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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를 찾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마치 2009년경 제주도가 다시 핫한 여행지로 부각될 때를 보는 듯하다. 남해를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독일’은 대표적인 단어다.

파독 노동자를 위한 마을

보통 남해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은 독일마을을 가장 먼저 여행지 리스트에 넣어둔다. 그만큼 잘 알려져 있고 아름다운 곳이다. 다녀온 이에게 이 마을은 독일식 건축양식에 맛 좋은 요리가 많은 곳으로 기억에 남는다. 여기에 더해 멀리 보이는 물건리 바다와 그 앞의 물건방조어부림은 ‘홀린다’는 표현이 딱 좋을 만큼 최고의 뷰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이곳은 여행지에 필요한 먹거리, 볼거리, 쉴 곳이 모두 모여 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이 마을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유래와 만든 취지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분명 이 마을에는 주민이 있었고, 이곳은 관광지가 아니라 삶의 터전이었다. 원 거주민은 자꾸 떠나고 타지 사람이 그 자리에 들어오면서, 서서히 이곳은 관광지가 되었다. 남해 최고의 여행 스폿으로 손꼽히는 지금, 독일마을의 이런 변화는 어쩌면 전화위복인지도 모른다.

남해 삼동면 일대는 U자형으로 생긴 남해에서 남해읍과 제일 멀리 떨어진 지역 중 한 군데다. 죽방멸치로 유명한 지족리 일대를 중심으로 제2의 생활권을 형성했던 건 그래서였다. 그럼에도 과거 이쪽 지역은 남해읍 생활권에 비해 여러 면에서 불편한 면이 많았다. 그곳에 2001년부터 이 마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960년대부터 수차에 걸쳐 독일로 건너간 광부와 간호사들을 위한 거주지였다. 그들은 근현대 시기 한국에 외화를 벌어다 준 산업의 역군들이었다. 독일 곳곳에서 현지인이 기피하는 광산과 병원 등에서 일하며 월급의 일부를 한국 정부에 보냈다. 6·25전쟁 이후 한국은 그야말로 초토화 상태였다. 산업 기반은 전무하다시피 했고, 해외에서는 기아에 허덕이는 국가로 바라봤다. 국내 보유 외화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이 시점에서 당시 한국 정부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독일 정부에 손을 벌려 농축산업과 관련한 기술을 이전받았고, 한국의 인력을 독일로 보내 가장 거칠고 험한 직군에 종사할 기회를 마련했다. 그 당시 그런 교류의 결과로 만들어진 곳 중 하나가 안성의 팜랜드다. 독일의 낙농기술을 전수받아 이식하는 거점으로 사용하던 목장이 팜랜드의 모태다. 독일에서 외화벌이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건 수많은 이에게 먹고 살 수 있는 목숨줄을 여는 동아줄이기도 했다. 파독 광부 모집에 많은 지원자가 몰렸고, 그렇게 1963년부터 1977년까지 독일로 건너간 광부는 7,936명, 간호 요원은 11,057명, 기능공 931명에 달한다.

남해에 이식한 독일의 문화

그들에게 독일행은 가족을 부양할 기회였다. 그들은 원래 광부가 아니었고, 간호사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한, 그 당시로서는 고급 인력이 훨씬 더 많았다. 안정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독일로 건너갔고, 현장에서 일을 배우며 광부가 된 셈이다. 이는 2019년 파독광부협회 관계자와의 인터뷰에서 확인했던 바이다. 문제는 독일 파견이 중단된 이후였다. 온 힘을 다해 외화벌이에 나섰던 그들은 귀국 이후 국가로부터 별다른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런 그들을 위해 국가가 마련한 것이 남해의 독일마을이었다.

시작은 2001년이었다. 그 뒤로 2008년까지 총 29동의 주택이 지어졌다.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와 동천리, 봉화리 일대에 100,000㎡ (약 3만 평) 부지에 걸쳐 조성됐고, 남해군은 여기에 30억을 투입해 도로와 상하수도 등의 기반 시설을 마련했다. 이곳에 들어온 파독 노동자 중에는 파견 이후 오랫동안 독일에서 생활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자연스레 독일의 문화를 익히고 잘 아는 이들. 그들을 위해 마련한 이 마을은 이국적인 거주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독일에서 배운 독일의 문화를 이식했다. 이곳이 관광지가 될 수 있었던 건 그런 배경도 영향을 크게 미쳤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마을을 구경하러 돌아다니고, 그들을 위해 독일의 여러 먹거리를 팔기 시작하면서 관광지로서의 독일마을이 시작됐다.

산등성이를 따라 올라선 마을의 정상부에는 파독 전시관도 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그들이 벌어서 보낸 외화는 나라를 일으키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그들이 머나먼 타지에서 고생하며 보냈던 그 시간을 잊지 말자는 의미이리라. 전시관 앞에는 이곳에 정착한 광부와 간호사 1세대 45명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놓였다. 전시관 안쪽에는 그 당시의 기록이 비교적 자세히 남았다.

