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우 교수의 명상. 걷기.. 여행... 치유

걷기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이며, 생명의 원동력이다.
모든 병은 인간의 본능인 ‘움직임’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시작을 하며, 치유는 그 움직임의 첫 단추인 ‘걷기’에서 시작을 한다.
한의학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연치유력을 극대화하여 고통과 질병에서 벗어나 건강과 행복을 찾아가도록 도와준다. 또한 한의사는 자연 현장에서 이러한 길을 인도하는 데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저자는 걷기 여행의 스텝으로 참여하여 트레킹을 인도하면서 걷기가 힐링을 위한 최고의 작업임을 확인하였다. 동반자와 함께 걸으며 명상을 할 수 있고, 상담을 해줄 수 있으며, 트레킹을 하면서 자연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고, 힘든 몸과 마음을 치료하며, 밤 시간 진정한 이완과 행복을 위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모든 역량을 가지고 있는 직업이 한의사다.
본 칼럼에서는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걷기가 질병의 극복과 건강의 회복, 그리고 행복의 추구에 기여하는 바를 소개하고, 이러한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한의사로서의 역할을 공유하고자 한다.
[경력]
- 현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
- 현 강동경희대학교한방병원 화병클리닉 담당의
- 현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개발사업단 부단장
- 한방신경정신과학회장
- (사)한국명상학회 부회장

[저서]
- 2017 『마흔넘어 걷기 여행』
- 2016 『한의학상담』
- 2013 『화병 100문 100답』
- 2011 『기와 함께 하는 15분 명상』

김종우
김종우

걷기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이며, 생명의 원동력입니다. 저의 경험을 토대로 걷기가 질병의 극복과 건강의 회복, 그리고 행복의 추구에 기여하는 바를 소개하고, 이러한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한의사로서의 역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프로필 바로가기

나만의 아지트를 찾아서

 

KJW 0017-main.jpg



바쁜 일상을 지내다 보면 어디든 떠나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어디든'이라는 특정한 곳, 이른바 아지트를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실상 스트레스라는 것도 무엇 때문에 받고 있느냐에 대한 중요도 이상으로 그 상태에서 잠시 벗어나 “STRESS FREE”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스트레스 대처로 매우 훌륭한 방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별장이라는 곳이 그런 곳에 해당할 수 있다. 자신의 별장이라면 아마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나만의 공간으로 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항상 준비된 별장을 가지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최소한 별장지기가 있어서 언제 가더라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휴양지나 호텔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갈 수 있는 나의 공간을 찾기는 쉽지 않다. 또 나만의 아지트라고 하기에,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유혹하는 것이 많다 보니 거기에 가면 무엇인가 꼭 해야 할 것만 같고 도리어 마음이 흥분된다.


그래서 찾게 되는 곳으로 사찰 같은 곳이 있다. 예전에는 템플스테이와 같은 곳을 찾기도 했다. 아마도 마음에 쏙 드는 그런 곳을 만났더라면 그곳이 아지트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역시 사람을 만나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더구나 일종의 종교적 압박도 감내해야 한다. 새벽 기상과 108배, 소박한 공양이 때로는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늘 가는 곳이 그런 곳은 아니고 싶다.


도리어 단순하게 생각하고 까다로운 여러 조건을 없애고 선택한 곳이 ‘명상마을’이다. 일단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깔끔한 1인실이 준비되어 있다. 아침, 저녁이면 명상 지도를 해 준다. 명상을 가르치는 것이 업무인 사람으로서는 누구에겐가 명상 지도를 받는 것은 편안한 마음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된다. 안마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안마를 받는 느낌일 것이다. 그리고 건강한 음식이 중요하다. 맛에 빠지기보다는 뭔가 자신을 위한 음식이 필요하다. 마음이 맛에 빠지게 되는 것은 이완이나 안정을 통한 행복이 아닌 어떤 자극이나 유혹에 빠져버리는 것과 비슷하다. 자극이 없는 편안함과 행복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박한 음식이 필요하다.


또한, 무엇보다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자율이어야 한다. 물론 식사도 하지 않으면 그뿐이지만, 명상 참여 역시 자유고, 그 외의 시간에는 아무런 스케줄이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나머지 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이다. 1인실의 조용한 방은 온종일 소리로부터 자유롭다.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아무 소리 없음에 대한 경험은 평화로움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 밖을 나가며 자연이 있어야 하고, 당연히 걷기에 좋아야 한다. 최소한 1시간 정도는 마음껏 걷고, 쉬고, 호흡하고, 그러면서 명상할 곳이 보장되어야 한다.



