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물을 매개로 열정을 추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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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의 천연물과학연구소 (NAPRI: Natural Products Research Institute)는 설립된 지 60년이 넘은 역사 깊은 연구소로 국내 최초의 천연물과학 분야 전문연구기관이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천연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천연물과학연구소를 방문하여 현 소장님이신 신종헌 교수님과 전대 소장님이셨던 김영식, 이상국 교수님을 모시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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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천연물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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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38-06.jpg 연구소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1939년 경기도 개성시에 경성제국대학교 생약연구소로 개소하여 한반도를 비롯한 중국의 약재 등에 관하여 조사를 시작했고, 특히 인삼을 주로 연구했습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설립과 함께 1946년 서울대학교 생약연구소로 재출발하여 생약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여 왔으며, 연구영역의 확대에 따라 1992년 천연물과학연구소로 개칭했습니다. 천연물과학 분야의 전문연구인력 육성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1998년에 대학원협동과정이 설치 및 운영되었습니다. 이후 2001년에 약학대학과 통합되어 천연물과학연구소가 약대부설기관으로 됨에 따라 연구역량을 학문후속세대의 교육에 연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같은 해인 2001년에 보건복지부로부터 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전문기관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 동식물을 비롯한 해양생물, 미생물 등 다양한 천연자원으로부터 생리활성물질의 연구개발을 통하여 신약개발 등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에 연구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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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38-06.jpg 천연물이란 무엇인가요?

한 줄로 간략히 정리하자면 ‘생리활성이 기대되는 천연에 존재하고 있는 화합물’이라는 개념입니다. 천연물이라는 단어는 쉽게 다가올 수 있지만 그것의 뚜렷한 정의를 내리는 데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이 보는 관점의 천연물과 연구하는 사람들이 보는 관점의 천연물은 서로 다릅니다. 자연에 있는 것은 전부 천연물 아니냐는 질문을 하는데 생물이 대사작용을 해서 만들어낸 것이 천연물이 맞긴 합니다.

하지만 연구자들이 말하는 천연물은 이와 다릅니다. 지구 상의 어떤 생물이든 태양의 에너지를 받습니다. 식물은 광합성을 해서 에너지를 만들고 그걸 동물이나 미생물이 소화합니다. 생명을 유지하는 3대 요소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으로 동식물이든 미생물이든 현재 지구 상에 사는 생물의 대사는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학문하는 입장에서는 그 과정에 있는 물질들을 천연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인삼의 사포닌처럼 생화학 작용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보통의 1차 대사물이 아닌 특정한 생물만 특수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천연물입니다. 즉, 학술적으로는 2차 대사물만 천연물로 보고 연구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story 38-06.jpg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천연물과학연구소의 목표 및 세계의 다른 천연물연구소와의 차별점은?

우리 연구소는 대학부속 연구소로 무엇보다 천연물연구를 통해 천연물신약개발을 위한 고급인력 및 석·박사 대학원생들을 양성해서 국내외의 많은 학교나 연구기관에 배출하는 것이 1차 목표입니다. 연구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천연물을 기초적으로 탐색하는 과정, 즉 천연물을 발견해서 규명하고 그 약효를 찾는 과정에서 물질의 성질, 약효의 기전 및 효과적인 접근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주된 목표입니다. 즉, 천연물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기초연구와 응용연구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의 다른 천연물연구소는 국가와 기관별로 지향하는 특성이 상당히 다릅니다. 천연물은 생물에서 나오는 물질인데 나라마다 생물상이 다르기에 각 나라의 고유생물을 통한 연구 역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연구소는 주로 우리나라의 고유생물에서 물질을 추출하여 연구합니다. 똑같은 목표를 갖고 천연물시약을 연구한다고 해도 국가 간의 생물반입에 대한 장벽이 철저하기에 국제공동연구를 제외하면 국내에 자생하는 동식물, 미생물, 해양생물을 중심으로 연구하게 됩니다. 연구소 간 지향하는 목표는 비슷하지만, 결국 생물상의 차이가 크기에 연구대상이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story 38-06.jpg 대표적 연구 성과는 무엇인가요?

