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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한 단풍이 한창이던 어느 날, 경북 안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원이엄마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16세기 원이엄마의 편지

사실 이번 여행은 지인의 결혼식을 겸한 길이었다. 서울에서 만나 서울에서 연애를 하던 지인이 보내온 청첩장에는 느닷없는 ‘안동’이 적혀 있었다. 더구나 그는 부산 출신이었던 터라 생각지 못한 지명이 잠시 당황했는데, 남편 될 사람의 고향이 안동이라고 했다. 순간 엉뚱한 상상을 했다. 하회마을 같은 한옥에서 기러기 한 마리를 상에 올려놓고 점잖은 표정의 신랑과 연지곤지 찍은 신부가 마주 서는 모습을. 그 뒤에는 갓을 쓴 집안 어른들이 “에헴” 헛기침을 하며 그 결혼을 지켜보는 장면을 더하니 왠지 안동이라는 지명과 안성맞춤인 듯했다. 물론, 이건 말 그대로 망상이었다. 신부는 하얀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태로 혼인 서약을 맺었으니까. 결혼식을 지켜보다 그 상상이 떠올라 혼자 피식 웃어버렸다. 남들은 모를 그날의 비밀이다.

화려한 예식장을 배경으로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은 그 어떤 연인보다도 잘 어울렸다. 그들의 사랑이 영원하길, 언제나 서로의 사랑이 절실하길 기도했다. 신랑이 등장할 때 영화 <스타워즈>의 주제곡이 나오고 두 사람이 행진하는 동안 ‘Can’t stop my eyes off you’가 흐르는 것만 빼면 아주 완벽했다.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색다른 장면이었다.

둘의 결혼식을 지켜보며 한편으로는 원이엄마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안동의 러브스토리다. 원이엄마의 정체는 1998년에 발견된 미라다. 그는 1500년대의 사람이었고, 키는 145센티미터 정도에 아직은 젊은 서른 즈음의 나이로 일기를 마감했다. 택지 조성을 위해 분묘 이장을 하던 중에 발견한 이 인물은 보기 드문 미라이기에 화제가 됐지만, 정작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건 함께 발견된 부장물 때문이었다. 그의 주변에서는 적잖은 유물이 나왔는데, 치마와 저고리 등 16점의 의복을 비롯해 염주알, 접부채, 그리고 한 켤레의 미투리와 편지가 나왔다. 한글로 정성 들여 쓴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영원한 사랑을 기약하는 길

평생의 사랑을 맹세했지만, 지병으로 먼저 떠난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그 편지에 적힌 이름이 원이엄마다. 원이엄마는 남편이 쾌차하길 기도하며 머리카락과 짚신을 섞어 미투리를 삼았다. 빨리 나아서 그걸 신고 함께 아름다운 계절을 즐기자는 것이었지만, 남편은 끝내 그 미투리를 신어보지 못한다.

이 애처로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원이엄마의 절절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이가 많았다. 안동시는 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자 했고, 안동댐 상류에 조성하는 공원에 그 사연을 더하기로 한다. 그렇게 탄생한 곳이 ‘안동호반나들이길’이다. 이 길에는 원이엄마테마길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붙여져 있다. 공원에는 원이엄마테마길과 함께 월영교가 만들어졌는데, 이는 안동을 대표하는 명물이 됐다. 월영교, 다시 말해 달빛그림자 다리다. 원래는 댐 건설로 수몰된 월영대가 이곳으로 온 사연에 더해 월곡면, 음달골이라는 지명을 참고해서 지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다리는 낭만적인 이름처럼 달빛이 아름다운 날 보아야 더 아름다운 다리이기도 하다.

2003년에 모습을 드러낸 이 다리의 길이는 387미터. 국내에서는 가장 긴 목책교로 다리 한가운데에 월영정이라는 정자를 조성해 두었다. 안동호는 낙동강 물길을 막아서 만든 인공호수다. 안동을 가본이라면 낙동강의 물길이 안동을 품으로 안아 돌아 흐른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주변의 산세도 거칠지 않고 넉넉한 인상을 보여준다. 마치 울타리처럼 둘러앉은 산 안쪽으로 강의 물줄기를 가로지르는 이 다리는 안동사람의 성품이 그러한 것처럼 곧고 단호하지만 속은 따뜻한 내유외강의 외모를 가졌다. 설계 당시부터 원이엄마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를 모태로 삼아 디자인했다는 것도 특징이다.

원이엄마의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법 싸늘한 날씨에도 안동호반나들이길로 가을밤 산책을 나온 연인이 적잖이 보인다. 원이엄마의 이야기를 알고 걷는다면 두 사람에게는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뭉게뭉게 피어난다. 조명을 받아 더 반짝이는 단풍 아래로 길을 따라 걸었다. 길 위에서 바라보는 월영교의 야경은 소문만큼이나 멋지다. 잔잔히 흐르는 안동호의 수면 위로 다리의 불빛이 반영을 만든다. 다리 가운데에 조성한 이 광경을 보고 반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저 멀리에서는 버스킹을 하는지 현란한 기타 소리가 울려 퍼진다. 두 청년이 놀라운 기교를 뽐내는 중이다. 사랑, 사랑. 언제 들어도 가슴을 울리는 단어. 원이엄마의 사랑 이야기가 전하는 안동에 지인의 사랑을 더한 아름다운 밤이다.

