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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봄이 시작되었지만, 아직 봄이라기엔 쌀쌀한 3월 초입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봄은 따뜻하고 몽실몽실하고 부드러운 그런 느낌이지만 아직은 일교차가 큰 날씨로 아침저녁은 춥게 느껴지기까지 하고 낮엔 조금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날씨입니다.

이른 아침, 아직은 추운 공기에 이불 밖을 나가기 싫습니다. 눈은 떴지만, 몸이 아직 깨지 않아 졸림과 나른함이 가득합니다. 이럴 때 마시는 홍차로는 역시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English Breakfast)입니다. 영국식 아침이란 뜻으로 계란, 베이컨, 소시지, 베이크드 빈 등으로 풍성하게 차려진 영국식 아침 식사를 의미하는 단어기도 하지만, 홍차를 즐기는 분들에겐 유명한 홍차 레시피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홍차의 특성이 가장 잘 반영된 가장 홍차다운 홍차라고 할 수 있죠. 다른 말로 하면 무난하고 특별하지 않은, 으레 책에 홍차라고만 쓰여 있으면 상상하게 되는 종류의 홍차입니다.

+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찻잎 +

대개 잘게 부스러진 형태로 젖은 숲의 향기에 가까운 홍차 특유의 향기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 다가온,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

한국 브랜드의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일반적인 잉글리시 브랙퍼스트에 비해 연하고 맑은 느낌으로 다른 것을 넣지 않고 부담 없이 마시기 좋은 정도의 농도입니다. 투명하게 맑은 느낌 속엔 풋내 나는 갓 베어낸 잡초들의 상처에서 나는 젖은 풀 향기가 제법 섞여 있습니다. 싱그럽고 상쾌한 향기가 그 안에 스며 있고 은은한 가운데 홍차의 전형적인 향기가 있습니다.

+ 프리미어스 티,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

전형적인 홍차의 색을 갖춘 인도의 홍차 회사, 프리미어스 티의 잉글리시 브랙퍼스트입니다. 맛 역시 전형적인 홍차 맛으로 진하고 아삼 같은 몰티한 맛 가운데 약간의 상쾌한 듯한 시원한 향기가 있어서 꽤 훌륭한 맛을 보여줍니다.

3월 초 아침의 추운 느낌 속에서 물을 끓이고 찻잎을 꺼내고 다구를 준비합니다. 대개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로 사용하는 찻잎들은 자잘하게 잘려져 있거나 둥글둥글하게 뭉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티백이라면 아예 분쇄된 가루가 들어 있기도 합니다. 대중적인 홍차다 보니 대부분 브랜드에선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를 내놓고 있고, 어지간한 카페에서도 대개 홍차 하면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나 얼그레이에 한두 가지 더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라고 해서 굳이 그런 이름일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용도로 마시는 많은 홍차가 있습니다. 립튼의 옐로 라벨이나 혹은 아삼이란 이름만 적혀 있다거나 아니면 다른 지역의 브랙퍼스트들도 있습니다. 아이리시 브랙퍼스트 같은 홍차들이 있죠.

+ 트와이닝스, 아이리시 브랙퍼스트 +

인도의 감칠맛이 풍부한 아삼 홍차와 중국 홍차의 섬세한 맛이 섞인 느낌의 첫맛으로, 마실수록 점점 더 미묘하게 진하고 흙의 풍미가 있는 아프리카 홍차 특유의 개성이 또렷하게 섞이기 시작합니다. 꽤 진하고 떫은맛 역시 분명한 편인 홍차로 아일랜드인들의 취향에 맞춘 아침 차입니다.

+ 로네펠트, 아삼 아이리시 브랙퍼스트 +

아삼 홍차의 맛이 가진 비중이 높으면서도 가벼운 상쾌함과 크리미한 단맛, 떫은맛이 도드라지는 특징을 가진 아이리시 브랙퍼스트입니다.

