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이승민
[워킹맘 한의사 앤 더 시티]

안녕하세요? 저는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침구과 전문의로서 활동하면서 침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2019년 미국 뉴욕으로 왔습니다. 이 글을 통해 한의사로서, 강사 및 연구자로서, 또 두 아이의 엄마로서 해외에서 살아가는 일상과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의사 이승민 프로필

한약 분쟁에 이은 침술 분쟁, 미국에서는?

 

한의계 근현대사에서 가장 큰 사건으로 언급되는 한약 분쟁은 많은 선배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을 정도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한의사의 고유 영역이었던 한약을 조금 '빼앗기는' 결과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의사들이 단합하고 내외부에 한의계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하였습니다.


한약 분쟁은 천연물 신약 사태와 같이 새로운 형태로 이어져 오고 있긴 하지만, 과거에는 한약 분쟁이 주요 안건이었다면 21세기 들어와서는 침술 분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침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통증의 치료 효과와 기전에 대한 근거가 축적되면서, IMS 혹은 dry needling 형태로 의사뿐만 아니라 물리치료사까지 침을 놓는 경우가 많아졌는데요. 한국에서는 최근 대법원 판례를 보면 의사 지시를 받아서 침을 놓은 것도, 의사가 침을 직접 자입하는 것도 의료법 위반이라는 판결이 나오며 확실하게 선을 그어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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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대부분의 의사는 침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33개의 주에서는 별다른 수업/이수 과정 없이도 침 치료를 시행할 수 있고, 11개 주와 District of Columbia에서는 최소 200~300시간의 수업을 이수하고 나서 침 치료를 할 수 있고, 3개의 주에서는 의료인이더라도 추가로 침구사 면허를 따야 침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1].


* 의사들이 듣는 200~300시간 수업은 대부분 John Helms의 “Helm's acupuncture course”이며, 1983년부터 7천 명이 넘는 의료인이 수강하였습니다. 주로 American Academy of Medical Acupuncture 단체 회원으로 활동하며 진료를 하고 신경생리학적 치료 기전에만 국한해서 침 치료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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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프랙터 (Chiropractor)는 미국에서 MD는 아니지만 침구사와는 다르게 'Doctor'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5개 주에서는 추가 이수 과정 없이도 침 치료를 시행할 수 있지만, 23개의 주에서는 침구사 면허까지 따야 침 치료를 할 수 있고, 나머지 23개의 주에서는 100~300시간 정도의 수업을 이수하고 추가 시험을 추가하면 dry needling에 한해 근육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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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는 대부분의 주에서는 침 치료가 면허 범위 밖의 행위이지만 특이하게도 6개의 주에서는 치과 치료에 한해서는 별다른 수업/이수 과정 없이도 사용할 수 있게 하며, 5개의 주에서는 80~300시간의 수업을 들으면 침을 이용해서 치료할 수 있도록 허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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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Veterinarian)도 침 관련 코스를 이수하면 동물에게 침 치료를 할 수 있고, 반대로 몇몇 주에서는 침구사도 동물의 해부/생리/병리 관련 코스를 이수하면 동물에게 침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각 주마다 자격과 조건은 조금씩 다르며 수시로 바뀌고 있지만 직군 간에 침 치료와 관련해서 큰 분쟁은 아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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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없지만 영미권에 있는 직군이 발 전문 치료사인 Podiatrist입니다. 하지 골절/염좌뿐 만 아니라 무지외반증, 당뇨, 관절염, 통증, 신경종 등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며 이런 질환의 진단, 약물 처방, 치료, 및 필요시 수술까지 가능한 준 의료인입니다. 미국 대부분의 주 (42주)에서는 침 치료를 사용할 수 없지만 3개의 주에서는 발 치료를 위해서는 별다른 과정 없이 침 사용을 허용하고 있으며 4개의 주에서는 25~300시간의 수업을 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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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술 사용에 있어서 미국에서 제일 논란이 되고 있는 직군이 물리치료사 (Physical therapist)입니다. 대부분의 의사들도 dry needling을 하기 위해 200시간 정도 되는 강의를 이수하는데 반해, 물리치료사들은 40~60시간 정도만 듣고 바로 사용하겠다고 하니, 논란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해가 안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물리치료사협회의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로비로 36개의 주에서는 물리치료사에게 dry needling이 허용이 되었고, 특히 안타까운 것은 올해 뉴저지 주마저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하며 37개 주가 물리치료사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2]. 그나마 이에 대한 선을 확실하게 긋고 있는 주는 캘리포니아, 뉴욕, 하와이, 오리건, 그리고 워싱턴 주인데, 아마도 미국 전역에서 미국 한의사들이 가장 많이 활동하고 있는 주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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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여러 종류의 간호사가 있고, 보통 대학원 이상의 교육기관에서 학위를 수여한 전문화된 의료 교육을 받은 간호사인 Advanced Practice Registered Nurse (APRN)에게는 침 치료가 면허 범위 안에 포함된다고 합니다. APRN은 환자의 기본적인 진단과 약 처방도 가능하며, 침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300시간 이상의 추가 교육과정을 이수하도록 요구되고 있고, 허용하고 있는 주가 물리치료사만큼 많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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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왜 이렇게 다양한 직군에게 dry needling을 허용하는 걸까요? 각 주마다 처한 의료 환경도 매우 다르고, 로비가 활성화되어 있는 나라여서 확실히 정치적인 영향을 받기는 하는 것 같습니다. 의사 수도 부족해서 몇몇 주에서는 간호사가 개인 의원도 열고 진단과 처방까지 하는 1차 의료인의 역할까지 수행합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죠. 미국 한의사들 사이에서는 한의과대학의 교육 과정도 중요한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졸업까지 조금 더 오래 걸리더라도, 중국이나 한국의 한의과대학교 만큼 현대의과학 과목들을 대폭 증량해서 현대과학적 기전을 바탕으로 하는 침 치료도 의료 범위 안으로 확실하게 끌고 와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어쨌든, 한의사들의 고유 영역이었던 침술을 타 직군에서도 이용하려고 한다는 것은 침술의 인지도가 그만큼 높아졌고 효과도 인정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지속되는 '침술 분쟁'에 좋아할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근골격계 통증 침 치료 기법이 dry needling이라고 재해석되어 사용되듯이, 부항까지 'neurorelease technique'이라는 용어로 물리치료사에게 강의가 제공되고 있는 것을 보면[3], 미국에서도 확실히 한의사들이 내외부 힘을 기를 때는 온 것 같습니다.



References


[1] Bleck RR, Gold MA, Westhoff CL. Training hour requirements to provide acupuncture in the United States. Acupunct Med. 2021 Aug;39(4):327-333.


[2] State Laws and Regulations Governing Dry Needling Performed by Physical Therapist in the U.S. APTA 2020.


[3] Integrative Dry Need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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