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이승민
[워킹맘 한의사 앤 더 시티]

안녕하세요? 저는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침구과 전문의로서 활동하면서 침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2019년 미국 뉴욕으로 왔습니다. 이 글을 통해 한의사로서, 강사 및 연구자로서, 또 두 아이의 엄마로서 해외에서 살아가는 일상과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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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지만 물어보지 못하는 것: 한국에 왜 돌아왔어?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주변 분들께 제 근황을 전하면 보통 제일 궁금해하는 것이 한국에 돌아온 이유입니다. 친한 경우에는 직접적으로 물어보기도 하지만, 조심스러운 분들은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는 못하고 돌려 알아보는 경우도 많은데요. 예전 칼럼에서 아무래도 제가 너무 간단하게 적고 넘어간 것 같아서 이번에는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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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오시는 분 중에는 크게 이민 혹은 유학, 이 두 가지 이유로 오는 경우가 제일 많습니다. 저는 조금 애매한 경우였는데요. 처음에는 저도 학생 신분으로 들어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지도 교수님께 진솔하게 말씀드렸고, 교수님께서는 오히려 더 응원해 주시며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가고 싶은 대학교(하버드)를 정하고, 배우고 싶은 교수님 (대체의학센터 G 교수님)을 정하고, 미국 국립보건원 (National Institute of Health) 장학금 중에서 제가 신청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야심 차게 원서를 냈습니다.


그리고 광탈 (‘광속도로 탈락함’의 약자)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시절이라, 제가 ‘광탈’을 한 사실도 모르고 하버드 대학원 교수님께 이메일로 결과를 여쭤봤는데, ‘우리는 너를 원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네가 이 장학금으로 올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매우 따뜻한(?) 답변을 받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돈을 내고 들어가도 모자랄 판이었는데 의욕은 넘치고 세상 물정을 잘 몰랐던 시절이었습니다.


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갈 기회가 없어지자, 한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다 마치고 미국에 가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무래도 박사학위가 있으면 연구소나 관련 기관에 취업하기도 훨씬 수월하니까요. 그리고 박사학위를 딸 때 즈음, 제가 근무하던 곳에서 정말 기적처럼 미국 진출을 준비한다는 얘기가 들려왔고, 저는 취업한 상태로 미국을 갈 수 있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마침 남편도 미국 대학원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같이 열심히 미국으로 갈 꿈을 꾸며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니던 직장에도 배우자가 해외로 발령이 날 것 같다고 알리기 시작했는데, 한 달, 두 달이 지나 거의 일 년이 넘도록 진출이 계속 늦어졌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처지라 박사 졸업 후에는 그곳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일하던 병원에서 나오고 나서도 여러 제안과 기회가 있었지만 계속 제 상황과 잘 맞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저와 남편은 뉴욕 쪽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다른 주에서 제안이 들어온다든지, 한의학 관련 일이 아니라든지, 하는 일에 비해서는 페이가 너무 적다든지 등 일이 잘 안되려니 안 될 이유는 정말 많더군요. 그러다 남편은 결국 준비했던 대학원에 합격했고, 어떤 결정이든 빨리 내려야 하는 상황이 되어 저는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계속 갖고 있던 해외 진출이라는 꿈을 늦기 전에 펼쳐보자는 마음에 ‘동의보감 아카데미’의 외부 강사라는 직함만으로 어느 기관에도 속해있지 않은 매우 자유로운 상태로 미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솔직히 미국에 언제까지 있을지, 계속 있을 건지 한국에 돌아올 건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분들이 “한국에 왜 돌아왔어?”라고 물어보면 저도 정확히 해 줄 답은 없습니다. “나는 원래 학교만 졸업하고 돌아올 예정이었어!”라고 답하지도 못하고, “그러게, 원래 아예 이민 가서 쭉 살 계획이었는데…” 하면서 말을 이을 수도 없고, 그냥 “코로나도 너무 심하고, 남편도 학생 비자라서 일을 할 수 없었고, 애들도 우리 둘이서만 키우기에는 너무 힘들었어.”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그게 제일 정확한 답이긴 합니다. 미국에 오고 코로나가 터지기 전 일 년간 우리 부부는 미국에 아예 정착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저는 어쨌든 어렸을 때부터 해외 진출이 꿈이었기에, 한의원에서 환자 보는 것이 너무 신났고, 한의원은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살아있는 교육 현장이었습니다. 남편도 유학에 대한 꿈이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수업을 듣고, 그들과 나눴던 대화를 집에 와서 신나게 공유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가 터지면서 모든 것이 다 바뀌었습니다. 남편 학교 수업은 모두 온라인으로 바뀌고, 집에 어린애가 있었기 때문에 저희 부부는 외출 및 외부인과 만나는 것을 극히 조심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남편은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8월 25일에 ‘한의약 미국 진출 지원센터’에서 미국 개원 관련해서 세미나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들어왔던 질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질문이 ‘저는 일을 할 수 있는 비자가 나왔고, 배우자는 학생비자 (F2)로 가는 데 조언을 해 달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날 같이 패널로 참석했던 박지혁 원장님이 F2비자는 이민자들끼리 제일 욕하는 비자라면서 ‘먹고, 자고, 숨 쉬는 것밖에 못 하는 비자’라고 답변해 주셨는데 저도 너무 와 닿는 말이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비자 발급 관련 절차도 엄청 느려진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진로를 설계하는 데 있어서 미국에 있든 한국에 있든 큰 차이가 없었지만, 남편의 진로를 생각하면 미국에 남는 것이 최선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미국에 계속 남기로 할 경우에는 남편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장기적으로 가면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는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있다 보면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부부를 자주 보게 됩니다. 육아를 전담하는 엄마나 아빠도 있지만 양쪽이 모두 일이나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부부 모두의 커리어가 중요한데 한 사람의 커리어를 위해서 다른 사람이 일방적으로 희생해야 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주에서 본인 커리어에 너무 좋은 제안이 들어왔는데 이동을 하는 것이 배우자에게는 안 좋을 경우 주말부부를 하기로 택하는 부부도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의약 분야의 저명한 연구자 분께서도 남편과 그렇게 수 십 년을 살았다고 들었습니다. 한쪽 배우자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 같고, 부부가 끊임없는 대화와 상황에 맞는 계획수정으로 최대한 조화롭게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물론 코로나가 터지지 않았다면 상황이 조금 달랐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남편은 학교를 정상적으로 다니며 더욱더 많은 네트워크를 쌓았을 것이고, 비자 발급 관련 절차도 느려지지 않았다면 새로운 비자 지원을 해 봤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코로나가 걱정되어서 한 명이 일하고 다른 한 명은 육아를 담당하는 형태가 아니라, 우리 둘이 일하고 아이들은 마음 놓고 보육 도우미분께 맡겼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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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 줄로 요약하자면 한국에 돌아온 이유는 코로나로 인해 급격히 변해버린 환경 때문도 있지만, 어떤 분명한 목표를 정해두고 미국에 간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그때그때 맞춰 결정하고 대응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꿔 말하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미국에서 반드시 정착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당시 저희 부부에겐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주변 분들이 “한국에 왜 돌아왔어?”라고 물어봐서 답해주면, 그다음으로 많이 하는 질문이 “그럼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 있어?”입니다. 물론 미국에서 코로나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지만, 고생하면서 얻은 것도 너무 많았고 추억도 너무 많았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인간은 고생했던 것은 잘 잊어버리는 망각의 동물이어서 그럴까요? 저희 부부는 무조건 “Yes! When the time comes!”라고 대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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