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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연일 올라가는 기온은 사람을 쉽게 지치게 합니다. 티타임을 가지는 느긋함은 꽤 즐거운 휴식이지만 더운 곳에서 뜨거운 차를 마시는 건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여름은 그렇게 즐겁기만 한 계절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차는 스스로 우려내서 마시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뜨거운 물을 이용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다른 계절보다도 차를 덜 마시게 되기 마련입니다. 카페나 남이 내려준 음료, 혹은 마트나 편의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병에 담긴 음료들이 여름철에는 더 손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간혹 여름에 열을 내려주는 차가 없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녹차가 성질이 차다고 들었다는 말도 곁들이기도 하죠. 결론만 말하자면 뜨겁게 마시는 이상 어쩔 수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체온보다 따뜻한 물을 마시면 몸은 당연히 일단 더 뜨거워집니다. 그리고 몸으로 들어간 음식물의 온도가 체온과 평형을 이룰 때까지는 체온을 조절하기 위한 인체의 생리 반응이 일어나게 됩니다. 열을 피부 쪽으로 옮기기 위해 모세혈관들이 확장되고 땀이 나면서 열을 식혀 주는 열교환을 위한 기능들을 활성화합니다. 차의 약효를 떠나 물리적인 열 자체에 대한 반응이 우선으로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뜨거운 차를 마시면서 열을 식혀 주는 효과가 있다고 하는 건 사실 마시는 당장에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는 거죠.

상온의 물에 찻잎을 넣고 그대로 창가에 두고 햇빛을 받은 물이 뜨거워지면서 차가 우러나게 하는 썬티(sun tea). 여름철 물 끓이는 것도 덥게 느껴질 때 차를 우려내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간혹 녹차는 성질이 차갑다거나 백차는 열을 내려서 여름에 좋다거나 하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녹차나 백차도 뜨겁게 마시면 마신 직후엔 체온이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침에 몸이 차가운 사람에게 따뜻한 죽이나 국물 요리를 권하는 이유와 마찬가지입니다. 녹차의 성질이 차갑다고 하는 이유는 위장에 그만큼 부담을 주기 때문입니다. 몸이 약하고 위장이 허약한 체질은 대개 몸에 에너지를 생산하는 힘도 떨어져 있는 편입니다. 그런 분들이 말차나 진한 녹차, 청향형 우롱차 등 산화가 적게 되고 가공 단계가 적은 차를 마실 경우에 속쓰림이나 위식도역류 등의 증상을 보이시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반면 산화나 가열 과정이 더 많은 홍차, 농향형 우롱차, 호지차 같은 차들의 경우에는 이런 부작용이 덜한 편입니다. 물론 녹차가 지끈거리는 두통을 치료하는 목적으로도 사용하는 등의 작용 역시 성질이 차갑다는 말의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약성이 차가워도 뜨겁게 마시면 그 순간은 뜨겁습니다.

그럼 시원하게 차를 마시면 더위가 좀 더 해소되겠죠? 그래서 시원하게 내는 차들이 있습니다. 예전엔 그냥 아이스티라고 간단히 불렀지만, 커피만큼이나 차도 다양해져서 여러 가지 방법들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우선 차를 뜨거운 물로 2배 이상 진하게 우려낸 후 얼음에 통과시켜 빠르게 냉각시키는 급랭법이 가장 기본적인 아이스티 제조법입니다. 뜨거운 물에서 차의 성분들이 우러나기 때문에 맛이 충분히 우러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뜨겁게 우려내서 서서히 식히는 것에 비해 차의 색이 투명하고 맑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이 방법에 사용하는 차는 어떤 차라도 사용할 수 있지만 대개 인도의 닐기리, 스리랑카의 딤불라처럼 타닌 성분이 적은 종류의 차가 맑고 투명한 색을 내기 때문에 선호되는 편입니다.

+ 루피시아, 아라비안나이트 +

차를 우려낸 직후 얼음에 통과시켜 급랭. 여름에는 아이스티로 마시면 잘 어울리는 과일이나 꽃을 넣은 차들을 내놓는 브랜드들이 많습니다.

