지라 불리는 과학자는,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의 한 수도승이었던 멘델입니다. 다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듣고 배워 왔듯이, 멘델의 유전법칙은 비단 가족 유전병과 같은 유전의 법칙을 발견했을 뿐 아니라, 생명 유전현상의 모델링을 이뤄 훗날 생명현상의 근원이 되는 DNA, RNA 같은 유전인자를 발견하는 데에도 영향을 끼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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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 사실의 약간은 다른 시각입니다.
멘델의 논문을 읽어보면(굳이 읽어보진 않더라도 알 수 있지만), 기술된 표현 중에 우리가 너무 쉽게 접해 놓치기 쉬운 중요한, 대단한 어떤 “행동”이 있습니다.


"929개 중 705개는 첫 번째 모양, 224개는 두 번째 모양이었다"


‘이게 뭐라는 거지?’ 라는 느낌이 드시지요?


멘델의 실험에서 종자인 콩나무들은 형질이 섞여서 수확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멘델은 수확된 콩을 세어 보니 특정한 모양이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7개의 형태(씨의 원형, 씨의 비정형, 꽃의 색 등)를 각각 독립시켜 교배하여, 그는 각 모양의 비율을 2.95:1, 2.82:1, 3.14:1, 2.84:1로 얻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정답을 아니 눈에 보이지만, 멘델은 저 결과를 얻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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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현상에서는 순수한 대립표현형의 교차 이외에 그 당시에 알려지지 않았던 GENETIC RECOMBINATION이 일어납니다. 즉, 유전변이가 일어나 우리가 생각하는 순수 비율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런 게 섞여 발견되었으니 멘델 입장에서는 실험이 잘못 이뤄진 건 아닌지, 반 년이 넘는 한 세대의 재배에 본인이 모르는 요소가 들어가는 건 아닌지 혼란스러웠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멘델이 한 일은 큰 비율의 애들의 총 수를 '그냥 모두 합쳐서 더하고' 작은 비율의 애들의 총 수를 '그냥 모두 합하고 더해서' 다시 나눴습니다. 큰 비율의 애들과 작은 비율의 애들의 총 비율인 2.98:1의 결론을 얻어내었지요. 그리고 논문에 적습니다.


적게 나오는 (열성이라 표현한) 것이 많게 나오는 (우성이라 표현한) 것에 비해 2.98:1의 비율, 즉 3:1의 비율로 적게 나왔다."


정답으로 가 보자면, 멘델이 이 연구에서 이뤄낸 대단한 일은 '더하고 나눠서 3:1을 얻었다'는 것이 아니라 "많게 나오는 것들과 적게 나오는 것들은 각각 일련의 같은 그룹이다" 라고 생각한 멘델의 '추상'이었습니다. 물론, 이후의 실험들(후속세대 교배실험)에서 이러한 멘델의 생각은 숫자로써 유사하게 계속 증명되었고, 독립유전, 종속유전, 우성열성 등의 유전법칙들이 찾아졌습니다. 순수하게 통계적 결과를 보고, 멘델은 '많이 나오는' 것, '적게 나오는' 것 이라는 개념을 찾아내었고, '유전'이라는 과학의 위대한 한 걸음을 내딛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와 한의학은 수 천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데이터베이스입니다. 한의학은 시작부터 서양과학과는 다르게 귀납적인 모델링을 통해 학문을 계승/발전시켜왔습니다. 서양과학의 장점인 과학적 시각 속에 살짝 가미된 추상화가 갖는 힘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이 어마어마한 한의학 모델 데이터베이스 속에서 굉장한 생명현상의 법칙들을 과학적으로 보여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그 법칙들을 ‘보여 줄’ 과학적 방법론을 찾을 차례입니다.


멘델의 법칙이 힘이 있는 이유는, 그 법칙이 눈으로 보여지고 이해되는 ‘수학적 통계’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법칙이 이전에도 있어 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지요. 한의학의 모델들, 과학적으로 어떻게 보여지고 법칙으로 증명될 수 있을까요?



© 한의사 김승남의 뉴욕에서 바라본 한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