최근 대표적으로 산업화까지 진행된 것에는 위장질환 개선제인 ‘스티렌정’이 있습니다. 안전성과 유효성 임상시험까지 마친 후 천연물신약촉진법에 의해 허가 맡은 천연물신약으로 12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예가 강화약쑥 천연물로 단일화합물이 아닌 추출물형태로 만든 스티렌정입니다. 애엽 (艾葉)이라는 국화과 식물인 약쑥 (Artemisia asiatica Nak.)의 전초를 말린 것을 이용하여 약효가 있게 만드는 데에 지금은 은퇴하신 이은방 교수님을 중심으로 한 천연물과학연구소의 역할이 컸습니다. 현재는 특허만료와 개량신약 출시로 매출이 하락하였지만 동아제약에서 시판을 해서 2012년에는 약 8,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등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 외에도 건강기능식품에 해당하는 특허를 다른 회사에 이전함으로써 개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연구소가 개성에 있던 초창기에 인삼연구로 길을 만들어주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이시도야 교수가 한반도와 만주지역에 있는 식물표본으로 일명 이시도야 컬렉션을 만들었습니다. 광범위한 자생식물 표본 및 도감으로 이루어진 매우 중요한 성과입니다. 기본적인 천연물연구가 이루어지지 않던 시대에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인력양성을 해나가고 논문을 많이 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story 38-06.jpg 보건복지부로부터 2001년에 천연물신약 연구개발전문기관으로 지정되었는데 개발에 기여한 신약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우리 연구소는 정부출연연구소가 아니기에 개발을 중심 목표로 삼고 있지 않습니다. 대학원생들을 교육시켜 우수한 전문연구인력을 양성하고 이들과 함께 양질의 학술논문을 내는 것이 1차적인 목표입니다. 과거 어려웠던 1980년대까지 서울대학교의 모든 조직을 통틀어서 국제학술지에 가장 많은 논문을 게재했을 정도로 연구력이 뛰어났던 기관이며 기초연구에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도 저명한 국제학술지에 약효, 물성, 천연물 규명 등 다수의 논문을 매년 발표하고 있습니다.


story 38-06.jpg 천연물동양약물 데이터베이스 Tradimed는 무엇인가요?

1992년부터 1999년까지 국내에 유통되는 전통약물들의 기원과 사용부위에 대해 중국 문헌을 정리한 데이터베이스입니다. 당시 보건복지부에서 지원을 받아 장일무 교수님을 중심으로 <전통약물대사전>에 해당하는 콘텐츠를 관리하고 축적했습니다.


story 38-06.jpg 천연물의약품 시장규모가 점점 확대되고 있는데, 이에 연구소가 기여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식약처의 최대규모사업으로 2005년부터 10년 동안에 걸쳐 국내 유통되고 있는 주요 한약재의 과학화 연구를 한 것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는 무절제하게 생산, 유통되는 한약재의 질적 관리를 위한 품질표준화개념으로 생약의 기원식물부터 약효의 부위, 약효 함량을 비롯한 약효성분분석 표준화를 확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천연물과학연구소는 전국의 수많은 전문가가 포함된 이 사업의 주관기관이 되어 전 기간에 걸쳐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이는 또한 약전을 개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story 38-06.jpg 천연물의약품은 보통 어떤 용도의 약으로 개발되나요?

천연물의약품은 원료와 효능에 따라 적용 범위가 다릅니다. 교수님마다 전공, 대상생물에 따라 연구 방법에 차이가 있는데 다수는 개선 또는 완화 부분에 힘을 쏟고 있고,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합니다. 특히 식물은 양이 많고 채집과 가공하기 쉬운데, 예를 들어 말라리아와 같은 질환을 치료하는 치료제도 있지만 당뇨개선, 아토피증상완화, 건강보조, 기능성화장품 등 병증의 완화와 삶의 질을 높이는 것들도 많습니다. 건강기능식품을 지나 약효까지 보인다면 천연물신약이 되는 것이고 분야에 따라 다르지만 해양미생물에서 나오는 것들은 항암제라든지 난치성 질병치료제로 쓰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story 38-06.jpg 연구소에는 화학, 생물활성 등의 연구부가 있다고 들었는데, 각각 어떤 연구를 담당하는지 알려주세요.

대학원이 없이 외부 위촉연구원과 함께 전문연구를 중심으로 하던 초기에는 교수님마다 전공으로 나뉘어 4개의 연구부가 있었습니다. 이후 약학대학과 통합되면서 신약개발보다는 기초연구에 초점을 맞춰 크게 화학, 생물활성, 생물기원 및 종 다양성에 대한 분야 등 총 3개로 내부적으로 조정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기존의 4개 연구부로 설명하자면 화학연구부는 식물, 해양생물, 미생물 유래의 물질 등을 분리하고 구조의 규명 및 화학적 분석을 하고 있으며, 자원개발연구부는 기원생물의 분류, 동정 및 자원의 다양성, 안정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또 생물활성연구부는 암, 염증, 당뇨, 피부 등 다양한 질환에 관련된 물질의 효능들을 검색 및 평가하고 기전을 규명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산업기술연구부는 현재 운영되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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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38-06.jpg 최근에 천연물과학연구소에서 심포지엄을 개최하셨는데 어떤 내용을 다루셨나요?

