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전소연
[차이타이타이 대만일기]

대만의 국립성공대학에서 보건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결혼이민자로 대만으로 건너와 이곳에 정착하여 살게 된 저의 일상과 제 눈에 비추어지는 대만의 모습을 조금씩 소개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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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의 산후조리

 

분명 처음 대만으로 시집을 왔을 적 20대 후반의 저는 나중에 아이를 낳게 된다면 무조건 한국에 가서 낳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흘러 뒤늦게 노산의 커트라인에서 만나게 된 아이는, 외부적인 요인 (전 세계를 마비시킨 역병)과 내부적인 요인 (아이 아빠가 최대한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좋겠다는 엄마의 마음)의 영향으로 대만에서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타국이지만 한국 못지않게 산후조리에 대한 개념이 확실한 국가라는 점도 결정에 도움이 되었고요. 그리하여 지난 2021년 대만의 3대 명절 중 하나인 단오절(端午節) 정오 경, 제가 재학 중인 성공대학교 의학대학의 부속병원 산부인과에서 커다랗고 뽀얀 감자 같은 아이가 탄생하였습니다.

* 대만 3대 명절: 春節(춘절), 端午節(단오절), 中秋節(중추절). 한국과 마찬가지로 명절 상여금이 나오기도 한다.


늘 “두고 봅시다.”를 반복하시던 주치의 선생님은 37주 무렵부터 제왕절개를 추천하셨고, 그래도 자연분만을 시도해 보고 싶은 저는 예정일이 다가와 녹용이 들어간 불수산으로 처방을 바꿔 마시며 출산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39주 3일, 유도분만을 시도하기 위해 입원을 하고 이틀이 지난 뒤에도 아이는 나올 생각이 없었고 결국 순식간에 제왕절개로 방향을 틀게 되었죠. 처음 진료받으러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초음파를 볼 때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아기 머리가 크다고 말씀하시던 저의 주치의 선생님은 개복하여 아이를 처음 본 순간조차 말 그대로 “這頭很大!! (이거 머리가 엄청 큰데!!)”를 외치며 묵직한 아이를 꺼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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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여름 우리에게 찾아온 자이언트 베이비


대만에서 산후조리는 坐月子(쭈오위에즈)라고 합니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한 달은 푹 쉬라는 의미가 있어요. 그런데 이 작은 섬에서 또 북부와 남부에 차이가 있어, 북부보다는 남부가 더 오래 산후조리를 하는 경향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디든 최소 3주는 산후조리를 하는 것 같고 남부는 길게는 석 달까지도 산후조리원에 머무는 경우를 보았답니다.


저는 제왕절개로 출산을 하였기 때문에 수술 후 먼저 병원에서 5박 6일을 보내고서야 조리원에 입소했는데요. 병원에 머무는 기간에는 병원에서 어련히 밥을 잘 챙겨주겠거니 했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었습니다. 대만은 月子餐(위에즈찬)이라고 산후조리 음식만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업체들이 많아서 산모가 따로 업체로부터 식사를 주문해야 하더라고요. 그걸 모르고 산모용 식사이겠거니 하고 신청했던 병원식이 아침 식사로 흰 토스트 한 장에 두유 한 잔이 왔을 때의 충격이란. 다행히 신랑의 다급한 SOS에 자주 가던 한식당 사장님께서 바로 미역국을 한가득 준비해 주셔서 감사히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수술 후 가장 몸이 힘들었던 처음 5~6일이 지나고 조리원으로 옮겨 간 뒤부터는 쾌적한 환경과 맛있는 음식, 언제든지 아이를 볼 수 있는 자유 (병원에 있을 때는 당시 대만 코로나 환자가 살짝 증가하던 시기라 신생아실로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되고 모유 수유할 때만 아이를 볼 수 있었는데, 그마저도 처음에는 모유가 잘 나오지 않으니 사실 거의 아이를 볼 수 없었어요), 그리고 또한 언제든지 아이를 보낼 수 있는 자유 덕분에 “조리원 천국”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이 신생아 트롤리를 몰고 방으로 들어오시면 아이를 만날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고, 신생아 트롤리가 방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면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이 잠깐 몰려오기는 했지만 “쉴 수 있다.”라는 안도감에 또 기분이 좋아졌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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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리원 천국의 일상, 방에서 편하게 맛있는 식사를 하며 아기는 TV로 실시간 모니터링하기. 조리원 내 아기들은 모두 고정된 위치가 있고 그 위에 전용 카메라가 있어서 언제 어디서든 해당 IP 주소로 접속하면 아기의 모습과 대소변 횟수, 수유 현황 등 당일 컨디션을 확인할 수 있다.


