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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이천은 쌀로 유명한 고장이다. 워낙 전국적으로 이름이 높은 탓에 ‘쌀’이라는 이미지에 가려 이천 곳곳에 숨어 있는 여행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천과 용인의 경계쯤에 위치한 덕평공룡수목원도 그렇다.

살아 움직이는 공룡과의 만남

동맥이산과 음박골산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순박한 토종 명칭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이 지명은 이천에 서로 이웃해 있는 산의 이름이다. 이천의 덕평IC에서 멀지 않은 이 두 산의 사이에 공룡이 산다.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일 거다. 좀처럼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니까.

조금 더 확장해서 이야기하자면 이천은 수도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도 되는, 아주 좋은 여행지다. 좀처럼 여행지로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직장을 다니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평일 여행은 언감생심이다. 결국 주말을 이용해 여행을 다녀야 하는데, 차량 정체에 힘을 쭉 빼게 되는 상황은 매번 반복된다. 이천은 그런 차량 행렬에 크게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아주 좋은 선택지다. 차가 밀린다 싶을 때쯤 덕평IC로 빠져나가면 된다. 그 길을 따라 쭉 안쪽으로 들어가면 위에 언급한 두 산이 나오고, 그 사이에 빼꼼 이정표가 보인다. ‘덕평공룡수목원’. 공룡을 좋아하는 자녀가 있다면 꼭 한 번쯤 다녀오길 권할 만한 곳이다.

수목원의 이름은 이곳에 대해 많은 걸 알려준다. 숲을 거니는 곳이자 곳곳에 공룡이 숨어 있는 곳. 현재 개방된 면적만 약 5만 평 (165,289제곱미터)에 달한다. 상당한 크기다. 그 사이사이에 공룡이 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조금만 들어가면 하늘연못이 있다. 첫 번째 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가 목을 길게 빼고 관람객을 맞이한다. 모형임에도 꽤 그럴듯한 모양새다. 연못 주변에는 온갖 다양한 식물이 많다. 가을에 발갛게 익은 꽃사과가 시선을 빼앗는다. 이 산 안에 이런 풍경이 있다는 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한창 주변의 풍광을 구경하던 차에 멀지 않은 곳에서 동물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공룡이다!”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발이 움직인다. 후다닥, 주변의 아이들도 동시에 비탈을 뛰어 올라간다.

언덕 위로 올라가니 온갖 종류의 공룡이 모여있다. 어디선가 보긴 했는데,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걸 아이들은 다 기억한다. 들어도 모르겠다. 등줄기를 따라 등각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녀석, 속알머리가 없는 대머리 공룡 등등이 눈에 들어오면 어김없이 주변을 에워싼다. 그때 공룡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와!” 마치 만화 속 로봇을 만난 듯, 아이들은 신기해했다. 비록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게 아니라 몸의 일부만 움직이는 것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곳의 공룡은 대부분이 로봇이었다. 그게 이 수목원을 찾은 아이들을 사로잡은 비결이었다.

꿈을 이루어가는 숲

이 수목원은 한 사람의 꿈이었다. 공룡을 좋아했던 아이는 언젠가 공룡이 있는 숲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었다. 그는 열심히 일했고, 일해서 번 돈을 모아 꽤 많은 자산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어릴 적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이곳 이천에 수목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숲을 ‘쥬라기공원’처럼 만들고 싶었다. 이를 위해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공룡 로봇을 구현하는 선두 기술을 가졌다는 회사를 찾아갔다. 쉬이 허락해 주지 않았지만, 그는 꾸준히 설득했다. 그렇게 배워온 기술로 그는 현재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로 숲속에서 살아 숨 쉬는 공룡을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10년 가까운 세월을 노력해서 공룡수목원을 만들었다.

우리는 공룡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실 누구도 공룡을 실제로 본 적이 없기에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어릴 적 교과서에서 보았던 모습도 근래에 밝혀진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모습이 상당히 바뀌었다. 영화에서 봤던 티라노사우루스도 깃털 달린 새와 비슷한 모습이라는 게 최근의 결론이다. 그런데 이 수목원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이 아닌 최근 학계가 발표한 모습의 공룡도 있다. 팔을 들고 깃털을 활짝 펼친 모습이다. 만약 이 모습을 실제로 보았다면 상당히 위협적이었을 법한, 실감 나는 자세다.

