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이승민
[워킹맘 한의사 앤 더 시티]

안녕하세요? 저는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침구과 전문의로서 활동하면서 침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2019년 미국 뉴욕으로 왔습니다. 이 글을 통해 한의사로서, 강사 및 연구자로서, 또 두 아이의 엄마로서 해외에서 살아가는 일상과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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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배운 한의학: 간주근(肝主筋)과 비주육(脾主肉)이 틀렸다?

 

약 1년 전이었을 까요. 매우 친한 미국 한의사 교포분께서 살짝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가 왔습니다.

“이 박사, 궁금한 게 있는데 한국에서는 간이 근육을 주관한다고 배워?”

제가 전화를 받자마자, 짧은 안부 인사 후에 다짜고짜 들어온 질문이었습니다.


한의대 생활 6년, 수련의 생활 4년, 대학원 생활 5년 동안 간주근(肝主筋)이라고 줄곧 배워왔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니라고 하더군요. 오히려 비가 근육을 주관하는 것이고, 간은 인대와 관련이 있는 장기라고. 저는 여유 있는 너털웃음과 함께 수많은 한국 한의학 교재들을 인용하며 간주근이 맞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럼 비가 주관하는 육(肉)과 간이 주관하는 근(筋)이 해부학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냐고 되물으셨고, 저는 또 당당하게 답했습니다.

“비주육의 육(肉)은 살 부위이고요. 간주근의 근(筋)은 힘을 쓰는 살 부위를 말하는 거예요.”


그러나 말하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두 부위를 기능적으로는 구분할 수 있어도 해부학적으로 구분하라고 하니 갑자기 헷갈렸습니다. 미국 한의과대학에서 흔히 한의학 교재로 많이 쓰는 “Foundations of Chinese Medicine: A Comprehensive Text”를 찾아보았고, 간에 대한 챕터에서 Liver controls the muscles (근육)이 아닌 Liver controls the sinews (인대)라고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제가 잘못 알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친한 미국 한의사분께서 저에게 전화하게 된 이유는 한국에서 한의대생 2명이 그분 한의원에 2주간 실습을 하러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잠깐 쉬는 시간에 한의학에 관해 토론을 했나 봅니다. 그러다가 오장육부의 생리학적 기능에 관해 얘기를 하게 되면서 간주근(肝主筋) 얘기를 하게 되었고, 서로 알고 있는 내용이 다르다 보니 확인하기 위해서 저한테까지 전화해서 물어본 거였습니다.


저도 확인하기 위해서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이상재 교수님께 여쭤봤고, 교수님께서는 궁금증을 SNS에 올려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많은 한의사분이 조금 더 명쾌하게 답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결론은, 제가 간단하게만 알고 있던 간주근(肝主筋)에서 언급하는 근(筋)의 개념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거였고, 미국 한의사들이 배우는 ‘Liver controls the sinews’가 틀린 것이 아니었다는 거였습니다.


혹시라도 해외에 나와서 해외 한의과대학을 졸업한 한의사분들과 얘기를 하다가 저처럼 당황하시는 분들이 계실까 봐 본 지면을 빌려서 당시에 공유되었던 소중한 답변을 여기에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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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간주근(肝主筋)에서 근을 막연히 근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근육이 아니고 오히려 인대에 가깝다고 하고 비주육(脾主肉)의 육이 근육이라고 합니다. 무엇이 맞는 걸까요?


소*진 A:

“肝主筋(간주근), 脾主肉(비주육)”과 같이 筋(근)과 肉(육)을 나란히 대비해서 쓸 때는 각각이 Tendon과 Muscle을 가리키는 것이 맞지만, 때에 따라서는 筋이 肉의 개념을 포괄하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陽谿(양계)와 通里(통리), 內關(내관) 혈의 위치를 설명할 때 兩筋間(양근간)에 있다고 설명한 것을 보면 이때의 筋은 분명히 Tendon을 가리킨다고 본 것이지만, 筋攣(근련)이나 筋急(근급)이라고 할 때의 筋은 Muscle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漢字(한자)에는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文(문)과 字(자)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원래는 日(일), 月(월)과 같은 것은 文이고, 明(명)과 같은 것은 字인데, 文으로 字를 가리키기도 하고, 字로 文을 가리키기도 하는 것이 이런 경우입니다.


<說文解字(설문해자)>에 따르면 “筋은 肉之力也(육지력야)라.” 즉 “筋은 肉의 무늬이다.”라고 하였으므로 許愼(허신)은 筋을 皮膚(피부) 위로 드러나는 Muscle과 Tendon의 무늬를 가리키는 말로 본 듯하고, “⺼(육)은 胾肉(자육)이다.” 즉 “⺼(육)은 큰 덩어리의 썰어놓은 고기이다.”라고 하였으니 동물의 살코기, Muscle을 가리키는 상형문자로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漢字는 쓰인 위치에 따라서 뜻이 다를 때가 많고, 시대별로도 뜻이 다른 경우도 많음으로 문맥에 따라 다르게 새길 수밖에 없습니다.


<黃帝內經(황제내경)>처럼 여러 시대 여러 사람에 의해서 작성된 글은 한 책 안에서도 앞뒤로 다른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孔子(공자)가 “必也正名乎(필야정명호)”라고 말씀하신 것을 흔히 아시는 것처럼 “반드시 명분을 바로잡을 것이다.”라고 새기지 않고 “반드시 글자를 바로잡을 것이다.”의 뜻으로 보기도 합니다.


蛇足(사족):

“力(력)”을 “무늬”라고 번역한 것에 의아함을 느끼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무늬를 “力”이라 하고, 나무의 나이테를 “朸(력)”이라 하고, 땅의 地脈(지맥)을 “阞(륵)”이라 하고, 물의 물결을 “泐(륵)”이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名(명)”에는 “이름”이라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글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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