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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장 시절 이야기

1998년 강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원자력병원 세포생물학 연구실에 상주하면서 기초실험 능력을 배양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Harvard의 Judah Folkman 교수가 암이 성장하는 데에는 혈관신생(血管新生, angiogenesis)이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나는 그 angiogenesis가 한의학적으로는 어혈(瘀血)이라는 병리 개념과 상관된다고 착안하였다. 1987년 박사학위 논문이 ‘혈부축어탕 血府逐瘀湯이 혈전증 血栓症과 피하혈종 皮下血腫에 미치는 영향 影響’이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바로 어혈 치료 한약물을 이용하여 실험적으로 항암연구를 시도하였고, 그 후로 병리학 교실의 연구는 어혈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한의계 최초로 그에 관련된 특허를 등록하기도 하였다.

원자력병원에서의 실험실 생활이 한창 무르익어 가고 있을 무렵, 학교에서 나를 한의학과장으로 임명하였다. 평소에 학과장이라는 보직을 청소 당번이라 생각했었고, 그래서 나 하나 편하기 위해 마냥 피할 수는 없는 자리였다. 당시 학장님은 한방병원에서 주로 임상 업무에 종사하셨고 또 학과장은 대학원 주임교수를 겸하고 있기 때문에 학과장에게 주어지는 권한과 업무는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이가 갓 마흔이어서 기세가 팔팔했고 거칠 것이 없었다. 소신대로 원칙대로 밀어붙였다.

현재의 신축 건물로 옮기기 전, 한의대는 의약관에서 독립하여 후문 쪽에 위치한 과거 산업대학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무계획적으로 입주하다 보니 강의, 연구, 실습 공간들이 서로 엉켜 있었다. 오랫동안 교수들의 욕심과 고집이 서로 얽혀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한의대 공간 문제를 깔끔하게 짧은 시간에 정리해 냈다.

학생회와 벌였던 기 싸움도 생각난다. 한번은 학생회에서 정확하지 않은 정보로 한의대와 대학 당국을 비난하는 대자보를 한의대 현관 벽에 붙였길래 북북 뜯어내어 옆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그랬더니 학생회장이 그 찢어진 대자보를 스카치테이프로 둘둘 말아 다시 현관문에 매달았다. 나는 또다시 쓰레기통에 처넣어 버렸다. 당시 학생회장은 지금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김건형 교수로 지금은 나와 FB 절친이다.

또 기억나는 것은 대학원 박사과정 종합시험에서 응시생 32명 가운데 19명을 탈락시킨 적이 있었다. 그중에는 한의협 회장 등 한의계 유력 인사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예전부터 칼이라는 소문이 있었는지라 그 며칠 전 유기덕 전 한의협 회장 부친상에 갔다가 거기서 한의협 부회장을 지냈던 모 선배가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나에게 들으라는 듯 “이번에 많이 탈락시키면 모가지를 확 비틀어 버릴 거야.”라고 협박성 엄포를 놓았었다. 성적대로 처리하였고, 내 목은 여전히 무사하다.

‘21세기 한의학을 위하여’ 이야기

2년간 한의학과장 보직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프로젝트는 ‘21세기 한의학을 위하여’라는 명사 초청 강의 시리즈였다. 평소 한의과대학 학생들의 지적 수준과 학문적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대학 교육 환경과 내용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특히 전공과목이 임상 한의사 배출을 위한 내용에만 치우치고 한의학의 미래에 대한 비전과 통찰력을 제시하지 못하는 점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비록 강사분들의 전공 분야는 다르지만, 한의학의 미래를 위한 대한민국 대표 지성인들의 통찰을 들려주면 학생들도 순간 번뜩이는 비전의 공명(共鳴)을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강의해 주신 분들과 강의 제목은 조영식 경희학원장님의 ‘신의학을 위하여’, 김용옥 선생님의 ‘한의학을 깊게, 그러나 과학으로 넓게 보기’, 이상희 장관님의 ‘한의학, 세계의 중심에 서는 그날까지’, 이어령 장관님의 ‘한의학, 미래의 가능성을 만나다’, 서울대 의과대학 서정선 교수님의 ‘서양의학 + 전통의학 = 21세기 통합의학’, 오명 장관님의 ‘한의학의 정보화, 세계로 나가는 지름길’ 서울대 물리학과 소광섭 교수님의 ‘한의학의 과학적 의미 이해와 연구’, 서울대 산업공학과 이면우 교수님으로 모두 여덟 분이셨다. 직접 일일이 섭외하여 모셔 왔다.

