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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철을 맞아 동해안이 들썩들썩했다. 그러나 그것도 동해 북부지역이나 그렇다. 삼척 아래로 내려오면 비교적 해안도 한가하다. 울진 구산해수욕장은 동해안의 바닷가 중에서도 캠핑과 물놀이를 함께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제주도 못지않은 투명한 바다

경북 영양에 간 김에 태백산맥의 마지막 자락을 넘어 동해안에 들르기로 했다. 특히나 강릉 아래로 동해-삼척을 지나 울진과 영덕 쪽으로는 좀처럼 발길을 들이기가 쉽지 않다. 이번 기회에 울진에서 하루를 더 보내기로 했다.

영양에서 울진으로 넘어가는 길은 여럿이 있다. 그중에서도 영양읍을 거쳐 영덕으로 넘어가는 창수령은 ‘육지 속 섬’인 영양에서도 가장 오지에 해당하는 곳이자, 최고의 뷰를 보여주는 길목이다. 강원도의 어지간한 고개를 넘어가는 것 못지않게 구불구불한 도로가 이어진다. 한참을 달려 재의 정상 즈음에 이르면 장대한 풍광을 만난다. 뒤로는 끊임없이 물결치는 산맥이 한눈에 담기고, 앞으로는 저 멀리 동해가 아지랑이처럼 드러난다. 천천히 차를 몰아 코너를 돌 때마다 조금씩 다른 경관이 나타나는데, 그때마다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렇게 한 시간 반쯤을 달리면 영덕을 지나고 마침내 울진으로 올라가는 7번 국도에 오른다.

이쪽은 같은 7번 국도여도 속초-양양-강릉 일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강릉 쪽에서는 사라져버린 옛 모습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시간의 풍랑에 삭아버린 건물이며 점점이 보이는 마을이 마치 타임캡슐 속에 담아둔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아련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목적지는 구산해수욕장으로 잡았다. 이쪽 일대에 숙박시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할 때 쓰는 캠핑카를 가지고 온 터라 차박을 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구산해수욕장은 해송 방풍림을 따라 캠핑 구역이 조성돼 있고 가격도 싼 편이다. 심지어 근래에 전반적인 시설을 모두 손봐서 어지간한 캠핑장을 굳이 갈 필요가 없을 듯했다.

후포항에 들러 대게를 쪄서 포장하고 10분 거리인 해수욕장으로 들어섰다. 성수기여서 동네 어르신들이 해수욕장 관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지 들어가는 입구부터 열 체크와 출입자 기록, 팔목 밴드 수령까지 모든 일을 나눠서 하고 있었다. 시원한 소나무 그늘에 의자를 가져다 두고 주르륵 앉아서 소일하는 그 모습이 괜히 재밌어 보이기까지 했다.

안내해 주는 구역에 차를 두고 바닷가부터 나갔다. 두 딸내미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감탄이 터졌다. “꺄아!!” 아니, 울진의 바다가 이렇게까지 예뻤던가? 울진의 바다가 처음도 아닌데, 제주도의 맑고 투명한 바다가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이곳은 괌인가 울진인가

해수욕장은 물의 색부터 주변의 전경까지 마치 괌이나 사이판을 연상케 한다. 미국의 스쿨버스와 영국 런던에서나 볼 법한 이층버스가 한쪽에 놓여 있고, 해변에는 야자수 이파리로 만든 파라솔이 줄이 서 있다. 요즘 한창 유행인 캠핑 트레일러만 이용할 수 있는 구역도 따로 조성해 놓았다. 바닷가 뒤편의 해송 방풍림 안쪽은 통째로 캠핑 구역이다. 차박이든 오토캠핑이든 이용하는 사람 마음이다. 가격은 15,000원. 전기 사용료는 5,000원. 20,000원이면 해수욕도 하고 캠핑까지 즐길 수 있으니 여름휴가로 최적이 아닐까 싶다.

해수욕장에 딸린 개수대 시설도 깨끗하고 샤워실도 신축 건물이다. 이곳을 다녀간 다른 이는 SNS에 ‘호텔급 시설을 갖춘 해수욕장’이라고 적어두었다. 그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로 뛰어들었다. 멀리 방파제가 있어서 파도가 높지 않다. 4~5미터 정도까지는 키 140~160센티미터의 사람에게도 전혀 무리 없이 놀 만한 깊이다. 아직 수영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두 딸내미는 구명조끼를 입고 노느라 여념이 없다. 물에 떠서 자기들끼리 싱크로나이즈도 하고, 나름 지금까지 배운 수영 연습도 해 본다. 평소 같았으면 바다에 잘 들어가지 않는 아내도 이번만큼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만큼 투명하고 아름다운 바다다.

한창 물놀이를 하고 있는데, 수면 아래로 물고기들이 보인다. 거꾸로 몸을 틀어 들어가니 손바닥 두 개 만한 크기의 물고기가 사람들의 다리 사이로 유유히 빠져나가며 놀고 있다. 그 뒤로 전어가 아닌가 싶은 물고기 떼가 졸졸 쫓아다닌다. 동해안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싶다.

