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항해 일지

현재 대한민국에는 5척의 병원선 (인천531호, 충남501호, 경남511호, 전남511호, 전남512호)이 의료시설이 취약한 섬을 돌며 진료를 보고 있습니다.

작은 섬에는 병원은 물론이고 보건소조차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섬 주민분들은 기본적인 감기약 처방은 물론, 한의과 및 치과 치료를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찾아가는 병원선에 많은 분이 진료를 받으러 오시며 특히 어르신분들께서는 한의 치료를 가장 선호하십니다.

공중보건한의사로 병원선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힘들지 않나'라는 걱정부터 시작해서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라는 질문을 많이 하십니다. 2022년 한의대 졸업 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저의 생생한 기억들과 느낀 점들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학력]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이메일]
djm04201@naver.com

박재량
박재량

병원선은 의료시설이 취약한 섬을 순회하며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가 진료를 보는 선박입니다. 대한민국에 몇 안 되는 병원선 근무자로서 경험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를 여러분께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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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고양이가 사람보다 많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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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제로섬, 지도(池島)


지도리는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에 위치한 섬 중 하나로 원래 이름은 ‘못섬’이라고 합니다. 이는 이 섬의 마스코트인 연못이 마을 가운데에 있어서 못섬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한자인 ‘못 지’ 자가 쓰여 지도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지도는 병원선이 들르는 섬 중에 가장 작은 섬으로 전체 주민 수가 15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섬에는 사람 때가 타지 않은 자연적인 풍경이 가득하여 발을 디디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을 들게 해줍니다.


섬의 크기는 0.45km²로 인천의 유인 섬 중 가장 작은 섬입니다. 마을을 구경하러 가는 것보다는 속세와 단절된 곳에서 마음을 비우기 좋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장 돌아가는 소음과 배출물로부터 자유로운 지도는 친환경 에너지인 태양열, 풍력 발전기를 통하여 전기를 생산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작은 섬을 밝히기에는 충분한 양의 에너지를 만듭니다.


지도에 가기 위해서는 인천에서 덕적도행 여객선을 타고 덕적도에 가서 다시 지도행 여객선을 한 시간 정도 더 타고 가야 도착합니다. 한 번에 가는 배가 없는 만큼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는 않지만 방문하시게 되면 바쁜 현대사회와 동떨어진 평화로운 마을에서 친절한 마을 주민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힐링을 할 수 있습니다.


배에서 내려 마을을 바라보게 되면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는 섬인 만큼 ‘탄소 제로섬 지도’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표지석이 보이고 그 뒤로 알록달록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여기서 바로 보이는 집들이 지도의 모든 가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이곳에는 적은 수의 가구만 머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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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 병원선이란


섬에는 주민분들을 주기적으로 돌봐줄 의료진이 없어 병원선이 유일한 의료 수단입니다. 기본적인 상비약까지 모두 병원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날씨가 좋지 못해 한 주라도 출항 일정이 밀리게 되면 저희가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시게 됩니다. 그 때문에 매번 방문할 때마다 주민 수는 적지만 드리는 약은 다른 곳 못지않게 많이 챙겨 드리고 있습니다.


비록 저에게 꾸준히 침을 맞는 환자분은 한 분이지만 그분을 위해서라도 책임감을 느끼고 지도를 방문하게 됩니다. 그 환자분은 거동이 편치 않으실뿐더러 침을 맞을 수 있는 진료소가 없어 할아버지 집에 직접 방문하여 침을 놓아 드리곤 합니다. 할머니와 한집에 같이 살고 계시는데 항상 티격태격 싸우는 모습이 정겹고 보기 좋아서 방문할 때마다 저희 조부모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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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들어가게 된 북한


침을 놓아드리며 말동무를 해드리곤 하는데 할아버지께서 해주신 흥미로운 이야기 중의 하나는 북한에 남게 될 뻔한 설입니다. 과거 스무 살 초중반 시절, 하루는 평소와 같이 배를 끌고 바다에 나갔다고 합니다. 그날은 태풍으로 인해 날씨가 좋지 않아 앞도 잘 보이지 않고, 요즘과 같은 첨단 장비가 없다 보니 배를 끌고 육지에 겨우 도착한 곳이 북한이었습니다. 지금 같은 시대에는 북한에 우연히 가게 될 일도 없겠지만, 북한에 가게 된다면 어떠한 상황에 마주하게 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네요.


