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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핫한 여행지 남해. 아름다운 바다 풍광으로 유명한 그곳의 가장 깊은 안쪽에 피톤치드 향 가득한 편백림이 속살처럼 앉았다.

푸른 섬 안쪽의 싱그러운 숲

남해가 이렇게 주목받는 여행지가 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여느 관광지가 다 그렇겠지만, 남해는 특히 그렇다. 곳곳에 멋들어진 풍광을 간직한 섬이지만 접근성이 떨어지는 단점 때문에 작금의 열풍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런 남해가 여행자의 이목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20년여 전부터다. 대전에서 진주를 잇는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접근성이 좋아졌고, 최근 10년 남짓한 사이 섬 내 인프라가 개선되면서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부산과 경남 남부의 여행객이 바다를 찾아가는 곳에 지나지 않았다.

2019년 현재 남해를 향한 세간의 관심은 무척 뜨겁다. 2000년대 후반부터 제주도로 집중됐던 여행 트렌드는 서서히 방향을 트는 중이다. 그 대안으로 가장 유력하게 손꼽히는 곳이 바로 남해다. 이런 흐름을 보여주듯 남해는 곳곳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남해를 생의 터전으로 정한 젊은 층이 많아지면서, 섬의 구석구석까지 여행의 DNA가 녹아들었다. 예전 같으면 한쪽으로 푸른 바다, 다른 한쪽으로 널따란 논만이 펼쳐졌을 풍경의 복판에 세련된 카페가 들어서고 섬의 끄트머리에 숨어 있던 맛집 정보가 SNS를 타고 속속 드러난다.

게스트하우스 같은 여행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으면서도 지역의 정서가 아직 잘 살아 있다는 것. 새로운 여행지를 갈망하는 이에게 이만큼 매력적인 것도 없다. 더구나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비경까지 있으니 한 번쯤 가보지 않고는 못 배길 조건을 넉넉하게 갖췄다. 남해의 바다는 인접한 통영이나 여수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탁 트인 시야와 발밑에서 파도치는 청록빛 물길. 고층 건물이 없고 어디서든 남해의 비경을 넉넉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건 자연을 곁에 두고자 하는 이에게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금산에 올라 아래로 늘어선 상주은모래비치의 경치는 “이래서 남해구나!”라는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어느 섬이나 숨겨진 경치가 있기 마련인데, 남해는 해를 거듭할수록 새로운 모습이 끊임없이 세간에 소개되고 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남해의 곳곳을 찾아 헤매면서 남해의 새로운 얼굴을 담고자 하고, 그렇게 발굴한 아름다움은 여행자의 발길을 이끄는 나침반이 된다. 제주도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당시 숱하게 거론했던 좋은 여행지의 조건을, 남해는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여행에서 다녀온 편백림은 남해의 가장 깊은 안쪽에 자리한 속살이다. 남해 하면 바다만 떠올리는 이에게 편백림이 주는 싱그러움은 생각지 못한 깜짝 선물과도 같이 다가온다.

잘 가꿔진 숲과 청량한 계곡의 물길

남해의 편백림은 말발굽처럼 생긴 남해에서 가장 아래쪽 삼동면에 있다. 정식 명칭은 국립남해편백자연휴양림이다. 편백나무로 이루어진 자연휴양림은 전국 곳곳에 있지만, 남해에도 이런 곳이 있다는 건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만큼 사람의 손길을 많이 타지 않았고, 숲이 가진 고유의 매무새가 단정하게 남았다.

국립남해편백자연휴양림이 처음 문을 연 것은 1998년이다. 전체 면적은 227만㎡(약 68만 6천 평)에 달한다. 규모가 아주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하루쯤 시간을 내어 숲을 따라 걷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남해의 자연휴양림은 아직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해의 대표적인 사찰인 금산 보리암의 반대편 산마루에 자리하고 있다. 금산의 뒤편으로 차를 몰아 들어가면 울창한 숲 사이로 잘 가꿔진 자연휴양림이 나타난다. 무더운 햇살을 가려주는 울창한 나무 그늘이 반갑다. 숲의 길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은 숲속야영장과 숲속수련장으로 연결되고 직진으로 난 길은 여러 동의 방갈로를 지나 등산로로 이어진다. 양쪽 모두 곁으로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있어 하루를 온전히 의탁하기에도 좋은 환경이다.

1박의 일정이 부담스럽다면 입구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산책을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주도로로 사용하는 흙길과 그 아래에 조성한 오솔길이 모두 한 방향으로 흐른다. 어느 쪽이든 원하는 길을 따라 걸어도 운치 있는 숲속 산책이 된다. 곁으로 점점이 앉아 있는 방갈로는 시설이 깔끔하다. 길을 걷던 중에 자꾸만 눈길이 가서 잠시 들여다보았는데, 어린아이도 관심을 둘 만큼 잘 꾸며 놓았다.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구간은 그리 길지 않다. 사방댐 위로 계속 올라가다 보면 산 정상 부근에 지어 놓은 전망대까지 이어지는데, 여기서부터는 등산로에 가깝다. 총소요시간은 한 시간 정도. 끝까지 오를 것인지 고민하다 뜨거운 여름 햇살에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에 잠시 발을 담그며 놀기로. 울창한 수림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길은 5분도 채 견디지 못할 만큼 차갑다. 함께 발을 담그던 여행객이 건넨 작은 요구르트 한 병에 기분도 한껏 좋아졌다.