강의 내용은 모두 녹취하여 10년 후인 2009년 학장을 하던 시절 경희출판국에서 〈21세기 한의학을 위하여; 한의학 미래를 위한 명사 특강〉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하였다. 그분들 가운데 유일하게 이면우 교수님은 강의 내용의 출판을 원하지 않으셨다. 이 교수님의 강의 내용 가운데 “한의학이 지금은 한창 잘나가고 있는데, 너무 안심하지 말라. 동네 쌀집, 연탄가게, 솜틀집을 봐라. 우리들이 쌀을 먹는 한, 겨울 난방을 하는 한, 결혼을 하는 한, 영원히 무사할 줄 알았는데, 지금 봐라. 그들은 자취도 없이 다 사라졌다. 한의학도 그와 같은 운명에 빠질 수도 있다.”라고 경고하셨다. 당시에는 나 자신조차도 뜬금없이 무슨 말씀이냐고 반문하였지만, 몇 년 안 되어 한의계가 기울어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미래를 준비하지 않고 과거와 현재에 안주하고 있는 집단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런 길을 한의학이 갈 수는 없다.

〈21세기 한의학을 위하여; 한의학 미래를 위한 명사 특강〉 경희대학교출판국. 2009.

양평집 이야기

1999년 말 2년간의 학과장 보직을 마치면서 심신이 많이 지쳐 있었다. 또 그해 여름 인제 내린천에 래프팅 갔다가 같은 보트에 탔던 한 부인이 아내의 발을 깔고 주저앉는 바람에 아내가 발목 골절상을 입었다. 그래서 몇 달 동안 깁스를 하다 보니 우리 둘은 답답한 도시 생활을 떠나 전원주택을 짓자고 의기투합하였다. 학교 출퇴근도 고려하여 동쪽으로 그래서 양평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IMF 이후라 땅값이 그다지 비싸지 않았고, 마침 양평의 노른자에 해당하는 양서면에 급매물이 나와 가보았다. 눈 온 뒤 겨울 오후였는데, 남향의 배산임수 지형으로 그 자리에 서 보니 저 아래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면서 적막하면서도 안온한 느낌이 왔다. 바로 땅을 매입하고 나서 앞으로 천천히 집을 짓겠다고 생각하였다. 땅 모양이 평지가 아닌 두 단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집은 그러한 지형을 고려하여 들어 앉혀야 한다. 땅을 보신 부친께서도 매우 흡족해하셨다.

그 이듬해 봄에 건축회사에 다니는 절친이 우리 땅에 적합한 집이 건축전문잡지 표지로 나왔다면서 그 잡지를 주었다. 강화도에 경사진 땅을 살려서 지은 집이다. 평평한 땅보다는 경사진 땅이 나름대로 특색 있는 집을 지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건축 시공을 오래 하셨던 부친께서는 강화도의 집을 참고하여 직접 설계도를 만드셨다. 마침 또 그 친구가 강 건너 강상면에 자기 회사 회장 빌라를 짓는데, 자기가 책임을 맡았다고 하면서, 그 집 지을 때 같이 지으면 자기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였다. 2000년 5월 18일 기공 예배를 보고 바로 우물을 팠다. 양평은 수자원 보호 지역이라 어디를 파나 물이 풍부하고 맑다. 그 물로 집을 짓기 시작하였고, 지금까지 우리 집에서는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부친은 군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퇴역하시고서 이전의 건축학 전공을 살려 건축회사에 다니셨다. 광화문 정부중앙청사와 여의도 KBS 등 여러 공사에 참여하셨고, 수년간 중동에서 근무하셨다. 은퇴하신 후에는 오매불망 자신의 집을 짓고 싶어 하셨다. 아들이 땅을 사서 집을 짓는다고 하니 얼마나 흐뭇하셨겠는가? 직접 설계하시고 들어가는 자재 등 일체를 꼼꼼하게 계산하셨다. 2층 단독주택으로는 어울리지 않게, 철근콘크리트로 마치 빌딩이나 벙커를 짓는 것처럼 완벽한 기초 공사를 하셨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골짜기에 무슨 빌딩 들어서느냐고 의아해했다.

모든 벽면과 지붕 내부에 10cm 두께의 스티로폼을 넣었다. 양평에는 물이 많아 춘천 못지않게 겨울 날씨가 차갑다. 그에 대비하여 막강한 기초공사를 하셨다. 그런데 건축 비용을 절감하느라고 외벽은 드라이비트로 하려는 데 주변 사람들이 “속은 그렇게 잘 만들어 놓고, 겉은 왜 그렇게 싸게 가려고 하느냐?”면서 다른 소재로 하도록 강권하였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양평군과 주변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잘 만든 외벽을 찾아다녔다.

