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이승민
[워킹맘 한의사 앤 더 시티]

안녕하세요? 저는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침구과 전문의로서 활동하면서 침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2019년 미국 뉴욕으로 왔습니다. 이 글을 통해 한의사로서, 강사 및 연구자로서, 또 두 아이의 엄마로서 해외에서 살아가는 일상과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의사 이승민 프로필

워라밸? 워라하? 워라퓨 (Work-Life Fusion)!

 

이른바 ‘삶의 질 (Quality of life)’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고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도 변화하면서 점차 많은 사람이 일과 삶의 균형, 즉 ‘워라밸 (Work-life balance)’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무조건 연봉이 높은 회사 대신 여가를 좀 더 즐길 수 있다거나 가정에 조금 더 충실할 수 있는 직장을 선택하는 사례를 더욱 자주 찾아볼 수 있고, 그러한 선택에 대해 더욱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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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중개자인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 (Jeff Bezo)는 ‘워라밸’을 넘어 ‘워라하 (Work-life harmony)’의 개념을 주장했다고 합니다. ‘워라밸’이라고 하는 것은 일과 삶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존재이며, 하나가 올라가면 다른 하나는 내려가야 하는 반비례 관계를 전제하는 것이므로 오히려 일과 개인의 삶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자는 아이디어인 셈입니다.


저도 뉴욕에서 한의원 진료 및 강의 일정을 소화하며 어떻게 타지에서 워킹맘으로서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워라밸’ 혹은 ‘워라하’를 잘 유지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이었습니다.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지쳐서 육아는 뒷전이고, 일이 없는 날에 육아를 하고 나면 밤에 이메일 하나 보내 놓고 쓰러져 자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남편이 대학원생이라 최대한 수업 일정을 제 근무 일정과 겹치지 않도록 짜서 번갈아 가며 아이를 돌보았지만, 일과 삶이 조화를 이루는 일상은 꿈에도 꿀 수 없겠더군요. 둘 다 지쳐가던 중에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안이 제가 집에 있는 날만이라도 아기를 봐줄 수 있는 내니 (아이 돌보미)를 구해서 일도 하고 휴식도 취하면서 육아도 나름 거들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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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blog.urbansitter.com/2020-babysitting-rates-childcare-costs-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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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기가 커 갈수록 신경 쓸 일은 더욱 많아지고, 한의원이라는 것도 운영 특성상 퇴근하고 신경을 아예 꺼버릴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일과 삶을 분리하여 조화를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고민만 하다가 주변에 보니 저보다 몇십 년 전 미국에 와서 이런 워킹맘의 삶을 살았던 분도 계시고, 사업을 크게 운영하면서도 육아와 그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한의사분들도 여럿 있더군요. 그분들은 어떻게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면서 제일 먼저 찾아뵈었던 분이 바로 한의사 이영빈 원장님이었습니다. 원장님은 뉴욕 및 뉴저지에서 활발하게 한의원 클리닉을 운영하시는 대표적인 워킹맘 한의사입니다. 항상 따뜻한 목소리와 미소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으신 원장님은 제 고민을 들어주며, 본인의 인생 얘기도 잠깐 해주셨는데 역시나 원장님도 진료와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 많았고, 그때마다 현명하게 대처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고 합니다. 그 상황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커리어를 희생하면서 딸을 돌보았다거나 딸의 희생을 강요하며 커리어를 유지한 것이 아니고 커리어와 딸의 학업을 융화시킬 수 있는 방향을 어떻게든 찾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일과 자녀의 교육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할까요? 그러한 영향 때문인지 현재 이영빈 원장님의 딸도 어머니를 따라 환자를 돌보는 의학도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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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제가 부원장으로 일했었던 미국 한의원의 대표 원장도 저보다 두 살 어린 씩씩한 워킹맘입니다. 한의대를 졸업하고 1인 진료실에서 진료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부원장만 5명, 총 직원 12명을 둔 한의원을 두 군데 운영하고 있는 친구입니다. 친해지고 나서 인생 얘기를 들어보니, 출산하고 나서 1주일 만에 다시 한의원에 일하러 나올 정도로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더군요. 그 대신 육아도 제대로 하고 싶기에, 젊은 친구답게 최신 기기와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한의원에서도 집 안을 핸드폰으로 수시로 들여다보며 관리를 하고, 집에서도 밤낮 구분하지 않고 한의원 운영을 매끄럽게 하면서 본인 한의원이 집인지, 집이 한의원인지 일할 때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잘 융화를 시켜 놓았습니다. 예를 들면, 구글 리뷰 관리, 고객 이메일 답장은 집에서 아기를 보면서도 할 수 있도록 기기 간 연동을 해두고, ‘알렉사’와 같은 음성 인공지능 비서는 한의원 방마다 설치하여 어떤 방에서도 간단한 집안 업무를 가능하게 해 놓았습니다. 즉,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더군요.


결론적으로 워킹맘 한의사로서 일해보고 또 다른 워킹맘들을 만나서 느낀 것은 한의사라는 직업은 퇴근하고 일과 관련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으므로 ‘워라밸’, 혹은 ‘워라하’를 선택적으로 추구한다기보다는 일과 가정의 두 요소가 서로 융화되어 최고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일과 생활의 융화’에 더욱 집중한 ‘워라퓨 (Work Life Fusion)’라고 나 할까요? 성공적인 ‘워라퓨’를 위하여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는 모든 워킹맘을 응원합니다.



© 한의사 이승민의 워킹맘 한의사 앤 더 시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