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전설 근거중심 탐구

진월인, 순우의, 편작의 형은 환자의 안색을 보고 병을 알았다고 한다. 아차산의 전설에서 맹인 점쟁이 홍계관은 상자 속에 임신한 쥐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맞혔다고 한다. 알에서 태어난 영웅이나 공주, 왕자의 이야기는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물론 허구다. 하지만 과장이나 와전은 있더라도 완전한 날조는 아니라면? 그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과학과 상상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 진짜 이야기를 재구성해 본다.
[학력]
서울대학교 학사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학사/석사

[경력]
강동경희대학교한방병원 인턴/레지던트 (한방내과 전문의)
국제인증수유상담가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교육이사
베이비뉴스 칼럼니스트
오마이뉴스 칼럼니스트

김나희
김나희

신화와 전설이 허공에서 창조되었을 수도 있지만, 어떤 실존했던 상황에 상상력으로 살을 붙여나갔을 수도 있다는 가정 아래, 그 사실이 무엇이었을지 탐색해 봅니다. "소설 쓰고 앉아 있네!"라고 해주시면 더없는 칭찬이 되겠어요.

프로필 바로가기

#18. 임신했을 때 토끼고기를 먹으면 구순열 아기를 낳는다는 미신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부제: 식이에 따라 다르게 발생하는 곤충을 보고 와전된 것일지도)

 

KNH 0018-main.jpg



<동의보감 잡병편 부인문 東醫寶鑑 雜病篇 婦人門>에 임신 시 음식 금기로 다음과 같은 <의학입문 醫學入門>의 내용이 인용되어 있다.


...食兎肉, 令子缺脣... 食螃蟹, 令子橫生... 食雀肉, 飮酒.... 令子多淫無恥, 或生雀子班. 食鱉肉, 令子項短縮頭. 食薑芽, 令子多指...

...토끼고기를 먹으면 아이가 언청이가 된다... 게를 먹으면 횡산(橫産)하게 된다... 참새고기를 먹으며 술을 마시면 아이가 음란하고 수치심을 모르거나, 주근깨가 생긴다. 자라고기를 먹으면 아이가 목이 짧아진다. 생강의 싹을 먹으면 아이가 손가락이 많게 된다...


구순열 (언청이)은 토순(兎脣)이라고도 하며, 입술이 갈라진 모습이 토끼 입술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임부가 토끼고기를 먹으면 토끼 입술 닮은 아기를 낳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게는 옆으로 걸으니, 임부가 게를 먹으면 태아가 옆으로 누워 난산하게 된다.’, ‘참새고기를 먹으면 아기가 참새알 무늬처럼 주근깨 (주근깨를 참새알 닮았다고 작자반(雀子班) 또는 작난반(雀卵班)이라고 하였다)가 생긴다.’, ‘자라고기를 먹으면 아기가 목이 짧아진다.’, ‘생강 (다지증 손가락 모양과 닮은)을 먹으면 다지증이 생긴다.’라는 것이다.


임신 여성에게 스트레스만 주고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위 내용들은 물론 근거가 없고, 따를 필요가 없다. 마치, 라틴어로는 주근깨가 lentigo, 즉 제비콩 또는 제비콩 모양의 반점이란 뜻이니, 라틴어로 말할 때는 참새고기 대신 제비콩 금기가 생긴다고 하는 것처럼 어불성설이다. 탈리도마이드 (thalidomide)로 생기는 해표지증 (海豹肢症, phocomelia, 바다표범손발증)을 바다표범고기를 먹으면 생긴다고 여기는 것과 똑같은 미신이다. 임신 금기 전체에서 지킬 내용은 금주 정도이고, 나머지는 양생법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문제'가 생기면 임신한 여성 탓을 하는 편견이 의학에도 반영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태내 환경이 태아에게 영향을 준다는 개념 자체는 맞았다. 임신 상태에서 기아를 겪으면 그 태아는 대사증후군 발현 확률이 높아지고, 임신 상태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으면 그 태아는 스트레스 대응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길 확률이 높아지는 등의 인과관계가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탈리도마이드 사건이나 DES 사건에서처럼 특정 약물이 발생 과정을 교란할 수 있음도 밝혀졌다. 특정 태내 환경이 태아에게 어떤 결과를 낳는지 알려면, 대규모의 추적 관찰이나 생리, 병리 기전 규명이 필요하므로, 이 인과를 20세기 이전에는 알기 어려웠다. 그래서 유비와 추측에 기대어 참새고기~주근깨 같은 잘못된 인과관계, 즉 미신을 상상하게 된 것일 터이다.


