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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눈앞에 놓인 것의 가치는 다르게 느끼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는 별 볼 일 없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귀한 무엇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이가 그 가치에 공감하느냐의 문제. 인제의 여인숙을 두고도 서로 다른 시선이 쏟아진다.

기억에 남은 옛 여인숙의 풍경

여행을 다니면서 여인숙이라는 존재에 고마움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숙소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아 난감했던 13년 전 어느 날. 출장을 떠난 바닷가 마을이었다.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골목 귀퉁이 안쪽 깊숙한 곳에서 본 ‘여인숙’이라는 간판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가격도 저렴했고, 무엇보다 씻고 편히 누워 잘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아마도 여인숙이라는 곳은 나뿐만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잘 곳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늘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사실 이제는 여인숙과 민박의 차이는 거의 느끼기 어렵다. 그저 저렴한 숙소라는 개념 아래 이름만 다른 숙박업소일 뿐이다. 그나마도 어딘가 오래되고 불편할 것만 같은 선입견에 지배당하고 있다. 비슷한 가격이면 모텔을 찾는 이유다. 이는 조금 더 나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전제된 행동이다.

인제에서 하룻밤을 자고 움직이기로 한 날, 일행은 구태여 골목 안쪽의 금성여인숙으로 나를 불러들였다. “이런 데서 자 봤어?” 그 질문에 오래전 그날이 떠올랐다. ‘못 잘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이유가 있겠지 싶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곧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겉은 단층의 허름한 숙소 같았다. 간판도 여느 여인숙처럼 세월의 흔적에 온통 절여진 느낌이었다. 그런데 안쪽이 꽤 넓었다. 중정처럼 가운데가 뻥 뚫려 있고 그 안에 수돗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숙박을 한 손님이 이곳에 줄을 서서 세수를 했었으리라. 그 장면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지금처럼 방마다 화장실과 욕실이 딸린 숙박업소가 등장한 것은 생각보다 아주 오래된 일이 아니다. 수돗가를 중심으로 방이 빙 둘러있는 이런 구조는 어릴 때 보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수유동이라 부르는 서울의 수유리. 11번 버스 종점 근처에 살던 아주 어린 시절이었다. 그곳에 여인숙이 있었고, 그 안쪽 풍경이 꼭 이런 모양이었다. 우리 집에 찾아온 아버지의 지인이 그 여인숙에 자리를 잡았고, 부모님을 따라갔던 그 여인숙이 이랬다. 완전히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그곳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떠올랐다.

멈춰 서서 오래전 이제는 이 땅에서 사라진 것 같은 그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 들숨이 멈추고 “헛!”하는 감탄이 나왔다. 이런 광경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이런 구조의 건축물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어쩌면 인제니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인제는 사람이 살기 적당한 땅이 아니다. 지금이야 도로가 잘 뚫리고 시설이 갖춰지면서 살만한 곳이 됐지만, 예전에는 화전민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오지 중의 오지였고, 그래서 상상의 동물인 기린의 발자국(麟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저렇게 복잡한 한자를 굳이 지명으로 사용한 건 이 동네가 그만큼 인적 드물고 산세가 좋아 신선이나 상상의 동물이 살 법한 곳이라는 방증인지도 모른다.

없앨 것인가 살릴 것인가

깊은 산골이었기에 이 지역의 주민은 대체로 임업에 종사하거나 미군과 국군에 기대어 사는 사람이었다. 찾아오는 외지인은 주로 송이를 캐는 이, 방물장수, 소금장수, 떠돌이 약장수 같은 사람이었다. 그네가 밤을 보내던 곳이 이 금성여인숙이었다. 이 여인숙이 문을 연 것은 1960년대 초반이다. 정확히는 1964년이라고 여인숙의 주인인 강북섭 할머니는 말한다. 그는 충남 예산 태생이다. 16살에 어머니를 따라 처음 인제로 왔고, 횡성으로 시집을 간다. 그러고는 4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 다시 인제로 와서 어머니가 여인숙을 하던 곳 인근에 또 다른 여인숙을 열었다. 그게 지금의 금성여인숙이다. 재밌는 사실은 어머니의 여인숙 이름이 삼성여인숙이었다는 것. 나중에는 강북섭 할머니의 금성여인숙이 삼성여인숙을 흡수하기에 이른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대기업의 이름이 덧대어지면 두 모녀의 여인숙 이야기가 자못 흥미롭게 들린다.

