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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은 나의 힘이요 자존심

손가락을 오므려 주먹을 쥐어보라. 무게 60g, 길이 7cm의 자궁은 주먹만한 깔때기 모양이다. 임신하면 자궁의 크기는 500배에서 1000배까지 늘어난다. 자궁은 놀랍도록 튼튼하고 인내심이 강하다. 몇백 배로 늘어나고 커지려면 근육이 힘세고 질겨야 찢어지지 않고 버틴다. 자궁의 근육은 민무늬근이다. 따라서 내 맘대로 명령을 한다고 움직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율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불수의근이다.

아기가 자랄 수 있는 위쪽은 넓고 편편한 자궁저부이며 아래쪽 출입구인 자궁경부는 윤기 흐르는 도넛 같은 모양으로 질 쪽으로 열려 있다. 출산 때는 아기 머리가 통과해야 하므로 10cm 이상 열려야 한다. 산후에는 자궁근육이 씨줄 날줄이 오므라들듯 재빨리 수축해서 출혈을 멈추며 크기가 작아져서 6주 정도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간다.

백일잔치를 왜 하나? 일가친척, 친구들에게 아기 구경시켜주려고? 엄마도 아기도 100일 정도 되어야 몸이 회복되고 아기도 사람 꼴이 갖춰지니까 일가친척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떼로 사람들을 불러모아 출석도장 찍으며 시끌벅적 잔치 치르고 나면 면역 약한 아기들은 병균 세례받고, 몸 추스르지 못한 엄마들은 뒤끝에 꼭 큰 병치레를 한다. 백일잔치를 간소하게, 돌잔치는 집안 형편대로 하는 것이 어떨까.

최근의 내분비학계에서는 자궁이 일방적으로 난소호르몬의 지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호르몬과 단백질, 지방, 당분 등을 합성하고 프로스타글란딘을 만든다고 본다.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은 자궁을 수축시켜 배출과 경련을 일으키며 출산 때 자궁경부를 확장시켜서 아기를 내보낼 수 있게 돕는다. 이 물질은 혈관 벽에 작용해서 혈관 상태를 개선함으로써 고혈압이나 심장병을 일으키는 혈관경색을 억제한다고 한다. 놀라운 일은 계속된다.

베타 엔도르핀, 디노르핀 같은 천연 아편 물질을 만들어내니 자궁이 얼마나 기쁨을 느끼는지 알겠다. 배아가 자궁으로 촉수를 뻗어 날카롭게 파고드는 착상의 시기에 마리화나의 성분과 비슷한 아난다미드(Anandamide)를 열 배나 더 만들어낸다고 한다. 자궁내막이 허물어지는 월경과 배아가 자궁을 파고드는 착상은 여성에게 평화롭기만 한 과정이 아니다. 고통과 희생이 따른다. 이것을 능동적으로 해결하는 물질들을 분비한다는 것은 자궁이 지극히 정교하고 고도로 지적인 장기임을 드러낸다. 자궁은 힘센 중장비인 줄만 알았더니 인텔리전트 제약회사일세.

자궁이 천국을 만든다

선거 때마다 국민을 분열시키는, 청산해야 할 악습이 지역감정이다. 만나기만 하면 고향이 궁금하고 출신 따지고 학교 따지고 노골적인 편 가르기를 하는 데 사람들이 진절머리를 낸다. 어디서 굴러먹은 뼈다귀－즉 죽어서도 안 없어지는 뼈대, 몸의 원형질－의 고향이 궁금하고 그립고 잘해주고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뭘 어렵게들 생각하시는지.

대한민국 사람 모두 제 어미 자궁이 고향이며 버자이너(Vagina, 질) 출신 아닌 사람이 없으니 누구나 어미 뱃속과 품속을 그리워한다. 나를 이 세상에 낳아준 엄마에게 감사하고 ‘우리 아를 낳아줄’ 여자한테 잘하면 인생이 순조롭다.

천지만물은 왜 생겼나? 쓰이려고 놀려고 즐기려고 공부하려고……. 이렇듯 모두 생긴 이유가 있다. 그러니 ‘쓸데없다’라는 욕이 가장 치명적이다. 존재가치를 부정당하는 말이니까. 여자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당당한 궁주임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욕을 숱하게 먹고 살아왔다.

‘여자’ 여(女)(원래 ‘계집 여’지만 이제 ‘여자 여’라 부르자)가 붙은 글자치고 좋을 호(好)자 빼면 대부분 나쁜 뜻. 시기해서 미워한다는 질투(嫉妬), 간사할 간(奸), 간통할 간(姦) 등등. 질투는 남녀 공통이고 간신배는 권력 잡은 벼슬아치 중에 있으니 남성 전용이었고 간통은 여자 혼자서 하는 경우도 있나? 부정적인 단어에 언제나 곁다리로 따라붙어야 하는 여자 女변의 팔자는 이제 버려야 한다.

언어가 의식을 지배한다. 글자 모양을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양성평등 목표를 실천하는 교육부에 제안한다. ‘여자들이 쓸데없이’라거나 ‘쓸데없는 딸년’이라는 말로 소금 뿌려 풀죽이지 말라. 솔직해지자. 여자로 태어난 당신들 부럽다고. 우리 왕따시키지 말고 더 많이 사랑해주면 기쁘겠다고. 빼빼로 데이에 초등학생인 정은이가 제 엄마에게 했던 말.

“엄마, 내일이 빼빼로 데이라 엄마 거랑 아빠 거 사놨는데, 엄마 거를 조금 더 큰 거 샀어. 왜냐면 아빠가 우릴 만들어줘서 고맙긴 한데, 우리는 엄마 뱃속에서 나왔고 엄마가 우리랑 더 많은 시간을 같이 있잖아. 그래서 엄마 걸 더 큰 거로 샀어.”

박노해 시인은 말했다. 여자와 어린아이가 없는 곳은 지옥이라고.

© 이유명호 원장의 애무하면 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