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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안성은 목축업이 아주 발달한 고장이었다. 우시장이 안성에 있었던 데에는 그런 목축업의 발달이 한몫했을 것이다. 안성의 목축업이 번성했던 흔적은 지금도 ‘팜랜드’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독일의 낙농업을 이식한 땅

안성팜랜드는 이미 너무 유명한 관광지다. 동물에게 먹이를 주면서 직접 농장 체험을 할 수 있어서 아이를 데리고 가기 좋은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주말이면 가족 단위 여행객이 많은 이유다. 하지만 안성팜랜드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서독과 한국 간의 교류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곳의 시원은 한반도의 경제발전을 염원했던 시기와 맞물려 있다. 그 당시 한국의 상황을 보자. 1950년대 6·25전쟁 이후 미국의 무상원조를 받던 한국은 1960년대 들어 급격한 변화를 맞닥뜨린다. 미국은 자국 국제수지가 악화되고 있는 와중이었다. 경제 회복이 절실했던 터라 한국에 보내던 무상원조를 줄이기로 한다.

한국 정부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다른 서방 국가에도 경제 지원을 요청한다. 그 일환으로 서독과 체결한 것이 기술원조협정이었다. 1961년 12월 ‘한·독 정부 간 경제 및 기술 협조에 관한 의정서’가 만들어지자, 서독은 1억 5천만 마르크(당시 환율 3,700만 달러 상당)의 유상원조를 차관으로 제공한다. 한국은 전쟁 이후 인구가 급증하면서 실업난이 심각해지자 노동력이 부족했던 서독에 인력을 보내기로 한다. 이것이 파독 근로자라고 불리는 파독 광부 및 간호사를 보내기 시작한 배경이다.

한국과 서독의 관계가 돈독해지면서 서독은 낙농업 기술을 한국에 전수해 준다. 1964년 대통령의 서독 방문이 계기였다. 그때 서독에서 들여온 소의 품종과 낙농업 기술을 접목해서 실험적으로 운영하던 대규모 목장이 안성에 만들어졌다. 이것이 1969년의 일이다. ‘한독낙농시범 농장’이라 불리던 이 농장에는 독일에서 들여온 젖소로 낙농업의 기반을 만들었다. 우유를 생산하는 한편 인근의 지역 농가에도 송아지를 분양해 주면서 시범농장을 점차 확대해 갔다. 일련의 모든 것은 새마을운동의 일환이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낙농업은 사실 안성의 이 자리에서부터 태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1980년대 이 목장은 축종별 시범목장으로, 1990년대에는 우량 한우 번식우 공급목장으로 점차 기능이 바뀌어왔다. 그때도 한독목장 울타리 주변은 가을마다 코스모스가 만개했고,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너른 목초지가 있어 풍광이 좋았고, 그래서 2012년 팜랜드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농협경제지주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그 부지만 무려 128만 7,000제곱미터(약 39만 평)에 달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너른 체험목장이 이곳이다. 그 안에 목초지를 비롯해 푸드하우스, 승마장, 마구간, 팜스쿨 등 온갖 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거대한 농장테마파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밀이 가득 메운 이국적 풍경

이곳은 산책을 즐기기에도 좋지만, 코스를 잘 잡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끝도 없이 걸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기에 딱 좋다. 아마도 아이를 데리고 갔다면 온갖 불평에 시달려야 할 게다. 그래서 가능하면 전동자전거를 이용하길 권한다. 자전거가 다니는 길은 일방통행이다. 혹시 모를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넘어가는 중에 중년의 부부가 역주행하는 광경을 마주하고 말았다. 제발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이곳에서도 하게 된다. 더구나 어린이들이 많은 이런 곳에서는 “뭐 어때”라는 말은 하지 말았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덕바지를 따라 펼쳐지는 너른 목초지의 장관은 이내 마음을 들뜨게 한다. 이곳은 계절마다 서로 다른 풍광을 만날 수 있다. 봄에는 유채꽃, 여름에는 해바라기, 양귀비, 가을에는 핑크뮬리가 무리 지어 피어난다. 겨울에 눈이 내린 날에는 다른 그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설원도 펼쳐진다. 지금은 호밀의 계절이다. 호밀이라는 단어는 알아도 실제 호밀을 본 사람은 드물다. 한국 땅에서 호밀을 재배하는 농가가 적은 탓이다. 그 귀한 모습이 이곳에 있다. 그것도 엄청난 규모로. 푸른 호밀밭이 자전거길 곁으로 끝도 없이 이어진다. 지금 조성된 호밀밭은 무려 전체의 1/4인 10만 평에 달한다. 바람이 불 때마다 호밀이 눕고 다시 일어난다. 여기에서 재배한 호밀은 가루로 제분한다. 저장고에 넣어 발표시켜서 1,300마리에 달하는 비육우와 500마리의 번식우가 먹을 사료로 사용한다. 이 덕분에 이곳의 목장에는 좋은 사료를 먹고 자란 건강한 동물이 언제나 뛰어놀고 있다.