들어서는 입구에는 1883년 11월 처음으로 독일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며 체결한 조약서의 사본도 있다. 한국 광부 독일 파견 공문을 비롯해 당시의 사업이 어떻게 전개됐는지부터 파악할 수 있는 문서가 보관돼 있다. 1963년 당시 한국과 독일이 맺은 협정은 독일이 유럽 밖의 국가와 체결한 최초의 협정이기도 하다. 여러 면에서 의미 있는 기록들이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간다. 마치 광부들이 일하던 광산으로 들어가듯 전시관으로 지하로 걸어 들어간다. 그곳에는 독일로 떠난 이들이 어느 지역의 어떤 곳에서 일했는지,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사진 자료로 보관돼 있다. 그리고 전시관 유리 안쪽에 보관된 그들의 생활상. 광부와 간호사가 일할 때 쓰던 도구와 생활 도구 같은 것이 마음을 짠하게 울린다.

아직은 인종차별이 판을 치던 시대, 유럽 한복판에서 한국을 알리고자 노력했던 그네의 노력도 곳곳에서 보인다. 하루하루를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그곳에서 버티고자 했을까. 이곳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세상이 그들의 땀과 눈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걸 직시하는 공간이다.

여행지로서 독일마을은 아주 훌륭하다. 다만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파독 전시관임을 이곳을 찾는 모두가 기억했으면 한다. 독일마을은 먹고 마시기 위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조항의 숨은 고수

독일마을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상주해수욕장 방면으로 이동한다. 차로 15분쯤. 남해를 대표할 만한 미항인 미조항으로 들어가는 길목 한쪽으로 펜션을 겸한 식당이 있다. ‘갯내음식당’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곳은 남해에 숨은 보석 같은 집이다.

이곳은 모든 음식을 과일 효소, 멸치액젓, 조선간장으로만 조리한다. 설탕이나 요리당 같은 건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 중에는 이곳을 오마카세 요릿집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1인 5만 원 이상 가는 저녁 메뉴에 해당한다. 그것도 좋지만, 이곳의 진가는 1인 3만 원짜리 모둠장 정식에 있다. 전복, 문어, 홍합, 피꼬막, 소라, 바지락 등 6가지 해산물이 간장과 참기름으로 양념해서 푸짐하게 나온다. 음식 하나하나의 삶은 정도가 기가 막히다. 부드럽고 질기지 않다. 정확히 씹기 좋은 수준이다. 하나만 집어서 씹어 보아도 안다. 이건 밥도둑이다.

여기는 밥을 먹을 때도 방법이 따로 있다. 두꺼운 곱창김에 싸서 함께 내주는 게장의 간장에 찍어 먹는다. 돌게로 담근 게장은 게장대로 맛있고, 곱창김에 싸서 간장양념에 찍어 먹는 맛도 일품이다. 게장 아래에는 새우장이 숨어 있으니 놓치지 말 것. 곁으로 깔린 찬도 하나같이 훌륭하다. 사장님이 직접 바다에 나가 따온 해초류가 주를 이룬다. 각각의 해초는 원래의 맛을 살릴 수 있도록 별도의 조리법으로 만들었다.

석목이라는 해초는 고소한 맛을 살리고 다진 마늘로 감칠맛을 더했다. 물갓은 갯바위에서 따온 것인데 역시나 고소하다. 씹다 보면 올라오는 쓴맛이 입맛을 돋운다. 까사리라고 부르는 건 큰 파도를 맞는 험한 바다에서 뜯어오는데, 살짝 새콤하게 무쳐 놓았다. 찰보리 콩을 삶아 으깨서 끓인 된장국도 일품이고 밥상의 중심이 되는 밥마저 고슬고슬하다. 사장님이 자랑하는 최고의 덕목은 어떤 경우든 음식을 미리 해 놓지 않는다는 것. 갓 만든 요리의 맛을 아는 고수다.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고 찾아오는 손님이 갈수록 늘어가는 가게니 만큼 믿고 갈 만하지만, 위치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음식이 하나 같이 술을 부르는 맛이지만, 펜션에 묵지 않는 이상 술을 마시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기 때문. 그래도 이곳은 남해라는 섬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맛을 한 상에 오롯이 담았다. 이 식당을 다녀간 이후 남해 최고의 식당은 순위가 바뀌어 버렸다.

꼬막은 단백질이 14%로 전복, 굴, 홍합 등 다른 조개에 비해 고단백 식품이다. 필수 아미노산도 골고루 균형 있게 들어 있다. 칼슘 함량이 높아 어린이 성장발육에 도움을 준다. 100그램당 에너지는 81칼로리에 불과한 데다 지방은 1.8그램으로 저칼로리, 저지방의 알칼리성 식품으로 다이어트에 좋은 식재료인 셈이다. 비타민 B1, B2, B12가 풍부하고 소화가 잘 돼 노인이나 환자의 병후 회복 식사로 좋다. 무엇보다 꼬막은 저혈압 개선에 효능이 뛰어나다. 타우린 (taurine)과 아스파트산 (aspartic acid) 등의 성분이 피로와 숙취 해소를 돕고 심장 기능을 향상하는 작용을 한다. 다른 조개와 다르게 철분을 함유한 붉은 헤모글로빈을 혈색소로 가지고 있어 빈혈 예방이나 혈액 손실이 큰 여성에게 좋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