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전설 근거중심 탐구

진월인, 순우의, 편작의 형은 환자의 안색을 보고 병을 알았다고 한다. 아차산의 전설에서 맹인 점쟁이 홍계관은 상자 속에 임신한 쥐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맞혔다고 한다. 알에서 태어난 영웅이나 공주, 왕자의 이야기는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물론 허구다. 하지만 과장이나 와전은 있더라도 완전한 날조는 아니라면? 그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과학과 상상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 진짜 이야기를 재구성해 본다.
[학력]
서울대학교 학사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학사/석사

[경력]
강동경희대학교한방병원 인턴/레지던트 (한방내과 전문의)
국제인증수유상담가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교육이사
베이비뉴스 칼럼니스트
오마이뉴스 칼럼니스트

김나희
김나희

신화와 전설이 허공에서 창조되었을 수도 있지만, 어떤 실존했던 상황에 상상력으로 살을 붙여나갔을 수도 있다는 가정 아래, 그 사실이 무엇이었을지 탐색해 봅니다. "소설 쓰고 앉아 있네!"라고 해주시면 더없는 칭찬이 되겠어요.

프로필 바로가기

#10. 백일치성 드리면 아기가 생긴다!?

 

KNH 0010-main.jpg



<미학 오디세이>에는 구석기 시대 동굴 벽화 앞에서의 사냥 의례가 실제로 효과를 발휘했을 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해부학적인 지식이 축적되었고, 모의 사냥을 하는 과정에서 근력, 심폐지구력, 협응 능력이 향상되고 집단 내 의사소통이 정교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굴 벽화의 들소 떼는 지극히 사실적이라 구석기인들의 관찰력과 표현력이 매우 뛰어났음을 짐작하게 한다.


KNH 0010-img-02.jpg


전국 방방곡곡의 산이나 절, 서낭당에는 백일치성을 드리고 임신, 출산에 성공한 난임 부부의 전설이 내려온다. 이것은 단지 미신일까? 미신이지만, 아마 실제로도 백일치성의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난임 치료에는 하체 운동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매일 산에 올라가서 108번 절을 하는 동작은 허벅지와 엉덩이의 근육을 효과적으로 단련시킨다. 평소 운동 부족이었을 양반가 여성들에게는 더욱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반면 집안 우물가에서 비는 치성은 별 효과가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임상에서는 난임 치료에 스쿼트, 벨리댄스, 런지 등의 하체와 코어 운동을 강조한다. ‘정력’에 관심 있는 남성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처방을 한다.


재미있게도 ‘섹시’한 춤 동작은 문자 그대로 ‘섹시’하다. 즉, 재생산 능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코어를 집중적으로 단련시키는 동작들은 몇 번만 해도 꽤 힘든데, 그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우리 몸에서 가장 큰 관절인 고관절을 가동해 골반을 움직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스쿼트나 브릿지, 펠빅 롤 (pelvic roll), 힙 서클 등의 골반이 움직이는 동작들은 공공장소에서 하기 민망하다. (왜일까? 생각해 보시라.) 하지만 2세를 낳을 생각이 없더라도 골반을 움직이는 동작은 내 몸을 튼튼하게 하는 생존 체력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무조건 하는 것이 좋다. 따지고 보면 2세를 만드는 능력은 내 몸이 일단 생존하고 나서 남는 여력으로 좋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정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본 체력이 곧 정력이다. (기본 체력과 일시적인 정력이 따로 노는 상황은 한의학적으로 매우 위험하고, 얼마 후 골로 간다.)


규칙적인 운동은 학습 역량 강화에도 역시 도움이 된다. 문경새재 책바위의 전설을 살펴보자. 몸이 허약하고 정신적으로도 심약한 소년이 살았다. 이 소년이 어느 날 집의 돌담을 허물어 문경새재 책바위 뒤에 옮기면서 기도를 올리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도인의 조언을 듣게 된다. 이 조언에 따라, 삼 년에 걸쳐 돌담을 허물어 돌을 산으로 날랐다.


그 결과 몸도 건강해지고 학문에도 발전이 있어 장원급제했다고 한다. 돌의 중량을 지고 3년간 산을 오르면 하체가 폭발적으로 강력해지고 체력이 향상되어 실제로 기억력, 집중력, 지구력 등이 모두 좋아졌을 것이다.


가브리엘 토마스는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올림픽에 출전하여 육상 200m 달리기에서 동메달을 땄다. 아니 어떻게 운동도 그렇게 잘하고 공부도 잘하지? 사실은 운동을 잘하니까 공부를 잘하고 공부를 잘하니까 운동을 잘하는 것이다. 격렬한 운동과 격렬한 공부를 동시에 할 때 양쪽 모두의 효율이 가장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우리 인간이 진화해온 환경을 생각해 보면 납득이 가는 결과다.


인간은 (지금 내가 이 글을 작성하는 자세처럼) 가만히 앉아서 머리만 쓰거나, (헬스장에 가서 일부러 운동할 때처럼) 운동만 집중적으로 하는 환경에서 진화하지 않았다. 우리의 조상은 “산딸기가 막 익어 있을 덤불의 다음 위치는 어디일까?”, “개미들이 먹거나 침팬지가 따먹기 전에 내가 먼저 먹으려면 어떤 길로 달려야 할까?” 또는 “어느 방향으로 협동해서 들소를 몰면 들소가 막다른 곳으로 몰릴까?”, “돌은 어느 타이밍에 던지지?”와 같은 복잡한 생각을 하며 전력 달리기를 했을 것이다. 격렬한 두뇌 활동과 격렬한 신체 활동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는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도 그러한 경향을 가진 것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하기 어렵다면 편법이 있다. 우리 몸은 두 가지를 연달아서 하면 동시에 했다고 착각하므로, 격렬한 두뇌 활동과 격렬한 신체 활동을 바로 이어서 (순서는 상관없다) 하면 된다. 또는 운동할 때 멍하니 하는 것보다, 지금 사용하는 동작에서 쓰이는 근육과 관절의 움직임, 더 정확한 동작 등에 집중해서 하면 두뇌 활동도 되고 실제로 운동 효과도 높아진다. (물론 멍하니 운동하는 것도 운동 안 하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다른 미신은 어떨까? 마을 어귀 서낭당을 지날 때마다 돌탑에 돌을 쌓지 않으면 부정 탄다는 미신도 실용적인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전쟁이 났을 때 모아둔 돌이 투석전에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KNH 0010-img-01.jpg


한편 절에 칩거하며 백일치성을 드리는 경우에는 시집이라는 공간을 벗어나는 효과로 스트레스가 감소하여 임신에 좋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남편의 경우, 하체 혈류랑 증가로 비뇨생식기계가 튼튼해지는 한편, 절 생활로 술, 담배, 육식 등 나쁜 요소가 배제되어 90일에 걸쳐 만들어지는 정자들의 양과 질이 향상되기도 했을 것이다.


남편이 사정상 절에서 같이 백일치성을 드리지 못한다면? 흠. 그래도 방법은 있다. 유전자 풀을 넓히는 것이다. 절에서 드리는 백일기도의 경우 상당수는 스님의 아이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고려가요 쌍화점 2절에도 나온다. “삼장사(三藏寺)에 블 혀라 가고신댄 그 뎔 사주(寺主) 내 손모글 주여이다.”


⦁검증은 불가능하지만 ‘색동저고리의 전설’도 스님에 의한 씨내리 전래 민담 이야기이다.



© 한의사 김나희의 신화와 전설 근거중심 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