하루는 강변에 가니 베이지색으로 온화한 느낌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소재의 벽이 있어 알아보니 산호석이라 한다. 우리도 그렇게 가기로 했다. 산호석은 필리핀에서 수입해 왔다. 산호석에는 공기구멍이 많아 벽이 숨을 쉰다고 한다. 그래서 보온이 잘 된다. 외벽을 산호석으로 두르다 보니 그에 걸맞게 내부는 고급 목재로 마감해야 했다. 결국 원래 예정했던 공사 금액에 비해 거의 두 배의 비용이 들었다. 공사 기간은 약 6개월이 걸렸다. 여름방학 때에는 초등학교 6학년인 규하를 공사장으로 데려와 처마 밑에 방수 처리한 나무 붙이는 작업에 며칠간 투입하였다. “너희들이 앞으로 살 집이니까 너도 참여해서 기여해야지. 그래야 이 집에 대한 애정이 더 생기지 않겠니?”

거의 공사가 끝나가던 겨울, 양평 집 현장을 나서는데, 수온이로부터 대학 수시에 합격했다는 전화가 왔다. 딸이 고3 때 집을 지었던 나는 수험생 아버지로서는 자격 미달이었다. 완공된 후 양평 집에서는 대학원 세미나, 기초교수 상조회 등을 열어 교수, 학생, 주변 사람들을 초대하여 바비큐 파티를 열기도 하였다. 그러나 WHO 근무 등으로 인해 나와 우리 가족이 그 집에 살았던 기간은 막상 매우 짧았고, 부모님이 줄곧 상주하고 계셨다.

양평군 양서면 대심리 소재 주택

Stanford 의대 이야기

2000년이 끝나갈 무렵, 학교에서는 미국 스탠퍼드 의대와 공동 연구를 기획했었다. 구체적으로 암에 대한 침 치료 효과 연구였다. 자연스럽게 경희대에서 한의학적 암 치료에 관해서 가장 적극적이던 나에게 기회가 왔다. 미국에서는 한약을 대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으므로 우선 침 치료를 주제로 삼았다. 일단 선발은 되었으나, 나는 침구학이나 경혈학 전공도 아니었고 실제로 침 치료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그 무렵 박사학위 논문을 심사하던 차에 당시 수심자였던 황 모 원장이 자기의 동기생인 김광호 원장에게 일침(一鍼)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일침은 당시 한의계 일각에서 소문이 나 있었다. 바로 황 원장에게 부탁하여 김 원장과 연락하였다. 며칠 후 학교 내 연구실에서 김 원장으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친구 한의원에서 환자를 모아 놓고 실제 임상시험을 하였다. 일침은 특히 통증 제어와 근골격계 질환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그 이후로 나는 통증 질환의 침 치료에 대해서는 상당한 자신감이 생겼다.

예과 1학년 여름방학 때 처음 침을 배우고서 그해 겨울 사관혈(四關穴) 자침으로 교회 권사님을 극적으로 치료해 주고 난 후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침 돌팔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고는 선행 학습의 부작용으로 교만해져 학교의 정규 침구학 수업을 소홀히 하였다. 그러다 보니 나의 침구 실력은 예과 시절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더 이상 발전이 없었다. 심지어 염좌 치료에도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일침을 접한 이후로는 달라졌다. 그렇게 일침을 무기로 장착하고 미국에 가서도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미국에서 생활하려면 가장 먼저 차를 구입해야 한다. Palo Alto에서 한인이 운영하는 중고차 매장에 가서 차를 사니, 그다음 절차는 보험에 드는 일이다. 곧바로 한인 보험담당자가 왔는데, 그 여자분은 내가 한의사라고 했더니 어깨가 아픈 지가 오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리에 침을 하나 놓고 어깨를 올려 돌려보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그분이 바로 감탄사를 발한다.

마침 자동차 매장에 들러 저만치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신사분이 “어디서 오셨느냐?”고 묻는다. 내 대답을 듣고 나서 자신은 북가주 한인 TV 방송 사장인데 자신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해달라고 한다. TV 방송 출연 후 나의 침 실력에 관한 소문은 교민들 사이에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골프를 처음 시작하였는데, 그 이유는 환자들이 내가 침 치료비를 받지 않으니 그 대신 골프 초청으로 대체하였기 때문이다. 집으로 데리러 와서 골프 치고 식사까지 하고 집으로 다시 데려다주는 방식이었다. 잘 치지 못하는 골프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할 수 없이 그들을 따라 일주일에 두세 번 골프 치러 나갔다.