놀다 지치면 나와서 수박을 먹고, 다시 들어가서 놀다가 나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이번 여름휴가는 아쉽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만큼 노는 데 충실했다. 이틀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에메랄드빛 바다에 잠겨 우리만의 시간을 보낸다. 둘째가 묻는다. “다음에 여기 또 와도 돼?” 잠시 고민을 하다가 지도 앱을 열어서 거리를 재봤다. 울진이 무척 멀다고 생각했는데, 불과 4시간 반이다. 이 정도면 마음먹고 충분히 올 만한 거리다. “당연하지.” 대답을 듣고서야 두 딸이 배시시 웃는다. 너희 모두 여기가 마음에 들었구나. 그럼 다시 와야지. 이번 여름이 아니어도 내년에 다시 오면 되지. 굳이 여름이 아니어도 다시 오면 되지. 여긴 그럴 이유가 충분한 곳이니까.

석양이 아름다운 죽변항의 유명 식당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고민이 됐다. 요즘은 7시 반이 넘으면 휴게소에서 식사가 안 된다. 코로나19 이후로 휴게소 내 유입 인원을 통제하기 위한 방책이다. 그런데 지방 출장이 많은 사람에게는 이게 무척 괴로운 일이다. 더구나 가족을 모두 데리고 여행하는 중에는 고속도로를 빠져나가 식사를 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래서 울진을 벗어나기 전에 저녁을 먹기로 했다.

울진은 후포항이 워낙 유명해서 알려진 식당이 대체로 그쪽에 몰려 있다. 다른 지역으로는 입소문이 난 식당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죽변항 쪽으로 몇 곳이 있다. 그중에서도 ‘회 대게 조개 파는 총각’이라는 별난 이름의 식당은 한 번쯤 가볼 만하다. 마침 시간이 해가 막 저물기 시작하는 때였다. 죽변항은 해 질 무렵 찾아가기에 좋은 포구다.

식당 앞에 주차하고 나니 서쪽 하늘이 빨갛게 물들었다. 고기잡이배가 통통거리며 바다를 향해 포구를 빠져나가고 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머릿속에서는 Kings of Convenience의 ‘Fever’가 메아리처럼 울린다. 저 모습을 바라보며 노래 한 곡을 듣다 보면 어느새 해는 저 멀리 산 너머로 사라지겠지. 오렌지빛 하늘은 점차 보랏빛으로 물들다 이내 짙은 쪽빛으로 잠긴다. 이제 식사를 할 시간이다.

‘회 대게 조개 파는 총각’은 이 일대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식당이다. 그만큼 돈이 아깝지 않은 찬 구성과 맛을 보여준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이틀을 놀았더니 물회 생각이 간절했다. 물회 둘에 회덮밥 하나. 어차피 술도 마시지 못할 텐데 구태여 회까지 시킬 생각은 없었다. 다만 저녁이라 이런 주문이 식당 입장에서는 달갑지는 않을 테니 그게 조금 미안할 따름이다.

주문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차림이 나왔다. 그런데 생선구이에 서더리탕까지 나온다. 아내가 놀라서 물었다. “주문 잘못한 거 아냐?” 아니다. 여기는 이렇게 나온다. 울진 출신의 지인이 꼭 가보라며 추천해 준 집인데, 가격 대비 맛과 구성이 놀랍도록 훌륭하다. 물회 한 그릇에 15,000원. 회덮밥도 마찬가지다.

서울의 여느 식당 같았으면 그 돈을 주고도 만족스럽기가 어려운데, 이곳은 양까지 많으니 만족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서걱서걱 적당히 얼어 있는 국물을 부어서 국수부터 말아서 먹고 밥까지 말면 속이 든든하다. 물회에는 광어를 주로 넣고 이쪽에서 잡히는 소라를 얇게 저며서 함께 넣는다. 새콤달콤한 맛은 입맛 없는 사람도 한 그릇을 뚝딱 비울 만큼 밸런스를 잘 잡았다. 다만 인근의 청송이나 영양에서 나오는 고춧가루를 쓰는지 먹다 보면 입안이 얼얼하다. 이쪽은 매콤의 수준이 이쯤 돼야 제대로 먹는 것이라고 말하는 지역이니,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둘이서 회덮밥과 물회를 뚝딱 다 비웠다.

나오는 길에 아내가 말한다. “우와. 여기는 울진 올 때 꼭 다시 와야겠다.” 입 짧은 분께서 그렇게 말할 정도면 얘기는 끝난 거다. 다음에 다시 올 때도 여긴 꼭 들러야겠구나. 그때는 하룻밤 자고 갈 생각을 하고 오는 게 좋겠다. 구성 좋기로 소문난 회도 먹어봐야 할 테니.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새콤달콤한 물회의 맛이 입안에 군침을 돌게 한다. 아, 못 참겠다.

소라는 쫀득한 식감이 좋고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해산물이다. 칼로리도 100g당 79kcal밖에 되지 않고 지방이 매우 적어서 다이어트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좋다. 무엇보다 소라는 단백질이 풍부하다. 면역력에 도움을 주고 미네랄이 풍부해서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만들어 준다. 더불어 타우린 성분도 풍부해 피로회복과 원기회복에도 도움을 준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