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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숲은 분명히 그 숲만의 분위기가 있다. 크건 작건 중요치 않다. 제주의 남동쪽, 남원읍 신흥리의 300년 된 동백마을숲도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마을과 함께한 300년의 역사

바닷가 마을에는 방풍림을 조성해 놓은 경우가 많다. 잠시 들렀다 가는 여행자야 바닷바람이 얼마나 세찬 존재인지 느낄 겨를이 별로 없지만, 그곳에 사는 이에게는 지긋지긋한 고난일 가능성이 높다. 방풍림을 만들어 두었다는 건, 그곳의 바람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세다는 의미다. 국내에서 가장 큰 섬 제주도라고 다를 리 없다. 되려 아무리 큰 섬이어도 섬은 섬이기에 육지로 벗어나지 않는 이상 바람은 일상이다. 더구나 돌, 바람, 여자가 많은 삼다(三多)의 섬이라지 않는가. 좋은 곳만 보고 돌아온 사람은 제주도의 바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제주도 서귀포 남원읍의 신흥리 일대는 요즘 동백으로 꽤 이름을 알리고 있다. 동백포레스트니 동백수목원 같은 곳은 평일에도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이 시기에만 만날 수 있는 꽃 무더기 아래에서 사진 한 장 남기겠다는 줄이 주르륵 늘어선다. 물론 예쁘다. 선 분홍빛 동백꽃이 주렁주렁 달린 수많은 동백꽃 사이를 거니노라면 기분마저 산뜻해진다.

기왕 동백꽃을 보러 간 거라면, 그곳에서 몇백 미터만 걸어서 신흥2리를 들러보길 권한다. 이곳에 서귀포에서 가장 오래된 동백나무 방풍림이 있다. 보통 방풍림은 소나무를 심어서 조성하는 경우가 흔하다. 동백나무를 심는 건 남쪽의 섬에서 간혹 만나게 되는데, 이곳 역시 그렇다. 지나던 길에 우연히라도 여기를 찾는 이는 이 숲이 방풍림을 목적으로 조성한 곳이라는 얘기를 듣고 놀라게 된다. 그 역사가 무려 300년이 훌쩍 넘는다. 예전에는 워낙 서귀포에서 유명한 숲이었던 터라 마을의 이름도 ‘동백마을’이다. 그만큼 동백이 많다.

처음 동백나무 방풍림을 조성한 역사를 따져보면 무려 1706년(숙종 3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명환이라는 인물이 이 일대에 처음 자리를 잡았다. 그는 광산 김씨 출신으로 입도시조의 12세손 사형제 중 막내다. 처음 그가 이곳에 터를 잡았던 건 이유가 있었을 테다. 주위를 둘러보면 비교적 평평한 지형에 아래로 바다가 멀지 않고 위로 산도 멀지 않아 여러모로 생활에 필요한 것을 수급하기 쉽지 않았나 싶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바닷가에서 밀려 올라오는 바람이었을 텐데, 이 일대가 바다에서부터 한라산 방향으로 완만하게 솟구치는 형태인 탓에 상승하는 바람이 만만치 않았을 법하다. 미루어 짐작건대, 이 바람을 막아줄 수만 있다면 생을 의탁하기 제법 괜찮은 곳이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신흥2리 일대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했다.

숲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

30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오는 사이에 동네의 이름은 여러 번 바뀌었다. 마을이 생길 때까지는 표선면 토산리로 분류했지만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온천리로 분리됐고, 1914년에는 온천리, 동의리, 안좌리, 토산리의 일부를 통합해 신흥리를 구분 지었다. 신흥리는 ‘새롭게 일어나라’는 뜻이다. 아마도 행정개편 당시 이곳 주민의 마음을 담은 이름이 아닐까 싶다.

그 사이 3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보통 인간의 한 세대를 30년으로 본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무려 열 세대가 이어지는 동안 동백나무숲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제주도에 오래되고 멋진 숲이 많지만, 이 마을의 숲을 눈여겨볼 가치가 충분하다는 건 그래서다.

숲을 찾아가려면 우선 동백마을 방문자센터부터 찾는 편이 좋다. 마을로 접어들면 초입에 바로 자리하고 있으니 찾기가 어렵지만은 않다. 이 마을은 동백과 감귤류가 주요한 부수입의 수단이다. 동백을 이용한 체험 거리도 있다. 동백기름이 그 자체로 상품이 되고, 이 기름을 이용해서 비누를 만들기도 한다. 방문자센터에 들러 이 숲에 관한 설명을 조금이나마 듣고 움직이는 편이 숲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숲은 방문자센터 바로 앞의 사거리에서 좌측에 자리하고 있다. 숲의 규모 자체는 그리 크지 않다. 이곳의 시작이 방풍림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도 예전에는 훨씬 규모가 크지 않았을까 싶지만, 지금은 숲이 있었던 자리에 가옥이 들어서고 인간의 자취로 채워져 있다. 숲 안쪽으로는 가운데로 데크가 놓여 있어 한 바퀴를 돌면서 산책하도록 해 두었다. 이 숲 안팎으로 300년 수령의 동백나무가 50그루 정도 남아 아직 그 생을 이어가는 중이다. 처음 방풍림의 용도로 심어둔 이 동백은 토종 동백이다. 그 빛이 새빨갛다. 그 안으로 선명하게 노란 꽃술이 달렸다. 송이송이 달린 그 자체는 멀리서도 시선을 빼앗는다.

