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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서울을 한 바퀴를 도는 트레일 코스 157km.
코로나19의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는 2020년 겨울. 답답함에 이은 무기력, 그리고 따라 나오는 짜증과 분노, 코로나블루를 넘어 코로나레드를 극복하고자 3년 전 완주하였던 서울둘레길을 다시 걸었다.

걷기는 인간이 본능에 충실함으로써 생명 에너지를 키우는 매우 일상적이고 쉬운 행위다. 식욕을 돋게 하고, 활력을 끌어 올리며, 이후에는 이완감을 느끼고, 수면을 돕는 다목적의 행위이기도 하다. 다만, 재미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더구나 위의 목적을 모두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저 잠시의 시간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빈도와 지속시간, 적절한 강도가 보장되어야 한다. 습관이 되고 일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걷는 곳이 다양해야 하고, 또 가까이 있어야 한다. 언제든 다른 행위와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재미가 보장된다. 그래서 서울둘레길이 “딱”이다.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둘레길을 선택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서울은 여느 한국의 도시처럼 분지 지형이다. 도시를 삥 둘러싼 산들이 이어져 있다. 이 산들을 이어가다 보면 길이 하나 만들어진다. 수락산에서 시작하여 불암산, 망우산, 아차산을 지나 한강을 넘고 나면 고덕산, 일자산을 지나고 이어 대모산, 구룡산, 우면산, 관악산, 삼성산을 지나게 된다. 이어 안양천을 쭉 따라 모처럼의 하천 길을 지나 다시 한강을 건너고, 봉산, 북한산,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봉산에 도달하면 둘레길 한 바퀴를 완전하게 돌게 된다. 서울에 살고 있다면 아마도 이 가운데 어느 산은 자신의 집에서도 보일 것이다. 만들어진 어떤 길이든지 집에서 30분 이내에 만날 수 있다. 언제든 작정하면 걸을 수 있다. 실상 어느 길을 걷다가 중간에 그만두더라도 마을까지, 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까지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을 만큼 우리 주위에 가까이 있다. 그야말로 서울 사람들은 축복받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서울둘레길은 산길, 숲길, 마을 길, 하천 길로 이어져 있다. 자연이 있고, 문화와 역사가 있고, 레저가 있으며, 우리의 삶이 고스란히 있다.

산길에 접어들면 제법 등산하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산 정상을 비켜서 지나가는 둘레길이기에 쉬엄쉬엄 걸을 수 있기는 하지만, 작정하면 언제든 정상을 향할 수가 있다. 둘레길을 벗어나 1~2시간이면 서울 명산인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관악산 정상을 찍을 수 있다.

숲길은 둘레길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길이다. 잠깐 백 보 정도의 오르막길이 있다가 곧 다시 능선을 만나게 되고, 내리막길이 있다고 해도 무릎에 부담 없이 느긋하다. 잘 다듬어진 숲길은 비교적 폭도 넓어 둘이서 손을 잡고 걷기에도 무난하다. 산책하면서 실컷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곳이다.

가끔 만나게 되는 마을 길은 옛 추억을 일깨워주는 길이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의 커다란 빌딩에 짓눌려 있다가 이렇게 마을 길을 걷게 되면 단층, 혹은 이층 정도의 나지막한 단독주택과 정원을 슬쩍 볼 수 있다. 간혹 뻥튀기를 하는 장면을 만나게 되고, 시장 거리를 걷게 되면 추억 여행이 된다. 혹여 예전 서울 어느 변두리에 살았었다면 꼭 다시 방문해 보자. 그 당시 느낌이 되살아 온다.

하천 길은 그야말로 안양천과 한강, 그리고 두 번에 걸친 한강 다리 건너기다. 평탄할 길에 탁 트인 전망을 보며 오로지 걷기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걷다 보면 조금은 지루해질 수도 있다. 먼발치의 풍경으로 눈을 즐겁게 하면서 그저 걸으면 된다.

서울둘레길은 8코스로 나뉘어 있는데, 마지막 8코스를 제외하고는 작정한다면 하루 1코스 (6시간~8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를 실천할 수 있고, 조금 여유를 부린다면 하루에 반 코스를 돌 수 있다. 8코스는 북한산을 돌아가는 코스이기에 이삼일이 걸린다. 그러다 보니 종주를 위해서는 열흘에서 이십일 정도가 걸린다.