놀라움 가득한 명인의 솜씨

안동은 먹거리가 많은 지역이다. 찜닭이니 간고등어 같은 것은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한 안동의 음식. 물론 잘 알려진 것도 좋지만, 이번에는 민물고기 요리를 먹기로 했다. 결혼식에 함께 참석한 요리사의 추천이었는데, 식당의 주인이 경북을 대표하는 요리 명인이다. 안동 시내에서 차로 불과 10분여 남짓. 시 외곽의 식당이었는데, 가게가 그리 크지는 않아도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예약을 해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이는 김정순 명인이다. TV 한식대첩 시즌 1에 경북 대표로 출연해 전남 대표와 경합을 벌이다 준우승을 차지한 인물이다. 당시 프로그램에 함께 참가했던 지인은 충분히 우승을 차지할 만한 솜씨를 지녔다고 했다. 가게 이름도 본인의 이름을 따 ‘김정순 명인의 집’으로 지었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존심이 이름에서부터 느껴졌다.

김정순 명인은 이른 아침부터 버선발로 나와 일행을 반겼다. 그가 추천해 준 건 메기찜. 민물고기찜은 그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요리라고. 살이 많은 메기보다 잉어로 만드는 잉어찜이 주특기인데, 잉어는 흙냄새나 비린내를 잡기 어려워 경력 있는 요리사도 좀처럼 도전하기를 꺼린다. 주문을 넣고 잠시 기다리는 동안 찬이 깔렸다. 한눈에도 정갈한 솜씨다. 보는 것만으로도 구미를 당긴다. 잠시의 기다림 끝에 음식이 나왔다. 김 명인은 잉어의 맛도 보라며 일부러 메기 한 마리와 잉어 한 마리를 같이 조리해 내주었다. 두 가지 요리를 한 번에 차려 놓고 먹을 기회가 주어졌으니 고마운 일이다. 메기·잉어찜은 플레이팅부터 먹음직스러운 외양이다. 큰 접시가 가득 찰 만큼 커다란 생선 두 마리가 나란히 누웠고, 데친 부추와 팽이버섯으로 덮은 후에 빨간 고추 양념을 얹었다. 맛을 보기 전부터 침이 고인다.

입 안 가득 퍼지는 낙동강의 맛

원래 안동은 민물고기 요리가 아주 발달한 지역이다. 맑은 낙동강에서 잡히는 쏘가리며 잉어, 메기 같은 생선이 잔칫상에 자주 올랐다. 당연히 민물고기 특유의 잡내를 제거하는 기술이 여느 지역에 비해 특출난 편이다. 김정순 명인은 그런 안동의 민물고기 조리법을 이어받았다. 그의 찜 요리는 다른 지역의 명인들도 감탄할 만큼 뛰어난 맛을 자랑한다.

그의 찜 요리는 데친 콩나물과 함께 먹는다. 콩나물은 간간한 편. 데칠 때부터 적당한 간과 향을 더하지 않았을까 싶은 맛이다. 아삭한 식감도 상당히 뛰어나다. 양념이 잘 밴 메기의 살점을 떼어 콩나물과 함께 입에 넣었다. 아삭하게 씹히는 콩나물과 차진 메기살이 조화를 이루는 식감이다.

가장 놀라운 건 양념이다. 흔하게 먹었던 고추 양념이 아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매콤한 맛과 단맛, 짠맛 등의 밸런스가 훌륭하다. 무엇보다 독특한 나름의 향이 있다. 은은하게 혀를 휘돌아 감는 향기다. 음식을 목구멍으로 넘긴 이후에도 그 향기는 입안에 은은하게 남는다. 명인은 양념을 숙성해서 사용한다고 귀띔해 주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 더 있는 듯했다. 아마도 허브나 한약재 같은 재료를 더해 숙성을 시킨 게 아닐까?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양념이 워낙 좋으니 생선을 발라 먹고 난 후 밥을 비벼도 좋다.

안동을 여행하는 내내 이 집의 손맛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결국 다른 요리사 몇 명이 더 합류해 점심에 다시 방문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매운탕이다. 찜에서 맛보았던 양념이라면 매운탕도 기가 막힐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튀김도 함께 시켰다. 아무 때고 안동을 내려갈 수는 없으니 기회가 있을 때 많이 먹어둬야 한다는 식탐을 참기 어려웠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명인 스스로는 찜이 주특기라 했지만, 매운탕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찜과 매운탕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을 만큼 용호상박이다. 상을 꽉 채울 만큼 큰 옹기그릇에 매운탕이 가득 담겼는데, 국물을 떠먹다 못해 그릇째 들고 마실 만큼 깊은 맛이 일품이다. 함께 시킨 메기 튀김도 바삭한 식감과 쫄깃한 메기 살이 끊임없이 젓가락을 부른다.

이제 안동하면 고민하지 않고 첫손에 가야 할 집이 생겼다. 안동의 그 많은 먹거리 중 단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김정순 명인의 식당을 꼽겠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안동의 맛이다. 낙동강의 민물고기와 안동 땅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양념의 비법. 마치 낙동강이 주는 선물은 이런 맛이라는 듯한 놀라움이었다. 안동의 진가를 다시 발견한 느낌이다.

메기는 사시사철 훌륭한 보양식으로, 특히 입이 마르고 소변이 잘 나오지 않으며 피곤할 때 좋다고 전한다. 신장염과 부종에 효과가 있고 산후에 먹으면 기운을 보태 부기도 빼준다. 원기회복에 좋고 스태미나 증진에도 도움을 준다. 또 칼슘이 풍부해 뼈 건강에도 훌륭하다. 중요한 비타민 B가 풍부해 메기 한 마리면 하루 권장량을 100% 채울 수 있다. 뇌 기능 활성화를 도와 기억력 감퇴 예방에도 좋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