숲 안쪽보다는 바깥쪽으로 꽃송이가 더 많이 달린 것도 특이했다. 이는 숲 안쪽이 너무 울창한 탓에 햇볕이 상대적으로 잘 드는 바깥으로 꽃이 먼저 달리고 많이 달린 탓이다. 대신 숲 안쪽에는 이 숲의 터줏대감 곁으로 자리 잡은 감귤류며 생달나무, 후박나무, 삼나무가 자란다.

천천히 숲을 거니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던 한 무리의 여행자들이 자전거를 끌고 숲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들에게도 이 숲은 그냥 지나치기 아까웠던 모양이다. 다만 덱 위를 자전거를 탄 채로 도는 모습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바깥에 세워두고 들어와도 되었을 것을…. 씁쓸하다. 덱을 깔아놓은 것은 숲 안으로 인간의 발을 들이지 않고 최대한 보존하겠다는 의지였을 텐데, 구태여 덱 아래로 내려가 이것저것 만지고 주워간다.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그대로 두고 지켜주는 게 왜 중요한 것인지를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 필요가 있다. 숲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데, 그 숲을 대하는 인간의 마음 씀이 아쉬워 뒷맛이 무척 쓰다.

제주사람의 소울푸드

제주는 제주만의 음식이 참 많다. 이제는 제법 알려진 음식도 종류가 다양하다. 고기국수나 돔베고기 같은 게 대표적이다. 최근 들어 찾는 이가 점점 많아지는 제주 음식도 있다. 그중 가장 각광 받는 것이 고사리육개장이다.

고사리육개장은 얼핏 봐선 육개장을 연상하기 어렵다. 전반적인 국물의 색도 마치 보말이나 전복 같은 해산물을 내장째 갈아서 만든 것처럼 보인다. 생각해 보면 이는 고사리가 들어갔다는 방증이다. 육지에서 흔히 먹는 육개장에도 고사리가 들어가긴 하지만, 제주에 비하면 그 양이 무척 적다. 제주에서는 말린 고사리를 불려 삶고 으깬 뒤 잘게 찢어서 사용한다. 육지와는 다르게 돼지 등뼈를 푹 삶아서 살만 발라내고 이 고사리를 섞어서 다시 한번 끓여내는 식이다. 그사이 잘게 찢은 고사리가 풀어지면서 특유의 걸쭉한 국물을 완성한다.

이런 방식은 유일하게 제주도에서만 만날 수 있는데, 예전의 제주는 그만큼 먹거리 재료가 제한적이었고, 한라산 줄기를 타고 자라는 고사리는 흔해서 이런 조리법이 발달했다. 독특한 점이라면 만드는 이에 따라 메밀가루나 보릿가루를 넣어 국물의 농도를 조절하기도 한다는 것. 그 덕에 구수한 맛이 더 살아나 제주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 된다.

요즘은 제주 여행 중에 고사리육개장을 찾는 이가 많아서 흔한 음식처럼 여기지만, 실상 제주에서는 잔칫상에 오르던 귀한 음식이었다. 지금도 제주도의 결혼식에서는 고사리육개장을 내는 경우가 흔하다. 푹 끓인 고사리육개장을 받으면 뭉근한 그 몸체 위에 송송 썬 파와 깨, 고춧가루가 얹어져 있다. 이를 잘 섞으면 깊고 진한 맛 위로 칼칼한 고춧가루의 맛이 더해진다. 전날 술이라도 한잔한 이라면 해장으로 제격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기 마련. 이른 새벽 비행기로 내려간 사람은 빈속을 달랠 아침 식사로 고사리육개장부터 찾기도 한다. 그만큼 제주만의 맛이라고 할 만하다.

고사리육개장으로 유명한 가게로는 제주시의 우진해장국을 빼놓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이제는 워낙 매체에 여기저기 많이 소개된 탓에 가게 문을 열기도 전에 줄이 한도 끝도 없이 늘어선다. 이곳을 대신할 만한 가게가 생각보다 꽤 많으니 조금만 검색해 보면 우진해장국 못지않은 식당을 발견할 수 있다. 제주시의 푸른 바다를 바로 앞에 두고 있는 용두암 엄마해장국도 고사리육개장으로는 둘째가려면 서러워할 만큼 맛이 좋다. 공항에서도 가까우니만큼 제주 여행에서 들러 봄직하다.

숲에서 잘 자라는 대표적인 양치류 식물이다. 고사리라는 이름은 어떤 하나의 종류를 일컫는 게 아니라 10가지의 종이 속하는 속을 일컫는 명칭이다. 고사리 자체로는 독성이 있어서 유의해야 한다. 그래서 어린순을 따서 열을 가해 먹거나 말려서 식용으로 쓴다. ‘산에서 나는 소고기’라고 부를 만큼 영양소가 풍부한데, 대표적인 게 칼륨이다. 이는 체내의 노폐물과 나트륨을 배출해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찬 성질을 가지고 있어 열을 내리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식이섬유가 풍부해 장 건강을 돕고, 장내에 쌓인 노폐물을 배출하는 데 탁월하다. 적게 먹어도 포만감이 크므로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