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MCRIC

섬은 삶이 척박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생존하는 것이 매일의 숙제이기 때문이다. 관매도에는 그 척박한 섬사람의 삶을 지켜주던 숲이 있다.

모래 서 말을 먹어야 시집을 가지

아픈 기억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진도 팽목항에서 배를 탄다. 거리로는 24킬로미터. 한 시간 반 정도, 바다를 가르며 유유히 나아가던 배가 관매도에 뱃머리를 이었다. 관매도는 진도의 관할 아래 독거도, 청승도, 신의도, 죽항도, 개의도, 슬도와 함께 독거군도를 이루는 섬. 물이 빠지면 이웃하고 있는 각흘도, 항도, 방에섬 같은 작은 섬과도 연결된다. 관매도는 오래전 선비 조 씨가 귀양 가던 중에 백사장을 따라 무성하게 핀 매화를 보고 관매도라 이름 지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제는 이 섬의 해안에서 매화가 보이지 않는다. 멸종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름은 매화가 보이는 섬인데 정작 매화가 없다는 아이러니란. 대신 이 섬의 주인공은 곰솔이다. 세찬 바닷바람을 막아선 소나무가 해안가를 따라 길게 늘어섰다.

배낭에 장비를 넣어 캠핑을 떠나는 백패킹이 유행하면서 마니아 사이에 관매도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렸다. 불과 몇 년 전부터 시작한 관매도에 관한 관심은 이 작은 섬을 백패킹의 성지로 등극시켰다. 섬으로 떠나는 백패킹은 1박 2일 정도 머물다 떠나는 게 보통이지만, 관매도를 찾아온 사람은 2박을 하고 가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이 섬은 매력적이다. 백패킹 마니아를 사로잡는 섬의 매력 중에서도 역시 가장 큰 이유가 되는 건 소나무 숲이다. 유연한 몸짓으로 하늘을 향해 뻗어나간 곰솔 수백 그루가 폭 200ｍ로 2㎞에 걸쳐 이어진다. 면적만 9만 9,000㎡ (약 3만 평)에 달한다. 국내의 해안가 솔숲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라는 게 이곳 사람들의 설명이다.

그 드넓은 송림의 나무 사이 적당한 곳마다 데크가 놓여 있어 사철 언제나 캠핑을 하기에 좋다. 캠퍼들은 그 위에 작은 텐트를 치거나 나무 사이 적당한 공간에 자리를 잡는다. 그렇게 하루 혹은 이틀씩 몸을 의탁한다. 먼바다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은 숲이 막아주고 위로는 따스한 햇볕이 가지 사이로 쏟아진다. 남쪽 바닷가라 겨울에도 캠핑을 즐기기에 그리 나쁘지 않은 환경이다. 이곳을 다녀간 캠퍼들은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좀처럼 이 숲을 잊지 못한다. 다른 이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그 이야기를 좇아 끊임없이 새로운 캠퍼가 이 섬을 찾아온다.

기다란 관매해수욕장 뒤편으로 곰솔숲이 병풍처럼 늘어섰다. 멀리서 보면 해변으로 나온 사람은 작디작은 생명체에 불과하다. 맑은 비췻빛 바다가 밀려오고 밀려나는 이 아름다운 바닷가에 처음 소나무를 심은 건 1600년경이라는 설명이 있다. 강릉 함씨가 섬으로 들어와 마을을 이루고 나무를 심었다는 것. 원래 이 섬의 처녀는 모래 서 말을 먹어야 시집을 간다는 말이 있을 만큼 관매도는 모래바람이 지독했다. 재밌는 것은 똑같은 문구를 서해안의 여러 섬에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인데, 그만큼 섬의 바닷바람이 거세다는 방증일 것이다.

나무를 지켜라

가뜩이나 척박한 섬에서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모래바람은 주민들을 괴롭게 하는 섬의 심술 같았을 것이다. 섬에 뿌리를 두고 살고자 했던 이는 살기 위해 소나무를 심었고, 그 뒤로 거센 모래바람은 눈에 띄게 잦아들었다. 관매마을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조상들이 억새를 엮어 바람을 막아 소나무 묘목을 길렀다.”라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이제는 폐교가 된 관매초등학교에 가면 그 역사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나무들이 있다. 학교 주변의 곰솔은 둘레만 평균 42센티미터에 달한다. 수령은 150~300년 정도로 보인다. 그 오랜 시간 섬에서 버팀목 역할을 했던 송림도 사람의 손에 수난을 당해야 했던 때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전봇대로 쓰려고 곧고 굵은 소나무를 숱하게 베어 해변에 쌓아두었는데, 전쟁이 끝나는 바람에 그대로 썩어버렸다는 설명을 섬의 주민들이 들려준다.

이 섬에서 살기 위해서는 소나무를 지키는 것이 중요했으므로 주민들은 어떻게든 이 방풍림을 지키려 했다. 지금처럼 화석연료를 쓰기 전, 땔감을 구해 불을 지피던 시절에는 나무를 베려는 사람이 많아 매일 2명씩 보초를 정해서 숲을 지키기도 했다.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는 한데 모아서 마을의 모두가 똑같이 나눠 가져가고, 행여나 몰래 땅에 떨어진 것을 가져가면 그 집은 나무 배급에서 제외해 버릴 정도로 엄격하게 나무를 신경 써 왔다고 한다. 그때는 “맨발로 숲을 다녀도 될 만큼 숲의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라고 술회할 정도였다.

