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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에서 정선으로 이어지는 지역은 과거 오지 중 오지였던 곳이다. 그곳의 사람들은 칠족령 숲길을 넘어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다녀야 했다. 그 길이 이제는 호젓한 트레킹 코스가 되어 있다.

백운산 자락을 따라 걷는 길

평창의 미탄면을 지나 15분 정도 국도 곁으로 난 길을 따라 더 들어갔다. 그 끝은 정선으로 이어진다. 정선과 평창을 가름하는 지점에 어름치마을이 있다. 처음에는 포장도로가 끝나서 어디로 가야 하나 한참 망설였다. 지도 앱을 열고 하늘 위에서 보니 하천 왼편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쭉 도로가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가야 하는 거였다.

길옆으로 흐르는 동강의 지류는 장관이다. 기어이 차를 멈춰 세우고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볼 만큼 아름답다. 문제는 그 바람에 시간이 꽤 지체돼 버렸다는 거였지만. 중앙선도 없는 그 길을 어느 정도 달리면 왼편으로 백룡동굴 표지판이 보인다. 미탄면에서 한 번은 들러볼 필요가 있다고 하는 대표적인 여행지다. 평창에서도 이렇게 깊은 산촌까지 찾아가는 수고를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말이다. 백룡동굴이 있는 이 마을이 문희마을이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여기는 세상에 존재가 드러난 지 얼마 되지 않았겠다 싶은 곳이다. 그만큼 심심산골이다. 호랑이가 나온다고 해도 믿을 법하다.

문희마을의 뒤로는 백운산이 거대한 병풍처럼 뒤를 든든히 지키고 앉았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마을은 백운산 자락에서 이어지는 칠족령 너머 정선 덕천리의 제장마을이다. 이런 산골에서는 행정구역 따위가 아무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문서상으로 드러날 뿐이다. 먹고 살기 위해. 혹은 필요한 것을 주고받기 위해 문희마을 사람들은 칠족령의 벼랑 곁으로 난 길을 따라 제장마을까지 걸어 다녔다고 했다. 다른 길이 없는 건 아니다. 동강을 건너 굽이굽이 흘러가는 천변을 따라가면 된다. 그러나 걸리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제일 빠른 길이 산을 넘어 다니는 길이었다.

그 숲길은 마을 뒤로 바로 연결된다. 이 길에 대한 정보를 처음 찾아봤을 때는 어린아이도 넘어 다닐 만큼 수월한 편이라고 했다. 산길로 접어드는 순간부터 그렇게 이야기한 사람의 면상을 보고 싶어졌다. 이 길은 처음부터 가파르게 시작한다. 못 갈 것은 아니지만 다소 힘겹다.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뻗어내는 다리의 각도가 예사롭지 않다. 이는 다시 말해 체력 안배가 필요하다는 것. 자칫 초반부터 힘을 빼버리면 나중에 길을 걷기 괴로울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가파른 오르막이 길게 이어지진 않는다. 200~300미터쯤 올라가면 다소 완만하게 바뀐다. 이번 트레킹은 제장마을까지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중간지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올 계획이다. 그 지점에 이르기까지 길의 대부분은 오르막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천천히 체력을 안배하면서 걷는 게 필요하다.

눈 앞에 펼쳐진 감입곡류의 장관

온 산하가 푸른 빛에 잠긴 계절에 왔다면 좋았겠지만, 하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절이다. 짧은 2주 남짓한 시간 동안 단풍은 낙엽으로 바뀌었고, 금세 겨울의 풍경이 되어 버렸다. 발밑은 불과 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낙엽으로 수북하다. 발을 디디면 푹푹 빠진다. 이런 시기에는 낙엽이 미끄럽기까지 하니 최대한 조심해서 발을 옮길 필요가 있다. 자칫하면 옆으로 가파르게 깎아 내려가는 벼랑으로 떨어지기에 십상이다.

걷다 보면 이 길이 그렇게까지 어려운 코스는 아니라는 생각이 슬슬 찾아온다. 오르막이라는 것만 빼면 그렇다. 적어도 “아이고 사람 살려!”라는 비명에 가까운 혼잣말이 나오는 수준은 아니다. 그냥 강원도스럽다.

정선 사람들은 평창과 정선 사이에 걸쳐 있는 백운산을 ‘배비랑산’ 혹은 ‘배구랑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정선으로 넘어가는 이 길을 칠족령이라고 부른 연유도 궁금했는데, 꽤 재미있는 일화가 붙어 있었다. 옛날에 제장마을에 한 선비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선비가 기르던 개가 사라졌는데, 가구에 칠하려고 옻나무 진액을 담아두었던 항아리 뚜껑이 열려 있었다. 선비는 분명히 개가 그 독에 들어갔다 나온 것으로 생각했다.

