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전소연
[차이타이타이 대만일기]

대만의 국립성공대학에서 보건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결혼이민자로 대만으로 건너와 이곳에 정착하여 살게 된 저의 일상과 제 눈에 비추어지는 대만의 모습을 조금씩 소개해보겠습니다.

한의사 전소연 프로필

Someday or one day

 

저는 어딘가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 그곳의 일반적인 관광지 이외에도 꼭 들리기 좋아하는 장소들이 몇 군데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 지역에서 비교적 큰 대학교, 그중에서도 특히 그 학교의 도서관을 들러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알아보는 것이 바로 그 지역에서 촬영한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 장소들입니다. 또는 거꾸로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지가 있는 지역을 아예 여행의 목적지로 잡고 길을 나서기도 하지요. 그런 저에게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의 주요 촬영지가 이렇게 집 앞에 있어 “언젠가 가봐야지”라고 마음먹지 않아도, 오늘 당장 찾아갈 수 있다는 건 정말 반가운 사실이었어요.



小半樓(샤오반로우), 32레코드 점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한 도시 타이난에서 길을 가다 종종 보이는 긴 줄은 보통 맛집의 사인입니다. 그래서 처음, 이 건물 앞의 장사진을 보았을 때 역시 저는 당연히 무슨 맛있는 음식을 파는 곳인가 궁금해했었죠. 그때가 2020년 2월, 현지에서 상견니(想見你) 드라마 방영이 막 끝나던 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야 이 드라마에 빠지게 된 저는 드라마 방영이 끝난 지 수개월이 지난 후, 어느 주중에 시간을 내 이곳을 방문해보았습니다. 사실 이맘때면 이제 다녀갈 만한 사람들은 모두 다녀가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저희 부부 이외에도 한 쌍의 커플이 먼저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1시간가량 머무는 동안 밖에 와서 사진만 찍고 가는 팬들도 두 팀이나 더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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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의 주요 배경이었던 32레코드 점의 본래 모습. 샤오반로우 도자기 소품 가게


하늘색 건물의 정체는 알고 보니 이미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도자기 소품들을 판매한 지 7년 정도 된 작은 가게였습니다. 처음 가게에 들어갔을 때는 그냥 데면데면하던 주인아주머니는 제가 한국인이라는 걸 안 순간부터 엄청 반가워하시며 열정적으로 이것저것 설명해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샤오반로우라는 가게 이름은 건물 구조에서 착안한 명칭입니다. 얼핏 보면 1층 건물 같아 보이지만, 0.5층(半樓) 정도 높이로 다락 같은 공간이 있어 위로 올라가는 계단도 있어 1.5층으로 사용할 수 있거든요. 7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이 건물은 타이난시 문화부의 오래된 건물 되살리기 프로젝트 지원을 받아 지난 2014년, 예전의 오래된 약국에서 지금의 도자기 소품 가게로 탈바꿈하였다고 합니다. 드라마 촬영팀은 단지 2주 조금 넘는 기간만 가게를 대여하여 밤낮으로 촬영을 마치고 떠났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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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 당시 32레코드 점의 모습. 레코드판을 제외한 대부분의 소품은 현재 샤오반로우 가게에 그대로 남아 있다.


