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전설 근거중심 탐구

진월인, 순우의, 편작의 형은 환자의 안색을 보고 병을 알았다고 한다. 아차산의 전설에서 맹인 점쟁이 홍계관은 상자 속에 임신한 쥐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맞혔다고 한다. 알에서 태어난 영웅이나 공주, 왕자의 이야기는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물론 허구다. 하지만 과장이나 와전은 있더라도 완전한 날조는 아니라면? 그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과학과 상상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 진짜 이야기를 재구성해 본다.
[학력]
서울대학교 학사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학사/석사

[경력]
강동경희대학교한방병원 인턴/레지던트 (한방내과 전문의)
국제인증수유상담가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교육이사
베이비뉴스 칼럼니스트
오마이뉴스 칼럼니스트

김나희
김나희

신화와 전설이 허공에서 창조되었을 수도 있지만, 어떤 실존했던 상황에 상상력으로 살을 붙여나갔을 수도 있다는 가정 아래, 그 사실이 무엇이었을지 탐색해 봅니다. "소설 쓰고 앉아 있네!"라고 해주시면 더없는 칭찬이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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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산후부종에 호박즙? 그 호박이 그 호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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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이 글은 논문 ‘안상영, 한창현, 권오민, 박상영, 안상우. 산후부종(産後浮腫)의 호박(琥珀)과 남과(南瓜)의 오용에 대한 문헌고찰. 大韓韓醫學方劑學會誌. 2009. Vol.17 No.2’의 내용 위주로 풀어썼습니다.


한의사들끼리는 알고 있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 하나는, 산후부종에 많이들 달여 먹는 호박이 그 호박이 아니란 것이다. 산후부종에 쓰는 호박은 넝쿨에 달리는 열매채소 호박(南瓜)이 아니라 송진이 굳어진 화석 보석 호박(琥珀)이다. 따라서 열매채소 호박을 산후부종에 쓰는 것은 오용이다. 그것도 동음이의에 의한 어이없는 오용. 열매채소 호박도 약간의 이수소종(利水消腫) 효과가 있으니 오용이 아닐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문헌을 추적하면 동음이의어를 착각한 오용이라는 것이 명백히 드러난다.


다만, 열매채소 호박이 독성이 있거나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 정도는 아니고, 비타민 A, B, C, 베타카로틴 등이 풍부한 좋은 음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호박즙 먹고 부기가 빠질 수도 있다. 마침, 내 몸에 필요한 성분이 호박즙으로 충당되었을 수도 있고, 수분 섭취가 늘어나서 염분이 배출되며 부기가 빠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용은 오용이다.



어디서 이 오용이 시작되었을까?


호박(琥珀, Succinum)은 홍송지(紅松脂)라고도 하는데 소나무속 식물 Pinus spp. (소나무과 Pinaceae)의 수지가 땅속에서 오랜 세월을 지나 화석이 된 것이다. 위·진 시대의 <명의별록 名醫別錄>에 어혈을 없애고 소변이 불편한 증상을 치료하는 효능이 최초 기재되었다. 이후 <개보본초 開寶本草>에도 부인의 복부 안의 어혈을 없애는 효능이 기재되었고, <본초강목 本草綱目>에서는 ‘복부 종괴를 없애고 산후 어혈로 인한 복부 통증을 치료한다 (破結瘕 治産後血枕痛)’라고 효능이 구체화되었다. 작가 미상의 조선 본초 서적인 <본초정화 本草精華>에서도 <본초강목>의 내용이 반영되어 조선에도 이 지식이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이후 현대의 본초 서적에서도 모두 活血祛瘀 利水通淋의 내용이 밝혀져 있다. 특히 산후의 兒枕痛, 血暈을 주치하며, 辛溫한 약들과 배합되었을 때 이러한 消瘀破癥의 효능이 발휘된다고 하였다. 주의점도 연구되어, <본초정화>에서는 脾土를 건조하게 하는 성질이 있어 血少하여 小便不利가 있는 자와 陰虛하여 속에 열이 있는 자는 복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한편 호박(南瓜, 남과, Cucurbita)은 동양에는 대략 명대부터 재배된 것으로 추정된다. 명대 말의 <본초강목>에 호박이 처음 기록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에 호박(南瓜)에 대한 기록이 없으며 1618년 허균(許筠)의 <한정록 閑情錄>에 南瓜에 대한 표현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한반도에는 17세기 초에 도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초강목 本草綱目>, <중화본초 中華本草>, <전남본초 滇南本草>, <전남본초도설 滇南本草圖說>, <의림찬요 醫林纂要>, <치박본초 淄博本草>, <전국중초약회편 全國中草藥滙編>, <식료중약약물학 食療中藥藥物學>, <주촌신방 舟村新方>, <본초적요 本草摘要>, <본초정화 本草精華>, <선한약물학 鮮漢藥物學>, <수세보결 壽世寶訣> 등에 등장하는 호박(南瓜)의 효능 주치는 補中益氣, 分利小便, 驅蟲, 解毒이며 산후 부종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는 바가 없다. 또한 濕土의 성질로 氣의 운행을 방해할 수 있으니, 질병이 있는 경우에는 복용치 않는 것이 좋다고 주의시키고 있다. 소변을 잘 나가게 하는 효능은 건강인에게만 적용된다.