개업은 1964년이었지만, 영업 허가를 받지 않아 사실상 불법영업이었다. 그래서 두 부부는 누가 신고라도 할까 봐 늘 마음을 졸였다고 했다. 그냥 허가받으면 될 일 아닌가 싶지만, 허가증을 받기 위한 절차가 지금 같지 않았던 당시에는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여인숙 문을 열고 8년 만인 1972년에 영업 허가를 받은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처음에는 흙벽으로 지은 집에서 시작했고, 미군 부대의 자재를 얻어서 지붕을 올렸다. 지금의 건물은 1990년에 지었다. 이듬해에 2층을 올려 현재의 구조를 갖췄다. 내가 어릴 적 보았던 수유리의 여인숙의 풍경이 아마도 1984년쯤일 거다. 그러니까 이렇게 중정처럼 수돗가를 갖추고 그 주위로 방이 늘어선 구조는 1990년대 초반까지 존재했다고 추론해 볼 수 있을 듯하다. 개업 초기인 1960년대에는 미군을 좇아 흘러온 아가씨들이 머물렀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흐르며 온갖 장사치가 이곳에서 잠을 청했고, 그 이후에는 군 면회를 온 가족이 쉬어가는 공간이 됐다. 그렇게 흘러온 역사가 내년이면 벌써 60년이다.

오래된 건물임에도 내부는 아주 멀끔하다. 노부부가 얼마나 공들여 이곳을 가꿔왔는지가 보인다. 수돗가 주변에 놓인 계단을 따라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이 모습을 보고 지인 중 한 사람은 홍콩영화에서 보던 장면 같다고도 했다. 그만큼 인상적인 장면이다.

곳곳에 온갖 식물이 자라고 있고, 좀처럼 버리지 않은 병뚜껑이나 종이컵이 잘 정돈되어 모여 있다. 뭇사람에겐 쓰레기일 텐데 이곳에선 꽤 보기 좋은 인테리어 요소처럼 느껴진다. 예전에는 수돗가 위에 지붕이 없었던 듯하다. 지금은 반투명한 플라스틱을 덮어 놓아 햇살이 수돗가로 쏟아져 들어온다. 그 모습이 이제는 귀하디귀한 ‘여인숙’의 건축 스타일을 더 아련하게 꾸며준다. 이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여인숙을 찾을 이유는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인숙의 운명은 9월 초에 끝날 예정이다. 인제군은 이 좁은 골목을 헐어 소방도로를 만들 계획을 세워 두었다. 그게 언제 진행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노부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장사를 접고 쉬고 싶다고 한다. 만약 건물이 헐린다면 이제 이 땅에 얼마나 남아 있을지 알 수 없는 이 여인숙의 건축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걸 아쉬워하는 예술가와 활동가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어 온갖 꿍꿍이를 꾸미는 중이다. 이 건물이 다른 기능을 갖추고 재탄생하게 될지, 그대로 사라질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고난의 행군을 버티게 해 준 북한의 음식

