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MCRIC

운석이 떨어져서 만들어진 흔적을 크레이터 (Crater)라고 부른다. 오래전 만들어진 이 크레이터는 분지 지형이 되고, 그 안에 마을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합천의 초계 적중 지역이 국내 유일의 운석 충돌로 만들어진 분지다.

5만 년 전 운석의 흔적

합천읍에서 동쪽으로 나아가면 첩첩이 늘어선 산지를 만난다. 창녕군과 이웃하고 있는 이 지역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단순히 산이 많은 곳이라고만 알려져 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도 있다. 초계면과 적중면은 누가 보아도 도드라지는 분지 지형이다. 지금은 외부로 통하는 도로가 군데군데 놓였지만, 원래는 어느 방향으로도 트인 곳이 없이 꽉 막힌 곳이었다. 분지 안쪽으로는 이렇다 할 물길도 없다. 이 안에서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은 산의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저수지에 가두어 쓰고 있을 정도다. 아무리 분지여도 이렇게까지 외부와 단절된 지형은 독특한 케이스에 해당한다. 이를 유심히 살핀 고 임판규 선생은 의구심을 가졌다. 그는 합천 토박이였고, 의사였으며, 천문에 무척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대를 이어 초계면과 적중면에서 살던 사람들은 이곳이 분지라고 하니 그저 그런 줄로만 알았다. 이곳은 평생을 살아온 삶의 터전이었을 뿐, 어떤 특이점이 있는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임판규 선생은 이곳이 범상치 않은 곳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국가 차원의 조사가 필요하다면서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열중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 땅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여기에서 도출한 결과를 바탕으로 수십 년간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 왔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초계면과 적중면 일대는 5만 년 전 운석이 떨어져 만들어진 지형이라는 것. 지형의 생김새가 일반적인 분지 형성의 이론으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지질학계의 의견도 덧붙었다. 더구나 이 정도 규모의 운석 충돌구는 세계적으로도 아주 희귀한 케이스였다. 한반도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은 건 첫 번째 사례다. 그야말로, 한 사람의 집념이 밝혀낸 지질학적 쾌거인 셈이었다.

그간 운석이 충돌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는 지형이 여럿 있었지만, 직접적인 증거를 찾지 못해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국토지질연구본부 지질연구센터는 분지 내에서 깊이 142미터 아래까지 땅을 뚫었다. 그 지점에서 꺼낸 표본의 탄소연대를 측정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 그러니까 운석의 충돌로 강력한 충격파가 일어나고 지하에 거대한 웅덩이를 만들게 되는데, 이 영향을 받아 암석과 광물 따위에 충격 변성이 일어난 흔적이 나온 것. 세계적으로 공식 인정을 받은 운석 충돌구는 200여 개에 달한다. 영어로는 크레이터라고 부르는데,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슈엔 운석 충돌구에 이어 두 번째다.

운석 충돌구를 한눈에 담는 비행

충돌구는 지름만 약 7킬로미터다. 충돌구의 크기와 깊이 등으로 추정한 운석의 크기는 약 200미터 정도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안에 초계면과 적중면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완벽하게 사방이 산으로 막힌 충돌구 안에 들어선 마을은 그 덕에 여러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 세찬 바람을 산이 막아준 덕분에 연중 일정한 기후를 누렸다. 땅이 평평해서 농사를 짓기에도 좋았다. 이곳이 운석 충돌구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그제야 마을 사람들은 이 독특한 땅이 가진 여러 특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운석 충돌구에는 ‘초계분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소식이 알려지자 이 땅에는 많은 관심이 쏠렸다. 실제 위성사진을 보면 5만 년 전 떨어진 운석은 동쪽에서 날아와 서쪽 방향으로 충돌했다는 걸 대번에 알 수 있다. 이제는 이토록 쉽게 운석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이런 위성사진을 구하지 않는 이상, 이곳이 운석 충돌구라는 확신을 가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집요하게 이 지형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거듭한 고 임판규 선생의 지난 노고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초계분지는 그 크기가 여타의 분지에 비해 작은 편이어서 위치를 잘 고른다면 이곳의 지형을 한눈에 담을 수도 있다. 가장 최적의 장소는 대암산이다. 대암산은 운석이 땅에 충돌하면서 솟아오른 서쪽의 산이다. 가장 큰 충격을 받아 솟아올랐을 테니 그 높이 역시 이 일대에서 가장 높다. 대암산의 정상은 해발고도 591미터다. 그 꼭대기에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다. 이곳에 서면 초계분지를 거대한 파노라마처럼 눈에 담을 수 있다.

