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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한 달도 슬슬 저물어갈 때쯤이면 생각나는 곳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 가로등마저 없어서 빛공해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그곳, 경북 영양이다.

아시아 최초의 국제밤하늘보호공원

가는 길은 정말 멀다. 비단 서울이 아니어도 전국 어디서 출발하든 마찬가지다. 기본 3시간은 감수해야 한다. 심지어 같은 경북에 지도상으로 얼마 멀지 않아 보이는 경주에서도 3시간. 서울, 대전, 부산은 말할 것도 없다. 그간 경북 영양을 몇 번 다녀왔지만, 매번 5시간 반 이상을 각오하고 출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이면 추천 여행지로 첫손에 꼽는 곳이 여기다. 그만큼 찾아오는 사람이 적고 자연이 잘 보존돼 있어서다.

경북 영양에 뭐가 있어서 여행을 가냐고 묻는 이가 간혹 있는데, 반대로 생각하면 그래서 갈 곳이 꽤 많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노지 계곡도 지천으로 깔려 있고, 물속에는 물고기가 가득하다. 가재도 많고 다슬기도 많다. 심지어 울창한 숲이 곁에 있으니 쏟아지는 땡볕을 피하기 좋다. 한마디로 시원한 계곡을 끼고 놀다 오기 좋다는 뜻이다.

국제밤하늘보호협회 (International Dark-sky Association, IDA)라는 곳이 있다. 빛공해가 없는 밤하늘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리고 그런 지역을 보호하자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협회다. 이곳에서 인증받은 지역은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된다. 그런데 빛공해가 없는 밤하늘을 볼 수 있는 지역이 전 세계적으로도 별로 없단다. 심지어 그토록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는 일본조차 국제밤하늘보호공원 지정을 처음 받은 게 2018년이다. 오키나와와 타이완 사이에 있는 작은 섬인 이시가키국립공원이 처음이다. 작년에는 도쿄에서 남쪽으로 180킬로미터 떨어진 코즈시마가 두 번째로 국제밤하늘보호공원이 됐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시아 최초의 국제밤하늘보호공원은 한국에 있다. 경북 영양의 수비면 일대. 2015년에 이 지역이 국제밤하늘보호협회로부터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승인받았다. 일본조차도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 지정받는 마당에 육지 한복판에 있는 곳이 최초로 인정을 받은 것. 이만하면 경북의 영양이 얼마나 오지인지 단박에 알 수 있겠다. 그만큼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고 앞으로도 이 지역의 어둠은 지켜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이쯤 되면 밤하늘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뭐냐고 묻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구태여 불편하게 그래야 하냐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도 불편하고 찾아가는 여행자도 불편할 텐데. 그렇게 묻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인간이 불편하면 그 땅은 훨씬 건강해질 수 있다고. 다른 동물과 식물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불편할 필요가 있다고. 그래야 공생이 가능하지 않을까.

밤의 어둠을 지켜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만큼 별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맨눈으로 보지 못했던 그 많은 별이 영양의 수비면에서는 뚜렷이 보인다. 먼 옛날 길 위를 걷는 여행자에게 길잡이가 되어 주었던 그 많은 별자리와 별이 모습을 드러내고 찬란하게 빛나는 목성이 황홀한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수비면의 국제밤하늘보호공원에 반딧불이천문대가 만들어진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이 공원은 단지 둘러보고 떠날 곳이 아니라 낮에는 공원을 가로지르는 냇가에서 놀고, 밤이면 천문대에 올라 별을 보는 식으로 즐기는 곳이다.

별과 반딧불을 벗 삼는 여행

해가 저물고 저녁 8시쯤 어둑하게 어둠이 깔리면 비로소 천문대의 문이 열린다. 천문대는 제법 볼거리가 많다. 1층 로비에는 별과 우주, 천문에 관한 온갖 볼거리가 마련돼 있다. 한쪽에서는 VR로 우주 탐험을 할 수도 있다. 어른보다는 초등학생 이하의 아이를 위한 공간이다. 천체관측은 한 번에 정해진 숫자만큼 팀으로 움직이며 진행한다. 순서를 기다렸다가 가장 먼저 들어가는 곳은 천체투영실. 이곳에서 밤하늘의 어둠이 중요한 이유를 알려주는 영상을 시청하고 3층의 관측실로 이동해 본격적인 천체관측을 시작한다.

천체관측은 사실 어느 정도 운이 필요하다.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밤이라면 머리 위로 쏟아지는 온갖 별자리를 다 볼 수 있다. 이런 날에는 천문대의 연구원이 레이저 포인터로 별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곳에 깃들어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이다. 연구원의 입담이 워낙 뛰어나서 처음 방문한 사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별자리 이야기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어지간히 밤하늘에 관심 있는 이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머리 위로 흘러가는 은하수를 처음 보게 되는데 이때는 어김없이 감탄이 터진다.

운이 없는 날은 구름이 잔뜩 낀 날이다. 혹은 보름달이 휘영청 뜨는 날. 보름달이 뜬 날은 달빛이 워낙 밝아서 도리어 별을 보기가 어렵다. 그럴 때는 주관측실에서 천체망원경으로 달의 표면을 보여준다. 보름날의 보름달은 얼마나 밝은지, 그리고 달 표면의 크레이터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눈망울에 맺힐 때 드는 경외감은 얼마나 큰지. 이 순간에는 어른도 아이가 된다. 구름이 잔뜩 낀 날은 보조관측실에서 망원경을 바꿔가며 구름 사이로 관측이 가능한 별을 보게 되는데, 이 정도만 해도 밤하늘의 아름다움은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천문대는 낮에도 운영하니 밤까지 기다리기 어려운 이는 시간을 맞춰 방문해도 괜찮다. 이때는 태양망원경을 이용해 태양의 흑점과 홍염을 볼 수 있는데, 이 경험 역시 보는 이로 하여금 커다란 감동에 휩싸이게 한다.

