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이승민
[워킹맘 한의사 앤 더 시티]

안녕하세요? 저는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침구과 전문의로서 활동하면서 침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2019년 미국 뉴욕으로 왔습니다. 이 글을 통해 한의사로서, 강사 및 연구자로서, 또 두 아이의 엄마로서 해외에서 살아가는 일상과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의사 이승민 프로필

뉴욕 개원 다이어리

 

한의원을 개원할 때, 성공한 부의가 된 자신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상상해보지 않은 한의사가 있을까요? 저 역시도 그랬고 어떻게 하면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개원할 수 있을지를 나름대로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2009년에 발간된 ‘의원 경영실태조사’에 따르면 개원의들은 성공적 개원의 요소로 개원입지 (62.4%), 진료기술 (21.6%), 그리고 경영기술 (11.1%)을 가장 중요한 세 가지로 꼽았다고 합니다. 물론 주변 여건 등 다른 요소들도 중요하겠지만,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개원할 때 큰 틀에서 기본적인 방향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오기 전 저의 예상과는 다른 부분도 적지 않았는데요, 이번 칼럼에서는 저의 뉴욕에서의 개원 경험을 위의 세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간단히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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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원 입지는 역시나 뉴욕 맨해튼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맨해튼 지역의 인구 밀도는 전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고, 특히 주차료가 비싸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출퇴근을 하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역세권일수록 당연히 임대료는 비싸지고,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일수록 관련 비용이 증가합니다.


이 중 특히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은, 통근 열차와 도시 간 열차가 운행되는 펜실베이니아 역이 위치한 미드타운 지역 (Midtown), 그리고 월가가 있는 파이낸셜 디스트릭트 (Financial District) 등이 있는데, 저는 접근성을 우선으로 고려, 이 두 지역을 위주로 인터넷 검색과 발품을 파는 형태로 개원할 장소 및 주변 상권, 한의원 수 등을 알아보았습니다. 알아보니 두 지역 모두 벌써 의원 수는 사실상 포화 상태였고, 특히 미드타운 지역에는 한 빌딩에만 한의원이 수십 개 있는 건물도 있었습니다. 월가 인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곳은 금융, 회계, 법률 사무소 등이 밀집되어 있어 장시간 컴퓨터 사용으로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이들을 주 타깃으로 의사, 물리 치료사, 카이로프랙터 (chiropractor), 그리고 한의사까지 경쟁하는 구조이다 보니 괜찮은 건물에는 층마다 관련 의원이 있는 정도였습니다.


이렇듯 벌써 포화 상태라는 점에서는 역세권에 개원하는 게 불리해 보이는 면도 있지만, 그만큼 환자들의 접근이 용이한 점과 미국에서는 주변에 있는 의원과 친하게 지내면 환자를 서로 보내주기도 (referral) 한다는 것 등의 장점도 있습니다. 개인의 예산이나 상황, 타깃으로 하는 환자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선택하시면 되겠지만, 사견으로는 한의원 수가 많다고 무조건 피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우선 집이 파이낸셜 디스트릭트 근처에 있어서 육아 등을 함께 고려하여 월가 인근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교통편이 좋아서 확실히 접근이 용이했고 덕분에 신규 환자를 끌어 오기에는 좋았습니다. 그러나 회사원이 대부분이다 보니 보험 환자가 기본이고 점심, 혹은 퇴근 시간대에 환자가 몰리는 경향이 있더군요. 한국처럼 한의원에 베드를 5~6개 이상 두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아쉬울 때가 많았습니다. 또한 조금 부연 설명해 드리자면, 지역적 특성에 따라 보험 환자가 불가피한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 위치를 선정하실 때 이런 부분도 반드시 함께 고려하고 준비하시길 조언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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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침구사 자격증 시험까지 합격할 정도면 진료 시 필요한 기술은 기본적으로 다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미국에 와서 특히 더 신경 쓰게 된 것은 침 치료입니다. 한국에서는 한의사가 침, 뜸, 부항은 물론 약침, 봉침, 매선, 한약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치료 효과 향상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뉴욕주를 기준으로만 봤을 때 약침, 봉침, 매선은 사용이 불가능하고, 뜸은 화재 및 소송 위험 때문에 적용하기 쉽지 않으며 환자들은 익숙하지 않은 습부항과 한약에 대해서는 다소 거부감이 있는 편입니다. 환자와 라포 (rapport)가 적절히 형성되고 그 진료법에 대해 충분히 이해를 시켜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까지는 기본적으로 침 하나로 진료 효과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전에 뉴욕에서 진료하셨던 모 선배님이 “꼭 손발 다 묶고 입으로만 침을 놔야 하는 기분”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저도 무척 공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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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한국만큼 한의학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은 뉴욕에서는 특히나 경영기술이 개원 성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 한의과대학을 졸업하는 한의사 중 70% 이상이 예전 본업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미국에서도 한의원을 개원해서 성공시키는 것이 지난한 길임은 틀림없습니다.


한국과 조금 차이가 있는 것은 거의 100% 예약 시스템인 미국에서는 예약 환자가 방문하지 않을 경우를 미리 방지하는 노하우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초기에 렌트 비용이 부담스러워서 우선 시간 단위로 예약해서 쓸 수 있는 진료실에서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용한 곳은 한 시간에 베드 하나 사용하는데 이용료가 30불이었고, 뉴욕에서 침 치료비는 평균 120불 정도이므로 저렴하다고 생각하고 좋아했었습니다. 그러나 환자들이 뜻밖의 일이 생겨 예약을 취소할 때면 그대로 이용료를 손해 보게 되어서 속이 쓰렸던 경험도 있습니다. 다소 여유 자금이 있는 상태에서 한의원을 개원하시는 분들은 초기에 좀 더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셔도 될 것 같아요. 구글 광고 및 리뷰 관리를 시작으로, ‘ZOCDOC’과 같은 온라인 예약 플랫폼 등을 활용하거나 각종 커뮤니티와 회사 내 이벤트에서 강연이나 할인 쿠폰 발급 등의 행사를 하고, 정기적인 뉴스레터 이메일을 통해 환자를 지속해서 관리하는 방법 등이 가능합니다.


오랜 고민 끝에 미국에 와서 개원을 목표로 삼았지만, 현실은 정말 산 넘어 산이었습니다. 또 어느 정도 정착시키고 성장하고 있을 때 코로나 사태가 터졌네요. 결국, 개원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는 타이밍일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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