대만에서 산후조리를 선택하는 한국 산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걱정 중 하나는 음식인데요. 한국에는 미역국이 있다면 대만에는 麻油雞(마요우지)탕이 있습니다. 산후 산모의 기력 회복과 혈액 순환을 돕고 모유가 잘 돌게 도와줄 뿐만 아니라 下焦(하초)를 따뜻하게 해주고 溫補腎陽(온보신양)하는 음식이라며 가장 보편적으로 찾는 산후조리 음식이지요. 다만 출산 직후는 아니고 2주 정도 시간이 지난 후부터 챙겨 먹습니다.


닭, 참기름, 생강과 米酒(미지우)가 주재료로 들어가는 보양 음식으로, 국을 보면 아주 두꺼운 기름이 둥둥 떠다녀 한국 산모들이 보기에는 조금 경악스러운 비주얼이고, 용기를 내어 맛을 보아도 뭔가 많이 먹기는 힘든 맛입니다. 다행히 제가 머물던 산후조리원에서는 산모의 기호와 체질에 따라 다양한 식단을 제공해 주어서 마요우지탕은 그래도 한 번 맛을 본 뒤 “식단에서 빼주세요.”라고 요청을 하고, 다른 음식들로 매 끼니를 싹싹 맛있게 다 먹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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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산 후 한 달이 되는 날 특식으로 나오는 홍게 훠궈를 비롯하여 조리원에 머무는 동안 감사히 잘 먹었던, 한국인 산모 입맛에도 너무나 맛있었던 음식들!


기본 식사 이외에도 식사 중간중간에 나오는 간식과 오전 오후 1L짜리 보온 물병에 담아 제공되는 차, 그리고 저녁 식사 뒤에 보너스 야식처럼 제공되는 滿月(만위에) 선물 샘플들까지! 조리원에 머무는 30일의 기간 동안 그렇게 많이 먹는데도 또 임신으로 쪘던 살은 쭉쭉 빠지고 있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저의 제왕절개 출산 소식에 학부 시절 은사님께서 대만까지 보내주신 수술 후 회복하는 산모를 위한 탕약을 열심히 챙겨 마시기도 했고요. 저도 신랑도 나이가 많아 주변에 이미 출산과 산후조리 경험이 풍부한 친구들이 많았고, 그 친구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야기해준 “OO 항목 추가하시겠어요?”라는 질문이 들어오면 무조건 “YES” 하라는 조언에 따라 추가한 각종 마사지의 도움도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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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滿月(만위에) 선물 샘플로 온 油飯(요우판). 샘플은 미니 사이즈가 오지만 실제 돌리는 선물들은 크기가 훨씬 크다. 대만은 아기가 한 달이 되면 주변에 아기의 출생을 알리며 선물을 돌리는 풍습이 있고, 때로는 한국의 백일잔치와 비슷하게 滿月에 잔치를 열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나 선물은 반드시 돌리는데, 가장 기본적으로 아들일 경우에는 요우판, 딸일 경우에는 케이크를 돌리고, 부모의 뜻에 따라 구성품이 바뀌거나 추가되기도 한다. 첫아들일 경우에는 요우판과 더불어 커다란 닭 다리와 삶은 달걀 두 개를 추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제가 열심히 조리하는 동안 자이언트 베이비 아들 녀석도 큰 탈 없이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처음 조리원에 입소한 날, 분명히 조리원에서 가장 어린 아기이건만 신생아실의 그 어느 아기보다 덩치가 커 보였던 아들은 퇴소 일이 다가올 무렵에는 신생아 트롤리에 꽉 찰 정도로 키가 자라버렸습니다. 보통 처음 아기를 안으면 너무나 작고 소중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하는데, 저는 처음부터 ‘으앗 묵직하다.’라는 느낌과 함께 조리원에서 지내는 내내 모자동실을 하는 시간에 늘 이 녀석은 신생아이지만 신생아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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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리원 퇴소 전날 인생 첫 수영을 즐기던 모습과 퇴소 당일의 아기 모습. 머리와 발이 바구니 양 끝에 닿아 불편해 보이는 것이, 엄마가 더 머물고 싶어도 아기 때문에 더 머물 수 없겠다 싶었다.


어느덧 돌준맘이 되어서야 칼럼을 작성하며 아기의 신생아 시절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보니, 그때는 그렇게 커 보였던 아이가 지금은 또 영락없이 정말 갓난아기로 보입니다. 그리고 갓 태어난 아기도 정말 정말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조리원에 있는 기간만큼은 산모의 회복이 최우선이라며 무엇보다 저를 살뜰히 챙겨준 신랑과 시댁의 배려 덕분에 산후우울증이라는 건 대체 무엇인지 발끝도 보지 못하고 마음 편하게 산후조리에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을 다시 떠올려보니, 감사한 마음이 한가득입니다.



© 한의사 전소연의 차이타이타이 대만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