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전설 근거중심 탐구

진월인, 순우의, 편작의 형은 환자의 안색을 보고 병을 알았다고 한다. 아차산의 전설에서 맹인 점쟁이 홍계관은 상자 속에 임신한 쥐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맞혔다고 한다. 알에서 태어난 영웅이나 공주, 왕자의 이야기는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물론 허구다. 하지만 과장이나 와전은 있더라도 완전한 날조는 아니라면? 그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과학과 상상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 진짜 이야기를 재구성해 본다.
[학력]
서울대학교 학사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학사/석사

[경력]
강동경희대학교한방병원 인턴/레지던트 (한방내과 전문의)
국제인증수유상담가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교육이사
베이비뉴스 칼럼니스트
오마이뉴스 칼럼니스트

김나희
김나희

신화와 전설이 허공에서 창조되었을 수도 있지만, 어떤 실존했던 상황에 상상력으로 살을 붙여나갔을 수도 있다는 가정 아래, 그 사실이 무엇이었을지 탐색해 봅니다. "소설 쓰고 앉아 있네!"라고 해주시면 더없는 칭찬이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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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아테나는 어떻게 제우스의 머릿속에서 태어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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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 (Αθηνα, 로마 신화의 미네르바)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혜, 전쟁, 직물, 요리, 도기, 문명의 신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현명한 교수 맥고나걸의 이름이 미네르바다. 신화 속에서 아테나는 제우스의 머릿속에서 태어났다고 전한다. 제우스는 아내 메티스가 낳은 자기 아들이 자신을 몰아낼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 아테나를 임신하고 있던 메티스를 통째로 삼켜버린다. 해산의 때가 다가오자 제우스에게 갑자기 격한 두통이 몰려왔다.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두통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제우스의 머리를 도끼로 쪼개자 그 속에서 아테나가 튀어나왔다. 투구와 갑옷, 방패와 창을 지닌 완전 군장을 한 성인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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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인 제우스의 몸에서 온전한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완전한 허구는 아니라면? 고대인들이 그와 비슷한 무언가를 본 것이라면? 남성의 몸에 사람이 들어 있었던 모습이 충격적으로 기억되고, 점차 와전되고 살이 붙어서 전해 내려왔을 가능성을 추적해 보자.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니싱 트윈 (vanishing twin)’이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임신 중 쌍둥이 태아 중 하나가 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태아 흡수 (fetal resorption)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로 임신 첫 3분기 때 태아가 자궁 안에서 사망하면서 조직이 흡수되는데, 대체로 하혈을 동반하며 유산되지만, 가끔 옆에 있던 쌍둥이의 몸에 흡수되기도 한다. 유병률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연구에 따르면 쌍태아 임신의 36%에서 태아가 사라지는 현상이 생긴다고 조사되었다. 세쌍둥이 이상의 다태아 임신에서는 거의 절반 정도에서 배니싱 트윈 증후군이 나타난다고 한다.


쌍둥이 중 생존한 태아가 태어나고 살아가면서 이 흡수된 쌍둥이의 조직이 계속 잔존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는 전혀 모르고 살아가고 그냥 작은 종기나 군살이 있다고 여길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계속 불편하고 통증이 있어서 제거 수술을 하고 조직 검사를 했더니 배니싱 트윈으로 밝혀지기도 한다. 40세 벨기에 남성의 몸속에 여성의 세포가 발견되어 학계에 보고되기도 했다. 심지어 상당히 온전한 태아가 쌍둥이의 몸속에 남아 있을 수도 있다. 1963년 5월 13일 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자.



KNH 0011-title-01.jpg 기사 제목: 만삭 남자 고교생, 배 속에 다 자란 어린애


18세의 건강한 남자 고교생이 아기를 배어 의학계에 놀라운 화제가 되고 있다.


서울 D 고교 2년 박 군 (18, 용산구 신계동 산1)은 생후 3개월부터 뱃속에 이상한 물건이 들어있는 눈치였는데 건강이나 활동에 지장이 없어 17년이나 그대로 두었으나 최근 유난히 배가 불러 국립의료원에서 종합진단한 결과 13일 배 속에 아기가 들어있음이 확인되었다.