중요한 건 아침을 깨우기에 충분한 홍차냐 하는 것입니다. 브랙퍼스트는 말 그대로 아침 차라는 뜻이니까요. 대개 맛은 진하고 무난하지만 카페인 함량이 높은 편인 차들이 주가 됩니다. 카페인 함량이 높은 찻잎은 대개 맛도 진한 편입니다. 그렇게 홍차 한 잔에 몸이 따뜻해지고 정신이 깨기 시작합니다. 아침의 몽롱한 정신을 깨우는 것은 홍차에 든 카페인의 효과입니다. 커피도 같은 역할을 하지만 홍차는 카페인 섭취량을 줄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대안입니다. 물론 카페인에서 무작정 벗어나기에 우린 너무 열심히 그리고 바쁘게 살고 있죠. 그래서 커피를 줄이고 싶은 사람들에게 카페인이 들어 있지만 카페인 섭취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홍차가 도움이 됩니다.

+ 루피시아, 벨 에포크 +

인도의 다즐링 홍차와 스리랑카의 실론 티, 케냐의 홍차 등을 블렌딩한 홍차로 은은한 단맛과 싱그러운 향기의 조합과 조금 가벼운 느낌이 있는 전형적인 홍차입니다. 아무래도 조합상 잉글리시 브랙퍼스트에 비해선 비교적 맑고 가벼운 느낌을 줍니다.

사실 제가 아침의 홍차 한 잔에 더 주목하는 기능은 카페인에 의한 각성 효과보다 아침에 마시는 따뜻함 그 자체입니다. 한의학에서는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적정한 체온을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몸이 차가워지는 경우가 많아 따뜻하게 하는 것을 강조하다 보니 그런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3월. 봄이 가진 따뜻한 이미지와 다르게 아침은 아직 춥습니다. 싸늘한 공기에 피부가 차가운 느낌이 있다면 아침을 더 따뜻하게 보내야 합니다. 추운 환경에서 수축된 말초혈관들이 확장되고, 더 활기차게 몸의 중심부에서 손발 끝, 피부까지 온기와 활력이 뻗어 나가야 합니다. 따뜻한 물로 족욕을 하거나 온탕에 들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생각보다 큰일이고, 준비가 쉽지 않습니다. 물을 끓이고 섬세함이라고 할 만한 게 딱히 필요하지 않은, 적당히 우려내서 마시기 괜찮은 홍차를 준비하는 것은 그렇게 번거로운 일은 아닙니다. 종이컵이나 머그잔에 티백 하나, 때론 정수기의 뜨거운 물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그렇게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면 따뜻한 기운이 뱃속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져 나갑니다. 홍차 속에 든 카페인은 몸 안에서 열을 더 많이 생산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혈액순환을 더 빨라지게 만들어 줍니다. 아침을 깨우는 신호를 보내는 거죠. 차갑지 않은, 따뜻한 음료만이 낼 수 있는 효과입니다.

간혹 위장이 약한 사람에게 카페인은 속 쓰림이나 신물이 넘어오는 증상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우유를 아주 약간만 부어 주는 것으로 위장 부담을 많이 완화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홍차가 아닌 따뜻한 죽이나 다른 따뜻한 음료를 마시는 것으로도 좋습니다. 적당히 데운 것보다는 완전히 한 번 끓인 것을 식혀가면서 천천히 한 모금씩 조금씩 마시는 것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아침의 따뜻한 음료는 차가워져서 늘어진 몸에 더 빠르게 시동을 걸어주고 활동하기 좋은 준비된 상태로 만들어줍니다. 거기에 약간의 카페인이 있는 홍차, 특히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로 대표되는 아침 차들은 아주 훌륭한 아침을 만들어 줍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침은 따뜻해야 합니다.

그리고 따뜻한 한 잔의 홍차,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는 그런 아침을 함께할 만한 정말 좋은 친구입니다.

© 제준태 원장의 열두 달의 수다(秀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