여기서 자라는 동물은 그 종류도 다양하다. 말과 조랑말도 있고, 팜랜드가 시작될 당시 주인공이었던 소도 종류별로 있다. 울릉도에서 키운다는 칡소도 이곳에서 처음 만났다. 호랑이처럼 검은 무늬를 가진 칡소의 자태가 어찌나 신비롭던지. 칡소라는 품종이 궁금하다면 안성팜랜드를 찾으면 된다. 목초지에서 놀고 쉬는 건강한 칡소의 생태를 바로 곁에서 관찰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이외에도 면양, 산양, 염소, 돼지도 있고 노새와 당나귀도 자란다. 노새와 당나귀는 얼핏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특징을 가진 동물들이다. 말의 사촌에 해당하는 이 둘은 아이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사슴과 오소리도 평소에 보기 어려웠던 동물들. 그리고 칠면조와 오계도 이곳을 찾아온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잠시 내려서 동물을 만나고 관찰하면서 이곳을 즐기다 보면 시간은 금세 흘러간다. 한두 시간 정도로는 어림도 없으니 충분한 여유를 두고 올 것. 그래야만 안성팜랜드가 가진 가치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칼질 대신 쌈으로 싸 먹는 돈가스

안성팜랜드에서 가까운 곳에 아주 독특한 음식을 파는 가게가 있다. 오막골이라는 이름의 이 가게까지의 거리는 불과 5킬로미터 정도. 대덕농협 바로 인근의 산 중턱에 자리한 이 식당의 주력은 돈가스다. 물론 보통의 돈가스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먹어야 할 것은 돈가스 쌈이다. 돈가스를 어떻게 쌈으로 먹는지 궁금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보통 쌈이라고 하면 상추나 깻잎 같은 채소에 싸 먹는 모습을 떠올릴 테니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쌈은 채소가 아닌 라이스페이퍼에 싸서 먹는 방식이다.

주문을 넣으면 15분 정도.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그만큼 주방의 손길은 기민하다. 상 위에 놓인 음식은 아주 화려하다. 매일 잘 다듬은 12가지 채소를 깔고 그 위에 잘 튀긴 등심 돈가스를 올렸다. 채소의 종류도 색깔별 파프리카, 비트, 당근, 오이, 양파, 깻잎, 새싹 등 다양하다. 플레이팅부터 눈이 즐겁다. 돈가스 전문점인 만큼 돈가스의 식감도 매우 바삭하다. 그냥 소스에 찍어 먹기만 해도 좋다. 이 메뉴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역시 식당 측이 의도한 대로 쌈에 싸 먹는 게 맞을 것이다.

먼저 따뜻한 온수에 라이스페이퍼를 적셔 부드럽게 만든 다음 그 위에 원하는 채소와 돈가스를 담는다. 내용물이 넘치지 않게 잘 접어서 소스에 찍어 먹으면 된다. 소스도 칠리, 땅콩, 분싸오 세 가지가 있으니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돈가스 쌈을 소스에 찍어서 입에 넣었다. 바삭함 더하기 아삭함. 거기에 온수에 젖은 라이스페이퍼가 주는 쫄깃함. 다른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했던 각별한 즐거움이 입안에 물들어 온다.

함께 주문한 회오리 오므라이스에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얇게 부친 계란이 다 익기 전 팬 위에서 젓가락으로 돌려 만드는 회오리 기술은 어지간한 경력의 요리사도 어려워한다. 그런데 이런 음식을 이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다. 이건 일본에서 시작해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던 음식이다. 계란의 익힘 정도도 알맞고 그 안에 담은 볶음밥에도 새우와 쇠고기가 들어가 맛도 좋다.

이곳의 모든 메뉴는 사장님이 직접 고민하고 배워서 만들어 낸 것.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으로 가게를 열고 아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메뉴에 대한 호평이 나오자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 색다른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서 개발한 돈가스 쌈이 손님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모르겠어서 늘 노심초사였다고. 순박한 그의 미소에 나 역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모쪼록 많은 사람에게 이곳이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식당이었다.

파프리카 (paprika)의 원산지는 중앙아메리카다. 원래 튀르키예를 대표하는 향신료로 유명했고, 오스만제국 당시 헝가리로 전파됐다. 국내에서는 단맛을 내는 피망 닮은 채소로 여기지만, 유럽 특히 파프리카로 가장 유명한 나라인 헝가리에서는 매운 고추를 말한다. 원래 피망 'piment'은 고추를 지칭하는 프랑스어다. 그러니까 피망과 파프리카는 같은 종이다. 이를 일본에서 상업적 목적으로 분리해서 취급했고, 이것이 국내에 그대로 유입된 결과 피망과 파프리카를 서로 다른 종으로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파프리카에는 철분이 많아 빈혈에 좋다. 비타민 C도 풍부해서 면역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 눈에 좋은 루테인 (lutein) 성분도 많이 함유되어 있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