당시 북한은 우리나라보다 잘 살기도 하였으며, 할아버지가 도착하니 북한에서는 할아버지를 엄청나게 반겨주었다고 합니다. 먹을 것, 잘 곳은 물론 북한 여자들이 할아버지한테 돌아가지 말라고 유혹해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같이 이야기를 듣던 할머니는 그때 가서 돌아오지 말아야 했는데 하면서 옆에서 한 말씀 하시기도 하였습니다. (ㅋㅋㅋ)


그렇게 할아버지는 북한에서 좋은 대접을 받으며 한 달간 지내다가 한국에 아이들이 3명이 있어서 그만 돌아가 봐야 한다고 말하며 그곳에서 겨우 빠져나오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같이 배를 타고 갔던 분 중에 어떤 분은 북한에 남겠다고 하여 북한에 남으셨고, 할아버지는 그렇게 가지고 갔던 배를 끌고 다시 돌아와 한국으로 무사히 넘어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처음 북한에 가서 살다 왔다고 이야기하실 때는 농담으로 하시는 이야기인 줄 알고 웃어넘기려 했으나, 이야기를 들을수록 흥미로워서 평생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이렇게 인천은 바다에 보이지 않는 경계만 있을 뿐, 마음만 먹으면 쉽게 북한과 남한을 오고 갈 수 있을 정도로 북한과 정말 거리상으로 가깝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 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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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 할아버지 댁



연못 2023


진료를 위해 지도를 방문할 때마다 저희를 매번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이장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이장님은 과거 해외에서 살다 건강이 나빠져서 고향인 지도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도시 속 바쁜 일상에서 지내다가 넓은 바다가 있고 평화로운 지도에 오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고 하십니다. 귀여운 강아지와 함께 살고 계시며, 이장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마을을 이쁘게 가꾸기 위해 노력하고 계십니다. 덕분에 이전에는 관리가 되지 않고 수년간 방치되어 있던 마을의 상징인 연못을 최근 아름답게 재단장하여 마을 전체에 생기가 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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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지도 연못 © 2019. Blue2000nt. All right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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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현재 지도 연못



어디에도 없는 무인도 뷰


섬 주민들이 모두 그러하듯 이장님도 멀리서 오는 저희를 위해 커피를 대접해 주시곤 합니다. 이렇게 끝없는 바다를 보면서 향긋한 커피를 마시는 경험은 돈을 주고도 할 수 없는, 병원선 공보의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라고 생각됩니다. 도시 속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오션뷰에서 살고 싶어 하는데 이장님 댁은 오션뷰는 물론 무인도 뷰까지 첨가된 뷰 맛집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장님은 이곳 지도에서 ‘지도리의 꿈’이라는 민박집을 같이 하고 계셔서 원하시면 언제든지 이 멋진 경치를 보러 가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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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와 함께 즐기는 이장님 댁 무인도 뷰



몽돌해변


이곳 지도는 몽돌해변이 정말 멋집니다. 몽돌은 제가 이전에 울릉도 편에서도 소개해 드렸다시피 뾰족하지 않은 큰 돌을 말하는데, 이러한 응회암 돌로 이루어진 해변을 몽돌해변이라고 부릅니다. 크지 않은 섬인 만큼 마을 뒤편을 지나 산을 조금 올라가다 보면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그 옆으로는 몽돌 해변을 볼 수 있는데 지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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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 몽돌해변 © 2019. Blue2000nt. All right reserved



고양이의 섬


제가 지도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섬의 실제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고양이 때문입니다. 15명의 주민 수에 비해 고양이는 30마리가 넘는 만큼 이 섬의 주인은 고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작년에 처음 지도를 방문하였을 때 아기 고양이였던 녀석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일 년 넘게 지켜보니 어느새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많은 고양이 중 새끼 때부터 사람 손을 무서워하지 않던 고양이가 2마리 있었는데, 다 커서도 사람을 좋아해서 저희가 갈 때마다 예뻐해 주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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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인천에서 가장 작은 섬이자 가장 자연 그 자체에 가까운 섬인 지도를 찾아 얼마 전 ‘나는 자연인이다’의 출연자 윤택 님께서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마을 주민분들께 좋은 추억을 남겨주시고 가셨는지 저희에게 윤택 님이 나오는 방송 봤냐며 먼저 말씀해 주시고 이곳에서 밥도 먹고 잠자고 갔다며 자랑도 해주셨습니다. 저도 유튜브 영상을 봤는데 반가운 얼굴들이 나와서 영상을 더 재밌게 시청한 것 같습니다.


영상에서는 주로 마을 주민분들의 과거 이야기와 어떻게 섬에 정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진료만 해서는 알기 어려웠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더 관심 있게 보았습니다. 영상 마지막에는 출연자가 주민들의 따뜻한 정을 느끼며 돌아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 역시 이곳 주민들께 정을 많이 느끼며 돌아가곤 하여 큰 공감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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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택TV https://youtu.be/xj_X0-RmX2g?si=IrpPSDlJlmHR3Gib


바쁜 일상에 지친 여러분, 가끔 도시를 떠나고 싶을 때 흔한 슈퍼마켓 하나 없는 곳이지만 부족한 것은 서로 채워주며 오순도순 살고 있는 고양이의 섬 지도에 놀러 오세요!



© 공보의 박재량의 한의사 항해 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