개는 옻 진액이 묻은 채로 돌아다녔을 테니 주변을 둘러보면 분명 흔적이 남아 있을 터. 역시나 개의 발자국이 보였고, 그 발자국을 따라 산으로 올랐다. 옻칠을 한 개의 흔적은 백운산 능선을 타고 고개의 반대편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펼쳐진 풍경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걷고 있는 이 길이 그때 그 개가 옻 진액을 남기며 넘어갔던 길이다. ‘옻칠 묻은 개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발견했다’라고 해서 옻 칠(柒), 발 족(足) 자를 써서 칠족령이었던 것. 그리고 제장마을 방향으로 꽤 넘어왔다 싶은 그때, 선비가 보았던 그 장관을 마주하고야 말았다.

오르막이 끝나고 급격히 떨어지는 내리막을 따라 내려간 그곳에 전망대가 있었다. 전망대에 서니 크게 U자형으로 굽이쳐 흐르는 감입곡류가 드러났다. 동강 아름답다는 이야기에 숱하게 들었지만, 그건 대부분 영월 쪽 지형의 이야기다. 평창과 정선 쪽의 동강 상류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바가 그리 많지 않은 편. 이 자리에 올라보니 이곳이야말로 동강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포인트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전망대에 오르면 동강에 기대어 살아가는 마을이 군데군데 보인다. 크게 굽이치는 강 곳곳으로 일 년 내내 경작해서 먹을 것을 얻었을 밭이 보인다. 동강 일대는 온통 석회암 지대다. 이런 지형은 날이 차가워질수록 물색이 짙은 푸른색을 띠는 게 특징이다. 다른 계절에 왔다면 숲길은 아름다웠을 것이나 저 예쁜 물빛은 보지 못했을 테지. 여기까지 와서 생각해 보면 이 숲길이 그렇게 난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 다만 눈이 많이 내릴 때는 가급적 이곳을 찾는 것은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차가운 물에서 건져 올린 별미

미탄면 일대는 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물이 매우 찬 편이다. 이는 송어 양식을 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다. 그런 이유로 미탄면 일대에는 송어 양식장과 송어 전문점이 많다. 오죽하면 미탄면 소재지 인근에는 ‘송어길’이라는 도로명이 있을 정도. 그 송어길을 따라 송어 양식장이 몇 집 줄지어 있다. 그중 ‘용천수산’은 미탄면 현지인이 가장 많이 추천하는 송어횟집이다.

주문을 받으면 양식장에서 송어를 잡아 바로 회를 치기 때문에 신선한 것은 물론이고, 육백 마지기 방향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곡물이 매우 맑고 차가워서 이곳에서 키우는 송어는 이 일대에서 가장 질이 좋다는 평이 자자하다. 다만 포장만 가능하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여기서 떠온 회는 살이 통통하고 차지다. 씹으면 씹을수록 그 식감에 만족도가 높아진다. 이곳은 예약하는 게 필수다. 그렇지 않다면 기본 1시간 이상을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 양어장 곁으로 둠벙이 있는데, 이곳에는 양식장에서 도망친 송어에 산천어 같은 온갖 보기 드문 물고기가 노닐고 있다. 회를 기다리는 동안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지난다. 가격은 1킬로그램에 1만 4천 원. 초장은 별도로 1천 원에 팔고 있고 채소는 따로 주지 않는다.

만약 포장해서 가지고 가기 어렵다면 미탄면에서 어름치마을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위치한 ‘기화송어’를 찾는 것도 좋다. 미탄면 일대에는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송어를 먹을 수 있는 식당에 곳곳에 포진해 있지만, 이곳은 다른 어느 곳과 비교해도 가격이 저렴한 편이고 딸려 나오는 찬도 훌륭하다. 1인분에 2만 원인 송어회정식을 시키면 송어회에 송어튀김, 초밥까지 함께 나온다. 여기에 물회까지 곁들이면 더없이 만족스러운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고단백, 저지방 식품인 송어는 쫄깃한 식감으로 인기가 많다. 차가운 물에 서식하므로 한겨울인 1, 2월이 제철이다. 비타민 A, E가 많아 신진대사 및 혈액순환을 촉진하며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 불포화지방산인 DHA가 풍부해 뇌 기능을 향상하며, 철분도 풍부해 빈혈을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다. 또한, 골다공증 예방과 뼈 건강에도 좋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