서울둘레길은 코로나19로 인해 행동반경이 좁아지고 있는 요즘 같은 시절에는 작정하고 선택을 할 만하다. 추천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상에서 할 수 있는 목표를 만들어 보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간격을 좁혀나가야 행복해진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가고 싶은 곳은 너무 많고, 또 될 수 있는 대로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을 택하게 되지만, 결국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이다. 갈 수 있는 곳에서 가고 싶은 곳의 만족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야말로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걷기 여행을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서울 둘레길이 좋은 선택지가 된다.

둘째, 3~4시간 걸을 수 있는 코스, 6~8시간 걸을 수 있는 코스로 나뉘어 있어서 좋다. 반나절, 혹은 한나절 코스로 작정하고 걷기를 할 때 그에 맞는 코스를 선택하게 된다. 반나절은 중간에 식사 없이 여정을 마치고 이후에 식사를 하면 되고, 한나절은 중간에 점심 혹은 간식을 하면서 하루를 걷기에 푹 빠지게 하면 된다. 서울둘레길에는 대부분 중간에 식사를 할 수 있는 마을 길을 만나게 된다. 4코스인 대모, 우면산 코스 중간에는 양재시민의숲이 있어서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예 작정하고 정찬을 할 수도 있다.

셋째, 코스에는 시작점과 중간점, 그리고 마치는 곳에서 스탬프를 찍는 재미가 있다. 각 지역 특색에 맞춰 제작된 스탬프를 하나씩 찍어가며 흐뭇한 만족감을 확인할 수 있다. 스탬프에 도장을 모두 찍고 1코스 시작점 서울둘레길 안내센터에 가면 완주인증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대성당에서 발급받는 인증서만큼의 감격은 아니라고 하여도 서울을 제대로 걸었다는 자부심은 충분히 생긴다.

겨울이라고 해도 작정하고 걸어보자. 서울둘레길은 집에서 나와 30분이면 만날 수 있으니, 그 시작점은 어디 어도 상관없다. (단,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스탬프북은 서울둘레길 안내센터를 비롯하여 다섯 군데에서 구할 수 있으니 http://gil.seoul.go.kr/walk/main.jsp 를 참조하면 된다.) 스탬프가 있어 하루에 걸을 시간을 정하고 재미를 붙이고, 또 미션을 완성한다. 이렇게 걷는 것을 주말의 계획으로 수립했다면, 돌아오는 주말이 기대된다. 재미에 의미를 붙인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걷게 되면 사랑과 소통이 된다. 건강은 자연스럽게 제공된다.

코스마다 조금씩 다른 특징이 있으니 골라서 걸어볼 수 있다.

1코스: 수락-불암산

등산코스도 있어 가장 난도가 높은 코스다. 결심이 생기면 작정하고 수락산이나 불암산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완주의 시작과 종료 지점인 서울둘레길 안내센터가 있다.

2코스: 용마-아차산

망우리 공동묘지를 지나게 되는데,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어서 사색하면서 걷기에 좋다. 아차산에 접어들면 전망이 좋은 곳을 만날 수 있다.

3코스: 고덕-일자산

한강을 건너게 된다. 이후에는 나지막한 산이 계속 이어져서 평안한 숲길을 오랜 시간 동안 걸을 수 있다.

4코스: 대모-우면산

대모산을 넘어, 양재시민의숲을 지나, 다시 우면산을 넘게 된다. 서울 남부의 산을 종주하는 느낌으로 걸으면 된다.

5코스: 관악산

작정하고 관악산 둘레를 도는 코스이다. 그 중간에 서울대를 지나게 되는데, 캠퍼스 규모에 놀라게 된다.

6코스: 안양천

그야말로 걷기만 하면 된다. 안양천과 한강 변을 걷는 코스로 걷다 보면 바로 옆 자전거 도로가 있어 마음이 심란하기도 하다. 그래서 걷기가 지루하면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7코스: 봉산-앵봉산

한강을 건너 난지도 하늘공원과 월드컵 경기장을 지나고 나면 본격적으로 산길을 걷게 된다.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 반복되어 운동하기 딱 좋은 코스다.

8코스: 북한산

북한산이야 워낙 명산이라 둘레길을 걷는 것만도 만족스럽다. 은평뉴타운에서 시작하여 평창동을 지나가게 되는데 공동주택이나 단독주택 어디든 살고 싶은 곳을 스쳐 지나간다.

© 김종우 교수의 명상. 걷기.. 여행... 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