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전소연
[차이타이타이 대만일기]

대만의 국립성공대학에서 보건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결혼이민자로 대만으로 건너와 이곳에 정착하여 살게 된 저의 일상과 제 눈에 비추어지는 대만의 모습을 조금씩 소개해보겠습니다.

한의사 전소연 프로필

想見你, 보고 싶어, 보고 싶어

 

2019년 12월 말경, 시어머니로부터 처음 “우한 폐렴”이라는 단어를 들었습니다. 중국의 우한이라는 지역에 정체 모를 질병이 돌고 있다고, 조심해야 한다는 말씀이었죠. 그때만 해도 그 작은 바이러스 하나로 전 세계인들의 삶이 이렇게 변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건만. 다행히 대만은 비교적 방역을 잘하여 마스크 착용의 일상화 외에는 예전과 별다른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만의 코로나 방역에 관한 이야기는 앞으로 풀어나갈 다른 칼럼에서 한 번 더 집중해서 다뤄보도록 할게요.


코로나가 제 삶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아무래도 한국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결혼 후 그래도 가까운 대만에 있으니 1년에 여러 차례 한국을 다녀올 수 있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1년이 넘도록 발이 묶여있게 되었어요.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많이 보고 싶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대만에만 머물게 되며 제가 거주하고 있는 도시인 타이난을 비롯하여 대만 곳곳을 더 많이 알아가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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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월경에는 운전을 하며 지나가다가 이렇게 가게 밖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는 곳을 목격했습니다. 저는 혹시 새로운 맛집인가 싶어 일단 사진을 찍고 나중에 연구실에 가서 혹시 이 집을 아냐고 물어봤더니, 맛집이 아니라 유명한 드라마의 촬영지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아 그렇구나’ 하고 맛집이 아님에 실망하며 지나쳤던 이곳을 저는 곧 다시 방문하게 됩니다.


제가 알기로는 한국에서 대만 드라마(대드)의 인지도는 굉장히 낮고 미드보다도 훨씬 소수의 사람만 보는 편입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대드팬이 아닌 일반인들도 입소문을 타고 많이들 보게 된 화제의 드라마가 탄생하였으니 바로 상견니(想見你)라는 작품입니다. 저 역시 무성한 소문에 이끌려 드라마를 시청하게 되었고, 첫 화를 보자마자 바로 깨달았어요. “그때 그 집이 바로 이 드라마의 촬영 장소였구나!” 그리고 드라마를 모두 시청한 후에는 이 장소를 비롯하여 많은 촬영지가 타이난 시내 혹은 외곽에 있다는 것을 알고 기쁜 마음에 틈날 때 몇몇 장소를 탐방해보았습니다. 



龍泉冰店, 모쥔제네 빙수집


드라마 정주행을 마친 뒤 가장 처음으로 찾아갔던 곳은 서브 남자 주인공 모쥔제(莫俊傑)의 할머니가 운영하던 빙수집입니다. 촬영 장소였던 용천빙점(龍泉冰店)은 타이난시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타이난의 외곽지, 마또우(麻豆)라는 동네에 있어요. 대만 현지인들에게 마또우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와꿰이(碗粿)! 마또우는 와꿰이라고 불리는 고기가 들어간 쌀 푸딩을 먹으러 가는 동네랍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애매한 거리의 동네라서 늘 언제 한 번 가봐야지 생각만 하던 곳이었는데 상견니 덕분에 동기부여가 되어 드디어 찾아가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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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은 어느 하루, 고속도로를 달리고 달려 마또우로 갑니다. 마또우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마또우 동네 친구가 추천해주는 와꿰이 가게였지만, 12시쯤 도착하니 이미 오늘 준비된 음식은 모두 판매가 완료되었다고 정리 중이었어요. 그래서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바로 용천빙점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와꿰이 맛집은 사실 용천빙점 바로 옆 골목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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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돌아 나오면 바로 도착할 수 있는 용천빙점. 때마침 가게 앞에 정차돼 있는 스쿠터들과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창살과 건물의 모습에 대만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묻어납니다. 가게 안에는 모쥔제 역을 맡았던 배우 시백우(施柏宇)의 사인을 비롯하여 촬영 당시 사진들이 조금 걸려있습니다.


제가 주문한 빙수는 가장 클래식한 메뉴라고 할 수 있는 홍또우뇨우나이삥(紅豆牛奶冰)입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먹었던 것처럼 거기에 푸딩도 얹어 먹고 싶었지만 사실 메뉴에 푸딩 토핑 추가는 존재하지 않더라고요. 푸딩과 함께 먹고 싶으면 근처 편의점에서 직접 사 와서 먹어도 괜찮다고 주인아주머니께서 친절하게 말씀해주십니다. 미처 알지 못했기에 준비를 못 해간 저 날은 간단히 팥, 미숫가루, 연유가 올라간 빙수를 먹었습니다. 너무 달지 않고 딱 건강한 맛이 느껴지는 팥이 듬뿍 들어간 빙수를 먹으며 다음에는 꼭 푸딩을 사 들고 한 번 더 방문하겠다고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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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또우까지 와서 와꿰이를 한 입도 먹지 않고 돌아갈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원래 가려고 했던 집은 실패했지만, 관광객들이 많이 간다고 하는 크고 유명한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때마침 점심시간이어서인지,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한참을 기다려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 속 오른쪽 위에 보이는 두 개의 테두리가 연한 하늘색인 그릇 속 음식이 바로 마또우의 명물 와꿰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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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간단하게 고기가 들어간 쌀 푸딩이라고 묘사를 했는데, 사실 살코기뿐만 아니라 고기 비계나 새우살 등 다른 재료가 들어가기도 하고, 저대로 먹는 것이 아니라 보통 저 위에 달곰한 간장 베이스 소스와 마늘 양념 등을 함께 올려서 먹습니다. 와꿰이라는 이름 자체는 중국어가 아니고 대만어(민남어) 이름이기에 딱 맞는 한자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동네마다 비슷한 발음의 한자로 표기가 된다고 합니다. 제가 지내고 있는 대만 남부에서는 보통 碗粿라고 표기를 해요.


첫 칼럼은 가볍게 시작한다는 게 글을 적다 보니 길어졌습니다. 제가 맛집으로 착각했었던 골목 속 하늘색 건물 방문기는 다음 화에 이어서 소개해드릴게요.


* 글 속에 등장한 장소들

麻豆碗粿: https://goo.gl/maps/9ZG4mCrkkfAPurQN6

龍泉冰店: https://goo.gl/maps/36Yt1R1H9vizHDMw6

麻豆碗粿蘭: https://goo.gl/maps/y4B1hpg5o3vzYYmo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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