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의 의료인
Home > 지식솔루션센터 > 세계 속의 의료인- [워킹맘 한의사 앤 더 시티]
안녕하세요? 저는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침구과 전문의로서 활동하면서 침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2019년 미국 뉴욕으로 왔습니다. 이 글을 통해 한의사로서, 강사 및 연구자로서, 또 두 아이의 엄마로서 해외에서 살아가는 일상과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미국 생활에 대한 워킹맘과 워킹대디의 뜨거운 온도 차
벌써 한국 들어온 지 1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동안 제가 미국 진출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최대한 많은 분께 다양하게, 적극적으로 알려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 정보도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정답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저보다 더 최근에 진출하신 분은 없나 찾아보게 되고, 혹시라도 잘못된 정보를 알려 드릴까 봐 주변에 재차 검토하고 또 확인해 보게 됩니다.
최근에는 자녀 교육 문제로 미국 진출을 고민하시는 원장님을 만나게 되어 저의 이런저런 개인 경험을 또 공유해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모르는 부분이 있어 미국에서 워킹대디로 7년 넘게 한의원 하시다가 한국에 오신 원장님과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요. 통화하다 보니 제가 그동안 간과했던 아주 큰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미국 진출에 대한 워킹맘과 워킹대디의 온도 차!
(본 기고문에서 ‘워킹대디’는 근무하는 만큼 육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워킹맘만큼 일과 육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경우로 임의로 정의합니다.)
제가 모든 워킹맘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미국에서 경험했던 많은 일들은 저와 같은 워킹맘, 여자 한의사에게 적용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예전 칼럼에서도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미국에서 진료할 때 가장 크게 느꼈던 장점 두 개는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쏟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정성과 여자 한의사로서 느꼈던 색다른 자유입니다.
미국에서 진료할 때 가장 크게 느꼈던 장점!
하나.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쏟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정성
둘. 여자 한의사로서 느꼈던 색다른 자유
남자 한의사 수가 훨씬 많은 한국과 달리 미국은 여자 한의사가 더욱더 많은 편이며, 그래서 환자분들도 여자 한의사에게 치료받는 것에 매우 익숙합니다. 한국에서 진료할 때 자주 듣던 “여기 간호사 말고 남자 원장님 없어요?”라는 얘기도 미국에서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으며, 부원장 자리를 구할 때도 오히려 여자 한의사여서 우선순위에 들었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체력, 질환 특성상, 환자군 특성상 등의 여러 이유로 여자 한의사인 것이 핸디캡이었는데 말입니다.
또한, 전문직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많은 선배 언니들이 출산 후 차차 한의원을 접고 육아에 전념하는 것을 자주 봤습니다. 저보다 한의학 공부, 경영, 환자 관리 능력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분들이 한의원까지 접는 것을 보면서 저도 결국 육아와 일의 병행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자리 잡았었고, 여자 원장님 밑에서 일하는 것도 흔한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육아 때문에 일을 접는 여자들은 거의 없었고, 조직이나 기업에서도 여성이 리더의 위치까지 올라가서 조직을 이끄는 것을 자주 보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색다른 희열과 희망을 느꼈었습니다. 일하는 엄마들이 많다 보니 당연히 육아에 참여하는 아빠들도 많고, 육아에 참여하는 아빠들이 많다 보니 오히려 워킹맘 생활 하나만 봤을 때는 한국보다 삶의 질이 더욱더 좋은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지극히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에서 여자 한의사들이 겪는 경험에 대해서는 천세은 선생님이 질적 연구를 진행해서 논문*으로 발표했고,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그러나 그날 통화한 워킹대디 원장님의 입장은 매우 달랐습니다. 남자 한의사라면 한국에서 매우 편하게 일하며 돈을 벌 수 있는 직군이고, 한국에서는 최고의 대우를 받는 사람들인데 굳이 미국에 가서 왜 고생을 하냐는 얘기를 했습니다. 또한, 자녀의 유학 문제로 미국에 오는 가족들을 많이 봤는데 미국에서 2~3년 있으면 아빠들은 대부분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아내와 자식은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고, 결국 아빠 혼자 한국으로 돌아가 기러기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자녀가 중학교 때 미국에 남는 경우, 보통 대학교까지 미국에서 다니게 되고,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면 정착도 미국에서 하기 때문에 나중에 가족이 다시 합치기는 더더욱 어렵다고 하더군요. 결론적으로, 지극히 아빠 입장에서만 조언하자면, 자녀의 교육 목적으로 미국으로 간다면 아빠는 그냥 안식년을 1~2년 갖는다는 느낌으로 차라리 휴식을 취하고, 2년 후에는 온 가족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약속을 하고 오는 것이 아빠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는 최고인 것 같다고 귀띔해 주셨습니다.
이 얘기를 듣고 저는 뭔가 머리를 한 대 제대로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워킹맘의 입장만 생각했었지, 잠재적 기러기 아빠가 될 수 있는 워킹대디의 입장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같은 환경 같은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경험하고 느끼는 바는 다를 것입니다. 정답도 없고 정해진 길도 없습니다. 자녀 교육과 자녀의 행복이 우선이고 그 정도의 희생은 괜찮다고 하시는 분들께는 미국 진출을 추천해드릴 수 있겠지만, 가족과 같이 쌓는 추억과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들은 서로의 온도 차를 고려해서, 가족 모두가 얻을 것이 있는 해외 도전이 될 수 있도록 심사숙고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 한의사 이승민의 워킹맘 한의사 앤 더 시티
워킹맘 한의사 앤 더 시티
2005년 한의약의 세계화에 일조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안고 한의과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막연했던 꿈은 병원에서 수련의 생활 및 펠로우 생활을 하며 침구학이라는 분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대학원 과정에서 양한방 협진 연구를 돕게 되며 현대 의료 시스템 내에서의 침 치료 역할뿐만 아니라 한의사의 역할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침구과 전문의 자격과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부산대학교 연구교수로 일하면서 한의약 교육의 세계화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얻어, 미국,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 현지 의료인들에게 한국 침 관련 강의를 하게 되었고, 각국에서 기대치 못한 호응을 얻어 무척 기뻤습니다. 이후 2019년에는 마침내 미국 현지에서 한의약을 좀 더 알려보고자 하는 구체적인 목표를 갖고 뉴욕으로 건너오게 되었습니다.남편이 현지 대학원 과정에 진학하여 공부를 하고 있어, 저는 현재까지 두 딸아이의 엄마이자, 뉴욕 맨해튼에서 개인 한의원을 운영하며 현지 대학에서 강사 및 연구자로 일하는 워킹맘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제가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이곳에서 보고 느꼈던 한국 한의약, 해외에서의 진료 경험, 그 외 일과 육아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공감 혹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 경희대학교 대학원 임상한의약(침구의학) 전공 박사 졸업
- 경희대학교한방병원 침구과 전문의 자격 수료
- 전 경희대학교한방병원 침구과 연구펠로우
- 전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연구교수
- 현 Virginia University of Integrative Medicine 강사
- 현 뉴욕 맨하탄 Healthy With Kathy Acupuncture Clinic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