사람은 자신이 섭취하는 음식의 형태를 닮는 것이 불가능하다. 귤을 많이 먹으면 손바닥이 귤 색소로 노랗게 된다거나, 담배를 피우면 담배 연기처럼 피부도 칙칙해진다거나, 마늘을 많이 먹으면 몸에서 마늘 냄새가 나는 정도가 최대한이다. 사람이 무언가를 먹어서 그 모습처럼 바뀔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미신도 처음에 시작된 계기가 있을 수도 있다. 실제 존재하는 현상을 누군가 관찰하고, 이것이 와전되고 점차 살이 붙어서 미신으로 자리 잡았을 수 있다. 즉, 먹는 대로 형상이 바뀌는 일이 실제 일어난다면?


캘리포니아대학의 에릭 그린 (Erick Greene)은 자벌레과의 나방의 애벌레가 꽃을 먹으면 꽃 모양으로 자라나고 나무를 먹으면 나무 모양으로 자라난다는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논문 바로 가기 클릭)


애리조나, 멕시코, 뉴멕시코, 캘리포니아에 사는 Nemoria Arizonaria라는 이 작은 나방의 성체는 빛나는 에메랄드빛 벨벳처럼 생겼다. 봄에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들은 참나무의 밝은 노랑과 녹색의 미상(尾狀) 꽃차례 (아래로 늘어지는 꼬리 모양의 꽃송이)를 먹고 자란다. 그리고 이 울퉁불퉁한 미상 꽃차례를 똑 닮아 보풀보풀한 술과 가짜 꽃가루주머니를 갖고 마디마디가 분절된 모습으로 자라나, 완벽한 위장이 가능하다. 이들은 몇 주 뒤 번데기가 되어 성충이 되고 다시 알을 낳는다. 가을에 자라나는 애벌레들은 꽃이 없어서 이파리를 먹고 자라는데, 이 시기의 참나무 나뭇가지 같은 매끈하고 작은 혹이 있는 회녹색 몸으로 자라나서 역시 완벽한 위장이 가능하다! 가죽처럼 질긴 참나무 잎을 씹기 위해 강한 턱도 생긴다. 부드러운 봄꽃을 먹는 애벌레들에게는 없던 것이다.


KNH 0018-img-01.jpg


너무나 훌륭한 위장술이라, 연구자가 뚫어지게 쳐다봐도 구분을 못 해서 손으로 만져봐서 찾아내야 한다고 한다. 또한 애벌레들은 어디에 숨어야 하는지도 안다. 꽃차례 닮은 애벌레들은 나뭇가지에 놓으면 빠르게 도망쳐서 꽃 속으로 숨고, 가지 닮은 애벌레들은 꽃 속에 놓으면 나뭇가지로 얼른 내빼서 가지 흉내를 내며 부동자세로 서 있는다.


봄 애벌레와 가을 애벌레는 유전적으로 동일하며 알에서 나왔을 때는 똑같지만 애벌레의 먹이에 따라 몸이 완전히 달라진다. 식이가 적절한 유전자를 끄고 켜는 신호로 작용하여, 시기에 맞는 모양으로 분화 발생하는 것이다. 실험실에서 조건을 통제하고 꽃차례나 잎을 주면서 관찰했더니 같은 결과를 얻었다. 가을에 태어난 애벌레도 꽃차례를 먹으면 꽃 모양으로 자라난다. 봄에 태어난 애벌레도 잎을 먹으면 가지 모양으로 자라난다. 핵심은 잎에 있는 타닌 (tannin)이었다. 꽃을 먹으면서도 타닌을 섞어 먹으면 가지 모양으로 자라나기 때문이다.


애벌레의 발생에 대해서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 많으므로 이렇게 먹이에 따라 다르게 자라나는 종은 더 있을 가능성이 있다. 미신적인 임신 금기도 이런 양상을 자연에서 관찰한 데에서 비롯했을 수 있다.



[참고]


⦁탈리도마이드 (thalidomide)는 1957년 10월에 서독에서 콘테르간 (contergan)이라는 제품명으로 진정제, 수면제로 시판되었다. 특히 입덧을 완화하는 데 효과가 있어 많은 임신부가 사용하였으나, 이 약을 먹은 산모에게서 사지가 없거나 짧은 신생아들이 태어났고 그 원인이 이 약 때문임이 밝혀졌으며 1962년 이후 판매가 금지되었다. 그 후 인체 내 면역과 관련된 물질의 생성을 조절하여 면역반응을 조절하거나 새로운 혈관의 형성을 억제하여 치료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현재는 다발성 골수종 치료와 나병 환자의 중증 피부 병변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태아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임부,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 또는 피임법을 사용하지 않는 남성에게는 투여하지 않는다.


⦁DES는 합성 에스트로겐 디에틸스틸베스트롤 (Diethylstilbestrol)의 약자로 유산방지제로 사용한 약품에 있는 화학 물질이다. 과거 임신한 여성들이 아이를 위하여 약을 먹어 유산은 막았지만, 태어난 아이들에게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여자 어린이 경우에는 생식기 암, 성조숙증, 불임 같은 질병으로 고통받게 되었다.



© 한의사 김나희의 신화와 전설 근거중심 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