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이승민
[워킹맘 한의사 앤 더 시티]

안녕하세요? 저는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침구과 전문의로서 활동하면서 침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2019년 미국 뉴욕으로 왔습니다. 이 글을 통해 한의사로서, 강사 및 연구자로서, 또 두 아이의 엄마로서 해외에서 살아가는 일상과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의사 이승민 프로필

한국을 떠난 한의사의 자아 찾기

 

해외로 자주 발령이 나셨던 아버지 덕분에 다양한 나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좋은 점도 당연히 많았지만, 외부 변화에 민감한 나이에 계속 전학을 다니다 보니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고 그 혼란이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특히 유럽과 미국에서 살 때는 이방인으로서의 차별을 경험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왜 이 친구들이 나를 이방인으로 취급하는지, 그들한테 인정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하루하루 많이 고민하며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이러한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오히려 처음 외국에 체류하게 된 부모 세대보다는 그 자녀들인 이민 1.5세대나 2세대가 더 많이 겪는 것을 보았습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해답의 일부를 언어에서 찾았습니다. 이민을 가서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와 사고방식까지 배우게 되는 중요한 첫 단계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 언어가 모국어를 대체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본인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더욱 강한 동질감을 느끼게 되지만, 반대로 동양인이라는 외모 때문에, 혹은 다른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상대방에게 이방인 취급을 받았을 때 정체성에 많은 혼란이 오는 것 같습니다.


해외에 활동하고 있는 한국 한의사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살 때는 따로 고민하지 않았던 한의사의 정체성이 해외에 살면서는 가끔 혼란스러울 때가 있었습니다. 분명히 해외에 있는 한의사와 같은 한의학이라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여러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가끔은 이방인 취급을 당하기도 하고 오히려 이들과 동화되지 못하고 거리감을 두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각 나라가 한의학 관련 의료 제도와 교육 시스템이 다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차이에서 비롯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뿌리가 같은 한의학을 공부했더라도 융화되지 못하고 싸우는 안타까운 상황이 생기는 거죠. 같은 한국인끼리도 한국에서 졸업한 한의사와 외국에서 졸업한 한의사 사이에 괴리감이 발생할 때가 있고, 한국에서는 의료인이지만 외국에서는 현대의학을 전공한 의사와 같은 의료인으로 여겨지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현실과의 괴리감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의료인 교육을 받고 대접을 받았다고 해서 해외에서도 의사와 뿌리를 같이 하기에는 차이가 있고, 같은 한의학 공부를 했지만, 한국에서 배우는 한의학의 과정과 해외에서 배우는 한의학의 과정이 다르다 보니 또 그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본 칼럼에서 다루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입니다. 한의사 사이에서도 의견 차이가 있고 누가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기에는 시기상조인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한의사로서 해외에 있는 외국 한의사분들과 일해 본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이 문제는 결국 누가 우리와 더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는지 생각해 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우리와 조금 더 비슷한 언어와 사고방식을 공유하고 있는 단체는 외국 의사보다는 한의사 단체가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외국에서는 한의사가 의료 제도권 내의 지위나, 의료인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한국에서만큼은 안 되더라도, 의료인이라는 위치를 떠나 한의학에 대한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것은 결국 한의사이니까요. 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지속적인 소통을 시작으로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인지하고, 해외에서도 한국에서만큼 한의사들이 의료 제도권 내에서 지위나 권한이 커질 수 있도록 합심하여 노력하는 것이 우선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한국 한의사들이 다양한 노력을 통해 국민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고 현재 한의사의 지위를 구축하였듯이,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해외에서의 한의학의 입지를 구축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면, 그 공로는 분명 해외에서 일하는 한의사들뿐 아니라 한국 한의약의 세계화에도 기여하여, 궁극적으로 한의학 전체의 발전을 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쨌든 이 모든 것은 끊임없는 소통과 협력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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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것처럼, 제가 어렸을 때 정체성 혼란이 잠깐 왔던 시절이 있어, 엄마 아빠 때문에 외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딸들도 혹시라도 정체성 혼란을 느끼게 될까 봐 걱정이 앞섰습니다. 한국인의 뿌리를 잊지 말라는 의미로 ‘코리안’의 ‘리안’이라고 이름을 지어야겠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까지도 잠깐 했었는데, 저와 같은 고민을 해 본 적 없는 남편은 이를 비웃으면서, 한국 사람이니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국 문화를 가르치고 한국 가족과 계속 왕래를 하며 뿌리를 잊지 않으면 된다며 너무 간단하게 해결해 버렸습니다. 결국, 아이들이 그 뿌리를 정확히 안다면,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내가 그들과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닌 것도 알고, 비슷한 뿌리를 가진 사람들을 찾아서 공감대를 형성하며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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