그런 곰솔숲에도 다른 생명이 숱하게 자리를 잡았다. 땔감이 아닌 연료를 사용하면서 숲 바닥에도 소나무가 아닌 다른 식생이 무성해졌는데 팽나무, 사스레피나무, 예덕나무 같은 난대수종의 수가 눈에 띄게 불어나고 있다. 병충해로 전체의 30퍼센트에 달할 만큼 적잖은 소나무가 죽어가고 있는 반면에 다른 수종은 빠르게 번지는 중이다. 그 바람에 관매도 사람들도 고민이 많다. 행여나 이 소중한 솔숲을 잃어버릴까 전전긍긍이다. 관매도는 숲이 있어 마을이 생존할 수 있었던 섬이다. 지금까지는 송림이 사람을 지켜주었지만, 이제는 사람이 이 숲을 지켜줄 차례다. 관매도를 찾는 여행자에게도 이 의무는 예외가 아니다.

관매도의 시그너처 음식

관매도의 주민은 대부분 어업과 농업을 병행하며 산다.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기도 하지만, 다시마와 미역, 톳, 모자반이 주요 수입원이다. 그만큼 청정하기에 얻는 바다의 선물이다. 관매도의 5월은 톳의 계절. 자동차를 위해 깔아둔 도로 위에 톳이 가득 깔린다. 이 모습도 장관이다. 관매도 선착장에서 내려 섬을 바라보고 왼쪽은 관매해수욕장이 있는 관매마을, 오른쪽은 관호마을이다. 관매해수욕장에서 관호마을까지는 1.5킬로미터 정도. 천천히 걸어서 넉넉히 30분 정도면 닿는다. 관호마을은 관매도의 허리를 동여맨 듯한 지형에 자리해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제일 눈에 띄는 집이 ‘관매도짜장집’이다.

이 가게의 메뉴는 단출하다. 톳짜장면과 짬뽕, 콩국수, 탕수육 정도. 지난해까지만 해도 볶음밥과 치킨 등도 팔았지만, 지금은 메뉴를 대폭 줄였다. 주인 부부가 말하기로는 “톳짜장면 찾는 수요를 감당하기에도 힘들다.”라고. 짜장면은 한 그릇에 6,000원이다. 주문을 넣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짜장면이 나온다. 담음새는 소박하다. 섬에서 먹는 짜장면에 화려한 플레이팅을 기대했다면, 그것이야말로 무리한 짓일 터. 섬에서는 섬다운 모습을 찾는 게 맞다. 이 한 그릇이 그렇다. 관매도를 닮은 소박하고 수더분한 인상이다. 면 위에 짜장 소스를 부어 나오는데 소스에 넣고 함께 끓인 톳이 꽤 많이 보인다.

짜장면은 비벼야 맛이다. 나무젓가락을 둘로 나눠 면을 쓱쓱 비빈다. 눈앞에 놓인 짜장면에 대한 기대치가 정점을 찍는 순간이 바로 이때다. 이제는 대한민국 어디서나 먹을 수 있고, 흔하디흔한 짜장면이다. 그럼에도 짜장면은 제각각 성격이 다르다. 마치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두 명이 존재하지 않듯이 짜장면도 그렇다. 특히나 요즘은 섬의 짜장면이 무척 주목받는다. “그 섬에 가면 짜장면을 먹어라.”라는 말이 격언처럼 받아들여질 정도로 섬을 여행하는 이마다 짜장면집을 찾는다. 최근 거론되고 있는 섬 짜장면 식당 중에서도 이 집은 꽤 역사가 깊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관매도의 대표 메뉴였다.

잘 비빈 면에는 꾸덕꾸덕한 소스가 잘 묻었다. 맛은 짭조름하다. 요즘 어지간한 중국집에서 그러하듯 캐러멜 소스를 사용하지 않아 단맛이 덜하다. 소스의 색도 갈색에 가깝다. 정말 예전 방식으로 만든 소스라는 게 입으로, 눈으로 느껴진다. 그게 무척 반갑다.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입에 감기는 맛이 아니어서다. 양파와 양배추를 듬뿍 넣어 단맛을 올린 것도 때로는 버겁다. 차라리 섬에서는 이 섬이기에 먹을 수 있는 이런 맛이 더 반갑다. 잇새로 톡톡 터지는 톳은 씹는 재미를 더한다. 이 짜장면을 두고 “맛있어?”라고 묻는다면 “그냥 그래.”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냥 그런 그 맛이 관매도의 맛이어서 꼭 먹으라고 부연하고 싶다. 그곳의 맛이라는 건 귀하고 또 귀하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나는 톳은 칼슘, 아이오딘, 철과 같은 무기염류가 많이 포함된 해조류다.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해 곡식을 섞어 톳밥을 지어먹기도 했다. 무기질이 풍부하고 특히 철분이 많아 빈혈에 효과적이며 혈압이 높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