방음이 잘 안되는 것만 빼면 금성여인숙에서 보낸 밤은 꽤 훌륭했다. 방안의 기물도 역시 오래됐지만, 잘 닦고 관리를 한 덕에 깔끔했다. 샤워를 할 수 있는 욕실도 훌륭했다. 이 가격이라면 인제읍에서 모텔이나 호텔보다는 이 여인숙을 찾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주변에 식사를 해결할 식당이 많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여인숙이 있는 골목을 나와 도로를 건너가면 맞은 편 골목 안쪽에 탈북자 요리사 김나윤 씨가 운영하는 북한음식점 ‘대동강국수’가 있다. 북과 남을 가르는 철책을 가까이 둔 이 땅에서 이북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건 꽤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작은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벽 한쪽이 온통 요리사로서의 자격과 실력을 보여주는 인증서로 가득했다. 김나윤 씨는 그만큼 열심히 자기의 실력을 갈고 닦아온 사람인 듯했다. 메뉴는 옥수수면을 비롯한 몇 가지로 단출하다. 그중에는 평양냉면도 있고 두부밥도 있다. 둘 다 북한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주문을 넣고 기다리니 오래되지 않아 음식이 깔렸다. 평양냉면은 흔하게 먹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새콤한 육수에 노란 면이 타래 지어 담겼는데, 옥수수면처럼 보였다. 김나윤 씨에게 물어보니 면은 직접 만들지 못하고 사 온다고만 했다. 약간은 질깃한 식감이 쫄면을 연상케 한다. 그럼에도 전반적인 맛은 썩 괜찮았다.

눈길을 끌었던 건 역시 두부밥이다. 두부밥은 원래 1950년대 북송된 재일교포들이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다만 초대리를 넣어 새콤한 맛을 살린 유부초밥과 달리 깨소금으로만 간을 한다. 유부가 없어 두부를 얇게 저며 굽고 가운데를 갈라 밥을 넣은 것도 차이다. 그때만 해도 두부밥은 북한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북한에서 국민 음식으로 받아들여진 건 1990년대 중반이다. 고난의 행군이라 부르던, 식량 부족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게 무척이나 어려웠던 시기에 재료가 많이 필요 없고 만들기도 간단했던 두부밥은 큰 인기를 끌었다. 북의 장마당에 길거리 음식이 나타났고, 이 중에 두부밥이 있었다. 배급을 온전히 받지 못한 주민들은 저렴하게 사 먹을 수 있는 두부밥을 즐겨 찾았다. 주먹밥을 대체할 수 있었고 단백질이 풍부해 허기를 달래기에도 좋았다.

이후 탈북민들이 두부밥을 남쪽에 소개하면서 알려졌지만, 제대로 만든 것을 먹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탈북 요리사에게 “왜 메뉴에 넣지 않냐?”라고 물어도 “그걸 굳이 메뉴에 넣을 필요가 뭐 있냐? 북에 있을 때 너무 많이 먹어서 보기도 싫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래서 두부밥이 무척 궁금했다.

이곳의 두부밥은 큼지막하다. 유부와 달리 두부는 신축성이 떨어져 밥을 넣기 위해서는 이 정도 크기로 만들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두부밥에 올려 먹으라며 함께 내준 양념은 파, 마늘, 양파에 참기름, 들기름, 직접 만든 고추기름을 넣고 만든 것이다. 두부밥 그 자체는 아주 무난하다. 고소한 두부에 밥의 단맛이 곁들여진 담백함. 여기에 양념을 얹어 먹으면 훨씬 맛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 양념의 역할이 꽤 비중 있게 다가온다.

최고의 맛은 담백한 맛이라고 했던가. 먹을 때는 큰 존재감을 느끼기 어려웠지만 돌아 나와 차를 달리는 내내 입안에서 여운이 길게 남았다. 어려운 시기 이북의 주민들이 살 수 있게 해 주었던 이 음식이 가진 생명력은 무척 끈질기고 강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인제에서 꼭 하나를 먹어야 한다면 다시 한번 두부밥을 찾게 될 듯했다.

두부는 콩으로 만든 대표적인 식품이다. 물에 담가서 불린 뒤 그걸 갈아 가열하고 응고제를 넣어 굳히면 두부가 된다. 설에 의하면 중국 한나라의 회남왕 유안이 발명했다고 하지만 공식 기록은 11세기에 이르러서 찾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고려 말의 학자 목은 이색이 사찰에서 먹은 두부를 칭송하는 글을 여럿 남겼다. 콩은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고 부를 만큼 단백질이 풍부하다. 칼슘이 많아 뼈를 튼튼하게 하고 골다공증을 예방하기도 하며. 콩의 이소플라빈 화합물이 암세포의 성장을 늦추는 것은 이미 여러 실험에서 확인된 바 있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