7월 말부터 이 공원을 자꾸 떠올리는 이유는 8월 중순부터 나오는 반딧불이 때문이다. 보통 한국의 반딧불이는 6월 중순경부터 나오는 애반딧불이와 8월 중순부터 모습을 드러내는 늦반딧불이로 나뉜다. 애반딧불이는 불빛을 짧게 반짝이고 수줍은 성격이라 나무 뒤로 숨어다닌다. 늦반딧불이는 정반대다. 불빛을 길게 반짝인다. 성격도 호기심이 많아 사람을 겁내지 않는다. 영양의 국제밤하늘보호공원은 국내에서 늦반딧불이의 개체 수가 가장 많은 곳이다. 덕분에 늦반딧불이가 절정을 이루는 8월 말~9월 초경에는 눈앞으로 날아다니는 수십~수백 마리의 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 이때 주의할 점은 절대로 잡지 말 것. 나 하나가 잡는 반딧불이야 몇 마리 되지 않겠지만, 오는 사람마다 그렇게 할 경우 개체 수가 순식간에 줄어들기 마련이다. 아무리 아름답고 욕심이 나더라도 지킬 것은 반드시 지켜주기를 바란다.

이곳에 이토록 많은 반딧불이가 있을 수 있는 것도 이곳이 그만큼 청정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받을 만큼 주변의 일대가 깨끗하니 이토록 많은 생명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존재다. 이곳에서 주인공은 인간이 아닌 자연. 밤하늘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비단 별자리를 보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걸, 이곳에 가 보면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간짜장보다 맛있는 짜장면

이만큼 자연이 살아 있다는 건, 다시 이야기하지만, 사람의 손이 그만큼 덜 탔다는 의미다. 수비면은 거주하는 이도 많이 없고 당연히 편의시설도 부족하다. 공원에서 하루를 보내며 먹을거리를 사려고 해도 차를 끌고 30분은 나가야 한다. 유동인구가 적으니 식당도 많지 않을뿐더러, 조금만 시간이 늦어도 문을 닫아서 식사하기가 어렵다. 재미있는 건, 생각보다 중식을 취급하는 가게가 많다는 것. 그런데 대체로 중식 전문식당이 아니라 한식과 중식을 겸하는 가게다. 그중에 중식만 하는 집이 딱 한군데 있다. ‘대명각’이라는 이름의 이 중식집은 수비면 소재지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가게도 그리 크지 않다. 기껏해야 테이블 4~5개 정도. 문을 연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 외관도 깔끔하고 내부도 잘 정돈돼 있다. 물론 이곳에도 제육볶음 같은 한식 메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짜장면, 짬뽕, 탕수육, 우동 같은 중국 음식이다.

이런 곳에서는 요리 같은 걸 시켜서 모험하는 것보다 가장 기본이 되는 걸 먹는 게 좋다. 중국음식점에서 기본은 역시 짜장면. 보통 짜장면은 소스를 미리 만들어서 들통에 넣어뒀다가 면 위에 부어서 내주는지라 바로 소스를 볶아서 주는 간짜장을 더 선호한다. 함께 간 일행은 가볍게 짜장면을 먹겠다고 했고, 나는 간짜장을 주문했다.

역시 시골의 중국집이기 때문인지 시간은 꽤 걸렸다. 주문부터 요리가 나오기까지 얼추 20분은 걸린 듯하다. 요리가 나올 때쯤 기계 돌리는 소리가 나기에 슬쩍 주방 안쪽을 들여다보니 즉석에서 면을 뽑고 있다. 식당을 잘 들어온 것 같다는 생각이 이때부터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식사가 나왔다.

하나씩 주문한 것이 앞에 놓이는데, 어라? 짜장면이 간짜장보다 훨씬 맛있어 보인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여서 그런 게 아니라 때깔이 훨씬 좋다. 누가 봐도 갓 볶은 소스다. 주인장에게 물었다.

“짜장도 바로 볶아서 주세요?”

“네.”

“그럼 간짜장하고 차이가 뭐예요?”

“거의 없어요. 들어가는 재료만 조금 달라요.”

아니, 그런데 이 때깔은 차이가 너무 크다. 윤기가 흐르는 짜장 소스라니. 상대적으로 간짜장이 더 일반 짜장처럼 보일 정도다.

슥슥 비벼서 맛을 본다. 짜장면을 시킨 일행이 “으흠!” 하며 만족스러운 표현을 터뜨렸다. 간짜장도 한 입. 오오, 맛있다. 혹시나 해서 짜장면도 한 입 뺏어 먹었는데, 이런! 기가 막히다. 무엇보다 양파를 많이 쓰지 않았다는 점이 두드러지게 느껴졌다. 카라멜 소스의 단맛도, 양파의 단맛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오로지 춘장을 잘 튀겨서 채소를 볶아낸 맛으로 승부를 본다. 여기서 이런 집을 만나게 될 줄이야. 영양이 시골 오지라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건만, 완전 오산이었다.

둘이서 각자 한 그릇씩 순식간에 비워버렸다. 그제야 다른 요리도 궁금해진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러모로 무리. 일단 술 없이 요리를 먹을 자신이 없었다. 다시 30분을 운전해서 공원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그래도 생각지 못한 곳에서 훌륭한 중식집을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좋아졌다. 이 집 때문에라도 영양을 다시 가야 할 명분이 생겼다.

춘장은 콩을 밀가루와 소금으로 발효해서 만든 된장의 일종이다. 그래서 콩과 비슷하게 식물성 단백질이 풍부하고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몸속의 노폐물을 제거하는 기능이 있어서 변비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