얼음을 사용해야 하므로 얼음의 준비가 필요하고 번거롭다는 단점이 있지만, 확실히 차갑고 시원한 느낌으로 마실 수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더 시원하게 즐기고 싶으면 얼음으로 급랭시킨 후 다시 얼음을 추가로 넣으면 됩니다. 얼음이 녹으면서 농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농도를 처음부터 신경 쓰는 것이 더 맛있는 아이스티를 만드는 요령입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아예 차가운 물에 찻잎을 넣고 6시간에서 18시간 정도 냉장고에 두고 우려내는 냉침법이 있습니다. 좀 더 빠른 추출을 위해 찻잎을 적실 정도만 뜨거운 물을 부어서 찻잎이 살짝 불어난 후 차가운 물과 얼음을 넣어 우려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온도가 낮기 때문에 떫은맛을 내는 성분들이 잘 우러나지 않아서 부드럽고 가벼운 질감을 가진 향긋한 차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온에서 잘 우러나는 성분이 감소하는 만큼 향이나 맛이 덜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변형된 방법으로 우유나 탄산수에 찻잎이나 티백을 넣고 우려내는 우유 냉침, 탄산수 냉침 등 다양한 소재들을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대만의 샤오르쯔라는 곳의 냉침 보틀입니다. 찻잎이 그대로 들어가 있는 것이 인상적이죠. 이렇게 매대에 진열해 놓고 판매를 하고 있어 사서 그냥 마시면 됩니다. 대만에서는 냉침한 차를 파는 매장이 꽤 흔하고 현장에서 바로 급랭 시켜 담아주는 브랜드도 있습니다.

요즘 새로운 방법의 하나로 거름망 위에 찻잎을 올리고 그 위에 더치커피용 기구를 사용하거나 아니면 얼음을 올려두고 얼음이 녹으면서 한 방울씩 물이 떨어지면서 차가 추출되게 하는 방식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 역시 고온에서 추출되는 성분이 잘 우러나지 않기 때문에 향이나 맛의 농도가 덜해질 수 있지만, 향기가 아주 좋고 맛도 깔끔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집에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콜드 드립용 기구입니다. 커피용이지만 차를 우려낼 때도 훌륭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대만의 십간차옥이란 곳에서 더치커피 방식으로 홍차를 내려서 파는 것을 마셔 본 이후 알게 된 방법인데요. 냉침 보다도 더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방법들의 주의 사항으로는 여름의 높은 온도에 습기까지 있는 곳은 세균번식이 빠르므로 급랭법을 제외한 방법은 가급적이면 냉장고에서 하시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냉장고에 빈 곳이 없다거나 다른 음식들의 냄새가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면 가급적 직사광선을 피해 서늘한 곳에 두고 추출할 때 얼음을 이용해서 온도를 낮게 유지되도록 하시는 게 좋습니다.

+ 피코크, 유기농 시원한 찬물 하동녹차 +

티백으로 된 제품으로 티백에 녹차와 가루녹차가 같이 들어 있어서 선명하고 진한 녹색을 보입니다. 얼음 물에 우려낸 뒤 흔들어서 가루녹차가 잘 나오게 해주면 예쁜 수색의 차를 간편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 오설록, 콜드브루 시리즈 +

오설록의 세작과 화산우롱을 콜드브루로 제품화시켜 맛이 깔끔하고 아주 훌륭합니다. 그 외에도 마트나 편의점에서 다양한 차를 우려내 페트병에 담아 파는 제품들을 만날 수 있는데 이렇게 공장에서 제조한 음료를 RTD라고 부릅니다.

차가운 차 한 잔으로 시원한 여름을 보내는 것,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위장이 약하고 몸이 차가운 허약체질이신 분들은 차가운 것을 많이 마실 경우 몸의 컨디션 자체가 나빠지고 기운이 소모됩니다. 뜨거운 것을 마셨을 때 열을 배출하려고 하는 반응처럼 체온보다 낮은 온도의 음료를 마시면 그 음료를 뜨겁게 데워주는 반응이 일어나게 됩니다. 열을 그만큼 많이 소모하게 되고 열을 만들어내느라 에너지도 많이 필요하게 됩니다. 몸이 건장하고 근육량이 많고 열도 많은 사람에겐 남는 열 정도겠지만 위장이 차가운 체질엔 굉장히 부담되는 상황이 됩니다. 그런 분들은 여름에 더워서 마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도 위장기능이 떨어지는 걸 체감합니다.

차도 차갑게 마시면 마찬가지입니다. 여름엔 몸 안이 차가워지고 밖이 뜨거워지기 쉽습니다. 위장이 약하신 분들은 오히려 여름에 따뜻한 음식을 먹어서 몸 안을 따뜻하게 해주셔야 합니다. 자신의 체질을 고려해서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당하고 건강한 여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 제준태 원장의 열두 달의 수다(秀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