샤오반로우 가게는 원래 도자기 소품만 파는 공간이었는데, 팬들이 너무나 가게 안에 들어가 보고는 싶고, 하지만 마땅히 살 것이 없으니 선뜻 들어가지는 못하고, 그런 상황을 반영하여 드라마 팬들을 위해 간단하게 차와 음료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가게에 입장하여 주문해보니, 차와 음료는 그저 핑계이고 그냥 1인당 100 NTD (약 4,000원)의 입장료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정확한 것 같습니다. 정말 간단하게 주문한 음료가 한 잔 나오고, 거기에 쿠키가 한 개 함께 제공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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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안에는 건물 주인분이 채워 놓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다양한 소품들과 고가구들로 가득 차 있고, 이것들은 모두 촬영 당시 그대로 사용이 되었더라고요. 드라마 장면에 늘 보이는 초록빛 조명, 낡은 선풍기, 주인공들이 앉고 사용하던 책상과 의자 등, “레코드 점”이라는 컨셉을 위해 촬영팀이 추가로 설치한 소품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소품은 드라마 속 모습 그대로 가게에 남아있습니다. 이게 과연 작동할까 싶은 낡아 보이는 선풍기는 여전히 코드를 꽂으면 보란 듯이 날개를 돌려가며 시원한 바람을 선사해줍니다. 가게에 머물며 많은 사진을 남기고, 주인아주머니께는 코로나 사태만 끝나면 이곳에 방문하려고 벼르고 있는 한국 팬들이 엄청 많다고 인사드리고 나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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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레코드판은 없지만 드라마 속 분위기를 여전히 느낄 수 있는 가게 안 풍경



炒飯炒麵(차오판차오미엔), 볶음국숫집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나는 사실 미래에서 왔어.”라는 고백을 들은 두 남주인공이 야식을 먹으며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고민하던 국숫집! 가게 이름도 간결하게 “볶음밥, 볶음국수”인 이곳 역시 타이난 시내에 있습니다.


인도에 위치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뒤, 기본적으로 면 요리 하나와 오믈렛 같은 볶음밥을 주문하고, 거기에 미니 만둣국과도 같은 훈둔탕과 고구마잎 요리, 그리고 루웨이(滷味)라고 불리는 대만 음식을 추가했습니다. 루웨이는 각종 재료 (두부, 돼지고기, 돼지부속물, 미역, 계란, 선지 등)를 그릇에 골라 담으면 주인아주머니께서 루웨이 양념에 슥슥 볶아서 주시는 대만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요리 방식 중 하나입니다. 간장이 베이스로 들어가며 거기에 육수와 기타 조미료가 추가되어 약한 불에 오래 조려 만들어진 양념이 한국인 입맛에도 꽤 잘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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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록달록 벽화가 그려진 노란 벽이 인상적이었던 볶음국숫집



閒情茗品屋(시엔칭밍핀우), 궈샤오이미엔집


이곳은 볶음국수를 먹으러 갔다가 근처에 주차할 자리를 찾으며 골목을 돌다 우연히 발견한 또 다른 촬영 장소입니다. 많은 한국분들이 간단히 대만식 튀김우동이라고도 표현하는 타이난의 명물 요리, 궈샤오이미엔(鍋燒意麵)을 파는 곳이에요. 앞서 들른 볶음국숫집과는 달리 사람도 훨씬 많고, 가게 안에 배우들의 사인이 적힌 그릇과 드라마 포스터를 붙여두는 등, 상견니 마케팅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하는 것 같더라고요. 방금 다른 식당에서 이미 음식을 잔뜩 먹었지만, 국수를 한 그릇 더 주문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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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게 안쪽 벽에 주인공의 사인이 적힌 그릇과 촬영 당시 사진들이 걸려있다.


가게 안에는 이미 사람들이 가득 차 있어서 이번에도 가게 밖 인도 쪽에 위치한 야외 테이블에 착석했지만, 키가 큰 화분들이 뜨거운 햇빛을 적당히 가려주고 선풍기도 설치되어 있어 비교적 시원한 환경 속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궈샤오이미엔에 들어가는 이미엔(意麵)은 튀긴 국수로 식감이 유부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한입 가득 먹으면 면발과 함께 면발에 베인 국물 맛을 한껏 느낄 수 있어요. 미식의 도시 타이난에 언젠가 방문하신다면 꼭 드셔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 글 속에 등장한 장소들

小半樓: https://goo.gl/maps/sQ4MHaMsikfoCs8Q7

炒飯炒麵: https://goo.gl/maps/7YvrrXzSwAy6Heby8

閒情茗品屋: https://goo.gl/maps/mYE3ZwDhM3cALjtY9



© 한의사 전소연의 차이타이타이 대만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