매년 연말에 연구소의 역량강화를 위해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는 심포지엄을 진행합니다. 최근 심포지엄은 세션을 나누어 첫 세션에는 저명한 국내 전문가의 최근 연구성과에 대한 세미나 발표와 교수님들이 일반적인 강의에서 할 수 없었던 전문적인 내용의 특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구실별로 시니어 학생들의 박사디펜스 전초전 격의 발표가 있었고 포스트세션에서는 3, 4명씩 각 연구실의 대표적인 성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밖에도 국제교류로 MOU를 맺은 저명한 천연물 연구기관인 일본의 도야마대학교의 의학연구소와 천연물의 최신 연구동향을 주제로 하는 정규세미나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교수, 포닥, 시니어 학생별로 세션을 나누어 최근의 천연물 관련 연구 성과를 발표합니다.


story 38-06.jpg 천연물과학연구소의 연구원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자질은 무엇인가요?

우리 연구소의 연구원 대부분은 석·박사과정의 대학원생과 연수연구원들로서 연구역량 강화를 통하여 천연물 및 약학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수한 연구원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열정과 성실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Part 2. 신종헌 소장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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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38-06.jpg 최근 가장 관심을 가지고 계신 연구 주제는 무엇인가요?

저는 천연물화학을 전공합니다만 주로 다루는 생물은 해양생물입니다. 천연물화학이기 때문에 대체로 생약과 같은 과정을 연구하는 것은 맞는데 대상생물이 다르므로 천연물이 다르고 거기다가 바다에 서식하고 있어서 접근하는 방법에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 분야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1960년대 들어서 시작된 것으로, 생약 특히 인삼만 해도 150년이 넘는 연구역사를 가지고 있는 데 비해 해양천연물은 그 역사가 짧습니다. 대상생물은 해양무척추동물 (해면, 산호), 해양 진균 등이며 본질적으로 해양천연물에서 다루는 것은 육상에서 보지 못하는 아주 특이한 구조를 가진 물질들로서 대부분 양도 매우 적습니다. 따라서 생물을 확보해서 물질을 찾아내고 그 물질이 어떤 화학적인 구조 가지고 있는지 규명하는 데에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며 쉽지 않습니다. 또한 접근하기 어려운 생물의 미량 물질을 연구하는 만큼 비용도 많이 듭니다. 이렇듯 길은 멀지만 암, 내성균주, 신경계통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물질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story 38-06.jpg 연구하시면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좋은 연구결과로 저명한 학술지에 논문이 게재될 때, 학생을 잘 가르쳐서 좋은 학위논문을 내고 원하는 진로로 뻗어 나갔을 때 가장 보람됩니다.


story 38-06.jpg 연구 과정 중에 의도하지 않았던 뜻밖의 것을 발견하는 등의 경우가 실제로 있나요?
없다면 재미있거나 어이없었던 실수 경험이 있으신지요?

이런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알려진 물질을 대량 추출하는 경우도 있지만 본래 천연물화학은 신물질을 찾는 학문입니다. 뜻밖의 것을 발견하는 경우나 실수보다는 오히려 신물질인 줄 알고 열심히 실험하다가 나중에 가서 알려진 물질이라고 밝혀지는 상황이 있는데, 이런 것이 천연물연구에서 발생하는 큰 실수입니다.

천연물은 같은 물질이 반복하여 발견되는 경우가 적습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동일한 생물이라고 하더라도 물리적인 성장 환경의 미세한 차이나, 생물에 따라 어릴 때 생산하는 천연물과 노화해서 생산하는 천연물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환경에 따라 천연물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극미량의 특정 물질이 나와서 구조를 어렵게 파악했는데 학생이 어이없이 실수해서 버린 경우, 그 후 그 특정지역에 가서 채집을 해도 10년, 20년 동안 끝내 같은 물질이 나오지 않는 적이 꽤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한 번 손에 들어온 생물 시료로 자기가 원하는 연구의 끝을 봐야 합니다.


story 38-06.jpg 천연물과학 분야 전망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를 말씀해주세요.

1990년대에도 천연물은 더 이상 없다는 말이 많았습니다. 즉, 천연물은 이제 밝혀질 만큼 밝혀져서 연구할 물질이 곧 다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그 당시 귀국할 때 동료들로부터 이미 국내의 천연물은 거의 알려져 있어서 귀국해도 연구할 물질이 없을 거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끊임없이 신물질이 발견되고 있지 않습니까? 현재 지구 상에 연구되지 않은 생물이 많은 만큼 천연물도 끊임없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story 38-06.jpg 연구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연구는 성실함과 열정입니다.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 끌려다니는 모습은 어느 분야의 연구에서든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요즘 들어 가장 아쉬운 점은 많은 대학원생이 학생이 아니고 회사원 같다고 느낀 것입니다. 물론 성실히 하는 학생도 있지만,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와서 대충하다가 집에 갈 시간 기다리는 학생도 있습니다. 연구자에게 그런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조언을 요약해서 두 단어로 표현하자면 바로 열정과 성실입니다.



Part 3. 인터뷰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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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천연물과학연구소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주로 무슨 연구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미화보다는 현실이 피부에 와 닿을 수 있게 직접적으로 말씀해주셔서 신선함이 느껴지는 인터뷰였고 현실과 상상의 차이를 줄이며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귀한 시간을 내어주신 교수님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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