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이승민
[워킹맘 한의사 앤 더 시티]

안녕하세요? 저는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침구과 전문의로서 활동하면서 침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2019년 미국 뉴욕으로 왔습니다. 이 글을 통해 한의사로서, 강사 및 연구자로서, 또 두 아이의 엄마로서 해외에서 살아가는 일상과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의사 이승민 프로필

외국인들의 한의약에 대한 인식은 바뀔 수 있을까?

 

한국에 있을 때 잠시 대학병원 국제진료센터에서 외국인 환자들을 진료한 적이 있습니다. 유럽, 미주, 중동 등 다양한 지역에서 온 환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한의약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전혀 없거나 잘못된 선입견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이러한 고정관념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자연스레 외국인들이 한의약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이 어떤지, 어떻게 이를 바꿔가면서 한의약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고, 때마침 병원에서 진료 및 연구를 병행하고 있었을 때라 이러한 문제의식은 질적 연구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각 나라에서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을 위한 국제 사교 단체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인터네이션즈 (Internations)’의 서울 지부장을 맡고 있어, 한 달에 한 번씩 서울 거주 외국인들의 친목 도모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여 네트워킹을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이 모임이야말로 외국인 인터뷰 대상자를 모집하기에 수월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미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온 피험자들을 대상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한의약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문의를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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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외국인의 경우 한의약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으나 진료받은 경험이 없었고, 침이나 뜸 등 한의약적 치료 방법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기도 했습니다. 한의약 진료 경험이 있는 외국인의 경우 진료 효과가 단기간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만족을 표시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또한 이들이 가지고 있는 한의약에 대한 인식은 어렸을 때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고, 성인이 되고 나서 새로운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아짐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 한 번 형성된 인식은 바뀌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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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인터뷰를 통해 발견한 정보를 토대로, 외국인들의 한국 한의약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활용도를 높일 방법을 고민해 보았고, 제 나름대로 크게 ‘3A’라고 명명했습니다. 즉, Awareness (인지도), Accessibility (접근성), Accreditation (인증 수준)을 높이는 것입니다.


첫째, ‘Awareness’는 단순히 ‘Korean Medicine’이라는 이름을 알리는 것에서 나아가 실제 한의약의 현대적 활용 가치와 치료 효과에 대한 근거 기반 전달, 그리고 한의약 산업의 국제무대 진출을 통한 인지도 상승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둘째, ‘Accessibility’는 한의약적 치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인데,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효과적으로 보입니다. 인터뷰하면서 알게 된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외국인들은 물리적 접근성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한국은 한의원이 동네마다 한 개씩은 있을 정도로 한의약 치료에 대한 물리적 접근성이 매우 좋은 나라 중 하나지만, 이렇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많다고 해서 외국인들이 한의약을 자연히 활용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고,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경제적 접근성이었습니다. 다수의 답변에 따르면, 한의약적 치료가 보험 처리가 되어 금전적으로 덜 부담스러운 경우에는 한 번이라도 활용해 볼 의향이 있었고 본인이 가입한 보험 상품에서 한의약이 적용이 안 된다면 활용해 보고 싶어도 결국 안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셋째, ‘Accreditation’은 한의사들의 교육 제도 및 인증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입니다. 한국 한의사들이 어떤 교육 과정을 거쳐서 한의사가 되며, 그 교육 과정이 얼마나 신뢰할 만한 인증 제도 및 철저한 관리하에 진행되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므로, 본인 몸을 믿고 맡기기가 어렵다는 답변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의사의 경우 대부분의 나라에서 우수한 자원들이 입학하고 일정 수준의 교육 및 실습 과정과 시험을 통해 배출되는 전문인이라는 인식이 존재하므로 한국에서 진료를 받는데도 두려움이 적었지만, 한국 한의약 교육제도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는 게 많지 않아서 한의 치료를 받고 싶어도 선뜻 나서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자주 언급되었던 것 중 하나는 침의 안전성에 대한 것이었는데, 일회용 멸균침을 사용한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가장 많았고, 침을 주삿바늘처럼 두꺼운 바늘로 인식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몸의 여러 군데에 찌르기 때문에 통증이 극심할 것이라는 잘못된 선입견을 품고 있거나, 간혹 미디어에서 침 치료 관련 부작용 사례들을 보아 치료 경험이 없음에도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는 답변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한국에서 외국 환자들의 한의약 인식에 대해 고민해 본 경험이 제가 뉴욕에서 진료를 시작할 때 홈페이지 구성, 한의원 안내 문구, 진료실 디자인까지 세부 사항을 결정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환자들이 오면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한의약이 어떻게 추가로 도와줄 수 있는지 근거 자료 및 최신 연구 결과들을 기반으로 상세하게 안내해 주었고, 미국 보험 시스템을 익히자마자 보험 적용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였으며, 특히 홈페이지에는 제가 한국에서 받았던 한의약 및 석박사 교육 과정, 그리고 관련 학위 및 상장들을 꼭 눈에 잘 보이게 정리해 두었습니다. 침을 처음 맞는다는 환자에게는 일부러 일회용 멸균팩 안에 들어있는 침을 보여주고 그 자리에서 뜯으며 자입 시 어떤 느낌인지 설명을 해 줬는데, 그렇게 해주면 오히려 다들 생각했던 것만큼 아프지 않다며 좋아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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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많이 쓰는 병원 온라인 예약 플랫폼인 ‘Zocdoc’에는 환자들의 솔직한 평이 많이 올라옵니다. 그중에서도 위와 같이 치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많아서 좋았다거나 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줬다는 평이 달릴 때 제일 뿌듯합니다.


한번 각인된 인식이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환자들에게는 얘기를 많이 해주면 해줄수록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그만큼 말을 많이 해야 하므로 처음에는 힘들 수 있지만 ‘꾸준함’의 힘은 정말 강하더군요. 한의약에 대한 인식이 바뀐 환자분들이, 오히려 더욱 열정적인 홍보대사가 되어 줄 때면 그동안 힘들었던 것에 대한 몇 배 이상의 보답을 받는 느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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