수목원 안쪽을 걷다 보면 이 산의 지형을 해치지 않고 그대로 활용해서 이 테마파크를 조성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동맥이산은 해발 330미터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강원도를 방불케 할 만큼 수목이 울창하다. 그 사이에 계곡이 있고, 일급수에만 서식하는 가재와 하늘타리, 중탱이 같은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다. 동맥이산이라는 이름은 계곡의 방향이 모두 동쪽을 향하고 있어서 붙었다고. 지금은 한창 산책로를 가다듬고 있어 출입이 불가한 범바위 동굴도 내년 봄부터는 꼭 가볼 만한 곳이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한 쌍의 호랑이가 서식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이 일대가 울창한 건 호랑이가 사라진 1950년대 전까지 벌목하지 못해서라고 한다.

수목원 전체를 걸어서 돌아다닌다면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를 생각해야 한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가기도 전에 지치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지만,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다. 수목원의 중심이 되는 건 전나무숲이다. 그 곁으로 커피, 바나나, 파파야나무가 있는 열대식물원과 온갖 허브를 한데 모아둔 허브식물원, 다육식물원 등이 있다. 이곳이 개인의 힘으로 일군 곳이라는 걸 감안하면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그 안에 500종의 자생식물과 1,500종의 외래종 식물이 자라고 있다. 전나무숲 아래에는 3D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과 공룡관, 곤충관 등도 실감 나게 조성해 놓았으니 꼭 돌아보고 오는 게 좋겠다.

쌀크림의 색다른 매력

이천은 워낙 쌀이 유명한 고장이다. 그래서 쌀밥 정식이 가장 유명한 먹거리다. 이외에도 쌀을 이용한 여러 가공식품이 개발되고 있지만, 아직은 ‘대표’라고 할 만한 건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쌀을 이용한 쌀크림빵이 선을 보여 주목받고 있다. 이천 시내 주택가 한쪽에 자리한 이곳은 MZ세대를 중심으로 한창 입소문이 나고 있는 가게다.

이름부터 흥미로운 베이커리 카페 ‘흥만소’다. 흥이 많은 캐릭터를 개발해서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데, 어딘가 모르게 이 가게를 운영하는 부부의 남편과 닮았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우직한 곰의 모습이 꽤 흡사하다. “그럼 밀짚모자에 앉은 참새는 아내인 건가요?”라고 물었더니 부부가 박장대소한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그러고 보니 그게 맞는 건 같단다.

이 카페는 이천의 특산품인 쌀을 이용해서 개발한 여러 먹거리를 메뉴에 올려 두었다. 그중 시그너처라고 할 만한 쌀크림빵은 이천시가 나서서 홍보를 자처할 만큼 찾는 사람이 많은 제품이다. 쌀알을 그대로 크림과 함께 끓여서 부드럽게 만든 쌀크림이 빵 안에 가득 들어 있다. 쌀크림이 들어간 빵은 다른 가게도 있고, 심지어 다른 지역에서도 개발해서 팔고 있지만 대부분 몽글몽글하게 퍼지는 식감을 준다. 반대로 이곳의 쌀크림은 점성이 무척 강한 편이다. 한 입 베어 물면 폭신한 크림이 입에 가득 찬다.

기본적인 쌀크림을 바탕으로 밤, 팥, 옥수수 등을 더했는데 각기 다른 매력이 있다. 그중에서도 밤쌀크림빵은 입에 착 감기는 맛이 일품이다. 여기에 식혜나 쌀크림라떼를 더하면 금상첨화다. 쌀크림라떼 역시 찰랑이는 차가운 쌀크림이 쌉쌀한 커피와 뒤섞이며 입술을 적시는데 빵과 아주 잘 어울린다.

밤은 가을을 대표하는 식재료다. 맛이 달콤해 다양한 방식으로 먹는다. 삶고 구워서 즐기기도 하지만 흰 쌀과 섞어서 밥을 짓기도 한다. 추운 겨울의 군밤은 오랫동안 사랑 받아 온 대표적인 먹거리다. 밤에는 비타민 K, 비타민 B3, 비타민 B5가 풍부하다. 미네랄, 인, 마그네슘도 함유돼 있어 여러모로 건강에 좋은 식품이다. 다른 견과류에 비해 지방이 적고 칼로리가 낮지만, 식이섬유는 풍부해 다이어트에도 도움을 준다. 다만 탄수화물 함량이 높아 과도한 섭취는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