국립의료원 방사선과는 지난 일주일 동안 박 군의 엑스레이 사진을 수십 번 촬영 검토한 결과 박 군의 후복강에 임신 8~9개월가량 된 크기의 아기 모습을 확인, 이 아기는 하반신이 발달한 기형아로 판정했다.


의학상 기형종 태아라고 불리는 이러한 아기는 극히 드문 일로 더구나 17년 동안이나 뱃속에 살아 있었다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라고 방사선과장 강석린 박사가 말하고 있다. 곧 혈관 촬영과 수술 후 방사선과 외과 병리학과에서 공동 조사하여 연구 결과를 발표하게 된다.


강 박사는 “박 군이 모체 안에서 이란성 쌍둥이로 자랐는데 나머지 하나가 박 군 속으로 들어가 한 몸으로 출생했으며 그 후 박 군 몸 안에서 억지 성장을 했기 때문에 기형아가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 군은 수술 후 아무런 이상이 없고 박 군은 중류 가정의 장남으로 가족들도 모두 건강하다.



기사는 여기서 끝난다. 이 케이스를 의학논문 검색으로 찾아보려 했으나 찾지 못했다.


어떤 연구들에서는 한 태아가 사라진 뒤 남은 쌍둥이 태아는 조산과 저체중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왔고, 어떤 연구들에서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 배니싱 트윈으로 남은 태아가 조산, 저체중의 위험이 높아질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 난임 치료를 위해 자궁 내 배아이식을 할 때 배아 하나씩만 이식하는 것을 권유하기도 한다. 한편, 작은 태반 같은 해부학적, 또는 태반 혈관계의 문제가 배니싱 트윈 증후군에서 더 많이 발견된다.


이란성 쌍둥이의 흔적이 팔뚝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박 군처럼 배 속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배니싱 트윈이 흡수되는 위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쌍둥이가 머리 부분에 흡수된 상태의 남성 태아를 본 사람들이 있었다면 제우스 머리에서 태어나는 아테나라는 심상의 근원이 되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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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자궁 속에서 사라진 쌍둥이의 흔적이 태어난 쌍둥이의 무릎에 남아 있는 모습


동양에서도 제우스 머리에서 태어나는 아테나같이 전해 내려오는 민담(小孩生小孩,男子怀胎儿: 아이가 아이를 낳고, 남자가 태아를 임신한다)이 있다. 역시 배니싱 트윈을 두고 태어난 민담일 것이다.


인면창(人面瘡)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인면창은 사람 얼굴을 한 종기라는 뜻이며, 팔꿈치와 무릎에 생기는 잘 낫지 않는 종기를 말한다. 그런데 동양에는 무릎이나 팔꿈치에 진짜 먹고 말하고 눈 뜨는 사람 얼굴이 나타난다는 민담이 전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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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에도 시대의 붓의 녹(筆のすさび)이라는 일본 서적에 나오는 삽화이다. 이 책에서는 합리적인 설명을 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종기 상처의 열린 부분이 인간의 입과 같이 보이고, 주름진 함몰이나 상처 구멍이 인간의 눈, 코처럼 보이고, 무릎이 흔들리면 움직이는 환부가 마치 호흡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언뜻 얼굴과 닮아 기이해 보인다는 것이다.


인면창의 대부분은 위 설명처럼 상처가 벌어진 부분이나 주름진 부분이 사람 얼굴처럼 보이는 종기였겠지만, 아주 드물게는 배니싱 트윈이 겉으로 드러나 보인 것일 수도 있겠다. 한편 코끼리 피부처럼 거칠어지고 부종으로 피부가 늘어나 불룩불룩 튀어나오는 상피증이 인면창이라는 의견도 있다.


[덧붙이는 글]

기사 중에 대상자의 전체 주소가 나온다는 것도 충격적이다.



References


[1] 임신 10주 이후 사라진 쌍둥이가 자신의 쌍둥이의 무릎에 붙어서 흔적을 남긴 모습. 영국 데일리메일


[2] 사라진 쌍둥이가 태반에 붙어 있는 모습. 위키피디아



© 한의사 김나희의 신화와 전설 근거중심 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