한번은 16개 나라에서 온 외국인 영어 수업 시간에 담당 강사의 요청으로 침에 대한 설명을 하고 공개적으로 침 치료를 한 적도 있었다. 강의를 마치고 나서 “아픈 사람 앞으로 나오라.”라고 하고 교탁 위에 눕혀 놓고 침을 놓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했던 경험이기도 한데, 거기에 참석한 사람들은 마치 침 마술을 보는 느낌이었던 것 같았다. 그때 이스라엘에서 온 중년 부인이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서 나왔는데, 일침을 놓고 나서 바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였다. 모두 탄성을 질렀다. 마치 예수님이 된 기분이었다.

당시 나는 UC Irvine에서 계시던 f-MRI 분야의 세계적 대가 조장희 박사님을 초청하여 스탠퍼드 의대 병원에서 세미나를 주선한 적이 있었다. 규하가 San Diego로 아이스하키 시합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조 박사님을 만났고, 마침 연수 나와 있던 김기왕 선생도 만났다.

조 박사님은 세미나에서 스탠퍼드 의대 교수들을 대상으로 경혈에는 특이성이 없다는 자신의 지론을 강조하셨다. 그분 주장대로 하면 경혈이 따로 필요 없고 아무 데나 침을 놓으면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침의 존재와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분의 연구가 임상시험은 아니었고 정상인을 대상으로 50도의 뜨거운 물에 손가락을 담가서 생긴 통증을 침으로 진통시키는 실험이었다. 사실 이 경우에 무슨 특별한 경혈이 있겠는가?

조 박사님의 발표가 끝나고 나는 “여태까지 실제 임상에서 뜨거운 물로 유발된 통증을 침으로 치료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도 무슨 혈을 취할지 알 수 없다. 침의 통증 치료 효과에 대한 올바른 연구가 되려면 그와같이 적절하지 않은 실험 디자인을 할 것이 아니라 실제 임상에서 볼 수 있는 통증을 대상으로 연구하여야 한다.”라고 하였다. 나의 발언에 조 박사님께서는 당황하실 수밖에 없었다. 조 박사님과는 그로부터 10여 년 후 내가 한국한의학연구원 원장 재직 시 초청 세미나에서 다시 뵈었다. 조 박사님은 세미나를 마치고 나서 나에게 농반진반으로 은퇴 후 자신을 한의연에 불러달라는 말씀까지 하셨다.

스탠퍼드 의대에서 나의 호스트 역할을 했던 소아마취과의 Brenda Golianu 교수는 구강암에 걸린 자기 친구를 침으로 치료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그 환자는 40대 초반의 같은 루마니아 출신 스탠퍼드 의대 교수였다. 그러나 그의 구강암은 이미 말기였고, 치료보다는 통증의 제어를 요청하였다. 침으로 암성 통증을 치료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조금 차도가 보이는 듯하였지만 결국 그는 석 달 정도 후에 유명을 달리하였다. 그의 부인이 나에게 고맙다고 하면서 자기 남편 장례식에 꼭 참석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음악이 “Time to Say Good Bye”라고 하였다. 장례식에서 수온이가 그가 좋아했던 곡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하였다.

스탠퍼드 의대 소아마취과의 Brenda Golianu 교수.

2006년 11월 2일, 일본 쓰쿠바에서 열렸던 ‘WHO 국제 표준 침구 경혈 위치 개발을 위한 전문가 회의’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참가했던 전문가 모두 쓰쿠바 산행을 같이했다.

아쉽게도 스탠퍼드 의대와의 공동연구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원래 두 학교가 공동연구를 한다고 MOU를 교환하면서 경희대 측이 연구기금을 제공하기로 하였었다. 그러나 내가 스탠퍼드에서 지내는 동안 한의대의 모 교수가 대학 당국에 연구비 없이도 그 프로젝트의 진행이 가능하다고 하였단다. 대학에 대한 지극 충성을 보이려 한 것인지, 아니면 시기심의 발동인지 안타까운 일이었다. 당시 조정원 총장님이 직접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여 이 프로젝트를 주선했던 의료경영학과 정기택 교수와 나를 만나 함께 점심을 하면서 대학 차원에서 지원해 줄 것이라 약속까지 하고 가셨었다. 결국 나 하나의 파견으로 그 공동연구 프로젝트가 종료되었다. 치명적인 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바로 뒤에서 옆구리를 찌른다.

미국에서 돌아온 그 이듬해인 2003년 여름, 나는 WHO로 옮겨 갔다.

© 최승훈 교수의 나의 세계화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