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전소연
[차이타이타이 대만일기]

대만의 국립성공대학에서 보건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결혼이민자로 대만으로 건너와 이곳에 정착하여 살게 된 저의 일상과 제 눈에 비추어지는 대만의 모습을 조금씩 소개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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科學中藥, 대만의 보험 한약

 

대만과 한국 양국의 건강보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한의학 활용 패턴을 분석한 한 논문에 의하면 2011년 자료 기준, 한의원 혹은 중의원을 방문한 환자들이 받은 치료 중 보험 한약의 활용도는 한국에서는 5.2%에 불과하였지만 대만은 61.2%에 달했습니다 [1]. 이는 보험 한약에 대한 양국 국민들의 선호도의 문제라기보다, 보험 정책이 커버하고 있는 한약 범위의 차이에 의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데요. 68종 단미엑스산제와 56종 혼합엑스산제에 대해서만 한약제제 보험 급여가 실시되고 있는 한국과 달리 대만에서는 500여 종의 단미제와 350여 종의 복합제가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고 있습니다. 이 수많은 처방의 활용은 고스란히 대만의 건강보험 데이터베이스에도 기록으로 남게 되고, 이 덕분에 대만에서는 이러한 처방 내역을 바탕으로 많은 한약 관련 연구를 발표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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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대만에서 발표된 논문 두 편에서 볼 수 있는 단미제 혹은 복합제 처방 패턴에 관한 테이블 [2, 3]. 처방 사용자들의 수, 평균 복용 기간, 일일 복용량 등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대만 사람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의 보험 한약 처방은 이미 너무나 익숙한 일상이어서 중의원이나 중의병원을 방문하게 될 경우 대다수의 환자들은 가루로 된 보험 한약을 처방받아 원내 약국에서 조제된 가벼운 약봉지를 받아 귀가합니다. 대만에서는 이런 보험 한약을 科學中藥(커슈에쫑야오, 줄여서 科中, 커쫑이라고 부르기도 함) 혹은 濃縮顆粒(농수오커리) 라고도 부르는데, 전자가 더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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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의원에서 처방하는 보험 한약과 의원 혹은 병원 내 약국의 모습. 각종 단미제, 복합제 처방이 이미 완성품으로 용기에 포장되어 있고, 중의사가 처방을 내리면 그에 맞춰 약국 내의 약사가 각 용기에서 그램 단위로 한약을 꺼내 조제한다.


현재 대만에서는 PIC/S GMP 인증이 의무인 일반 제약회사와 달리 중약 제약회사의 경우에는 GMP 인증만이 요구되고 있는데요, 향후 점진적으로 중약 제약회사에도 PIC/S 인증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진행 중에 있다고 합니다. 2021년 현재 대만 정부의 GMP 인증을 받은 중약 제약회사는 총 87곳이 있으며 이 중에 43 곳이 중의원, 중의 병원에 들어가는 가루 한약 형태의 보험 한약을 생산합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대만의 5대 중약 제약회사라고 꼽히는 順天堂, 港香蘭, 科達, 勝昌, 莊松榮 이 다섯 군데 제약회사의 시장점유율이 80%를 넘는데요, 이 중 港香蘭(Kaiser Pharmaceutical, 이하 KP) 제약회사가 제가 거주하고 있는 도시 타이난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PIC/S: 의약품실사상호협력기구 (Pharmaceutical Inspection Co-operation Scheme)

* GMP: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 (Good Manufacturing Practice)



港香蘭藥廠股份有限公司


KP의 간단한 연혁을 보면 1972년 타이난 仁德(런더) 지역에 첫 공장 설립, 1984년 永康工業區(용캉 공업단지)로 GMP 인증을 받은 새로운 공장 신축 이전, 그리고 2006년 제2 공장의 Tainan Science Park (타이난 과학단지) 입주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기업인 KP와 중약의 인연은 공장 설립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공식적인 문서 기록을 찾아보면 1892년 현재 경영진의 고조부부터 약재를 거래하였다는 최초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1대, 2대, 3대에 걸쳐 타이난의 작은 마을에서 중약방을 운영하던 명맥이 이어져 지금의 KP 회사까지 5대째 최고 품질의 중약을 제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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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永康工業區(용캉 공업단지)에 위치한 KP 1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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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inan Science Park (타이난 과학단지)에 위치한 2공장 전경


일반 제약회사와 마찬가지로 일찍부터 PIC/S GMP 인증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TGA, FDA, HACCP 등 국제기관들의 인증을 통해 원재료부터 완성 제품이 나오기까지 모든 단계 마다 엄격한 기준에 맞춰 철저하게 품질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중의사에게 제공되는 보험 한약을 주로 생산하는 1공장과, 일반인이 구매 가능한 OTC (over the counter drug) 약품 및 건강기능식품류의 제품을 생산하는 2공장 모두 누구든, 언제든 방문하여 참관이 가능한 투명성 역시 제품과 생산 공정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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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KP 제품을 판매하던 중약방 밖의 협력 약국 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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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대만 전역 약국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협력 약국 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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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공장을 참관 중인 해외에서 온 방문객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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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현재 KP가 꾸준히 갱신 중인 다양한 국제기구 인증


KP는 대만 국내 시장에서의 위상 못지않게 해외 시장에서의 인지도도 높은 편입니다. 미국과 유럽 각지, 호주, 이스라엘,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에 진출해 있는 KP는 대만 경제부의 2020년 보고서 기준 해외 수출을 하는 47개의 중약 제제 회사들 중 수출 규모 1위를 수년째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믿을 수 있는 고품질 중약 제품으로 유명하여 미국의 Cleveland Clinic이나 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에서 처방되고 있는 한약이 바로 이 곳 타이난에서 생산하는 대만 KP의 제품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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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 홈페이지에 소개되고 있는 한약 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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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P의 미국지사 KPC Herbs의 라벨이 붙은 약품이 진열되어 있는 Cleveland Clinic 원내 약국 선반의 모습

(이미지 출처: https://www.wsj.com/articles/a-top-hospital-opens-up-to-chinese-herbs-as-medicines-1398121116 )


코로나 시국이 조금 안정화되고 해외여행이 조금 더 용이해져 대만 남부 투어를 하게 된다면, 일정 중 잠시 짬을 내어 타이난의 KP를 방문해 보시는 건 어떨지요? 공장 방문 및 기타 문의사항이 있으시면 soyeon@kaiser.com.tw 로 언제든 연락 주세요.



References


[1] Huang CW, Hwang IH, Lee YS, Hwang SJ, Ko SG, Chen FP, Jang BH. Utilization patterns of traditional medicine in Taiwan and South Korea by using national health insurance data in 2011. PLoS One. 2018 Dec 27;13(12):e0208569.


[2] Tran DN, Hwang IH, Chen FJ, Tseng YP, Chang CM, Tsai SJ, Yang JL, Wu TP, Hsu CH, Chen FP, Kung YY. Core prescription pattern of Chinese herbal medicine for depressive disorders in Taiwan: a nationwide population-based study. Integrative Medicine Research. 2021 Sep 1;10(3):100707.


[3] Shih WT, Yang PR, Shen YC, Yang YH, Wu CY.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Enhances Survival in Patients with Gastric Cancer after Surgery and Adjuvant Chemotherapy in Taiwan: A Nationwide Matched Cohort Study. Evidence-Based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2021 Feb 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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