산후부종은 여성의 출산 후에 발생하는 얼굴이나 팔다리의 부종으로, 여성의 생리적인 특성과 산후라는 특성을 고려한 조치가 필요하다. 산후부종에 활용된 처방은 敗血로 발생한 부종에 활용되는 調經散類의 빈도가 높아, 血이 行하면 치료되니 浮腫의 양상을 보이더라도 滲濕利水 하지 말고 祛瘀血 하는 것이 원칙임을 알 수 있다. 大調經散, 小調經散 모두 호박(琥珀)이 들어가 있는 처방이며, 破瘀血 하는 호박(琥珀)의 효능주치와 호응되며 산후부종의 병리와도 들어맞는다.



이 호박이 어쩌다 그 호박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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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의 조선의 의학서 <주촌신방 舟村新方>은 흔히 구할 수 있는 약재로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처방, 처치법을 기재한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호박고(琥珀膏)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琥珀可容四五升者, 粘米五合作飯, 曲末眞油生淸木末, 各五合, 牡丹皮車前子苦鍊根乾薑芥子南方椒川椒, 各三合, 右作末, 大琥珀開蓋, 去皮後, 各藥末納於其中, 覆蓋以藁索密裹, 以黃土塗外面, 埋於糠火中, 待爛熟, 隨量飮服. 【一方, 薑汁二合, 入諸藥末於琥珀後. 覆以蓋紙, 糊隙塗黃土, 朝燃火. 翌朝取出, 盛砂椀, 隨量服之.】


‘4~5되 (7.2~9리터) 크기의 호박에... 큰 호박의 뚜껑을 열고 껍질을 벗긴 뒤 약재 가루를 그 속에 넣고 뚜껑을 새끼줄로 단단히 묶어 황토를 바깥에 발라... 충분히 익혀...’라는 내용은 아무리 봐도 열매채소 호박에 해당한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은이나 금과 비슷한 경도 2.5의 보석 호박(琥珀)에 도저히 쓸 수 없는 조제법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의 또 다른 전래본에는 같은 내용이 남과고(南瓜膏)의 항목에 나온다. 또 다른 조선의 의학서 <의방합부 醫方合部>에는 또한 비슷한 경험방이 胡朴膏라는 이름으로 기재되어 있다.


南瓜 호박을 南瓜라고도 썼다가 琥珀이라고 썼다가 胡朴이라고도 쓴 것에서, 열매채소 호박의 이름이 琥珀이라고 음차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혼란이 일어나 활용에서도 열매채소 호박과 보석 호박의 효능이 섞이게 되었다.


한편 산후부종이 어혈로 인한 것이면 열매채소 호박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산후부종이 기체(氣滯)를 겸하고 있다면 열매채소 호박의 장복은 오히려 회복에 방해가 될 우려가 있다. 민간요법에서의 호박 남용은 이롭지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동의보감에 열매채소 호박은 등장하지도 않으므로 ‘동의보감에 따르면 호박즙은 무엇무엇에 좋다.’라고 하는 말은 초장부터 헛소리다.



© 한의사 김나희의 신화와 전설 근거중심 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