자연휴양림을 찾았다면 함께 들러볼 만한 곳도 이 인근에 있다. ‘남해에 이런 곳이 있었네?’ 싶은 나비생태공원이다. 예전부터 남해는 자연환경이 잘 보존돼 있어 도시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곤충이 많았다. 나비도 마찬가지. 우리에게 친숙한 배추흰나비, 부전나비 같은 것뿐 아니라 제비나비와 호랑나비 등도 이곳에서 만난다. 여기에 더해 하늘소, 풍뎅이, 사슴벌레 같은 곤충도 시선을 끈다. 남해에 서식하는 종류도 있지만, 한반도에서 만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곤충과 다른 나라에서 서식하는 희귀종도 진열해 놓았다. 무엇보다 나비 애벌레부터 고치 상태와 변태 과정까지 한자리에서 눈으로 확인하도록 했다는 게 강점이다. 아이와 함께 찾아간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는 남해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는 선물 같은 여행지가 될 것이다.

손수 만든 유자카스테라의 치명적인 향기

근래 남해에는 갈 만한 카페나 식당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지만, 그중에서도 ‘핫하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 있다. 독일마을에서 지족리로 나가는 방향 대로변에 있는 ‘카페 유자’다. 제주도가 돌, 바람, 여자가 많은 삼다(三多)의 섬이라면, 남해는 전통적으로 유자, 비자, 치자가 많은 삼자(三子)의 섬이다. 그중에서도 유자는 남해를 대표하는 특산물로 손꼽을 만한데, 198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담을 쌓는 대신 유자나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었을 만큼 유자가 흔했다. 심지어 남해의 유자는 한국 토종 유자다. 지금은 경남 고성이나 전남 고흥에 밀려 남해 유자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어렵고 유자 농사를 짓는 이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껍질 부위의 향이 무척 강한 토종 유자의 맛을 보고 나면 좀처럼 뇌리에서 잔상이 가시지 않을 만큼 인상적인 맛과 향을 지녔다.

어릴 적, 남해에 사시던 할머니는 겨울을 보내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셨다. 8시간 넘는 거리를 버스를 타고 오실 때마다 늘 보따리가 한 짐 가득 들려 있었다. 그때마다 바리바리 풀어놓는 보따리 속에 매번 빠지지 않는 것이 유자였다. 어린 눈에 할머니가 들고 오신 유자는 가장 반가운 먹거리였다. 잘 익은 유자를 반으로 갈라 속을 빼고 껍질 따로 속 따로 청을 담가 두었는데, 유자 껍질로 만든 유자청은 주전부리가 항상 마땅치 않던 그 시절 훌륭한 먹거리였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새콤하지만 향기로운 맛. 카페 유자의 이야기를 접하고 가장 먼저 떠올린 건 그때의 기억이었다.

카페 유자의 주력 메뉴는 역시 유자에이드와 유자카스테라다. 직접 담근 유자청을 삼베에 걸러 내리는 유자에이드는 여름철에 비교할 다른 음료를 떠올리기 어려울 만큼 시원하다. 차가운 얼음을 가득 담아 내주는 유자에이드는 특유의 시트러스 향이 더해져 청량함의 극을 선사한다. 이곳의 대표 메뉴로 칭송이 자자한 유자카스테라는 외양만 보면 전형적인 카스테라의 그것이다. 하지만 카스테라를 포크로 떠서 입에 밀어 넣으면 표정이 확 달라지기 마련이다. 달콤한 카스테라가 입안에서 살살 녹아 사라질 때쯤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유자의 상큼함. 기분 좋게 혀끝을 다독이는 청량한 기운이 푸른 들판 위로 펼쳐진 맑고 파란 하늘을 닮았다. 구옥을 다듬어 만든 이 카페의 툇마루에 앉아 하늘을 감상하며 먹는 카스테라의 맛이란. 직전에 어떤 음식을 먹고 왔든 완벽한 디저트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입추가 지나고 조금은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금이 어쩌면 남해를 찾을 가장 좋은 시기가 아닐까. 바다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고 편백림에서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벗 삼아 피톤치드 샤워를 했다면, 마무리로 유자카스테라를 맛보자. 이 여름의 추억은 맑은 물빛과 푸른 바람결과 향기로운 유자의 맛으로 각인될 것이다.

유자는 향기롭고 과육이 부드럽지만, 신맛이 강한 과일이다. 원산지는 중국 양쯔강 상류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에는 840년(신라 문성왕 2년) 장보고가 중국의 상인에게 얻어와 퍼졌다고 한다. 유자의 성분 중에서도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비타민 C다. 레몬보다 3배나 많아 감기와 피부미용에 좋고, 노화와 피로를 방지하는 유기산이 많다. 이외에도 비타민 B와 당질, 단백질이 다른 감귤류보다 많고 모세혈관을 보호하는 헤스페리딘 (hesperidin)이 들어 있어 뇌혈관 장애와 풍을 막아준다. 또 배농(排膿) 및 배설 작용을 도와 몸 안에 쌓인 노폐물을 내보내는 데도 효과가 뛰어나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