패러글라이딩하는 파일럿 사이에서 합천의 대암산은 꽤 유명한 스폿이다. 이곳은 국내에서도 최고의 활공 코스로 손꼽힌다.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는 덕분에 패러글라이딩을 타기에는 아주 안전하고 안정적이다. 패러글라이딩이라는 것이 얼핏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태양열에 의해 달궈진 땅이 상승기류를 만들어내는데, 이를 타는 행위다.

덕분에 대암산 일대는 패러글라이딩 국제 경기가 가능한 코스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대암산 활공장에서 뛰어내린 후 분지의 각 능선 꼭짓점 위를 차례로 찍으며 재빨리 돌아오는 경기도 가능하고, 상승기류를 찾아 타면서 창녕군까지 비행한 뒤에 방향을 바꿔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까지 다녀오기도 한다. 패러글라이딩 파일럿들이 매일 합천으로 모여드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지난해부터는 대암산 활공장에서 활공이 끝나는 시간 즈음부터 백패커가 모여들어 백패킹을 즐기기도 한다. 해가 질 무렵 텐트를 치면 하늘에서 별이 총총 뜨기 시작하고, 이내 땅 위에서도 별이 뜬다. 마을에서 밝히는 불빛이 하늘의 별빛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광을 자아낸다. 다만 이곳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임시도로를 따라 이동해야 하는데, 오르는 길이 협소하고 굴곡이 심하다. 활공장을 수시로 오가는 차량을 마주치는 경우가 잦으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합천에 숨은 초절정 중식 고수

합천 여행을 이야기하면 늘 듣는 이야기가 “먹을 것이 없다.”라는 말이다. 절대 동의할 수 없는 말이다. 합천은 알면 알수록 곳곳에 숨은 먹거리가 많다. 심지어 국내에서 최고수로 존경받는 중식의 고수가 합천에 있다.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이연복 주방장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명성과 실력을 갖춘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적림길. 신라호텔의 중식 레스토랑 ‘팔선’ 출신이다. 뛰어난 실력이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그곳에서 적림길 주방장은 무려 27년을 근무하며 모든 메뉴의 맛을 책임졌다. 말 그대로 고수 중 고수다. 총 요리 경력만 40년이 훌쩍 넘는다. 중식계 최고수 중 한 명으로 불리던 그는 2013년 돌연 합천으로 내려왔다. 이곳은 아내의 고향이다. 아내를 위해 합천행을 선택한 그는 합천읍에 가게를 열었다. 합천 사람들은 그가 어떤 인물인지 잘 모른다. 이런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오는 여행자 역시 적림길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좀처럼 관심이 없다.

중식은 수백 가지 메뉴가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건 역시 짜장면과 탕수육이 아닐까. 물론 마른 전복 스테이크나 코끼리 조개찜처럼 합천에서 보기 어려운 음식도 있지만, 적림길 주방장의 실력을 보려면 역시 가장 보편적인 요리인 탕수육이 제격이다. 그의 탕수육은 다른 이의 것과 완벽히 다르다. 피가 매우 두껍다. 애초에 피를 그렇게 입혀서 튀긴다.

그의 탕수육을 먹어본 사람 중에는 고기가 별로 안 느껴진다며 불호의 평가를 남긴 사람도 있지만, 알고 보면 이 조리법은 그렇게 평가절하할 것이 아니다. 피가 두껍다는 건 소스를 부어놓아도 쉽사리 눅눅해지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바삭한 식감이 오래간다. 무엇보다 다른 탕수육에 비해 쫄깃하다. 짜장면은 기본에 충실하다. 다른 식당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소고기탕면도 그의 시그너처 중 하나. 겉보기와 다르게 국물이 부드럽다. 품이 넓어서 새송이, 죽순, 양송이, 청경채 등 각각의 재료가 가진 맛을 찍어 누르지 않고 조화롭게 품어 안는다.

우리는 화려한 맛이 주류를 이루는 시대를 산다. 짜고 달고 매운 온갖 자극에 길들여 있다. 적림길 주방장의 음식은 정확히 그런 음식의 대척점에 있다. 정말 잘 만든 음식은 자극적이지 않고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맛을 가졌다는 예전 사람들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수십 년의 세월을 보내며 갈고 닦은 그의 음식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대나무의 순인 죽순은 육류와 함께 섭취하면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떨어뜨려 주는 고마운 식재료다.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에도 좋고, 칼륨이 많아 몸속의 나트륨을 조절해주는 효과가 있어 고혈압 예방에 도움을 준다. 뼈마디가 쑤시고 아픈 관절염에도 좋고 노화 예방, 중풍 예방 등의 기능도 기대할 수 있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