“오대산 자연명상마을”, 나의 아지트다.


상봉역에서는 여러 곳을 갈 수 있다. 가까운 용문에서 춘천, 그리고 강릉 바다까지 갈 수 있는 역이다. 기차를 타고 불과 10분만 지나도 도심과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지난겨울에 이어 다시 찾은 오대산 명상마을. 이전에는 여럿이 와서 차를 가지고 왔지만, 이번에는 온전히 홀로 여정이라 기차를 이용했다. 진부역에 내려 시골 버스를 타고 진부 터미널에서 환승을 하여 월정사 앞 명상마을까지 가게 된다. 환승과 같은 도시의 시스템이 이곳에도 그대로 연결되어 있다.


KJW 0017-img-01.jpg


1인실 고요한 나의 공간이 주어진다. 그리고 이제부터 2박 3일 혼자만의 시간이다. 저녁 식사로 시작을 한다. 채식이라고는 하지만 꽤 먹을 것이 많아 식탐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명상마을까지 왔는데도 이곳 역시 비대면 온라인 명상 시간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1인실에서 자연과 맞닿은 상태의 온라인 명상은 집중도를 높이는 데는 도리어 도움이 된다. 눈은 반쯤 뜬 상태의 명상 중 힐끗 바라보는 밖의 풍경이 다시금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KJW 0017-img-02.jpg


오후 8시부터는 진공 상태. 밖은 칠흑같이 어둡고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목조 건물인 탓에 간혹 삐꺽거리는 소리로 인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진공 상태에서는 무엇이든 채워 넣을 수 있다. 아지트에서 하기 가장 좋은 일은 책 읽기와 글쓰기다. 읽는 책의 구절은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쏙쏙 빨려 들어오고, 밖으로 토해지는 글은 술술 나온다. 바로 진공이 주는 힘이다. 간간이 그 진공에 명상이라는 “空”이 추가되니 최고조의 진공 상태를 만나게 된다.


이런 진공 상태에서 잠을 청하면 의식이 점점 더 또렷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생각은 더욱더 또렷해지고 이어지는 꿈은 더욱더 생생하다. 그리고는 다음 날 새벽 해가 솟는 시점에서 눈이 뜨인다. 자연의 리듬에 맞춰 깨어나게 되는 것이다. 새벽에도 온라인 명상이 열린다. 해가 뜨는 시간에 어제 남겨둔 마지막 몇 페이지의 책을 읽고 명상에 참여한다. 명상 내내 책에서 준 지혜를 몸에 담아보고 있다.


KJW 0017-img-03.jpg


아침 식사를 하고 나면 자유의 시간이다. 센터 정원을 산책해도 좋지만, 이곳은 숲이 좋은 오대산이다. 그래도 명상에 왔으니 산행에 대한 충동은 어쩔 수 없다. 상원사에서 시작하여 오대산 중대 사자암을 지나 적멸보궁을 다녀오고, 이어 상원사에서 월정사로 이어지는 선재길을 걷는다. 종일 걷는다는 것은 홀로 여행에 있어서 즐겨야 할 리스트 중 하나이다. 혼자서 온종일 무엇인가 한가지 행동을 해야 한다면 걷기가 가장 쉽고 또 의미가 있다. 더구나 도심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는 작정하고 "화두" 하나를 들고 걸을 수 있다. 책을 읽고, 또 명상의 시간도 가졌으니 생각할 거리는 튀어나온다. 그 튀어나온 주제를 가지고 자문자답의 시간을 가지면서 걷기만을 하면 된다.


KJW 0017-img-04.jpg


아지트... 코로나19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오로지 나에게 머무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주어지는 곳. 그곳에서 혼자 할 수 있고, 만족할 수 있고, 의미 있을 무엇인가를 할 수 있으면 된다. 걷고, 명상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리고 그것을 사색으로 담아내면 된다.


이렇게 2박 3일을 보내고 나면 영적인 자산이 축적된 느낌이 든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활기찬 생활을 한다.

그리고 언제든 쉼과 깨달음이 필요하면 다시 아지트로 찾아오면 된다.



© 김종우 교수의 명상. 걷기.. 여행... 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